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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100주년 되는 해인데요.
당시 일제와 싸웠던 독립지사들의 후손들 중에는 여전히 외국에서 거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타국에 사는 항일 독립지사 후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국에 사는 광복군 후손 한 분을 강성웅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기자]
중국 충칭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유수동 씨.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독립지사 유진동 선생의 막내 아들입니다.
유진동 선생은 상하이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김구 선생의 주치의가 돼 목숨 걸고 일제와 싸웠습니다.
광복군에서 군의처장도 맡아 밤낮 없이 독립투사들을 돌봤습니다.
[유수동 (65세) /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4남 (충칭 거주) : 선친께서는 항상 김구 주석의 건강을 위해 의무 쪽의 일을 하셨습니다.]
1940년 중국인 간호사와 결혼한 유진동 선생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가 이내 중국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임시정부 경력이 문제가 돼 고초를 겪자 북한행을 택했습니다.
북한에서 처음에 환대를 받았지만 점차 감시의 대상이 됐다가 끝내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수인 (75세) /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장녀 (충칭 거주) :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주 엄격하셨고, 항상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63년, 유진동 선생을 잃은 가족들은 중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나라는 해방이 됐지만 독립지사 가족의 삶은 더 혹독한 유랑의 연속이었습니다.
1942년에 찍은 임시의정원 회의 기념사진입니다.
앞줄에 앉은 분이 김구 주석이고, 뒷줄에 안경을 쓰고 서 계신 분이 독립운동가 유진동 선생입니다.
지난 2007년 우리 정부는 유진동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습니다.
남과 북에서 모두 묻힐 뻔했던 선생의 업적도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후손의 눈에 아버지가 꿈꿨던 해방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유수동 (65세) /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4남 (충칭 거주) : 내가 살아생전에 고향에 돌아가서, 완전 통일된 나라를 보고 싶습니다.]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아들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버지의 노래는 아리랑.
이제는 남과 북이 함께 불러야 할 '우리의 노래'입니다.
충칭에서 YTN 강성웅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올해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100주년 되는 해인데요.
당시 일제와 싸웠던 독립지사들의 후손들 중에는 여전히 외국에서 거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타국에 사는 항일 독립지사 후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국에 사는 광복군 후손 한 분을 강성웅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기자]
중국 충칭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유수동 씨.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독립지사 유진동 선생의 막내 아들입니다.
유진동 선생은 상하이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김구 선생의 주치의가 돼 목숨 걸고 일제와 싸웠습니다.
광복군에서 군의처장도 맡아 밤낮 없이 독립투사들을 돌봤습니다.
[유수동 (65세) /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4남 (충칭 거주) : 선친께서는 항상 김구 주석의 건강을 위해 의무 쪽의 일을 하셨습니다.]
1940년 중국인 간호사와 결혼한 유진동 선생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가 이내 중국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임시정부 경력이 문제가 돼 고초를 겪자 북한행을 택했습니다.
북한에서 처음에 환대를 받았지만 점차 감시의 대상이 됐다가 끝내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수인 (75세) /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장녀 (충칭 거주) :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주 엄격하셨고, 항상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63년, 유진동 선생을 잃은 가족들은 중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나라는 해방이 됐지만 독립지사 가족의 삶은 더 혹독한 유랑의 연속이었습니다.
1942년에 찍은 임시의정원 회의 기념사진입니다.
앞줄에 앉은 분이 김구 주석이고, 뒷줄에 안경을 쓰고 서 계신 분이 독립운동가 유진동 선생입니다.
지난 2007년 우리 정부는 유진동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습니다.
남과 북에서 모두 묻힐 뻔했던 선생의 업적도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후손의 눈에 아버지가 꿈꿨던 해방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유수동 (65세) /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4남 (충칭 거주) : 내가 살아생전에 고향에 돌아가서, 완전 통일된 나라를 보고 싶습니다.]
광복군 유진동 선생의 아들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버지의 노래는 아리랑.
이제는 남과 북이 함께 불러야 할 '우리의 노래'입니다.
충칭에서 YTN 강성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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