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도 지냈었는데..." 2차 이산가족 눈물의 상봉

"제사도 지냈었는데..." 2차 이산가족 눈물의 상봉

2018.08.24. 오후 6:33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양무진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앵커]
조금 전이죠. 오후 5시까지 감격의 첫 만남을 가졌고 잠시 뒤 저녁 7시부터 남측 주최로 환영 만찬을 함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감동의 2차 이산가족 상봉 현장, 가족들마다 여러 다양한 사연들이 많은데요. 관련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2차 이산가족 상봉. 1회차가 있었고 이번 주에 2회차 아닙니까? 1회차, 2회차가 어떤 게 달라지는 거죠?

[기자]
사실 1차 같은 경우는 북녘이 고향인 사람들이 남측이 북쪽의 가족을 먼저 신청해서 하는 것이고요. 이번 2차 같은 경우는 남측이 고향이었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서 북으로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남쪽의 가족들을 찾는 거. 그래서 아마 30분 뒤면 환영 만찬이 있는데 우리 측이 주관을 해서 저녁을 같이하는 행사가 이뤄지게 됩니다.

[앵커]
당초에는 태풍 솔릭 때문에 상봉 일정이 좀 변경될 가능성도 나왔었는데 다행히 잘 진행이 된 것 같아요.

[인터뷰]
그렇죠. 65년, 70년 만에 이런 이산가족 행사가 이뤄졌는데 언제든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지금 태풍 솔릭, 쉽게 말해서 태풍이 몰아쳐도 만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 이것이 이산가족들의 일종의 뭡니까? 기대 또 의지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지금 일정대로 남북이 합의한 일정대로 한 것이 상당히 안도의 한숨이랄까요.

어쨌든 간에 지금 1차적으로 금강산에서, 한마디로 지금 현재 오늘은 뭡니까? 단체상봉과 환영 만찬이 우리 측의 면회소에서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우리 김주환 전문기자님이 잘 말씀해 주셨는데 조금 차이가 있다면 1회차의 경우에는 주로 뭡니까?

잠은 외금강호텔에서 잤고 만찬, 또는 상봉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금강산호텔이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뭡니까? 이제 좀 바뀌는 것이죠. 잠은 금강산호텔에서 자고 단체상봉이라든지 환영만찬회는 면회소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이제 면회소에서 하는 것이 이번이 두 번째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가 있죠. 앞으로 면회소, 뭡니까? 정상화를 시켜서 이산가족자들의 한이랄까요. 상시상봉. 정례화랄까요. 이번에 의해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앵커]
그때 그때 장소가 달라지고 주체가 달라지고 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되는 겁니까?

[인터뷰]
간단합니다. 1회차일 때는 우리 측의 방문한 89명이 북측 가족을 만나러 갔죠. 북측 가족을 만나는 겁니다. 이것은 뭡니까? 북한에서 주관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뭡니까? 방금 우리 김주환 기자님 말씀대로 남측에 있는 가족, 북한 방문단 81명이 우리 측의 가족 326명을 만났죠.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이것은 우리 측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관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고 첫 시작할 때 지금 이번에 예상보다도 숫자가 줄어들었죠.

한 2명 정도 줄었는데 그만큼 이산가족 분들의 고령화, 또 건강 문제, 이런 부분 때문에 불과 며칠 사이에 분명히 줄어들었다. 이것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시급성,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앵커]
내일 개별상봉도 열리게 되는데 1차 상봉 때와 마찬가지로 객실에서 오붓하게 도시락을 먹는 거죠?

[기자]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1차 때는 북측이 도시락을 제공했고 내일 같은 경우는 남측이 도시락을. 지금 테이블에 다과, 음료를 보면 지난번에 북측이 제공한 것이고 이번에는 우리 측이 제공한 거라서 아마 시청자 여러분들은 이 다과에 대해서 눈에 익은 상표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앵커]
지금 가족들, 오늘 3시 조금 넘어서 단체상봉이 이뤄졌는데요.

[기자]
1번이죠, 1번. 최고령 제주도에서 올라온 강정옥 할머니가 북에 있는 강정화. 여동생을 만나는 거죠.

[앵커]
보면 왼쪽에 노란색 옷을 입고 계신 분이 우리 쪽 100살 강정옥 할머니입니다. 두 분이 만났습니다.

[앵커]
북측의 여동생 85살 강정화 씨를 만났습니다. 강정화 씨는 17살 때 방직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고향 제주를 떠났다고 합니다.

[앵커]
동생, 북한에 있는 동생 강정화 씨가 신청을 했고요. 언니, 강정옥 씨가 만났습니다. 잠깐 들어볼까요.

[앵커]
제주도 애월에서 올라온 강정옥 할머니, 태풍 솔릭 때문에 발이 묶일까 걱정해서 미리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따라서 무사히 상봉행사를 하루 앞둔 어제 이곳에 도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앵커]
할머니가 돼서 만난 동생. 한눈에 알아봤다고 해요.

[인터뷰]
그렇죠.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나오는데 이번에서 보면 이산가족에 부부가 한 쌍도 없죠. 단지 부자가 한 팀이 있고 자매가 11가족이죠. 남매가 28가족인가 그렇게 돼 있고 또 지금 형제가 14가족으로 돼 있죠. 이것으로 봤을 때 이 또한 이산가족 상봉에 있어서 고령화,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특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형제가 또 뭡니까? 부자지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것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적인 반증이 아니겠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지금 보시는 가족은 90살 리숙희 씨가 남동생, 남측에 있는 남동생 이용희 씨, 그리고 여동생 이정숙 씨, 이후남 씨를 만나고 있습니다.

[앵커]
전쟁 중에 리숙희 씨와 남편, 쌍둥이 딸이 모두 북한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하는데요. 경기도 양주가 고향인데 과수원을 운영하다가 전쟁 때 행방불명이 됐다는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대한적십자 박경서 총재가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군요.

[앵커]
다음 가족을 볼까요.

[앵커]
북한에서 심창길 씨가 신청을 했고요.

[앵커]
심창길 씨, 다른 집에 수양딸로 갔다가 전쟁이 나면서 형제들과 헤어지게 됐습니다. 수양딸이 된 집에서 인민군들이 모여 살다가 북으로 갈 때 함께 갔다고 합니다. 이번 2차 상봉 때는 보니까 형제, 자매 상봉이 많은 것 같아요.

[기자]
앞서 양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고령화가 되니까. 그런데 형제자매라도 벌써 팔순, 구순이 되신 분이죠. 굉장히 연로하신 분들인데 지금 중간중간에 보면 저는 특징적으로 본 것이 20차 2차 때 북측으로 내려올 때 훈, 포장을 주렁주렁 찼었습니다. 굉장히 달라진 모습이죠. 물론 앞서 화면에 이런 케이스의 북에서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라는 삶의 궤적을 꺼내놓은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어떤 양측 간의 체제 선전을 한다라든가 이런 측면이 굉장히 많이 없어졌다, 이렇게 화면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앵커]
화면상에 자매의 모습을 볼 수가 있고요. 다음은 유일한 부모자식 상봉이 되겠습니다.

[앵커]
북측의 아버지 88살 조덕용 씨를 67살 조정기 씨가 생전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입니다.

[앵커]
오른쪽에 아버지 조덕용 씨. 그리고 아들 조정기. 부자상봉 모습인데요.

[기자]
어머님이 두 달 전에 돌아가셨다라고 해서 할아버지가 앞서 화면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됐냐 그러니까 돌아가셨다라고 해서 굉장히 충격... 지금 우는 모습이죠.

[앵커]
왼쪽의 조정기 씨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해요.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북으로 갔고요. 어머니는 68년 동안 기다리다가 한 두세 달 전에 최근에 돌아가셨군요.

[앵커]
두 달 전에 작고를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북측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67살 조정기 씨. 기쁨도 기쁨이지만 어머님이 작고를 하셔서 아쉬운 마음을 먼저 드러냈다고 합니다.

[인터뷰]
1회차일 때는 유관식 할아버님이죠. 유복딸, 딸을 몰랐는데 이번에 신청하다 보니까 딸이 나온 것이죠. 이번에는 뭡니까? 유복아들. 참 유복자 아들. 이것도 이산가족 한반도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기자]
8번 같은 경우 지나갔는데 역시 사연이 기구합니다. 김인영 씨가 남측에 남동생을 만났는데 미국 폭격으로 숨진 줄 알았다. 그래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살아있다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하죠.

[앵커]
지금은 남동생 김용수 씨가 김현수 씨를 만나는 모습인데요.

[앵커]
고향은 양양이라고 합니다. 김용수 씨와 함께 전쟁 때 북으로 간 넷째 김종수 씨가 생사 확인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두 형제가 전쟁 때 북쪽으로 피난을 갔고 이후 분단으로 헤어지게 됐습니다.

[기자]
추가로 말씀드리면 남측에 손녀딸 김규현이라는 분이 손편지를 써서 기자들한테 공개했습니다. 북쪽의 큰할아버지한테 보내는 손편지가 앞서 기자들한테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몇 차례 보도를 했는데 또 공개될 것 같습니다.

[앵커]
오늘 현장의 취재기자들 말로는 60여 년, 65년 만에 이렇게 만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해요. 형제간에도요.

[인터뷰]
그렇죠. 일반적으로 제가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혈맹공동체. 그 속에 특히 북한들의 민족의 혈맹공동체지만 피는 물보다 진해서 바로 알아보는. 물론 그사이에 65년 사이에 많은 그리움을 생각했겠죠. 우리가 보통 한 10년 이렇게 하더라도 형제간의 변화, 목소리. 그다음에 머리 모양, 이런 거 보면 대번에 알 수 있겠죠. 어쨌든 간에 이런 65년 동안의 귀도 어둡고 눈도 어둡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 내 딸, 형제 이렇게 알아본다는 것은 역시 피의 혈연의 중요성, 그것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다음은 북한의 84살 리근숙 씨가 새언니 전경옥 그리고 이복동생 황보원식 씨를 만나는 모습입니다.

[기자]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14살 때 직장 때문에 나갔는데 그걸 가보로 간직하면서...

[앵커]
북한의 강호례 씨가 여동생 강두리 씨, 강후남 씨를 만나는 모습이죠.

[앵커]
자매 상봉을 하고 있는데요. 강호례 씨는 북으로 시집을 간 뒤에 전쟁이 나면서 친정식구와 헤어지게 됐습니다. 남쪽에 남아있던 어머니, 큰딸이 소식이 끊긴 후로 명절마다 우셨다고 하네요.

[앵커]
왼쪽에 강호례 씨가 신청해서 남측의 가족을 만나는 모습입니다.

[인터뷰]
이번에 자매 상봉이 11명이죠.

[앵커]
여섯 자매가 만나는 가족도 있더라고요.

[기자]
그리고 화면에 안 비추어졌지만 두세 경우가 인민군으로 징집돼서 나왔다 포로수용소에 있는데 그때 아시는 분들은 알지만 방공포로 석방이 있었고 북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는데 두 분이 북으로 돌아갔다가 이번에 다시 만나는 겁니다.

[앵커]
북측의 강호례 씨가 큰언니가 되고요. 남쪽에 어머니가 계셨고 큰딸 소식 끊긴 후에는 명절마다 우셨다고 하는데요. 그런 얘기를 하겠죠.

[앵커]
이렇게 두 손을 맞잡은 손을 꼭 잡고 70년 가까이 헤어졌던 마음을 서로 전하고 있습니다.

[앵커]
북측에서 이렇게 남쪽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신청하는 분들은 대개 어떤 분들, 누구나 다 신청할 수 있는 건가요?

[기자]
사실 구조가 우리처럼 그렇게 컴퓨터 추첨으로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북한은 우리하고 다르게 이른바 각 부문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부문별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신청을 해서 선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보면 북측이 남측 가족을 선정할 때 많게는 두세 번씩 만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앵커]
상대적으로 북측에서 조금 잘 되신 분들이 신청을 해서 남쪽의 가족들을...

[기자]
화면에 잠깐 비춰지는 모습이었는데 훈, 포장 같은 것들을 들고 나온 분들도 있고요.

[앵커]
남쪽의 어머니가 큰딸의 소식이 끊긴 이후로 명절마다 우셨다는 사연을 이렇게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에 형제자매 상봉이 많은데 또 보니까 성이 다른 경우가 많더라고요. 북측으로 건너가서 개명을 한 사례가 좀 많다고요. 왜 그런 건가요?

[인터뷰]
그럴 수 있겠죠. 북한은 우리하고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혹시 돌아가시더라도 거의 아버지 성을 따르는데 북한은 양부의 성을 따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새로 재가라 합니까? 그렇게 한다면 양아버지의 성을 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래서 성이 다른 그런 경향이 많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하나 추가적으로 보면 지금 북측에서 남측에 고향을 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잘되고 하면... 지금 북측에 고향이 있어도 남측으로 간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월남에서는 배신자라는 그런 이야기를 내부에서 많이 하고 있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결국 뭡니까? 이산가족 상봉하는 데도 가족을 찾는 데 잘 안 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이건 반대죠. 방금 김주환 전문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비록 남측에 고향을 둬서 왔지만 이것은 이런 차원이 아니라 뭐냐하면 좀 잘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사람 중심으로 상봉에 기회를 많이 주는 그런 사례들이 과거에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기자]
지금 여기 사례 중 하나가 화면에 안 비췄습니다마는 1940년도 해방 직후에 아버지가 서울에 지금 모 유명 사립대 교수였는데 가족을 데리고 다 자진 월북을 해서 그 자녀분 중 한 분이 고모를 만나는 경우가 있어요.

[앵커]
그렇군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 논의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다음 주에 북한을 방문할 예정 아닙니까? 날짜가 27일이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이번이 네 번째 방북인데 그사이에 이면에서 어떤 진전이 있었다고 봐야 되는 건가요?

[인터뷰]
폼페이오 장관을 중심으로 한 거의 국무부 주로 메시지하고 또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하고 상당히 차이가 나고 있죠. 폼페이오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국무부는 좀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하고 상당히 교감을 많이 하고 있다. 만나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서 이메일이라든지 여러 가지 접촉, 메시지.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북미가 잘되고 또 북한의 비핵화, 더 나아가서 미국은 체제보장 잘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는데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은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폼페이오 장관의 이야기에 분석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보여지고. 지금 3차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 있어서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 아닙니까? 이것은 뭐냐하면 협상이라는 것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잖아요.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에 빈손으로 가면 빈손으로 돌아가고 선물을 가져가면 더 많은 선물을 가지고 귀국할 수 있다.

지금 그렇게 분석하거든요. 그렇다고 하면 적어도 폼페이오 장관이 들고 갈 수 있는 선물이 뭔가라고 한다면 북한이 원하는 것은 지금 두 가지 아닙니까? 첫 번째는 종전선언, 두 번째는 대북제재 완화 아닙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폼페이오 장관은 어느 정도 해답을 가져가면 아마 김정은 위원장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또 자기들이 원하는, 미국이 원하는 핵 신고, 이런 부분도 충분히 해답을 가져갈 수 있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지금 또 다른 부분은 지금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이 언제쯤 한다 이야기를 했는데 국무부 대변인 보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전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이것은 내부용이다. 미국 내부용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위원장 만남에 대해서 구걸하지 않겠다. 저자세 보이지 않겠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그런 식으로 봤을 때 우리가 이번에는 적어도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이 원하는 걸 들고 가면 미국이 원하는 것을 받아올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김정은 위원장 만날 가능성 높고 그 속에서 어쩌면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이 어느 정도 특사의 역할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 부분도 나름대로 조율을 하고 올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봅니다.

[기자]
그런데 주목할 점이 스티브 비건 새로운 대북 특별대표였는데 나오는 거 보면 이분이 굉장히 협상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과거에 6개월 전 조셉 윤 한국계 그분보다 굉장히 거칠게 몰아붙이니까 굉장히 지금도 기자회견에서 얘기했지 않습니까? 완전한 비핵화를 자기는 요구를 하겠다.

그러니까 폼페이오 장관이 데리고 가겠다는 거죠. 데리고 가서 하는데 굉장히 미국이 요구할 건 요구하고 북한이 뭘 원하는지 내놓아라. 그런데 저는 이걸 꼭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은 게 왜냐하면 발표를 했어요. 다음 주에 간다라는 건 북한과 물밑에서 조율이 됐다라는 거죠. 그런데 아마 4차 방북을 평양에서도 오라고 해놓고 빈손으로 되돌려보내면 트럼프 대통령이 굉장히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정에 진일보는 할 것이다 이렇게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셨던 스티브 비건이라는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 최근까지 직함이 포드 부회장이었는데요. 목소리를 직접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앵커]
목소리를 들어본 스티브 비건. 그동안 외교 문제는 주로 다뤘지만 북한 쪽은 경험이 없는 걸로 전해지고 있어요.

[인터뷰]
그렇죠. 저는 이 스티브 비건이라는 사람이 포드회사, 여기서 3대째 다 거기서 일했다고 알려져 있죠. 또 그리고 뭡니까? 주로 양원, 상원, 하원 여기에 대해서 외교위원회 의원들의 보좌관을 많이 했다고 그러죠.또 아들 부시 행정부 시기에, 그 당시에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 보좌관. 여기에 대해서 안보 보좌관이 일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무슨 협상에 참여 이런 것보다도 사무처를 운영하는 그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죠.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이제 북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또 협상에 대해서 굉장히 능수능란하다 이렇게 볼 수도 없잖아요. 단지 외교 파트에서 보좌관 역할을 했다 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이런 비건이라는 새로운 미국의 대북특별대표가 성김처럼 잘할 수 있을까 또는 조셉 윤처럼 잘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다수의 학자들이 고개를 흔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봐야 되겠지만. 그만큼 북한을 잘 모르고 외교 협상에 대해서 경험이 부족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또는 폼페이오 장관이 대북 특별대표 이것은 아마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 이것이 강한 것이 아닌가 보여지고 어쨌든 지금 새로운 진영이 짜여졌다.

완전히 짜여졌다라고 한다면 앞으로 잘 되면 비핵화 체제보장, 북미 고위급회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속도를 낼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다, 이렇게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이번에 폼페이오와 동행하는 인물이 또 어떤 사람들이 있는 겁니까?

[기자]
사실 알려진 거는 과거에 6.12 북미정상회담 때 워킹그룹이라는 걸 구성한 면면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지금 여러 가지 분들이 참가하겠죠. 중요한 것은 언제 가느냐가 중요한데 아무래도 일요일. 그런데 굉장히 주목할 만한, 폼페이오 장관이 플랫 스탠리라는 분을 데려간다. 그래서 찾아봤어요.

미국 어린이들 사이에 굉장히 동화 주인공인데 이걸 왜 가져가느냐가 봤을 때 제가 여러 사람을 취재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들한테 선물을 주려고 가져가지 않겠느냐 이런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인터뷰]
과거라고 표현하긴 그렇습니다마는 1차, 2차, 3차 이럴 때 보면 폼페이오 장관이 나름대로 북한에 대한 상당 부분 경험이 풍부하고 특히 정부부서. 이런 사람들을 대동해 갔죠. 일례로 지금 앤드루 김이라든지 또 앨리슨 후커라든지. 지금 백악관의 한반도 담당 보좌관 역할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번에 특별대표 새로 진영을 짜서 지금 현재 비건이라는 사람과 간다면 나름대로 폼페이오 장관의 중심에 대한 진영. 다시 말해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기 위한 진영을 다 짜고 그 사람들이 이번에 다 갈 가능성이 상당 높다, 저는 그렇게 전망을 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김주환 정치안보 전문기자였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