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한국' 지운 아베..."미래지향적이지 않아서"

[취재N팩트] '한국' 지운 아베..."미래지향적이지 않아서"

2019.01.29. 오전 11:58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일본 정기국회가 열리면서 아베 총리가 장문의 시정연설을 했는데, 우리나라와 관련한 언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근 불편한 한일관계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도쿄 특파원 연결해 관련 내용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황보연 특파원!

우선 아베 총리가 시정연설에서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았나부터 설명을 해주시지요.

[기자]
일본 총리는 매년 1월 150일간의 정기국회가 열리는 날, 그해 1년의 정책 기조를 담아 설명하는 연설을 하는데요.

그게 어제 아베 총리의 시정연설입니다.

어제 연설은 약 50분 정도로 상당히 긴 편으로, 2012년 아베 총리가 집권한 이후 가장 긴 시정 연설이었습니다.

연설은 인사말과 마무리 말을 빼고 크게 4개 항목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가장 먼저, 그러니까 가장 힘주어 설명한 부분은 양육지원,교육 무상화 등 일본 정부가 국민에 지원하는 사회보장과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올해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국민이 체감하는 부분을 강하게 호소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올해 경제 정책 방향과 지방 활성화 대책 그리고 외교에 대해 순서대로 언급했습니다.

[앵커]
긴 연설 중에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면서요?

[기자]
정확히 말씀드리면, 있긴 있었지만 사실상 없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전해드렸듯이 외교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 '한국'이라는 단어가 한 번 나왔습니다.

원문대로 보자면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대해 갈 것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북한 얘기를 하면서 곁다리로 붙인 것입니다.

이것 말고는 총 만2천800자 정도 되는 연설문 가운데 우리나라가 언급된 것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렇진 않습니다.

아베 총리 집권 후 첫 연설인 2013년부터 따져 보면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 그리고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라는 표현을 2년 전까지 썼습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한국과 미래지향적으로 새 시대의 협력 관계를 깊게 해나간다'는 표현을 썼다가 올해는 아예 언급을 안 한 것입니다.

[앵커]
매년 우리나라에 대해 언급하다 올해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기자]
아베 총리 본인이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 보도를 참고해 보면 짐작은 가능해 보입니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과 레이더 공방 등 한국 측의 움직임이 원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연설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정도의 냉랭한 한일관계의 현상을 반영했다"고 전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이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역시 "징용판결과 레이더 공방 레이더 등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한 것이 배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연설문에 한국을 써넣을 이유가 없었다"는 아베 총리 주변 인사들의 말을 전했습니다.

결국 악화한 한일관계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아베 총리의 불편한 심기가 연설문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아베 총리의 잘못된 역사 인식도 도마 위에 올랐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연설 초반 인사말에서 18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큰 '곤란'에 수없이 직면했지만, 힘을 합쳐 극복해 왔다고 언급한 부분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일제 강점기, 만주사변 태평양 전쟁 등 많은 희생자를 낸 잘못된 과거가 있었는데도 이를 '고난'이라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리며 모른 척한 것입니다.

또 인사말에서 "일본 민족정신의 웅장함은 어려울 때 나타난다"라며 메이지 일왕이 지은 노래를 인용한 것도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노래가 한반도의 패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싸운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분위기를 고취하기 위해 사용된 노래라는 야당의 지적이 나왔습니다.

야당 측은 이런 노래를 연설에서 언급한 것은 헌법의 평화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항의의 뜻을 표했습니다.

사실 잘못된 과거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듯한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는 아닙니다.

평소의 그런 생각이 이번 연설에도 변함없이 투영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우리나라는 쏙 뺀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언급했나요?

[기자]
미국에 대해서는 외교 안전 보장의 축을 이룬 동맹국, 강한 인연 등의 표현을 쓰며 전과 다름없이 변함없는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두드러진 것은 중국과 북한에 대한 언급입니다.

과거에는 상당히 경계심을 드러내 온 두 나라에 대해 이번에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일 관계가 완전히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면서 "국민 수준의 교류를 심화해 중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 의욕을 보인 것입니다.

일본의 최대 위협이라고 경계하던 북한에 대해서는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 앉겠다"며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북한과의 대화에 강한 의욕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앵커]
아베 총리에 이은 외무상 연설에서는 독도 망언이 또 나왔지요?

[기자]
아베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아 연설에 나선 고노 다로 외무상은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망언을 또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주장을 확실히 전달해 끈기 있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외무상이 새해 첫 국회연설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것은 2014년 이후 이번이 6번째입니다.

고노 외무상은 또 우리나라에 "한일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를 확고하게 지키라고 강력히 요구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고노 외무상의 이 같은 언급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한 것인 만큼 역사문제와 군사적 갈등으로 경색된 한일관계는 올해에도 계속 악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YTN 황보연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