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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4월 28일 (월)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임흥준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어느 날 조용하고 평화롭던 한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몇몇 주민들이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시고 사망 중태에 빠졌는데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가 놀랍게도 한 피해 여성의 남편과 딸이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사람들을 더욱 경악케 했던 건 이들의 범행 동기였습니다. 친아버지와 무려 15년 동안 성관계를 가져왔는데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갈등 끝에 어머니를 독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딸의 고백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싶었죠. 결국 이들 부녀는 각각 무기징역 징역 20년이란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살면서 가급적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만약 내가 어떤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돼 수사 당국으로부터 신문을 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과연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범행에 대해 사실은 제가 그랬습니다 하고 허위 자백을 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살인 사건인데 말이죠. 아마 많은 분들이 말도 안 된다 하시겠습니다만 놀랍게도요.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오늘 살펴볼 이 사건 역시 비슷한 의혹이 제기돼 내일 재심을 앞두고 있는데요.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무죄가 입증된다면 15년이라는 세월 보상받을 길이 있을까요? 사건의 X파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사건 X파일 이원화 입니다. 오늘은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와 함께 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임흥준 변호사(이하 임흥준):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임흥준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어떤 사건에서 재심이 결정된다는 거 이거 정말 쉬운 일 아니죠?
◆임흥준: 네 그렇죠 일단 재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재심이란 확정 판결이나 이에 준하는 것에 대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중대한 흠이 있는 경우에 그 확정 판결 등을 취소하는 비상 구제 수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재심 정말 극히 일부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일반 재심 사건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는 비율은 20.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원화: 내일이죠. 전남 순천에서 무려 16년 전에 벌어졌던 살인 사건의 재심 두 번째 재판이 열릴 예정인데요. 일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임흥준: 네 2009년 7월 6일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의 한 마을에서 희망근로 사업에 참여한 주민 4명이 휴식 시간에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셔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입니다.
◇이원화: 막걸리에서 청산가리가 검출이 됐군요?
◆임흥준: 그렇죠 누군가 사망한 최 씨가 새참으로 챙겨 나간 막걸리에 치사율이 높은 청산가리를 대량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당연히 수사기관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 빠르게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하던 중 사건 발생 71일 만인 2009년 9월 14일 광주지검에서 범인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범인들 정말 놀랄 만한 인물들입니다. 놀라실 수도 있는데 범인들은 다름 아닌 사망한 최 씨의 남편 백 씨와 친딸 백 양이었습니다. 근데 범행 동기가 더 기가 막힙니다. 검찰은 백 씨 부녀가 15년간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유지해 오다 이 사실을 아내이자 엄마인 최 씨에게 들키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원화: 이게 듣고도 진짜인가 싶은데요. 그러면 뭘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임흥준: 네. 검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나흘 전인 7월 2일 딸이 순천 시내 한 시장에서 막걸리를 사 왔고, 사건 당일인 6일 새벽에 창고에 보관 중이던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넣어 마당에 놓아 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일을 나가는 아내에게 막걸리를 가져갈 것을 권유했고, 아내는 일을 들고 나가 일터에서 동료들과 나눠 마시게 된 겁니다. 결과는 말씀드렸던 바와 같고요.
◇이원화: 아무튼 중요한 건 이걸 아버지나 딸이나 자백을 했다는 거죠?
◆임흥준: 네 맞습니다. 백 씨 부녀가 범행에 대해 자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1심 법원은 두 사람에게 모두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을 맡았던 광주고법은 1심과 정반대의 판결을 내놨습니다. 남편에겐 무기징역 친딸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며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이 재판에서 결국 백 씨 부녀의 자백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는데, 정작 핵심 증거인 청산가리가 막걸리에서는 검출되었으나 사건 현장 등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등 논란도 있었습니다.
◇이원화: 자백한다고 해서 무조건 결정적 증거로 쓰일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임흥준: 그렇죠. 자백에 대해서 우리 형사소송법이 꽤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백의 핵심 두 요소는 임의성과 신빙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임의성은 강요가 아닌 자의에 의한 것이냐를 따지는 것이고요. 신빙성은 믿을 만한 것이냐를 따진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판결의 주요 쟁점은 아내 또는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자백한 백 씨 부녀의 진술의 신빙성이었습니다. 1심 2심 재판부는 부녀의 진술이 임의성은 갖춘 것으로 봤지만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백 씨 부녀의 최초 진술 내용의 신빙성이 높다며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백 씨 부녀가 자백과 번복을 되풀이했지만 청산가리의 형태, 보관 방법, 범행 동기 등 중요한 부분의 진술이 일치해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청산가리와 막걸리 구입처 등이 명확하지 않지만 피고인 기억력과 수사상의 한계에 따른 것으로 유죄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원화: 심지어 피해자가 어머니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라 다른 피해자 분들, 심지어 한 분은 사망하셨으니까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싶은데 아무튼 앞서 말씀해 주신 대로 아버지는 무기징역, 딸은 징역 20년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이 판결이 잘못됐다. 재심 결정이 났다는 거잖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던거죠?
◆임흥준: 네 백 씨 부녀가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고요. 백 씨 부녀 자체도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으로 유명한 재심 변호사님이시죠. 박준영 변호사님이 순천지청을 찾아 수사 기록을 살펴보게 됩니다. 그런데 박 변호사님께서 수사 기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검사가 73개에 달하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제출하지 않았고 자백을 강요해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흔적도 발견된 것이죠. 결국 백씨 부녀는 10년 만인 2022년 1월에 박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이원화: 사실 이제 검사가 불필요한 증거들을 몇 개 빼는 건 일상적인 일이지만 73개에 달하는 증거를 배제했다. 이거는 일반적이지 않죠.
◆임흥준: 네 당시 2심 재판부는 오이 농사를 할 때 청산가리를 사용한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로 백 씨가 청산가리를 오랜 시간 보관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경찰은 오이 농가를 대상으로 탐문 성분 조사까지 했지만 어디에서도 청산가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검찰은 백 씨가 7월 2일 막걸리를 직접 구매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CCTV 자료는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은 주변 CCTV 영상 자료를 모두 분석했고, 그 결과 백 씨는 집 근처에 경유를 사러 갔다 온 것 말고는 그 어디에도 CCTV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러한 내용이 그냥 무시된 겁니다.
◇이원화: 자백이 결정적 증거가 결국 된 건데요. 이것도 자백이라기보다는 등 떠밀려서 대답한 정도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임흥준: 당시 담당 검사가 딸인 백 양이 이웃 주민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고소한 별도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요. 담당 검사는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을 무혐의 처분하고 대신 백 양을 무고 혐의로 조사하며 백양으로부터 청산가리와 막걸리를 구해 마당에 놓아 어머니에게 마시게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또 제가 아까 백 씨 부녀의 지능이 낮다고 했는데, 담당 검사와 수사관이 백양의 아킬레스건인 미성년 시절 출산 사실을 들먹이며 백양을 회유하여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자고 했다는 백 양의 진술까지 받아낸 사정도 밝혀졌습니다.
◇이원화: 검찰은 재심 청구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잘못된 부분은 인정하나요?
◆임흥준: 인정 안 했습니다. 검찰은 고등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바로 항고했고요. 그 이유는 무리한 수사나 진술 유도는 없었다였습니다. 물론 기각되었지만 검찰은 재항고까지 했고 결국 그마저도 기각되면서 재심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원화: 정말 더 화가 나는 것이 가해자로 몰렸던 분들이 피해 여성의 남편과 딸이었단 말입니다. 피해자의 유가족으로 오히려 보호를 받았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건데 도리어 가해자로 몰렸다. 이건 정말 끔찍한 일 아닌가요?
◆임흥준: 네 당연합니다. 피해자 유가족은 보호받아 마땅하고요. 국가에서도 피해 구조를 위해 여러 제도 등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범인으로 몰렸다. 거기에 하지도 않은 딸과의 성관계까지 문제 삼는다. 아마 백 씨는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원화: 이 두 분이요. 현재는 석방된 상태라고 하던데 재심이 결정된다고 해서 모두 석방이 되는 건 아닌데 좀 이례적인 상황이었던 거죠?
◆임흥준: 네 재심 개시 결정과는 무관하게 석방이 되려면 형집행정지가 되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올해 1월 이례적으로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상태입니다. 형집행정지 사유 역시 7가지가 엄격히 규정되어 있는데요. 노령, 출산, 건강 등의 사유가 있고요. 기타 중대한 사유로도 가능하긴 합니다.
◇이원화: 네 재심 첫 재판은 이미 열렸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내용들이 오갔습니까?
◆임흥준: 네. 증인으로 중앙대 화학과 교수님이 소환되어 청산가리 투여량에 대해 다투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감정서상에 청산가리의 종류를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청산염으로 표현했고 추정량도 청산 음이온의 양 기준으로 분석된 것으로 보여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증인은 서울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님이셨는데요. 검찰이 피고인에게 피자를 사준다고 말하거나 압박해 진술을 끌어내고 자술서를 대필하는 과정에서 조서 열람권을 보장하지 않은 정황도 엿보인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원화: 담당 검사가 핵심 키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 증인 출석 요구서를 송달도 받지 않고 연락도 안 되는 상황이라던데 이렇게 끝까지 버티면 출석을 강제할 수 없는 건가요?
◆임흥준: 담당 검사 2013년 6월에 징계를 받아 면직 처분됐고요. 2017년에는 의뢰인에게 검사 로비 명목으로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 원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원화: 황당하네요.
◆임흥준: 아마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사건에 다시 연루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 형사소송법 제151조는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만약 과태료를 받고도 출석하지 아니하면 7일 이내의 감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원화: 이들이 무죄를 밝히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임흥준: 네 뭐 이 사건의 핵심은 숨겨진 증거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증거 조사되는 것, 피고인들의 진술 정황이 밝혀지는 것,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최 씨를 살해하기 어려웠던 점이 밝혀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막상 담당 검사나 수사관을 소환하더라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할 테니 개인적으로 이분들 소환이 아주 중요한 키포인트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이원화: 내일 두 번째 재판이 열릴 예정인데요. 이번 재심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라면 뭘 꼽을 수 있겠습니까?
◆임흥준: 앞서 말씀드린 점들 핵심 쟁점일 것 같고요. 초등학교를 중퇴해 글 읽기와 쓰기가 어눌한 백 씨의 진술서 조사 영상에 남겨진 담당 검사의 유도 신문 행위 여부, 지능 장애가 있는 딸의 진술 능력 등도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이원화: 네 만약 이 두 분에 대해서 무죄가 나오면요. 당시 검사를 비롯해 수사관들 이런 분들 죄를 물을 수 있나요?
◆임흥준: 안타깝게 대답은 노입니다. 재심이 진행되더라도 해당 검사나 수사관의 불법 수사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나버려 현재로서 불가능합니다.
◇이원화: 그렇군요. 이들의 잃어버린 15년, 그리고 아내이자 엄마를 죽였다는 오명 이거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임흥준: 형사보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른 일반 절차 또는 재심이나 비상상고 절차에서 무죄 재판을 받아 확정된 사건의 피고인이 미결 구금을 당하였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국가에 대하여 그 구금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인데요. 형사 부상 사유가 발생한 해의 최저임금액을 기준으로 최대 5배까지 가산이 가능합니다. 이분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단순히 돈으로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보상 제도 등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저나 청취자분들이나 같을 것 같습니다.
◇이원화: 사건 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고요.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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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 : 2025년 4월 28일 (월)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임흥준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어느 날 조용하고 평화롭던 한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몇몇 주민들이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시고 사망 중태에 빠졌는데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가 놀랍게도 한 피해 여성의 남편과 딸이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사람들을 더욱 경악케 했던 건 이들의 범행 동기였습니다. 친아버지와 무려 15년 동안 성관계를 가져왔는데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갈등 끝에 어머니를 독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딸의 고백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싶었죠. 결국 이들 부녀는 각각 무기징역 징역 20년이란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살면서 가급적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만약 내가 어떤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돼 수사 당국으로부터 신문을 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과연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범행에 대해 사실은 제가 그랬습니다 하고 허위 자백을 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살인 사건인데 말이죠. 아마 많은 분들이 말도 안 된다 하시겠습니다만 놀랍게도요.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오늘 살펴볼 이 사건 역시 비슷한 의혹이 제기돼 내일 재심을 앞두고 있는데요.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무죄가 입증된다면 15년이라는 세월 보상받을 길이 있을까요? 사건의 X파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사건 X파일 이원화 입니다. 오늘은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와 함께 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임흥준 변호사(이하 임흥준):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임흥준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어떤 사건에서 재심이 결정된다는 거 이거 정말 쉬운 일 아니죠?
◆임흥준: 네 그렇죠 일단 재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재심이란 확정 판결이나 이에 준하는 것에 대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중대한 흠이 있는 경우에 그 확정 판결 등을 취소하는 비상 구제 수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재심 정말 극히 일부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일반 재심 사건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는 비율은 20.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원화: 내일이죠. 전남 순천에서 무려 16년 전에 벌어졌던 살인 사건의 재심 두 번째 재판이 열릴 예정인데요. 일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임흥준: 네 2009년 7월 6일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의 한 마을에서 희망근로 사업에 참여한 주민 4명이 휴식 시간에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셔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입니다.
◇이원화: 막걸리에서 청산가리가 검출이 됐군요?
◆임흥준: 그렇죠 누군가 사망한 최 씨가 새참으로 챙겨 나간 막걸리에 치사율이 높은 청산가리를 대량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당연히 수사기관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 빠르게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통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하던 중 사건 발생 71일 만인 2009년 9월 14일 광주지검에서 범인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범인들 정말 놀랄 만한 인물들입니다. 놀라실 수도 있는데 범인들은 다름 아닌 사망한 최 씨의 남편 백 씨와 친딸 백 양이었습니다. 근데 범행 동기가 더 기가 막힙니다. 검찰은 백 씨 부녀가 15년간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유지해 오다 이 사실을 아내이자 엄마인 최 씨에게 들키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원화: 이게 듣고도 진짜인가 싶은데요. 그러면 뭘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임흥준: 네. 검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나흘 전인 7월 2일 딸이 순천 시내 한 시장에서 막걸리를 사 왔고, 사건 당일인 6일 새벽에 창고에 보관 중이던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넣어 마당에 놓아 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일을 나가는 아내에게 막걸리를 가져갈 것을 권유했고, 아내는 일을 들고 나가 일터에서 동료들과 나눠 마시게 된 겁니다. 결과는 말씀드렸던 바와 같고요.
◇이원화: 아무튼 중요한 건 이걸 아버지나 딸이나 자백을 했다는 거죠?
◆임흥준: 네 맞습니다. 백 씨 부녀가 범행에 대해 자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1심 법원은 두 사람에게 모두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을 맡았던 광주고법은 1심과 정반대의 판결을 내놨습니다. 남편에겐 무기징역 친딸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며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이 재판에서 결국 백 씨 부녀의 자백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는데, 정작 핵심 증거인 청산가리가 막걸리에서는 검출되었으나 사건 현장 등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등 논란도 있었습니다.
◇이원화: 자백한다고 해서 무조건 결정적 증거로 쓰일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임흥준: 그렇죠. 자백에 대해서 우리 형사소송법이 꽤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백의 핵심 두 요소는 임의성과 신빙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임의성은 강요가 아닌 자의에 의한 것이냐를 따지는 것이고요. 신빙성은 믿을 만한 것이냐를 따진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판결의 주요 쟁점은 아내 또는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자백한 백 씨 부녀의 진술의 신빙성이었습니다. 1심 2심 재판부는 부녀의 진술이 임의성은 갖춘 것으로 봤지만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백 씨 부녀의 최초 진술 내용의 신빙성이 높다며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백 씨 부녀가 자백과 번복을 되풀이했지만 청산가리의 형태, 보관 방법, 범행 동기 등 중요한 부분의 진술이 일치해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청산가리와 막걸리 구입처 등이 명확하지 않지만 피고인 기억력과 수사상의 한계에 따른 것으로 유죄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원화: 심지어 피해자가 어머니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라 다른 피해자 분들, 심지어 한 분은 사망하셨으니까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싶은데 아무튼 앞서 말씀해 주신 대로 아버지는 무기징역, 딸은 징역 20년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이 판결이 잘못됐다. 재심 결정이 났다는 거잖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던거죠?
◆임흥준: 네 백 씨 부녀가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고요. 백 씨 부녀 자체도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으로 유명한 재심 변호사님이시죠. 박준영 변호사님이 순천지청을 찾아 수사 기록을 살펴보게 됩니다. 그런데 박 변호사님께서 수사 기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검사가 73개에 달하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제출하지 않았고 자백을 강요해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흔적도 발견된 것이죠. 결국 백씨 부녀는 10년 만인 2022년 1월에 박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이원화: 사실 이제 검사가 불필요한 증거들을 몇 개 빼는 건 일상적인 일이지만 73개에 달하는 증거를 배제했다. 이거는 일반적이지 않죠.
◆임흥준: 네 당시 2심 재판부는 오이 농사를 할 때 청산가리를 사용한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로 백 씨가 청산가리를 오랜 시간 보관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경찰은 오이 농가를 대상으로 탐문 성분 조사까지 했지만 어디에서도 청산가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검찰은 백 씨가 7월 2일 막걸리를 직접 구매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CCTV 자료는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은 주변 CCTV 영상 자료를 모두 분석했고, 그 결과 백 씨는 집 근처에 경유를 사러 갔다 온 것 말고는 그 어디에도 CCTV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러한 내용이 그냥 무시된 겁니다.
◇이원화: 자백이 결정적 증거가 결국 된 건데요. 이것도 자백이라기보다는 등 떠밀려서 대답한 정도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임흥준: 당시 담당 검사가 딸인 백 양이 이웃 주민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고소한 별도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요. 담당 검사는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을 무혐의 처분하고 대신 백 양을 무고 혐의로 조사하며 백양으로부터 청산가리와 막걸리를 구해 마당에 놓아 어머니에게 마시게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또 제가 아까 백 씨 부녀의 지능이 낮다고 했는데, 담당 검사와 수사관이 백양의 아킬레스건인 미성년 시절 출산 사실을 들먹이며 백양을 회유하여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자고 했다는 백 양의 진술까지 받아낸 사정도 밝혀졌습니다.
◇이원화: 검찰은 재심 청구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잘못된 부분은 인정하나요?
◆임흥준: 인정 안 했습니다. 검찰은 고등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바로 항고했고요. 그 이유는 무리한 수사나 진술 유도는 없었다였습니다. 물론 기각되었지만 검찰은 재항고까지 했고 결국 그마저도 기각되면서 재심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원화: 정말 더 화가 나는 것이 가해자로 몰렸던 분들이 피해 여성의 남편과 딸이었단 말입니다. 피해자의 유가족으로 오히려 보호를 받았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건데 도리어 가해자로 몰렸다. 이건 정말 끔찍한 일 아닌가요?
◆임흥준: 네 당연합니다. 피해자 유가족은 보호받아 마땅하고요. 국가에서도 피해 구조를 위해 여러 제도 등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범인으로 몰렸다. 거기에 하지도 않은 딸과의 성관계까지 문제 삼는다. 아마 백 씨는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원화: 이 두 분이요. 현재는 석방된 상태라고 하던데 재심이 결정된다고 해서 모두 석방이 되는 건 아닌데 좀 이례적인 상황이었던 거죠?
◆임흥준: 네 재심 개시 결정과는 무관하게 석방이 되려면 형집행정지가 되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올해 1월 이례적으로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상태입니다. 형집행정지 사유 역시 7가지가 엄격히 규정되어 있는데요. 노령, 출산, 건강 등의 사유가 있고요. 기타 중대한 사유로도 가능하긴 합니다.
◇이원화: 네 재심 첫 재판은 이미 열렸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내용들이 오갔습니까?
◆임흥준: 네. 증인으로 중앙대 화학과 교수님이 소환되어 청산가리 투여량에 대해 다투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감정서상에 청산가리의 종류를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청산염으로 표현했고 추정량도 청산 음이온의 양 기준으로 분석된 것으로 보여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증인은 서울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님이셨는데요. 검찰이 피고인에게 피자를 사준다고 말하거나 압박해 진술을 끌어내고 자술서를 대필하는 과정에서 조서 열람권을 보장하지 않은 정황도 엿보인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원화: 담당 검사가 핵심 키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 증인 출석 요구서를 송달도 받지 않고 연락도 안 되는 상황이라던데 이렇게 끝까지 버티면 출석을 강제할 수 없는 건가요?
◆임흥준: 담당 검사 2013년 6월에 징계를 받아 면직 처분됐고요. 2017년에는 의뢰인에게 검사 로비 명목으로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 원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원화: 황당하네요.
◆임흥준: 아마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사건에 다시 연루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 형사소송법 제151조는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만약 과태료를 받고도 출석하지 아니하면 7일 이내의 감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원화: 이들이 무죄를 밝히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임흥준: 네 뭐 이 사건의 핵심은 숨겨진 증거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증거 조사되는 것, 피고인들의 진술 정황이 밝혀지는 것,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최 씨를 살해하기 어려웠던 점이 밝혀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막상 담당 검사나 수사관을 소환하더라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할 테니 개인적으로 이분들 소환이 아주 중요한 키포인트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이원화: 내일 두 번째 재판이 열릴 예정인데요. 이번 재심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라면 뭘 꼽을 수 있겠습니까?
◆임흥준: 앞서 말씀드린 점들 핵심 쟁점일 것 같고요. 초등학교를 중퇴해 글 읽기와 쓰기가 어눌한 백 씨의 진술서 조사 영상에 남겨진 담당 검사의 유도 신문 행위 여부, 지능 장애가 있는 딸의 진술 능력 등도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이원화: 네 만약 이 두 분에 대해서 무죄가 나오면요. 당시 검사를 비롯해 수사관들 이런 분들 죄를 물을 수 있나요?
◆임흥준: 안타깝게 대답은 노입니다. 재심이 진행되더라도 해당 검사나 수사관의 불법 수사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나버려 현재로서 불가능합니다.
◇이원화: 그렇군요. 이들의 잃어버린 15년, 그리고 아내이자 엄마를 죽였다는 오명 이거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임흥준: 형사보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른 일반 절차 또는 재심이나 비상상고 절차에서 무죄 재판을 받아 확정된 사건의 피고인이 미결 구금을 당하였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국가에 대하여 그 구금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인데요. 형사 부상 사유가 발생한 해의 최저임금액을 기준으로 최대 5배까지 가산이 가능합니다. 이분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단순히 돈으로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보상 제도 등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저나 청취자분들이나 같을 것 같습니다.
◇이원화: 사건 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고요.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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