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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90%가 가짜 성·가짜 족보?...몰랐던 성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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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6-09-15 11:02
■ 박홍갑 / 역사학자

앵커

얼마 전 통계청이 2015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구 수가 가장 많은 성씨는 여전히 김, 이, 박, 최씨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4개의 성씨를 모두 합치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이나 되는데요. 조상을 기리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맞아서 한국에서 언제부터 성씨를 쓰기 시작했는지 또 우리 민족의 족보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박홍갑 역사학자 나오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선생님께서는 세 번째로 많은 성씨예요, 박씨. 저는 김씨입니다.

[인터뷰]
그중에서도 밀양 박씨가 310만 정도 됩니다.

앵커

김, 이, 박씨가 많은데 또 어떤 성씨들이 많이 있을까요?

[인터뷰]
김, 이, 박 외에 5대 성씨에 드는 최씨, 정씨, 그리고 우리나라 10대 성씨에 들고 있는 강씨, 조씨, 윤씨, 장씨, 임씨가 10대 성씨에 들어가는데 이 10대 성씨 분포를 보면 약 63.9%, 64%에 해당합니다, 전 인구의.

앵커

지금 그래픽이 나오고 있는데 지금 아까 김씨 같은 경우에는 20%가 넘게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씨가 14% 정도 되고 박씨가 8% 이런 분포를 보이고 있네요.

[인터뷰]
조선 후기부터 거의 이런 분포를 보입니다.

앵커

거의 변화가 없다는 말씀이신 거죠. 이렇게 변화가 없는 이유는 왜 그런 거죠?

[인터뷰]
우리 성씨가 본관과 성을 부모로부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에 본관이 한 번 정해지면 바뀌지 않죠.
중국 같은 경우에는 만약에 이주를 한다 그러면 본관이 바뀌게 되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시조의 본관이 후대 자손들까지 계속 이어지죠.

앵커

제가 이 자료를 보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한자가 있는 성이 있고 한자가 없는 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한자가 없는 성이 있다는 생각은 제가 특별히 해보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된 거죠?

[인터뷰]
지난주에 발표된 자료에 그렇게 나왔을 건데 전통적으로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나 그다음에 1970년대,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글로 된 성씨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이주민들이 굉장히 많아지고 귀화인들이 많아지고 필리핀계 아니면 태국, 이런 동남아 여성들의 국제결혼 이런 게 많아지면서 그 사람들이 자기의 성과 본관을 한글로 그대로 옮겨서 적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많아진 거죠.

앵커

그러면 김씨, 박씨 이런 게 아니고 원래 태어난 고국에서 쓰던 성씨를 그대로 한글로 적는.

[인터뷰]
그렇죠.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로버트 할리, 하일 씨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창관을 했죠.

자기가 부산 영도에 사니까 본관을 영도로 하고 성을 하씨로 해서 그래서 하일 이렇게 한국식 이름으로 귀화한 경우도 있는데 한국식 이름으로 귀화한 경우는 극소수고 나머지는 거의 자기 나라의 발음을 그대로 귀화를 했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많아진 겁니다.

앵커

그렇다 보니까 특이한 성씨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국내 전체 성씨가 5000개가 넘는 걸로 조사가 됐습니다.

[인터뷰]
지난주 발표에는 5582개로 발표가 됐죠.

앵커

그렇게 많은 줄 몰랐거든요.

[인터뷰]
그중에서 1507개가 한자가 있는 성씨고 나머지 4000여 개가 전부 한자가 없는 귀화한 성씨로 보이고.

앵커

저희가 방금 전에 그래픽을 보여드렸는데 성씨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 그러면 말씀하신 것처럼 한자가 없는 성씨는 1507개다. 그러면 한자가 없는 성씨 4075개라고 하셨는데 이건 다 외국에서 귀화한 사람들 성씨인가요?

[인터뷰]
외국에서 귀화한 성씨고 1507개도 원래 본관 조사를 15년마다 한 번씩 하거든요. 2000년대에는 총 286개였습니다.

그것보다 15년 전인 85년도에는 이백칠십 몇 개였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우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성씨의 총합계입니다.

그러니까 280개 이상 되는, 그 나머지 것들은 전부 다 외국에서 귀화한 성씨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앵커

지금 성씨의 분포를 보니까 우리나라도 다문화, 또 다민족 국가가 돼가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다양한 성씨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성씨도 있더라고요. 귀화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성씨도 이렇게 늘고 있는 걸로 그렇게 조사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씨를 갖게 된 거죠?

[인터뷰]
우리나라가 성씨를 갖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는 박혁거세, 김알지 이런 사람들 때부터 성씨를 가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대체로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6세기까지도 성씨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진흥왕 순수비라든지 이런 금석문에 나오는 자료를 보면 쭉 추출해서 확인해 보면 성씨를 사용한 게 아니라 이두식 이름을 사용했죠. 그런 식으로 이두식 이름을 쓰다가 중국에서 한자식 성과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게 7세기 이후다.

앵커

그러면 쉽게 얘기하면 이름만 있었던 건가요?

[인터뷰]
그렇죠. 이름만 있다가 나중에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한자식 이름으로 쓰면서 앞의 인물들을 소급해서 갖다붙인 그런 경우죠.

앵커

그런데 성씨가 누구나 사용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지금은 누구나 다 성씨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성씨가 일반적으로 보편화된 건 고려시대에 접어들어서입니다.

고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나서 각 지역에 토착하고 있는 호족세력들에게 성씨와 본관을 지정해줬죠. 그것을 토성분정이라고 합니다.

토성이라는 것은 지연적인 의미의 토자와 그다음에 혈연적인 의미의 성자 두 개가 합쳐진 의미입니다. 지연과 혈연이 합쳐진 토성.

그러니까 태조 왕건이 토성을 전부 나눠줬다는 것은 뭐냐하면 골품제도가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마련하기 위해서 각 지역에 있는 세력들을 자기의 품 안에 넣기 위해서 사회통합 차원에서 너는 어디에 무슨 성씨다, 너는 어디에 무슨 성씨다 이런 의미입니다.

앵커

그러면 쉽게 얘기하면 그 지역별로 지배세력들에게 성씨를 줬다고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처음부터는 지배세력들이 성씨를 갖게 되고 차츰차츰 확대가 돼서 일반 평민들에게까지 성씨가 확대되는데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이럴 때는 보통 백성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죠. 백성이라는 것은 백 가지만이 아니라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다양한 성씨. 그러니까 고려시대에 성씨를 백성들에게 부여를 해 줄 때 고려의 지배체제에 편입이 돼서 어떤 사회 통합 차원에서,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그런 국가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국가 동원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성씨를 부여했고 그래서 백성이라는 것은 국가 체제에 이미 편입이 됐다. 그래서 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천한 사람들.

앵커

그러니까 백성이라고 칭하지 않는 그런 취급을 받았던 거죠. 그러다가 결국 나중에는 모든 사람이 갖게 됐는데.

[인터뷰]
조선시대 17세기까지도 성씨를 가졌던 걸 호적조사를 통해서 보면 약 55%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조선후기까지도 45%는 성씨가 없었다는 거죠.

그러면서 조선후기에 가면 교과서에 나옵니다마는 양반이 급증한다 이런 걸 배웠죠. 그때에 너도 나도 성씨를 갖기 시작하고 최종적으로 1909년에 민족법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나머지 성씨가 없던 사람들도 전부 다 성씨를 갖게 돼서 1909년 이후로는 대한민국, 그러니까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면 모든 사람이 성씨, 본관을 다 갖게 되었죠.

앵커

아까 성씨를 어떻게 부여를 했는지 설명하실 때 고려시대 지역별로 지배세력에게 부여를 했고 또 지역에 따라서 무슨 김씨 이런 식으로.

[인터뷰]
경주에 사는 김씨, 경주에 사는 설씨, 경주에 사는 배씨, 경주에 사는 손씨 이런 식으로.

앵커

그게 본관이 된 건가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러면 저는 광산 김씨거든요. 그러면 그 지역에서 고려시대 때 조상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터뷰]
그러니까 광산 김씨는 광주잖아요. 광주에 여러 세력들이 살고 있겠죠. 그러면 태조 왕건이 광주 지역의 김씨, 광주 지역의 무슨 성씨 이렇게 해서 성씨를 지정을 해줬죠.

앵커

그러면 본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흔히 김씨다 그러면 김해 김씨, 박씨다 그러면 밀양 박씨 이런 식으로 비중이 큰, 사람이 많은 그런 본관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요.

[인터뷰]
대체로 우리 조상들을 보면 시조는 유명한 인물밖에 없죠. 그런데 의문을 가질만 한데도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당연시하죠.

앵커

박혁거세 말씀을 하셨고요.

[인터뷰]
우리 성씨의 경향을 보면 생물학적인 계보라기보다는 사회, 문화적인 계보다 이렇게 이해를 해야 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족보가 없던 시절까지 쭉 이어지다가 족보를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하는가 하면 17세기, 18세기 가서 족보를 많이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하니까 그 중간에 여러 가지 계보적인 자료들이 없죠. 그래서 박씨들은 전부 다 혁거세로 가서 연결한다든지 이렇게 하다 보니까 전부 왕자의 자손, 왕손밖에 없는 그런 결과가 나옵니다.

앵커

그러니까 아까 양반 얘기를 하셨는데 족보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양반의 후손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이유는 또 뭔가요?

[인터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다 양반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죠. 특히 조선시대는 양반사회이기 때문에 양반이든 비양반이든 무조건 양반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했죠. 그러니까 성씨가 없는 사람들도 성씨를 만들어 넣으면서 양반 족보에 편입이 되다 보니까.

앵커

그러니까 족보를 나중에 만들다 보니까.

[인터뷰]
자연적으로 나도 양반이다 하는 그런 의식이 생기게 되고.

앵커

그리고 족보를 나중에 만들다 보니까 비슷한 본관으로 또 많이 만드는 경우도 생기면서 일부 본관의 성씨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인터뷰]
그렇게 봐야 되죠.

앵커

그러다 보니까 족보가 90% 이상은 가짜 성씨와 가짜 족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
90% 이상 가짜 족보다 이렇게 인식들을 많이 하면서도 자기 족보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죠. 이게 우리 족보의 이중성인데 양반 지향성으로 인해서 족보에 대한 애착이나 소중함을 굉장히 갖고 있는 동시에 또 다른 이면에는 족보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

우리 족보는 다른 족보에 끼어들기를 했다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부정한 방법으로 족보에 들어갔다든지 이런 추측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감성적인 생각하고 이성적인 판단하고 이게 혼재가 돼있기 때문에 90% 이상 족보가 가짜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앵커

그러다 보니까 요즘에도 족보 사기사건이 있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족보 사기사건 굉장히 많죠. 사기사건이 많은 건 왜 많은가 하면 족보를 굉장히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인데 가령 예를 들어서 독립유공자 중에서 대가 끊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후손들이 명확하지 않죠.

그런데 족보라는 게 증빙자료가 되잖아요. 증빙자료가 되다 보니까 결국은 그걸 후손으로 위조를 해서 증빙자료를 제출해서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는다든지 아니면 오래 방치된 토지나 재산 이런 것 상속과 관련해서 문중의 땅 아니면 그냥 흐지부지 내려오는 땅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 땅들을 족보를 위조를 해서 거기의 주인이었다 이런 식으로 증빙자료를 제출한다든지 요즘의 현상도 그런 거고 옛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도 족보가 있어야만 과거시험에 응시를 할 수 있거든요.

족보에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조할아버지, 이렇게 증빙될 수 있는 자료가 족보였고 아니면 호구단자였고 그래서 그런 것은 분명하게 제출해야 과거 응시자격이 주어지니까.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나 족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문중 차원의 사적인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공적인 자료로 대체됐기 때문에 위조도 되고 여러 가지 사기사건도 등장하고 그렇게 된 거죠.

앵커

그러니까 과거 같은 경우에는 신분제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던 시대에는 과거시험에 응시를 한다든가 또 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그런 족보를 중요하게 생각을 했다면 지금 현대사회에도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내세워서 혜택을 받는다든가 이런 쪽에 족보가 활용이 되고 이런 사실은 처음 들었습니다. 외국에도 족보가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인터뷰]
외국 족보하고 우리 족보하고 차이점을 먼저 이야기해야 되겠는데 외국에서도 족보를 많이 찾죠. 왜냐하면 서구사회에서 보면 자기 뿌리 찾기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가령 예를 들어서 김해 김씨가 440만이다, 밀양 박씨가 310만이다, 전주 씨가 260만이다, 경주 김씨가 180만이다 했을 때 이 사람들을 전부 합치면 1200만이 더 넘습니다.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왕족이잖아요. 그러니까 왕족 후손이 이렇게 많을 리가 없죠. 그래서 이런 계보는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되고 외국에서 뿌리 찾기는 뭐냐하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자기가 엄마, 아버지가 누구냐. 엄마의 아버지 엄마가 누구냐, 아버지의 아버지가 누구냐 이런 식으로 자꾸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족보를 할 때 시조로부터 해서 자기를 찾고 서구에서는 본인을 기점으로 해서 찾아올라가는 그런 경우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결국 자신의 뿌리를 찾는 그런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그리고 조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그런 과정이 아닐까 싶은데요.

추석을 맞아서 성씨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봤는데 결국 조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오늘 역사학자 박홍갑 선생님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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