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으로] '재활 난민' 아내 돌보다 마침내...

[사람 속으로] '재활 난민' 아내 돌보다 마침내...

2015.12.20. 오전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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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에는 장애 아동이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내년 봄쯤에는 10년간 준비 끝에 첫 아동 재활병원이 문을 열 예정인데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는 YTN 연속기획 '사람 속으로', 오늘은 조용성 기자가 국내 유일의 장애 아동 재활병원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백경학 씨를 만났습니다.

[기자]
괴성을 지르며 힘들어하는 아이들.

그리고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누르는 여섯 명.

중증장애인 시설을 찾아온 치과 진료 봉사입니다.

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아에게도, 억지로 잡아둬야 하는 봉사자에게도 힘든 시간.

그중 백발이 듬성듬성한 중년 남성은 웃어보려 할수록 표정이 더 어색해집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진료를 거부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도권의 중증장애인 치료시설을 찾아다니는 미소원정대라는 진료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

마흔한 차례 봉사활동으로 치과 진료를 받은 사람은 2천3백여 명.

장애인시설에서 필요로 하는 일손도 마다치 않습니다.

이번에는 마당 한쪽에서 올겨울을 날 김장을 합니다.

평일에는 장애 아동 재활병원을 세울 기부금을 모으러 다니고,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다니는 백 이사의 하루입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네가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용기를 주기 위해서 손을 잡아줬어' 그랬더니, '그러면 아저씨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저씨가 무섭고 떨 때는 제가 아저씨 손 꼭 잡아 드릴게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지난 1998년 6월, 스코틀랜드의 하늘이 푸르던 어느 날.

12년의 기자생활 중에 떠났던 2년 동안의 연수가 끝나가던 시기였습니다.

행복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트렁크에서 물건을 찾던 아내가 뒤에서 오던 차에 받혔습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쾅'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차로 돌진해서 저희를 치게 됐는데…"

아내는 한쪽 다리를 잃고 혼수상태가 됐습니다.

독일과 영국 의료진의 헌신적인 진료를 받았고 아내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습니다.

귀국해서 다시 한 번 절망했습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기 때문에 2개월 혹은 3개월이 되면 퇴원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유랑인처럼 계속 병원을 떠돌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죠."

영국과 독일에서 본 재활 병원을 아예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을 만드는 것도, 병원을 세울 공익재단을 만드는 것도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소규모 수제 맥주 회사를 차렸습니다.

회사 지분과 아내의 사고 보상금은 재단의 씨앗이 됐습니다.

[황혜경, 백 이사 아내(지체장애 3급)]
"당신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자기 일이 아니라고 회피를 하면 할 사람 없을 것 같다', '자기를 못 믿겠냐'고 그러더라고요."

일주일에 이틀은 꼭 들린다는 어린이 재활병원 공사장.

재단을 세운 지 10년 만에 개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내가 독일에서 받았던 수중치료 시설이 있는 이 병원은 내년 봄부터 하루 5백 명의 장애아동이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202개, 독일 140개에 비하면 국내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안타깝지만 백 이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함께 해 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만여 명의 기부자와 5백여 기업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내 것을 나누려고 하는 분들을 만나서 기적을 제가 눈으로 보고 있고, 어린이 재활병원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고 또 하나의 기적이 아니냐 생각합니다."

한 번씩 궁금합니다.

아내의 다리를 앗아간 그 날의 사건이, 수많은 장애인의 다리가 되어주라는 운명 같은 일이었는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주어졌던 고통이 주변에서 내미는 손을 잡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는 일이었는지.

YTN 조용성[choys@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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