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5살 성폭력 파문' 방송으로는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

[와이파일] '5살 성폭력 파문' 방송으로는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

2019.12.03. 오후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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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5살 성폭력 파문' 방송으로는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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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에서 놀던 5살 A 양은 친구 B 군과 사라진 뒤 으슥한 자전거 보관소에서 발견됐습니다. 옷이 벗겨진 걸 본 엄마가 놀라 다그치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는 B 군에게 '특정 행동'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체 주요 부위에 염증이 생겼다는 병원 소견서도 받았습니다. 아이는 잠이 들면 '싫어, 싫어', '하지마, 하지마' 잠꼬대를 했습니다. B 군 부모는 '문제의 행동'이 실제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5살 여아, 친구에 성추행 피해...가해 아동 부모 "법적 대응" (2019. 11. 30 YTN 보도)
https://www.ytn.co.kr/_ln/0103_201911302146192679





[와이파일] '5살 성폭력 파문' 방송으로는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

'가해 사실'을 인정했던 B 군 부모가 글을 올렸습니다. A 양 부모가 글을 올린 다음이었습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는 취지의 A 양 부모 글에 B 군 부모는 "내 아이가 얼마나 영악해야 6개월을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지", A 양 부모가 "무얼 원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취재진은 B 군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B 군 부모는 한숨을 내쉬며 "그쪽(A 양) 말만 듣고 전화하신 건가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한 걸 인정하고 있느냐고 묻자, '드릴 말씀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인터뷰 여부를 묻는 질문에선 "허위사실 유포로 법적 (대응)까지 생각하고 있다" 라고 답했고, 어떤 내용이 허위였는지에 대해서는 "그것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선 1분도 안 돼 다시 전화가 와서 '그런데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하신 거냐', '개인정보 유출인데 그게 가능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취재진은 합법적인 경로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와이파일] '5살 성폭력 파문' 방송으로는 전하지 못한 뒷이야기

법적 대응을 시사했던 건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장은 A 양 부모와의 통화에서 B 군의 문제 행동을 도왔던 아이들(B 군이 A 양에게 문제 행동을 할 때 교사한테 안 보이게 하기 위해 몸으로 가린 것으로 지목된 아이 4명)의 행동을 '놀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맥락이었는지, 오해와 왜곡을 막기 위해 원문을 첨부합니다.

▲ 어린이집 원장과 A 양 부모의 대화
A 양 부모: 저희가 그 애들 법적 처벌을 원하거나 그런 게 아니잖아요. 사과를 해달라고 하는 건데, 원장님이 그걸 사과를 왜 못 받아주시겠다고….
원장: 그런데 아버님이 저한테 보내신 건(카톡)은 사과가, 그 아이들의 사과를 받고 막 이렇게 해서 지금 이렇게 문제를 크게 삼으시면 더 저거 할 거 같고, 그냥 6살 아이들의 그런 그냥 놀이로….
A 양 부모: 왜 놀이로 치부합니까? 아이는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돼요. 놀이라뇨, 그게.
원장: 뒤에 있던 남자애들은 그냥 뭐 구경하고 저거 했던 거기 때문에….

왜 '놀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취재진은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어린이집 원장과 YTN 기자의 대화
기자: 원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YTN 방송국의 한동오 기자라고 하는데요.
원장 전화번호: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기자: 원장님 아니신가요?
원장 전화번호: 네네, 아닌데요.
기자: 혹시 ㅇㅇ, ㅇㅇ(A 양, B 군) 관련해서 담당자 아니세요?
원장 전화번호: 네, 아닌데요.


'전화를 잘못 거셨다던' 원장 측은 이튿날 같은 번호로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아동보호기관에 사건을 접수하고, 잘못이 있다면 본인이 처벌받기 위해 본인 유치원에 대한 신고 접수를 요청했고, 사건 접수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경찰서를 방문했는데 10살 미만은 접수가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할 수 있는 조치는 다했다는 겁니다. 문제의 '놀이' 발언에 대해서는 원장 당사자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고, 원장의 가족을 통해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 원장 가족은 1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허위사실 유포'로 누리꾼을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로그 등 누리꾼 3명을 상대로 형사, 민사 소송을 한다는 거였는데요. 마치 본인이 확인한 사실인 양 블로그에 썼거나 거친 표현으로 원장을 비난한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30분 뒤에는 "내일 변호사님 통해서 진행할 소는 취소 말씀을 드렸다", "더이상 정식적인 통로 외에는 답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는 문자를 남기면서 고소 의사를 철회했습니다.
정작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 사람은 5살 A 양과 그 가족이었습니다. A 양은 B 군과 여전히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A 양 부모는 해당 어린이집 부모들에게 분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말에 결국 변호사까지 선임했습니다.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 성폭력 피해 가정이 끝내 법을 방패로 삼을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취재진이 고민한 지점도 이 부분입니다. 지금 같은 법이라면 10살 미만의 아이는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민사'로는 부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형사'로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지 못합니다. 가해 행동을 한 부모에 대한 교육 등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해 행동을 한 부모의 선의에 기댈 뿐입니다. 만약 부모가 피해자가 요구한 후속조치에 응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또 다시 5살 아이가 성폭력 가해를 해도, 5살 아이가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현실은 이번과 똑같다는 겁니다. 대책은 없는 걸까요. 취재진은 여러 아동, 범죄 전문가에게 대책을 물어봤습니다.
UN 아동권리위원장을 지냈던 이양희 교수는 처벌적 접근보다는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해 아이의 심리적 안정이라는 겁니다. 가해 행동을 한 아이의 경우 어떤 이유로 문제 행동을 한 건지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야동', 즉 음란 동영상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며, 문제의 행동을 한 아동이 혹시 평소에 그런 영상이나 행위에 노출됐던 건 아닌지, 과거에 비슷한 피해를 봤던 건 아닌지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이에 대한 법적 조치, 즉 처벌에 방점을 두는 게 아니라 치료에 방점을 둬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사죄'와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먼저 문제 행위를 한 가해 아이 부모의 진심 어린 사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비슷한 일들에서 가해 행동을 한 아이 부모가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왜 우리 아이가 가해자냐는 거죠. 사실 가해 행동을 한 아이는 이 행동이 무슨 의미고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어른 만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행위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하는 거죠. 그 후 아이와 부모, 주변인들을 상대로 한 교육을 해야 하고요. 법이 아닌 우리 공동체 내의 해결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 부모가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법이나 법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아이를 잘못 가르친 부모를 처벌하게 되면 부모가 더 경각심을 갖고 아이를 키울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또, 현재 소년법에서 처벌하는 10살 이상 14살 미만이라는 대상을 10살 밑으로 내려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피해 부모가 올린 청와대 청원은 동의자 20만 명을 넘었습니다. 아동 간 성폭력 사건에서 강제력을 가진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입니다. 피해 부모는 두 번 다시 자신의 딸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피해자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피해 부모는 결코 가해 아동을 처벌하자는 취지가 아니라고 제게 두 번, 세 번 강조했습니다. 청와대는, 우리 사회는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한동오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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