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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승민 앵커, 박석원 앵커
■ 출연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 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이번에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평생을 함께하며 우정을 나눴던 동료 배우들에게도 고인의 빈자리는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하루였는데요. '전원일기'에서 오랜 세월 부부로 호흡을 맞춘 김혜자 씨고 절친한 친구였던오지명 씨와 나문희 씨도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마지막 인사 직접 들어보고 오겠습니다. 원로 배우들의 이런 인사가 정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정말 한 분 한 분 말씀하신 것처럼 추억이 워낙 많았잖아요. 고인과는 오랜 인연이었고요.
[하재근]
처음 나온 김혜자 씨하고는 전원일기에서 무려 22년 동안 부부 역할로 나오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제 부부라고 오인할 정도로 연기 호흡을 보여주면서 최불암 씨는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김혜자 씨는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했고 22년 세월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호흡을 맞췄던 분이 세상을 떠나시니까 마음에 안타까움이 클 것이며 오지명 씨도 고등학교 때부터 최불암 씨하고 단짝 친구였다고 합니다. 39년생 동갑인데 호적상으로는 최불암 씨가 1살 어린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오지명 씨가 최불암 씨한테 그것 때문에 많이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단짝친구로 잘 지내왔고 2000년대에 오지명 씨가 만든 영화 까불지 마에도 함께 출연하기에도 하고 절친이었는데오지명 씨 입장에서는 그런 절친을 보낸 것이고 나문희 씨 입장에서도 그런 것이고 원로배우들이 굉장한 상실감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화면에 나오는 세 분뿐만 아니라 다른 원로 배우들도 많이 오셨거든요. 그분들이 굉장히 마음 아파할 것 같고. 최불암 씨를 많은 분들이 애도했는데 원로배우분들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김혜자 씨의 경우에는 우리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남겼었는데 장례절차는 오늘 마무리가 됐는데 오늘 여러 가지 장례 절차들 중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까?
[하재근]
장례 자체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는 자체가 가장 눈에 띄는 거죠. 보통 이런 유명한 배우가 돌아가시면 배우장이라든가 방송인장이라든가 이렇게 치르고 그걸 본인들이 영예로 느끼거든요. 그런데 최불암 씨는 전혀 그런 게 아니라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서 그만큼 이분이 생전에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에 진심이었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했고 운구행렬도 보통은 방송국이나 촬영지 같은 곳 많이 들르거든요. 최불암 씨 같은 경우에는 공채 탤런트 데뷔는 KBS에서 했지만 나중에 대표작 2편,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다 MBC에서 했거든요. 그러니까 MBC에 들러도 될 법한데 그런 걸 선택하지 않고 최불암 씨가 생전에 나 죽으면 운구할 때 어린이재단에 들러 달라, 그렇게 유언을 남겨서 어린이재단에 들르는 모습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굉장한 귀감이 됐을 것 같고 아마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언론을 통해서 계속 접하고 있거든요. 최불암 씨가 이런 봉사를 했다, 기부를 했다, 재단에서 활동을 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나도 이렇게 기부해야 되겠다, 봉사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고. 후배 연예인들도 나도 저렇게 진정성 있게 봉사활동을 해서 나중에 장례식 치를 때 재단에서 치를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생각들 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 거대한 선한 영향력, 이런 것들이 자라날 수 있게 하나의 씨앗을 돌아가시면서 우리한테 선물로 남겨주셨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오늘 발인은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화면에서 나가기도 했는데 마지막 관이 나가는 길에 배우 김혜수 씨, 후배인 신현준, 정준호 씨가 눈물로 배웅하는 모습이 포착됐거든요. 이 세 분은 고인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건가요?
[하재근]
많은 후배들이 다 눈물로 배웅을 했습니다, 추모를 하고. 신현준, 정준호 씨 같은 경우는 후배니까 그리고 이분들이 워낙에 연예계 마당발들이나 보니 오다 가다 최불암 씨를 어른으로 접했을 것이고. 신현준 씨 같은 경우에는 연예정보 프로그램도 오랫동안 진행했으니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개인적인 인연이라든가 아니면 선배로서 존경심이라든가 이런 것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오열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김혜수 씨 같은 경우에는 김혜수 씨하고 최불암 씨 부부의 인연의 첫 시작점을 온 국민이 다 아는데. 바로 1987년에 KBS 드라마 사모곡 거기에 김혜수 씨가 김민자 씨와 모녀 역할로 출연하면서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이 됐다는 거거든요. 그 당시 사모곡이 굉장히 인기드라마였습니다. 김혜수 씨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사모곡에 출연해서 일약 연기파 스타로 완전하게 자리매김을 하게 됐던 거거든요. 정보석 씨도 데뷔해서 그때부터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고 이게 국민드라마였었는데 그때 김민자 씨가 김혜수 씨를 잘 돌봐줬다고 합니다. 김혜수 씨가 고등학교 1학년 어린 나이로 사극을 찍다 보니까 어려운 게 많았었는데 엄마처럼 현장에서 돌봐줬다는 거예요.
그다음부터 아버지, 어머니처럼 최불암 씨, 김민자 씨 부부를 김혜수 씨가 따랐고 또 최불암 씨를 이모부라고 불렀고 그 인연을 수십 년 동안 이어왔는데 87년에 시작된 인연이 장례식장에서 김혜수 씨가 3일 내내 빈소를 지키면서 눈물로 최불암 씨를 보내는 그런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앵커]
그래서 그런지 빈소에서도 가족처럼 오신 조문객들을 다 일일이 맞아주고 신발 정리까지 하는 모습이 상당히 눈길을 끌더라고요.
[하재근]
그렇습니다. 최불암 씨의 부인인 김민자 씨가 고령이니까 일일이 손님 맞이하기가 체력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고 그래서 김혜수 씨가 맏딸처럼 현장에서 손님들 맞이하고 신발 정리도 하고 또 발인할 때 눈물로 최불암 씨를 보내고 이런 것들이 나타나서 많은 분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앵커]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오늘 장례미사 진행됐는데 앞서 병상에서는 병자성사도 집전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두 사람도 오랜 인연이 있었던 거죠?
[하재근]
그러니까 최불암 씨가 봉사를 하다 보니까 그 가운데 만나게 된 거예요. 2012년에 소년 수형자 교정교화 프로그램 캠프에 최불암 씨가 봉사하러 갔는데 그 캠프가 천주교가 주도하는 그러한 캠프였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돼서 계속해서 그 인연을 이어온 것이고 그리고 최불암 씨가 김민자 씨를 매주 여의도성당에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일요일마다. 그러면서 염수정 추기경하고 인연이 지속되면서 염수정 추기경이 그때부터 최불암 씨한테 반은 신자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는데 결국 염수정 추기경한테 세례도 받고 그렇게 된 것인데 세례받을 당시에 김민자 씨 세례명이 도미니카여서 최불암 씨한테 염수정 추기경이 도미니코라는 세례명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최불암 씨가 도미니코를 선택하지 않고 프란치스코를 선택하면서 그 이유가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약자들을 많이 도와줬던 성인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성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최불암 씨가 약자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아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고 그러면서 연기자가 성인은 아니지만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말을 최불암 씨가 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인연이 염수정 추기경하고 최불암 씨 사이에 있는 거죠.
[앵커]
생활 하나하나에 모든 고인의 뜻이 다 담겨져 있는데 뜻이 정말 모두가 한 길로 가는 것 같아요. 약자들을 향하는 마음. 그리고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이런 부분들을 상당히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재근]
그렇습니다. 최불암 씨가 후배들한테 배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 그런 얘기도 했었는데 종교의 귀의하는 것도 옛날부터 보면 역사적으로 사람이 어느 정도 고령이 되면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는 많았거든요. 최불암 씨도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는데 종교에 귀의하면서도 최불암 씨의 종교 생활에도 역시 최불암 씨의 지론, 최불암 씨의 뜻이 그대로 투영됐다. 그래서 최불암 씨가 81년부터 어린이재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계속 봉사했던 정신이 말년에 종교에 귀의하면서도 결국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나타나게 되고 종교 속에서도 약자를 생각하면서 성인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 이렇게 나타나게 된 것 같습니다.
[앵커]
오늘 장례미사에서 팝페라 가수 임형주 씨가 아베 마리아로 고인을 추모했는데 임형주 씨가 최불암 씨가 생전에 마지막 길에 웃으면서 인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전했는데 어떤 의미였을까요?
[하재근]
최불암 씨의 담담한 생사관이 나타난 것 같은데 나 죽어도 너무 슬퍼하고 그러지 말고 나도 생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고 담담하게 웃으면서 보내달라라는 취지로, 그래서 최불암 씨가 생전에 옷도 사회적 약자들이 위화감을 느끼고 이럴까 봐 화려한 옷 안 입고 수수한 옷만 입고 했다고 하는데 장례도 조용하게 치러서 나를 조용하게 보내 달라,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팝페라 테너 임형주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과거에 아베마리아를 불렀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프란치스코 최불암 씨를 보내는 길에 또 아베마리아를 불렀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가 남긴 여러 족적들이 있는데 작품 이야기도 해 보겠습니다. 67년 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게 수사반장이지 않습니까? 수사반장 속의 최불암 씨 모습도 짚어볼까요.
[하재근]
수사반장이 국민들한테 정말 큰 사랑을 받았던 시청률 70%, 말이 70%지 그 당시에 전 국민이 다 봤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수사반장 하는 시간이 되면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부부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이 다 본 것이고 최불암 씨가 극중에서 담배 피우면 남자들도 따라 피우고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도 똑같이 따라 피우고 해서 육영수 여사가 최불암 씨한테 전화해서 국민 건강을 생각해서 적게 피워달라고. 그래서 반으로 줄였다는 거죠. 그런데 수사반장 모토가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거든요. 그 당시 우리나라 고도성장할 때인데 화려하게 성장을 하지만 그 그늘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애환을 조명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모토였었고 그래서 항상 나쁜 범죄자는 엄격하게 하지만 생계형 범죄자들이 등장하거든요. 그런 범죄자들한테 사연 듣고 이러면 항상 최불암 씨가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 닦고 땀 닦고 하면서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표출하는 모습. 이게 국민들한테 감동을 줬던 프로그램이었고. 원래 처음에는 박 반장 역할이었는데, 최불암 씨가. 권총, 수갑 이런 거 들고 나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불암 씨가 스타일을 바꾼 거예요. 권총, 수갑 다 없애고 트렌치코트에 따뜻한 느낌으로, 그렇게 만들어서 결국 전 국민한테 사랑을 받았고 우리 국민들의 한 시대, 20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삶의 애환을 다뤘던 그런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앵커]
앞서서 최불암 씨가 경찰 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모습이 있었는데 경찰청에서도 공식 SNS에 추모하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하재근]
최불암 씨도 염수정 추기경이 반은 신자였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경찰 입장에서는 반은 경찰이었다. 그렇게 보는 건데. 민간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명예경찰이 1972년에 됐거든요. 그때부터 5번에 걸쳐서 계속 승진을 해서 수십 년 동안 계속 승진을 하는 거예요. 진짜 경찰처럼. 마지막에는 명예치안정감, 명예국가수사본부장까지 됐거든요. 경찰이 최불암 씨를 잊지 않았다는 거죠. 때만 되면 딱딱 맞춰서 승진을 시켜줬으니 항상 경찰 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고. 이번에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최불암 씨는 14만 경찰을 넘어서서 5000만 국민한테 영원한 수사반장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경찰하고 50년 이상의 인연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특히 경찰 입장에서는 최불암 씨가 너무나 고마운 것이 과거에 권위주의 통치 시절에, 일제시대부터 시작해서 권위주의 통치 시절까지 그 기간 동안 경찰의 이미지가 안 좋았었거든요. 그때 수사반장이 경찰 이미지 제고에 엄청난 역할을 했던 겁니다. 그렇다 보니까 최불암 씨나 수사반장팀한테 경찰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마움을 느꼈을 것 같고 서민을 생각하는 경찰상,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 그런 경찰상을 정립하는 데 최불암 씨나 수사반장팀이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앵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대표작인 전원일기 아니겠습니까? 전원일기 속의 최불암 씨의 모습도 짚어볼까요.
[하재근]
전원일기에서 본격적으로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게 됐던 건데. 수사반장이 따뜻한 어른의 이미지면서도 동시에 엄격하게 정의를 집행하는 그러한 역할이었다면 전원일기는 그냥 따뜻하고 푸근한 아버지 김 회장으로 간 것이죠. 그래서 최불암 씨도 김 회장을 연기하면서 작정하고 큰 느티나무 같은 이미지로 연기하려고 했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우리나라의 개발, 성장 과정이라는 것이 거대한 이촌향도의 흐름이었거든요. 수많은 국민들이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온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도시에서 고향을 그리워했었는데. 그러한 국민들한테 대리만족, 고향에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줬던 프로그램이 전원일기였던 것이었고 수많은 국민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전원일기를 보면서 달랬던 건데 달랬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정주영 회장이었고 정주영 회장이 최불암 씨에게 지게 메는 법도 가르쳐줬다고 하고 나 이 프로그램 나가야 된다, 20분만 출연시켜달라고 해서 출연하기로 됐는데 현대그룹 임원들이 결사반대해서 출연은 무산됐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 인연으로 나중에 통일국민당 국회의원도 됐는데 어쨌든 그렇게 재벌 회장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의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움, 이걸 달래준 프로그램이 전원일기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전원일기에서 특유의 파 하는 웃음소리도 만들어지기도 했었는데.
[하재근]
건너방에 어머니가 계시는데 내가 여기서 크게 웃으면 어머니가 소외감을 느끼실 거 아니냐. 그래서 아무리 내가 좋은 일이 있어도 어머니 안 들리게 하하하 웃지 않고 파 이렇게 소리내지 않고 숨소리만 내고 웃다 보니까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그게 90년대 웃음코드로 소비가 되면서 최불암시리즈 파 웃음, 그게 대표적인 웃음코드가 되면서 90년대 국민들하고 신세대에게 아주 친밀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앵커]
지금 특별한 인연들, 고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도 얘기해 주셨는데 최불암 배우는 생전에 한복디자이너 박술녀 씨와도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박 씨는 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1년 전부터 직접 수의를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이렇게 정말 정성 들여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입을 옷을 직접 만들어주셨는데 고인은 연예계,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그렇고 각계각층과 다양한 인연들이 있잖아요.
[하재근]
최불암 씨가 수십 년 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사회의 큰어른으로 살아온 것이거든요. 자타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본인도 자각을 했던 겁니다. 내가 이러한 캐릭터다. 여기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그런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사적인 즐거움, 향락, 쾌락 이런 거 다 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최불암 씨가 나는 배우지만 배우도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본인도 큰어른처럼 살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까 진짜 큰어른이 된 것이고 남들도 배우를 넘어서서 큰어른으로 생각하니까 각계각층하고 당연히 여러 봉사도 하고 다양한 인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마 돌아가셔서 그렇지 살아계셨다면 박정희 대통령도 조문을 하셨을 것 같은데. 그 시절부터 굉장히 여러 가지 인연이 있었으니까요, 육영수 여사도 그렇고. 이번에도 경찰 지휘부도 당연히 빈소를 찾았고 재계에서도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라든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라든가 이런 분들, 또 정치권에서 대거 여야 할 것 없이 수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으면서 그야말로 큰어른이 세상을 떠났구나라는 게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했습니다.
[앵커]
수사반장 그리워하시는 분들 많았을 텐데 2년 전에는 수사반장 1958에서 후배 배우 이제훈 씨랑 연기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재근]
최불암 씨가 수사반장 새로 하기 전에 1958하기 전에 물러났었는데 물러난 이유가 현장에 갔더니 나한테 지적도 하고 이래야 하는데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런 것만 하더라. 그래서 내가 남들한테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됐구나, 내가 물러나야 되겠다고 해서 물러났거든요. 그런데 수사반장1958 할 때는 수사반장의 세대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으니까 그때는 특별출연 형식으로 출연을 해서 이제훈 씨하고 함께 연기를 했던 거죠. 그래서 수사반장이라는 요즘에는 IP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수사반장이라는 IP가 굉장히 소중한 이건 거의 공적인 자산 같은 느낌이거든요. 옛날 추억의 드라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서 세대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는 건데 거기에 최불암 씨가 직접 출연해서 이제훈 씨한테 배턴을 넘겨주는 듯한 이런 모습이 대중문화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많은 분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회를 느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지난해 이순재 배우에 이어 최불암 배우까지 국민 아버지라고 불렸던 이런 원로 배우들이 한 분, 한 분 떠나시면서 많은 분들이 세대가 변해가는 것 같다,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것 같다는 표현을 많이 하시거든요.
[하재근]
1년 사이에 이순재 씨도 돌아가시고 올해 1월달에 안성기 씨 돌아가시고 최불암 씨 돌아가신 거예요. 딱 1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거든요.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라는 느낌이 들고 이순재 씨하고 최불암 씨 두 분 다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았던 분들인데 이순재 씨는 엄격한 가부장 같은 느낌이 있었다면 최불암 씨는 인자한 아버지라는 느낌이 있었고 안성기 씨는 국민 형님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분들이 1년 사이에 돌아가시니까 너무나 허전하고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건데이러한 국민배우들이 과연 앞으로 쉽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과거에는 TV 수상기 거실에 있는 거 한 대로 온 가족이 다 봤기 때문에 그 TV 스타가 국민 스타가 되는 거거든요. 지금은 따로따로 보거든요. 휴대폰이나 이런 걸로 세대별로 따로 보기 때문에 서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세대별로 갈리다 보니까 국민 스타가 나오기 어렵고 이러다 보면 사회가 세대별 간극이 벌어지면서 파편화, 개인이 고립되고 해체되는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사회가 삭막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최불암 씨나 안성기 씨, 이순재 씨 같은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는 국민 아이콘, 이런 배우의 길을 가는 연예인들이 후배들이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이런 후배들이 많이 나오고 대신에 우리 마음속에는 최불암 씨가 남아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YTN 오동건 (odk79829@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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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 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이번에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평생을 함께하며 우정을 나눴던 동료 배우들에게도 고인의 빈자리는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하루였는데요. '전원일기'에서 오랜 세월 부부로 호흡을 맞춘 김혜자 씨고 절친한 친구였던오지명 씨와 나문희 씨도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마지막 인사 직접 들어보고 오겠습니다. 원로 배우들의 이런 인사가 정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정말 한 분 한 분 말씀하신 것처럼 추억이 워낙 많았잖아요. 고인과는 오랜 인연이었고요.
[하재근]
처음 나온 김혜자 씨하고는 전원일기에서 무려 22년 동안 부부 역할로 나오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제 부부라고 오인할 정도로 연기 호흡을 보여주면서 최불암 씨는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김혜자 씨는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했고 22년 세월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호흡을 맞췄던 분이 세상을 떠나시니까 마음에 안타까움이 클 것이며 오지명 씨도 고등학교 때부터 최불암 씨하고 단짝 친구였다고 합니다. 39년생 동갑인데 호적상으로는 최불암 씨가 1살 어린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오지명 씨가 최불암 씨한테 그것 때문에 많이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단짝친구로 잘 지내왔고 2000년대에 오지명 씨가 만든 영화 까불지 마에도 함께 출연하기에도 하고 절친이었는데오지명 씨 입장에서는 그런 절친을 보낸 것이고 나문희 씨 입장에서도 그런 것이고 원로배우들이 굉장한 상실감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화면에 나오는 세 분뿐만 아니라 다른 원로 배우들도 많이 오셨거든요. 그분들이 굉장히 마음 아파할 것 같고. 최불암 씨를 많은 분들이 애도했는데 원로배우분들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김혜자 씨의 경우에는 우리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남겼었는데 장례절차는 오늘 마무리가 됐는데 오늘 여러 가지 장례 절차들 중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까?
[하재근]
장례 자체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는 자체가 가장 눈에 띄는 거죠. 보통 이런 유명한 배우가 돌아가시면 배우장이라든가 방송인장이라든가 이렇게 치르고 그걸 본인들이 영예로 느끼거든요. 그런데 최불암 씨는 전혀 그런 게 아니라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서 그만큼 이분이 생전에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에 진심이었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했고 운구행렬도 보통은 방송국이나 촬영지 같은 곳 많이 들르거든요. 최불암 씨 같은 경우에는 공채 탤런트 데뷔는 KBS에서 했지만 나중에 대표작 2편,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다 MBC에서 했거든요. 그러니까 MBC에 들러도 될 법한데 그런 걸 선택하지 않고 최불암 씨가 생전에 나 죽으면 운구할 때 어린이재단에 들러 달라, 그렇게 유언을 남겨서 어린이재단에 들르는 모습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굉장한 귀감이 됐을 것 같고 아마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언론을 통해서 계속 접하고 있거든요. 최불암 씨가 이런 봉사를 했다, 기부를 했다, 재단에서 활동을 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나도 이렇게 기부해야 되겠다, 봉사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고. 후배 연예인들도 나도 저렇게 진정성 있게 봉사활동을 해서 나중에 장례식 치를 때 재단에서 치를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생각들 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 거대한 선한 영향력, 이런 것들이 자라날 수 있게 하나의 씨앗을 돌아가시면서 우리한테 선물로 남겨주셨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오늘 발인은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화면에서 나가기도 했는데 마지막 관이 나가는 길에 배우 김혜수 씨, 후배인 신현준, 정준호 씨가 눈물로 배웅하는 모습이 포착됐거든요. 이 세 분은 고인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건가요?
[하재근]
많은 후배들이 다 눈물로 배웅을 했습니다, 추모를 하고. 신현준, 정준호 씨 같은 경우는 후배니까 그리고 이분들이 워낙에 연예계 마당발들이나 보니 오다 가다 최불암 씨를 어른으로 접했을 것이고. 신현준 씨 같은 경우에는 연예정보 프로그램도 오랫동안 진행했으니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개인적인 인연이라든가 아니면 선배로서 존경심이라든가 이런 것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오열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김혜수 씨 같은 경우에는 김혜수 씨하고 최불암 씨 부부의 인연의 첫 시작점을 온 국민이 다 아는데. 바로 1987년에 KBS 드라마 사모곡 거기에 김혜수 씨가 김민자 씨와 모녀 역할로 출연하면서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이 됐다는 거거든요. 그 당시 사모곡이 굉장히 인기드라마였습니다. 김혜수 씨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사모곡에 출연해서 일약 연기파 스타로 완전하게 자리매김을 하게 됐던 거거든요. 정보석 씨도 데뷔해서 그때부터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고 이게 국민드라마였었는데 그때 김민자 씨가 김혜수 씨를 잘 돌봐줬다고 합니다. 김혜수 씨가 고등학교 1학년 어린 나이로 사극을 찍다 보니까 어려운 게 많았었는데 엄마처럼 현장에서 돌봐줬다는 거예요.
그다음부터 아버지, 어머니처럼 최불암 씨, 김민자 씨 부부를 김혜수 씨가 따랐고 또 최불암 씨를 이모부라고 불렀고 그 인연을 수십 년 동안 이어왔는데 87년에 시작된 인연이 장례식장에서 김혜수 씨가 3일 내내 빈소를 지키면서 눈물로 최불암 씨를 보내는 그런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앵커]
그래서 그런지 빈소에서도 가족처럼 오신 조문객들을 다 일일이 맞아주고 신발 정리까지 하는 모습이 상당히 눈길을 끌더라고요.
[하재근]
그렇습니다. 최불암 씨의 부인인 김민자 씨가 고령이니까 일일이 손님 맞이하기가 체력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고 그래서 김혜수 씨가 맏딸처럼 현장에서 손님들 맞이하고 신발 정리도 하고 또 발인할 때 눈물로 최불암 씨를 보내고 이런 것들이 나타나서 많은 분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앵커]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오늘 장례미사 진행됐는데 앞서 병상에서는 병자성사도 집전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두 사람도 오랜 인연이 있었던 거죠?
[하재근]
그러니까 최불암 씨가 봉사를 하다 보니까 그 가운데 만나게 된 거예요. 2012년에 소년 수형자 교정교화 프로그램 캠프에 최불암 씨가 봉사하러 갔는데 그 캠프가 천주교가 주도하는 그러한 캠프였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돼서 계속해서 그 인연을 이어온 것이고 그리고 최불암 씨가 김민자 씨를 매주 여의도성당에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일요일마다. 그러면서 염수정 추기경하고 인연이 지속되면서 염수정 추기경이 그때부터 최불암 씨한테 반은 신자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는데 결국 염수정 추기경한테 세례도 받고 그렇게 된 것인데 세례받을 당시에 김민자 씨 세례명이 도미니카여서 최불암 씨한테 염수정 추기경이 도미니코라는 세례명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최불암 씨가 도미니코를 선택하지 않고 프란치스코를 선택하면서 그 이유가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약자들을 많이 도와줬던 성인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성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최불암 씨가 약자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아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고 그러면서 연기자가 성인은 아니지만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말을 최불암 씨가 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인연이 염수정 추기경하고 최불암 씨 사이에 있는 거죠.
[앵커]
생활 하나하나에 모든 고인의 뜻이 다 담겨져 있는데 뜻이 정말 모두가 한 길로 가는 것 같아요. 약자들을 향하는 마음. 그리고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이런 부분들을 상당히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재근]
그렇습니다. 최불암 씨가 후배들한테 배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 그런 얘기도 했었는데 종교의 귀의하는 것도 옛날부터 보면 역사적으로 사람이 어느 정도 고령이 되면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는 많았거든요. 최불암 씨도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는데 종교에 귀의하면서도 최불암 씨의 종교 생활에도 역시 최불암 씨의 지론, 최불암 씨의 뜻이 그대로 투영됐다. 그래서 최불암 씨가 81년부터 어린이재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계속 봉사했던 정신이 말년에 종교에 귀의하면서도 결국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나타나게 되고 종교 속에서도 약자를 생각하면서 성인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 이렇게 나타나게 된 것 같습니다.
[앵커]
오늘 장례미사에서 팝페라 가수 임형주 씨가 아베 마리아로 고인을 추모했는데 임형주 씨가 최불암 씨가 생전에 마지막 길에 웃으면서 인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전했는데 어떤 의미였을까요?
[하재근]
최불암 씨의 담담한 생사관이 나타난 것 같은데 나 죽어도 너무 슬퍼하고 그러지 말고 나도 생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고 담담하게 웃으면서 보내달라라는 취지로, 그래서 최불암 씨가 생전에 옷도 사회적 약자들이 위화감을 느끼고 이럴까 봐 화려한 옷 안 입고 수수한 옷만 입고 했다고 하는데 장례도 조용하게 치러서 나를 조용하게 보내 달라,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팝페라 테너 임형주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과거에 아베마리아를 불렀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프란치스코 최불암 씨를 보내는 길에 또 아베마리아를 불렀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가 남긴 여러 족적들이 있는데 작품 이야기도 해 보겠습니다. 67년 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게 수사반장이지 않습니까? 수사반장 속의 최불암 씨 모습도 짚어볼까요.
[하재근]
수사반장이 국민들한테 정말 큰 사랑을 받았던 시청률 70%, 말이 70%지 그 당시에 전 국민이 다 봤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수사반장 하는 시간이 되면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부부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이 다 본 것이고 최불암 씨가 극중에서 담배 피우면 남자들도 따라 피우고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도 똑같이 따라 피우고 해서 육영수 여사가 최불암 씨한테 전화해서 국민 건강을 생각해서 적게 피워달라고. 그래서 반으로 줄였다는 거죠. 그런데 수사반장 모토가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거든요. 그 당시 우리나라 고도성장할 때인데 화려하게 성장을 하지만 그 그늘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애환을 조명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모토였었고 그래서 항상 나쁜 범죄자는 엄격하게 하지만 생계형 범죄자들이 등장하거든요. 그런 범죄자들한테 사연 듣고 이러면 항상 최불암 씨가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 닦고 땀 닦고 하면서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표출하는 모습. 이게 국민들한테 감동을 줬던 프로그램이었고. 원래 처음에는 박 반장 역할이었는데, 최불암 씨가. 권총, 수갑 이런 거 들고 나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불암 씨가 스타일을 바꾼 거예요. 권총, 수갑 다 없애고 트렌치코트에 따뜻한 느낌으로, 그렇게 만들어서 결국 전 국민한테 사랑을 받았고 우리 국민들의 한 시대, 20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삶의 애환을 다뤘던 그런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앵커]
앞서서 최불암 씨가 경찰 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모습이 있었는데 경찰청에서도 공식 SNS에 추모하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하재근]
최불암 씨도 염수정 추기경이 반은 신자였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경찰 입장에서는 반은 경찰이었다. 그렇게 보는 건데. 민간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명예경찰이 1972년에 됐거든요. 그때부터 5번에 걸쳐서 계속 승진을 해서 수십 년 동안 계속 승진을 하는 거예요. 진짜 경찰처럼. 마지막에는 명예치안정감, 명예국가수사본부장까지 됐거든요. 경찰이 최불암 씨를 잊지 않았다는 거죠. 때만 되면 딱딱 맞춰서 승진을 시켜줬으니 항상 경찰 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고. 이번에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최불암 씨는 14만 경찰을 넘어서서 5000만 국민한테 영원한 수사반장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경찰하고 50년 이상의 인연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특히 경찰 입장에서는 최불암 씨가 너무나 고마운 것이 과거에 권위주의 통치 시절에, 일제시대부터 시작해서 권위주의 통치 시절까지 그 기간 동안 경찰의 이미지가 안 좋았었거든요. 그때 수사반장이 경찰 이미지 제고에 엄청난 역할을 했던 겁니다. 그렇다 보니까 최불암 씨나 수사반장팀한테 경찰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마움을 느꼈을 것 같고 서민을 생각하는 경찰상,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 그런 경찰상을 정립하는 데 최불암 씨나 수사반장팀이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앵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대표작인 전원일기 아니겠습니까? 전원일기 속의 최불암 씨의 모습도 짚어볼까요.
[하재근]
전원일기에서 본격적으로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게 됐던 건데. 수사반장이 따뜻한 어른의 이미지면서도 동시에 엄격하게 정의를 집행하는 그러한 역할이었다면 전원일기는 그냥 따뜻하고 푸근한 아버지 김 회장으로 간 것이죠. 그래서 최불암 씨도 김 회장을 연기하면서 작정하고 큰 느티나무 같은 이미지로 연기하려고 했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우리나라의 개발, 성장 과정이라는 것이 거대한 이촌향도의 흐름이었거든요. 수많은 국민들이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온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도시에서 고향을 그리워했었는데. 그러한 국민들한테 대리만족, 고향에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줬던 프로그램이 전원일기였던 것이었고 수많은 국민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전원일기를 보면서 달랬던 건데 달랬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정주영 회장이었고 정주영 회장이 최불암 씨에게 지게 메는 법도 가르쳐줬다고 하고 나 이 프로그램 나가야 된다, 20분만 출연시켜달라고 해서 출연하기로 됐는데 현대그룹 임원들이 결사반대해서 출연은 무산됐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 인연으로 나중에 통일국민당 국회의원도 됐는데 어쨌든 그렇게 재벌 회장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의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움, 이걸 달래준 프로그램이 전원일기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전원일기에서 특유의 파 하는 웃음소리도 만들어지기도 했었는데.
[하재근]
건너방에 어머니가 계시는데 내가 여기서 크게 웃으면 어머니가 소외감을 느끼실 거 아니냐. 그래서 아무리 내가 좋은 일이 있어도 어머니 안 들리게 하하하 웃지 않고 파 이렇게 소리내지 않고 숨소리만 내고 웃다 보니까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그게 90년대 웃음코드로 소비가 되면서 최불암시리즈 파 웃음, 그게 대표적인 웃음코드가 되면서 90년대 국민들하고 신세대에게 아주 친밀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앵커]
지금 특별한 인연들, 고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도 얘기해 주셨는데 최불암 배우는 생전에 한복디자이너 박술녀 씨와도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박 씨는 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1년 전부터 직접 수의를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이렇게 정말 정성 들여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입을 옷을 직접 만들어주셨는데 고인은 연예계,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그렇고 각계각층과 다양한 인연들이 있잖아요.
[하재근]
최불암 씨가 수십 년 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사회의 큰어른으로 살아온 것이거든요. 자타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본인도 자각을 했던 겁니다. 내가 이러한 캐릭터다. 여기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그런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사적인 즐거움, 향락, 쾌락 이런 거 다 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최불암 씨가 나는 배우지만 배우도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본인도 큰어른처럼 살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까 진짜 큰어른이 된 것이고 남들도 배우를 넘어서서 큰어른으로 생각하니까 각계각층하고 당연히 여러 봉사도 하고 다양한 인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마 돌아가셔서 그렇지 살아계셨다면 박정희 대통령도 조문을 하셨을 것 같은데. 그 시절부터 굉장히 여러 가지 인연이 있었으니까요, 육영수 여사도 그렇고. 이번에도 경찰 지휘부도 당연히 빈소를 찾았고 재계에서도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라든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라든가 이런 분들, 또 정치권에서 대거 여야 할 것 없이 수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으면서 그야말로 큰어른이 세상을 떠났구나라는 게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했습니다.
[앵커]
수사반장 그리워하시는 분들 많았을 텐데 2년 전에는 수사반장 1958에서 후배 배우 이제훈 씨랑 연기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재근]
최불암 씨가 수사반장 새로 하기 전에 1958하기 전에 물러났었는데 물러난 이유가 현장에 갔더니 나한테 지적도 하고 이래야 하는데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런 것만 하더라. 그래서 내가 남들한테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됐구나, 내가 물러나야 되겠다고 해서 물러났거든요. 그런데 수사반장1958 할 때는 수사반장의 세대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으니까 그때는 특별출연 형식으로 출연을 해서 이제훈 씨하고 함께 연기를 했던 거죠. 그래서 수사반장이라는 요즘에는 IP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수사반장이라는 IP가 굉장히 소중한 이건 거의 공적인 자산 같은 느낌이거든요. 옛날 추억의 드라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서 세대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는 건데 거기에 최불암 씨가 직접 출연해서 이제훈 씨한테 배턴을 넘겨주는 듯한 이런 모습이 대중문화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많은 분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회를 느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지난해 이순재 배우에 이어 최불암 배우까지 국민 아버지라고 불렸던 이런 원로 배우들이 한 분, 한 분 떠나시면서 많은 분들이 세대가 변해가는 것 같다,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것 같다는 표현을 많이 하시거든요.
[하재근]
1년 사이에 이순재 씨도 돌아가시고 올해 1월달에 안성기 씨 돌아가시고 최불암 씨 돌아가신 거예요. 딱 1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거든요.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라는 느낌이 들고 이순재 씨하고 최불암 씨 두 분 다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았던 분들인데 이순재 씨는 엄격한 가부장 같은 느낌이 있었다면 최불암 씨는 인자한 아버지라는 느낌이 있었고 안성기 씨는 국민 형님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분들이 1년 사이에 돌아가시니까 너무나 허전하고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건데이러한 국민배우들이 과연 앞으로 쉽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과거에는 TV 수상기 거실에 있는 거 한 대로 온 가족이 다 봤기 때문에 그 TV 스타가 국민 스타가 되는 거거든요. 지금은 따로따로 보거든요. 휴대폰이나 이런 걸로 세대별로 따로 보기 때문에 서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세대별로 갈리다 보니까 국민 스타가 나오기 어렵고 이러다 보면 사회가 세대별 간극이 벌어지면서 파편화, 개인이 고립되고 해체되는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사회가 삭막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최불암 씨나 안성기 씨, 이순재 씨 같은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는 국민 아이콘, 이런 배우의 길을 가는 연예인들이 후배들이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이런 후배들이 많이 나오고 대신에 우리 마음속에는 최불암 씨가 남아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YTN 오동건 (odk79829@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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