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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FM 94.5) [YTN ON-AI RADIO]
□ 방송일시 : 2026년 04월 17일 (금)
□ 진행 : AI 챗봇 “에어”
□ 보조진행 : 김우성 PD
□ 녹음 : 최민석 작가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우성 : 네, 오프닝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슈테판 츠바이크 이름 자체가 굉장히 독일어스럽죠.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이분의 《체스 이야기》 소개하겠다 얘기했는데요. "체스는 미친 사람을 제정신으로 만들기도 한다."라는 영국 체스 선수 윌리엄 하트슨의 말도 있더라고요. 체스의 오묘함을 설명하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이걸 주제로 다룬 소설입니다. 어려울 것 같지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고요, 아주 유명한 작품입니다. 오늘도 그 어려운 책 혹은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 쉽게 올라가게 도와주는 분, 바로 YTN 라디오 '온에어'의 독서 셰르파 최민석 작가님과 함께 잘 올라보겠습니다. 작가님, 나마스떼.
◇ 최민석 : 안녕하세요, 최민석입니다.
◆ 김우성 : 여러분, 네팔어 강좌 프로그램 아닙니다. 제가 이름을, 저도 그래도 한때 독문학을 좀 공부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역시 훌륭하시네요. 독일어 자랑했습니다. 이분의 단편 소설 《체스 이야기》인데 유명한데 모르시는 분도 많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일단 작가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1881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요. 처음에는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스무 살 때쯤에 첫 시집인 《은빛 현》을 출간했고요. 이후에는 정말 가리지 않고 다 씁니다. 희곡, 소설 뭐 이런 걸 쓰면서 작가로서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하죠.
◆ 김우성 : 예, 여러 장르라고 해야 될까요? 넘나들면서 글쓰기를 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이분의 이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좀 독특한 이력을 꼭 알고 넘어가야 된답니다. 뭐죠?
◇ 최민석 : 그건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전기 작가로도 굉장히 유명하다는 겁니다.
◆ 김우성 : 전기 작가? 흔히 뭐 우리가 위인전 이런 거 말할 때 한 사람의 생애를... 특이하네요. 소설가들이 전기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경우는 잘 없었던 것 같아요.
◇ 최민석 : 흔치 않죠.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썼고요, 조제프 푸셰 같은 이런 인물들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 김우성 : 유명했네요, 전기 작가.
◇ 최민석 : 네, 그렇게 명성을 떨쳤고요.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들과의 만남을 다룬 회고록 《어제의 세계》라는 작품도 썼습니다. 제가 이걸 말씀드린 이유는 이따가 '아, 슈테판 츠바이크가 전기 작가였다'는 사실이 오늘의 작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네, 전기 작가. 여러분, 다른 사람, 위대한 사람, 남의 인생을 잘 풀어낼 수 있어야 되는데 오늘 그거를 염두에 두고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역시 셰르파답게 잘 디딤돌을 놓아주시네요. 필수 정보를 역시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분에 대해서 좀 더 알려주시죠.
◇ 최민석 : 그리고 중요한 거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유대인이었어요.
◆ 김우성 : 유대인? 예.
◇ 최민석 : 네,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버지가 유대인일 뿐 자기 스스로 살면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지각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하죠.
◆ 김우성 : 이분이 태어난 연도와 돌아가신 연도를 보니까 나치의 영향을 안 받았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최민석 : 맞습니다. 나치가 집권을 하면서부터 작가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고 여러모로 압박을 받게 되죠. 그래서 나중에는 런던에 가서 영국 시민권자가 되고요, 말년에는 아예 유럽을 떠나서 브라질로 망명을 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작품 《체스 이야기》를 완성하죠.
◆ 김우성 : 예, 유대인. 지금은 이스라엘로 대표되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더 시의성 있게 와닿는 느낌도 듭니다. 이런 작품을 읽기 전에 작가의 개인사를 우리 최민석 셰르파, 최민석 소설가가 잘 설명해 주시는데 역시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보면 될까요?
◇ 최민석 : 네, 작품에 영향을 끼쳤고요. 그거는 제가 줄거리 소개할 때 한번 들으면서 확인을 해 보시면 될 것 같고요. 아무튼 작가는 자신의 정신적인 고향인 유럽이 나치 때문에 붕괴되는 걸 보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아요. 그리고 《체스 이야기》가 진짜 말년 작품이거든요. 마지막 《체스 이야기》를 쓴 다음 해에 부인과 함께 세상을 스스로 떠납니다.
◆ 김우성 : 세상을 등졌군요. 네, 자살을 했습니다. 뭐 유명한 예술가, 작가들의 이야기 결말처럼 다가오긴 하는데 어떻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렇게 떠났는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줄거리부터 한번 알아보죠.
◇ 최민석 : 이 소설은 1인칭 화자가 서술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당연히 '나'죠. 나는 지금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그 뜻이 '공기 좋은 도시'잖아요.
◆ 김우성 : 그러니까요. '부에노(Bueno)'가 좋은 이고 '아이레(Aire)'가 공기인데요.
◇ 최민석 : 네, 복수라서 's'가 들어간 겁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그러면 공기 좋은 도시인데, 이 공기는 단순히 그 공기 입자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도 '아이레'에 포함이 돼요. 그래서 분위기 좋은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여객선에 타 있죠. 그리고 나는 이 여객선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 김우성 : 아주 유명한 인물이라고 하니까 드디어 작품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누구입니까?
◇ 최민석 : 바로 '체스 이야기'잖아요, 작품 제목이. 그래서 여기서 세계 체스 챔피언인 첸토비치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이 첸토비치는 1년 전에 혜성처럼 등장을 해서 체스 거장들을 연달아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이 된 인물입니다.
◆ 김우성 : 1년 만에 챔피언이 된다? 마치 뭐 한국 바둑계의 신성들을 보는 느낌도 듭니다. 되게 대단하네요.
◇ 최민석 : 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거는 그의 이런 재빠른 성공의 속도가 아닙니다. 내가 진짜 놀란 거는 이 첸토비치가 체스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겁니다. 진짜 체스밖에 모르는 바보.
◆ 김우성 : 뭔가 우리 한국의 바둑 천재들이 떠오릅니다. 왠지 바둑 말고는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느낌도 들잖아요. 와, 대단하네요. 체스는 머리를 많이 써야 되고, 앞서 괴테의 말도 있습니다. "지식의 시금석이다." 이렇게까지 표현할 정도인데 어떻게 한 가지만 막 바라보는 경주마 같은 느낌의 사람이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요?
◇ 최민석 : 그렇죠. 이게 진짜 아이러니한 거죠. 정말 체스 천재인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일단 첸토비치 이름에서 느낌이 오죠? 네, 유럽의 아주 작은 국가, 동유럽의 어느 나라겠죠.
◆ 김우성 : 그런 것 같아요, 이름이.
◇ 최민석 : 소설에서는 나라 이름을 안 밝힙니다. 동유럽의 어떤 작은 국가에서 가난한 뱃사공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리고 열두 살 때 사고로 아버지를 잃습니다. 이런 첸토비치를 거둬들인 사람은 어느 신부였습니다.
◆ 김우성 : 네, 가톨릭 신부님.
◇ 최민석 : 네, 그래서 신부는 첸토비치한테 공부를 가르쳤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첸토비치는 공부에 전혀 소질을 보이지 않아요.
◆ 김우성 : 아까 미리 말해 주셨어요. 한 가지만 잘한다고. 체스를 잘하게 된 건 뭡니까? 공부를 잘해야 체스 잘할 것 같은데.
◇ 최민석 : 이 신부가 종종 사람들이 오면 체스를 뒀어요. 그거를 첸토비치가 구경하다가 어느 날 첸토비치가 "내가 한번 해보겠다." 그런데 체스를 뒀는데 너무 잘 두는 거예요.
◆ 김우성 : 천재였네요.
◇ 최민석 : 그러니까 알고 보니까 첸토비치는 이 사람의 능력이 곳곳에 이렇게 다방면에 걸쳐져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능력을 체스에만 쏟아부을 수 있는...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하죠? 세상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무능력하지만, 그 모든 능력이 체스에 집중된 진짜 체스에만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던 거죠.
◆ 김우성 : 보통 천재라고 부르면 다 잘하지 않더라고요. 이런 성향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체스 천재네요.
◇ 최민석 : 그래서 이렇게 체스에 재능이 있다는 게 밝혀졌고 이때부터 그는 체스를 뒀고 결국은 체스계에 등장한 지 1년이 채 안 돼서 세계 챔피언이 된 겁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기묘한 체스 챔피언에 대해서 좀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캐릭터가 너무 독특하니까. 그래서 이 주위를 좀 배회했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이 첸토비치한테 다가갈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 김우성 : 자, 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 여객선 안인 것 같습니다. 우리 주인공 '나'는 체스 천재 첸토비치를 만나고 싶은데 기회가 안 생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기회를 만들어야 되나?
◇ 최민석 : 그렇죠. 판을 깔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 여객선 위에서 체스판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매코너라는 인물을 만나죠.
◆ 김우성 : 또 다른 인물 한 명이 등장합니다. 매코너.
◇ 최민석 : 이 매코너는 다혈질의 인간인데요. 나한테 체스 몇 게임을 지더니만 승리의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때 매코너한테 슬쩍 흘렸죠. "이 배에 세계 챔피언 첸토비치가 타 있다고요."
◆ 김우성 : 매코너를 이용했네요.
◇ 최민석 : 네, 나는 매코너의 승부욕을 알아챘기 때문에 그가 쉽게 흥분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김우성 : 매코너가 움직입니까?
◇ 최민석 : 네, 그는 거금을 들여서 체스 챔피언인 첸토비치와의 경기를 주선했습니다. 역시 돈이 걸리니까 첸토비치도 엮이는 거죠. 그래서 나, 매코너 그리고 몇 명의 승객들이 '연합군'이 되어서...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연합군이 되어서 첸토비치 한 사람을 상대하는 시합을 벌이게 된 거죠.
◆ 김우성 : 챔피언 한번 꺾어보자! 여러분들은 어디에 거시겠습니까? 물론 YTN 라디오에서 돈을 거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뭐 하다못해 바둑을 두더라도요, 뭐가 걸려 있어야 정말 열심히 하게 됩니다. 시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시합이?
◇ 최민석 : 허무하게도 첸토비치가 너무 쉽게 우리를 이겨버렸습니다.
◆ 김우성 : 천재인데...
◇ 최민석 : 네, 심지어 경기 내내 심드렁하기까지 했어요.
◆ 김우성 : "왼쪽 뇌로만 승부하겠습니다." 이런 건가요? 정말 대단하네. 세계 챔피언이니까 당연한 것 같긴 해요.
◇ 최민석 : 네, 그래서 매코너가 승부욕이 굉장히 강하잖아요. 화가 나서 "한 판 더 하자"면서 두 번째 경기를 요청했죠. 어떻게든 이겨보고 싶었지만 두 번째 시합도 질 게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 김우성 : 이거 뭐 축구 경기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막 토너먼트처럼. 새로운 고수여야겠네요, 그러면?
◇ 최민석 : 네, 그렇습니다. 첸토비치와의 시합을 좀 설명하자면, 이 시합은 기본적으로 첸토비치가 한 수를 두면, 첸토비치는 옆방의 휴게실에 가서 담배를 피워요. 그럼 우리는 그동안 갑론을박을 펼치면서 대응할 한 수를 둡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충분하니까. 그런데 그게 잘될 리 없었죠. 이 광경을 지나가던 행인이 보더니만 "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훈수를 한번 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훈수 둔 대로 두니까 맙소사, 우리가 거의 다 졌던 게임을 첸토비치와 무승부로 끝내게 된 겁니다.
◆ 김우성 : 체스 천재 챔피언을 비길 수 있는 훈수를 둔 분. 이분도 진짜 은둔 고수 같습니다. 엄청난 고수예요.
◇ 최민석 : 심지어 거의 다 진 판이었는데... 그래서 이 매코너가 승부욕이 되게 강하잖아요. 심지어 이거 자기가 둔 것도 아니면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훈수를 둔 그 사람한테 당신이 첸토비치와 직접 한 판을 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하죠. 대국료는 자기가 직접 댈 테니.
◆ 김우성 : 엄청난 승부에, 흔히 말해서 꽂혀 있는 분이시네요.
◇ 최민석 : 물주로 자기가 서포트를 하죠.
◆ 김우성 : 그러니까요. 이분은 지금 이 판에 아예 몰입돼 있습니다. 은둔 고수, 지나가던 훈수, 그분은 뭐라고 합니까?
◇ 최민석 : 그러니까 그 행인이 깜짝 놀라면서 거절을 해요. 그런데 내가 찾아가서 다시 한번 설득을 하자 조심스럽게 "딱 한 판만 하겠다"고 승낙을 합니다. 이것도 고수 같습니다. 자, 시합은 며칠 뒤. 나는 너무 궁금해서 묻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체스를 잘 두게 됐는지, 그 사연을 묻죠.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반응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 김우성 : 아니, 이렇게 챔피언이랑 비길 만큼 잘 두시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신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뭔가요?
◇ 최민석 : 이 사람은 자기가 체스를 잘 둔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게다가 이렇게 체스를 두는 거는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합니다.
◆ 김우성 : 챔피언을 꺾었는데, "와, 왜 이렇게 잘하세요?" 하니까 "제가 잘하는 거예요? 저 이렇게 두는 거 처음이에요." 지금 이런 반응이잖아요. 이 사람도 천재네요, 그러면?
◇ 최민석 : 자, 이 남자는 자신이 어떻게 체스를 두게 됐는지 나한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김우성 : 야, 이건 체스보다 재밌습니다. 들어갑니다. 이 남자 은둔 고수, "내가 체스를 잘 둬요?"라고 말하는 천재. 어떻게 해서 잘 두게 된 겁니까?
◇ 최민석 : 낯선 이 남자의 정체는 B 박사입니다. 박사. 소설에는 그냥 알파벳 'B'라고 써 있어요. 이 B 박사는 오스트리아의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인데요, 원래는 아버지와 함께 황제 가족의 자금을 관리하는 법률사무소를 운영했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어딘가로 끌려갔죠.
◆ 김우성 : 유서 깊은 가문인데 끌려갔다... 뭔가 이 슈테판 츠바이크 같은 느낌도 드는데 어디로 끌려갔습니까?
◇ 최민석 : 그 시내의 한 호텔 방에 끌려갔습니다.
◆ 김우성 : 호텔 방이요?
◇ 최민석 : 네, 그런데 거기에는 가구도 없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읽을거리도 없고,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방이죠.
◆ 김우성 : 감옥이네요, 거의.
◇ 최민석 : 그렇죠. B 박사는 이 완전한 무(無)의 공간에 철저하게 고립이 된 거죠. 그리고 B 박사는 여기서 자신이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김우성 : 파괴됩니다... 여러분, 이거 잠깐 끼어드는 제 애드리브인데요. 저는 소리를 다루는 라디오 PD잖아요. 영국인가 어디서 소리가 없는 방에 한 사람을 가두는 실험을 했는데 정말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아무것도 없는 무의 방에 가둬놓고 방치를 했으니 이 사람은 너무 괴로웠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네, 그렇게 그 방에는 음식만 제공이 됐던 거죠, 죽으면 안 되니까. 그러다가 한 넉 달쯤 지나니까 나치가 "너 신문해야 되니까 나와라" 그런 겁니다.
◆ 김우성 : 신박한 고문이네요. 4개월 만에 나왔습니다.
◇ 최민석 : 그래서 4개월 만에 나와서 한 사무실에 앉아서 대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 벽에 외투가 딱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 외투... 당연히 거의 새로운 걸 처음 보잖아요.
◆ 김우성 : "외투야, 반갑다!"
◇ 최민석 : 외투도 반가운 거죠. 그래서 외투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는데 그 외투 주머니에 뭔가 불룩한 게 보이는 거예요.
◆ 김우성 : 여기서 심리학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술!' 이럴 것 같은데, 뭘까요?
◇ 최민석 : 바로 우리 청취자들이 사랑하는 '책'입니다.
◆ 김우성 : 최민석 작가님의 코너를 사랑하는 분들은 책, 저는 술.
◇ 최민석 : B 박사는 '아, 저 책만 있으면...' 네, 오직 그 무(無)만 존재하는 독방... 이게 소설의 표현입니다. '무만 존재하는 그 독방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겁니다. 먹는 '무' 말고요. 그래서 숨죽이고 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그 책을 훔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서 신문을 마친 다음에 내 독방에 돌아와서 그 책을 확인해 보죠.
◆ 김우성 : 이 무의 공간에서 책 하나. 여러분, 화장실에서 아무것도 없을 때 막막함 아시죠? 손에 폰이라도 쥐어져 있어야 되는데... 확인해 보니 뭡니까, 그 책은?
◇ 최민석 : 그동안 세계의 각종 체스 대회에서 벌어졌던 주요 시합의 체스 대결 과정을 복기해 놓은 책이었던 거예요. 무려 150편의 시합이 담긴 교습서였습니다. 그래서 B 박사는 이 독방에서 고독과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서 이 교습서에 실린 150편의 시합 과정을 모조리 외워버리죠.
◆ 김우성 : 뭔가 재밌는 소설이나 설레는 이야기면 좋았을 텐데, 체스 시합 복기 교습서... 근데 어쨌든 다 외워버렸다고 하는데, 이게 흔히 말하는 기보 같은 거잖아요, 바둑으로 치면. 근데 바둑돌도 없고 판도 없는데 어떻게 외워요?
◇ 최민석 : 그래서 일단은 아까 B 박사가 첸토비치랑 시합을 둔 후에 "자기가 제대로 체스를 둔 건 처음이라"고...
◆ 김우성 : 맞아요, 그렇게 말했죠.
◇ 최민석 : 그러니까 자기는 그 체스판과 말이 없었으니까... 그러면 B 박사는 어떻게 했느냐? 이 모든 것을 그냥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거죠, 이미지로. 마침 그 B 박사의 방에 있는 이불이 그 방에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는데, 이게 체크무늬였어요.
◆ 김우성 : 때마침 누워 있는데, 바둑 기보를 갖고 있는데, 이불이 바둑판무늬!
◇ 최민석 : 체크무늬 이불을 체스판 삼아서, 그 위에 말은 없잖아요? 말은 그냥 상상하면서 그 이불 판 위에 하나하나 올려놓으면서 복기를 했던 거죠.
◆ 김우성 : 정말 B 박사 대단합니다. 이게 넷플릭스의 체스를 주제로 한 여성 주인공 드라마 있잖아요, 《퀸스 갬빗》. 그분도 이렇게 천장에다가 막 체스를 두고... 저도 고등학교 시절에 자꾸 천장에 당구대 공을 쳐서.
◇ 최민석 : 그렇죠. 당구 처음 치면 원래 눈 감으면 눈앞에 공이 아른아른 거리죠.
◆ 김우성 : 그러니까요. 이게 누우면 천장에서 이렇게 당구대가...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거랑 똑같은 거예요. 잠깐 빗나갔는데 이해하기 쉽도록 예로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불밖에 없는데 때마침 체크무늬 이불이고요. 체스판도 말도 없는데 150개가 넘는 체스 교본에 있는 내용들을 다 외운 겁니다. 그러면 굉장히 집중하기 어려운 일일 텐데요.
◇ 최민석 : 집중하기 어렵죠. 근데 이건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고독과 처절하게 싸웠다는 거죠. 그러니까 고독을 견디느니 차라리 체스 말을 상상하면서 체스를 두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근데 또 새로운 문제에 부딪힙니다.
◆ 김우성 : 이 무(無)의 고독, 이 힘든 방에서 적어도 하나를 찾았는데 또 문제에 부딪혔다... 뭔가요?
◇ 최민석 : 이렇게 150편의 체스 대결을 모두 외우고 나니까 할 일이 또 없어진 거죠. 어떡합니까? 그래서 B 박사는 새로운 활로를 찾죠.
◆ 김우성 : 여러분, 다 외웠거든요. 눈으로 그냥 머릿속으로 체스를 다 뒀습니다. 다 외웠습니다. 근데 할 게 더 없어요. 어떻게 찾습니까?
◇ 최민석 : 자기 스스로 체스 대결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자아를 두 개로 분열을 시켜요. 그래서 '1번 나'와 '2번 나', 그러니까 1번 자아와 2번 자아가 각각 서로 맞붙어서 체스 시합을 두게 하는 거죠. 근데 이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잖아요. 굉장히 자아 분열적인 시합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자아 분열적인 게임을 한 탓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B 박사의 몸은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 김우성 : 히틀러의 수하들이 신문하려고 불러냈는데... "잠깐 기다려 봐, 1번 아니야, 2번 기다려!" 제가 연기를 한번 해 봤습니다. 실제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근데 정신병원에 있었잖아요. 그러면 회복이 돼야 밖에 나와서 여행도 하고 할 텐데요.
◇ 최민석 : 네, 치료를 받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배에서 우연히 체스 시합에 끼어들게 된 거죠. 그리고 다시 B 박사는 세계 챔피언인 첸토비치와 시합을 하기 위해서 첸토비치 앞에 앉아 있습니다.
◆ 김우성 : 재밌습니다. 이게 드라마 보시다가도 주인공의 과거사로 슉 액자식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런 구성이어서 아주 재미있게 잘 썼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 최민석 : 이렇게 소설은 B 박사의 사정을 들려줬죠. 그러니까 액자식 구성이니까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 내부 이야기를 마친 거죠.
◆ 김우성 : 사연은 다 소개했습니다.
◇ 최민석 : 그리고 원래의 이야기인 큰 이야기, 뭐 '틀 이야기'라고 해요, '프레임 스토리'. 이쪽으로 다시 돌아온 거죠. 즉, 체스 대결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자, 그런데 중요한 거는 이때부터 소설의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 김우성 : 분위기가 달라진다... 자, B 박사의 과거를 독자들은 알게 됐습니다. 갇혀 있었던 과정, 여러 가지 천재적인 수준으로 외웠던 것들 다 알게 됐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사연들을 다 알게 되니까 시선도 좀 다각화되고 관계도 좀 복잡하게 보일 것 같아요.
◇ 최민석 :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아까 작가 소개를 할 때 슈테판 츠바이크가 전기 작가였다고 얘기했잖아요.
◆ 김우성 : 사람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이에요.
◇ 최민석 : 네, 그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 김우성 : 그런 게 이 작품 속에, 즉 이 단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건가요?
◇ 최민석 : 그렇습니다. 네, 소설에서 그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묘사하는 이 첸토비치의 행동과 그 외양은 자신이 예전에 집필한, 아까 제가 프로필 얘기할 때 얘기했던 그 《어제의 세계》라는 작품에 등장한 실제 인물과 너무 겹칩니다.
◆ 김우성 : 실제 유명한 인물이요?
◇ 최민석 : 예, 첸토비치는 이 책에 등장한 인물과 성격, 행동 특징이 거의 유사하게 묘사가 됩니다.
◆ 김우성 : 유명해야 독자들이 알아먹기 쉬울 텐데... 누굽니까?
◇ 최민석 : 그 인물은 바로 히틀러입니다.
◆ 김우성 : 히틀러!
◇ 최민석 : 네, 아까 슈테판 츠바이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소개했던 거죠. 그래서 《어제의 세계》도 소개했던 거고요. 아무튼 좋아요.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보죠. 첸토비치는 B 박사와 시합을 하면서 한 수를 둘 때마다 시간이 10분이거든요. 주어진 10분을 모두 활용합니다.
◆ 김우성 : 천재인데도요?
◇ 최민석 : 네, 정말 10분을 활용하는 거죠. 그러니까 일찍 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간을 끌어서 반드시 한 수를 둘 때마다 10분을 꽉 채웁니다. 이렇게 19수를 두는 데 총 190분을 써먹죠.
◆ 김우성 : 앞에서 히틀러 얘기를 해서 그런가요? 뭔가 좀 전략적이고 집요하다라는 느낌도 들긴 하는데... 자, 우리의 뭐랄까요, 은둔 고수 천재 B 박사는요?
◇ 최민석 : B 박사는 그래서 조급해진 겁니다. 그래서 자기 차례가 되자마자 한 수를 두고 첸토비치가 수를 둘 때까지 기다리다가 피가 말라갑니다.
◆ 김우성 : 리듬이 안 맞아요.
◇ 최민석 : 네, 왜 피가 말라가냐. 이게 바로 첸토비치의 플레이 방식이 예전 독일의 비밀 경찰, 게슈타포가 했던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그렇군요.
◇ 최민석 : 게슈타포들은 천천히, 그러나 조직적인 파괴를 통해서 유럽인들을 잠식했거든요. B 박사는 자신이 예전에 그 호텔 감옥에 감금됐던 때가 떠올라서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 김우성 : 이거 진짜 고문의 방식 같기도 해요. 10분을 가득 채워서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고 기다림이라는 시간에 가둬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작품이 어디로 향할지 여러분들도 막 책 안 읽고 계신 분들도 워낙 설명을 우리 최민석 작가가 잘해주니까 막 손에 땀이 나겠죠. 어떻게 끝나갑니까?
◇ 최민석 : 그래서 결국 B 박사는 스스로 패착이 되는 수를 두고 이 대결에서 허무하게 지고 말죠. 결국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게임에 져버린 것입니다.
◆ 김우성 : 마음속으로 '히틀러인 것 같은데 이겼으면 좋겠어' 하시는 분들은 안타까울 것 같아요.
◇ 최민석 :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 김우성 : 와, 그런데 여운이 깊습니다. 이게 체스 이야기인지 시대와 사람의 내면의 이야기인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독자들이 좀 '시대의 거울과 같은 작품이다' 이런 느낌도 들어요.
◇ 최민석 :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이게 히틀러와 나치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정을 체스라는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풀어낸 수작인 거죠. 그리고 이 작품이 사람 심리를 굉장히 잘 묘사했거든요. 그래서 훌륭한 작품이고, 실제로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심취해서 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소설에 많이 접목해서 인물의 심리를 그려냈다고 해요.
◆ 김우성 :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줄거리 위주로 뭐 소개를 했는데 줄거리 외에도 인물 심리 묘사가 워낙 잘 돼 있기 때문에 줄거리를 알고 읽으시더라도 재미있을 겁니다. 당대 베스트셀러였습니다. 120만 부가 넘게 팔렸다라는 말도 있고요. 또 프로이트와 대학 동문, 빈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다 이런 정보도 있었는데요. 앞서 "복기 다 외웠으니까 1번 나와 2번 내가 대결해" 이런 것도 약간 프로이트 같은 느낌이 잘 듭니다. 근데 엔딩은 좀 아쉬워요. 사람들이 이야기에 거는 기대가 있잖아요. 막 좀 '우리가 이겨줬으면, 내가 원하는 결말로 갔으면...' 그렇게 안 갔네요.
◇ 최민석 : 그러니까 저도 처음에는 '야, 이 소설이 너무 갑자기 끝나는 게 아닌가' 너무 허무하게 져버리잖아요. 그래서 좀 당황을 했어요. 그런데 좋은 작품들은 자꾸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독서가 끝나도 나에게 계속 이 작품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잖아요.
◆ 김우성 : 맞아요.
◇ 최민석 : 그래서 좀 생각을 해 보니까 슈테판 츠바이크가 할 말을 그냥 다 한 거더라고요. 표면적으로 보이는 긴장감 넘치는 체스 대결뿐만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나치와 평범한 유럽인의 관계까지 전부 다 심어 놓았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을 주지만 곱씹어 보면 이미 작가는 작품 속 이야기를 통해서 할 말을 다 한 거예요. 그래서 더 쓰는 게 사족을 붙이는 거라고 생각을 해서 깔끔하게 끝낸 것 같습니다.
◆ 김우성 : 이거는 우리 최민석 셰르파만의 어떤 내공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평범하게 이야기 쓰는 사람은 욕심껏 다 써버리고...
◇ 최민석 : 그래서 제가 아까 나와 매코너와 여러 사람들이 연합군을 이루어서 체스를 뒀다고 했잖아요.
◆ 김우성 : 근데 연합군이...
◇ 최민석 : 연합군인 거죠.
◆ 김우성 : 매코너는 막 승부욕이 강하게 약간 미국 같기도 하고 영국 같기도 하고.
◇ 최민석 : 아무튼 그거는 각자 해석을 하시면 되고, 그러니까 첸토비치가 히틀러로 상정되는 거고...
◆ 김우성 : 정말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게 2차 대전 당시의 사회, 연합군과 히틀러를 놓고 보는 것 같지만 그걸 또 한 개인의 심리로 해석해 낸다면 시대를 읽는 다른 느낌이 들죠. 굉장히 감동적인 책입니다. 이게 1941년에 썼고요, 그 이듬해에 세상을 등졌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전쟁의 끝을 못 보고 우리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전쟁의 시대잖아요. 누구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까라고 여쭤보고 싶은데... 저는 트럼프가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하고 싶어요.
◇ 최민석 : 그것도 좋겠고요. 이 방송을 들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이야기도 훌륭하고 주제도 훌륭하고 문체도 훌륭한, 진짜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단편이에요.
◆ 김우성 : 맞아요.
◇ 최민석 : 그래서 이 작품은 뭐 특정한 누구를 생각해서 추천한다기보다는 그냥 모두가 두루두루 읽기에 좋은 작품입니다. 어렵지도 않고요.
◆ 김우성 : 네, 체스라는 틀 안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요. '포커페이스' 이런 표현도 아시죠? 포커 이런 게임 속에서 심리가 아주 치밀하게 묘사되는데 꼭 한번 찾아 읽어보시고, 지금은 우리 최민석 작가님이 단편 위주로 가볍게 올라가라고 하는데, 언젠가 저희를 또 히말라야로 이끌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금요일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되었겠습니다. 오늘도 독서 셰르파 최민석 작가님과 함께 《체스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민석 : 감사합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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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시 : 2026년 04월 17일 (금)
□ 진행 : AI 챗봇 “에어”
□ 보조진행 : 김우성 PD
□ 녹음 : 최민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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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성 : 네, 오프닝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슈테판 츠바이크 이름 자체가 굉장히 독일어스럽죠.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이분의 《체스 이야기》 소개하겠다 얘기했는데요. "체스는 미친 사람을 제정신으로 만들기도 한다."라는 영국 체스 선수 윌리엄 하트슨의 말도 있더라고요. 체스의 오묘함을 설명하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이걸 주제로 다룬 소설입니다. 어려울 것 같지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고요, 아주 유명한 작품입니다. 오늘도 그 어려운 책 혹은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 쉽게 올라가게 도와주는 분, 바로 YTN 라디오 '온에어'의 독서 셰르파 최민석 작가님과 함께 잘 올라보겠습니다. 작가님, 나마스떼.
◇ 최민석 : 안녕하세요, 최민석입니다.
◆ 김우성 : 여러분, 네팔어 강좌 프로그램 아닙니다. 제가 이름을, 저도 그래도 한때 독문학을 좀 공부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역시 훌륭하시네요. 독일어 자랑했습니다. 이분의 단편 소설 《체스 이야기》인데 유명한데 모르시는 분도 많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일단 작가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1881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요. 처음에는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스무 살 때쯤에 첫 시집인 《은빛 현》을 출간했고요. 이후에는 정말 가리지 않고 다 씁니다. 희곡, 소설 뭐 이런 걸 쓰면서 작가로서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하죠.
◆ 김우성 : 예, 여러 장르라고 해야 될까요? 넘나들면서 글쓰기를 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이분의 이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좀 독특한 이력을 꼭 알고 넘어가야 된답니다. 뭐죠?
◇ 최민석 : 그건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전기 작가로도 굉장히 유명하다는 겁니다.
◆ 김우성 : 전기 작가? 흔히 뭐 우리가 위인전 이런 거 말할 때 한 사람의 생애를... 특이하네요. 소설가들이 전기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경우는 잘 없었던 것 같아요.
◇ 최민석 : 흔치 않죠.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썼고요, 조제프 푸셰 같은 이런 인물들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 김우성 : 유명했네요, 전기 작가.
◇ 최민석 : 네, 그렇게 명성을 떨쳤고요.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들과의 만남을 다룬 회고록 《어제의 세계》라는 작품도 썼습니다. 제가 이걸 말씀드린 이유는 이따가 '아, 슈테판 츠바이크가 전기 작가였다'는 사실이 오늘의 작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네, 전기 작가. 여러분, 다른 사람, 위대한 사람, 남의 인생을 잘 풀어낼 수 있어야 되는데 오늘 그거를 염두에 두고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역시 셰르파답게 잘 디딤돌을 놓아주시네요. 필수 정보를 역시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분에 대해서 좀 더 알려주시죠.
◇ 최민석 : 그리고 중요한 거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유대인이었어요.
◆ 김우성 : 유대인? 예.
◇ 최민석 : 네,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버지가 유대인일 뿐 자기 스스로 살면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지각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하죠.
◆ 김우성 : 이분이 태어난 연도와 돌아가신 연도를 보니까 나치의 영향을 안 받았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최민석 : 맞습니다. 나치가 집권을 하면서부터 작가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고 여러모로 압박을 받게 되죠. 그래서 나중에는 런던에 가서 영국 시민권자가 되고요, 말년에는 아예 유럽을 떠나서 브라질로 망명을 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작품 《체스 이야기》를 완성하죠.
◆ 김우성 : 예, 유대인. 지금은 이스라엘로 대표되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더 시의성 있게 와닿는 느낌도 듭니다. 이런 작품을 읽기 전에 작가의 개인사를 우리 최민석 셰르파, 최민석 소설가가 잘 설명해 주시는데 역시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보면 될까요?
◇ 최민석 : 네, 작품에 영향을 끼쳤고요. 그거는 제가 줄거리 소개할 때 한번 들으면서 확인을 해 보시면 될 것 같고요. 아무튼 작가는 자신의 정신적인 고향인 유럽이 나치 때문에 붕괴되는 걸 보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아요. 그리고 《체스 이야기》가 진짜 말년 작품이거든요. 마지막 《체스 이야기》를 쓴 다음 해에 부인과 함께 세상을 스스로 떠납니다.
◆ 김우성 : 세상을 등졌군요. 네, 자살을 했습니다. 뭐 유명한 예술가, 작가들의 이야기 결말처럼 다가오긴 하는데 어떻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렇게 떠났는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줄거리부터 한번 알아보죠.
◇ 최민석 : 이 소설은 1인칭 화자가 서술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당연히 '나'죠. 나는 지금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그 뜻이 '공기 좋은 도시'잖아요.
◆ 김우성 : 그러니까요. '부에노(Bueno)'가 좋은 이고 '아이레(Aire)'가 공기인데요.
◇ 최민석 : 네, 복수라서 's'가 들어간 겁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그러면 공기 좋은 도시인데, 이 공기는 단순히 그 공기 입자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도 '아이레'에 포함이 돼요. 그래서 분위기 좋은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여객선에 타 있죠. 그리고 나는 이 여객선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 김우성 : 아주 유명한 인물이라고 하니까 드디어 작품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누구입니까?
◇ 최민석 : 바로 '체스 이야기'잖아요, 작품 제목이. 그래서 여기서 세계 체스 챔피언인 첸토비치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이 첸토비치는 1년 전에 혜성처럼 등장을 해서 체스 거장들을 연달아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이 된 인물입니다.
◆ 김우성 : 1년 만에 챔피언이 된다? 마치 뭐 한국 바둑계의 신성들을 보는 느낌도 듭니다. 되게 대단하네요.
◇ 최민석 : 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거는 그의 이런 재빠른 성공의 속도가 아닙니다. 내가 진짜 놀란 거는 이 첸토비치가 체스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겁니다. 진짜 체스밖에 모르는 바보.
◆ 김우성 : 뭔가 우리 한국의 바둑 천재들이 떠오릅니다. 왠지 바둑 말고는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느낌도 들잖아요. 와, 대단하네요. 체스는 머리를 많이 써야 되고, 앞서 괴테의 말도 있습니다. "지식의 시금석이다." 이렇게까지 표현할 정도인데 어떻게 한 가지만 막 바라보는 경주마 같은 느낌의 사람이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요?
◇ 최민석 : 그렇죠. 이게 진짜 아이러니한 거죠. 정말 체스 천재인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일단 첸토비치 이름에서 느낌이 오죠? 네, 유럽의 아주 작은 국가, 동유럽의 어느 나라겠죠.
◆ 김우성 : 그런 것 같아요, 이름이.
◇ 최민석 : 소설에서는 나라 이름을 안 밝힙니다. 동유럽의 어떤 작은 국가에서 가난한 뱃사공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리고 열두 살 때 사고로 아버지를 잃습니다. 이런 첸토비치를 거둬들인 사람은 어느 신부였습니다.
◆ 김우성 : 네, 가톨릭 신부님.
◇ 최민석 : 네, 그래서 신부는 첸토비치한테 공부를 가르쳤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첸토비치는 공부에 전혀 소질을 보이지 않아요.
◆ 김우성 : 아까 미리 말해 주셨어요. 한 가지만 잘한다고. 체스를 잘하게 된 건 뭡니까? 공부를 잘해야 체스 잘할 것 같은데.
◇ 최민석 : 이 신부가 종종 사람들이 오면 체스를 뒀어요. 그거를 첸토비치가 구경하다가 어느 날 첸토비치가 "내가 한번 해보겠다." 그런데 체스를 뒀는데 너무 잘 두는 거예요.
◆ 김우성 : 천재였네요.
◇ 최민석 : 그러니까 알고 보니까 첸토비치는 이 사람의 능력이 곳곳에 이렇게 다방면에 걸쳐져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능력을 체스에만 쏟아부을 수 있는...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하죠? 세상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무능력하지만, 그 모든 능력이 체스에 집중된 진짜 체스에만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던 거죠.
◆ 김우성 : 보통 천재라고 부르면 다 잘하지 않더라고요. 이런 성향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체스 천재네요.
◇ 최민석 : 그래서 이렇게 체스에 재능이 있다는 게 밝혀졌고 이때부터 그는 체스를 뒀고 결국은 체스계에 등장한 지 1년이 채 안 돼서 세계 챔피언이 된 겁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기묘한 체스 챔피언에 대해서 좀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캐릭터가 너무 독특하니까. 그래서 이 주위를 좀 배회했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이 첸토비치한테 다가갈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 김우성 : 자, 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 여객선 안인 것 같습니다. 우리 주인공 '나'는 체스 천재 첸토비치를 만나고 싶은데 기회가 안 생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기회를 만들어야 되나?
◇ 최민석 : 그렇죠. 판을 깔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 여객선 위에서 체스판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매코너라는 인물을 만나죠.
◆ 김우성 : 또 다른 인물 한 명이 등장합니다. 매코너.
◇ 최민석 : 이 매코너는 다혈질의 인간인데요. 나한테 체스 몇 게임을 지더니만 승리의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때 매코너한테 슬쩍 흘렸죠. "이 배에 세계 챔피언 첸토비치가 타 있다고요."
◆ 김우성 : 매코너를 이용했네요.
◇ 최민석 : 네, 나는 매코너의 승부욕을 알아챘기 때문에 그가 쉽게 흥분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김우성 : 매코너가 움직입니까?
◇ 최민석 : 네, 그는 거금을 들여서 체스 챔피언인 첸토비치와의 경기를 주선했습니다. 역시 돈이 걸리니까 첸토비치도 엮이는 거죠. 그래서 나, 매코너 그리고 몇 명의 승객들이 '연합군'이 되어서...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연합군이 되어서 첸토비치 한 사람을 상대하는 시합을 벌이게 된 거죠.
◆ 김우성 : 챔피언 한번 꺾어보자! 여러분들은 어디에 거시겠습니까? 물론 YTN 라디오에서 돈을 거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뭐 하다못해 바둑을 두더라도요, 뭐가 걸려 있어야 정말 열심히 하게 됩니다. 시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시합이?
◇ 최민석 : 허무하게도 첸토비치가 너무 쉽게 우리를 이겨버렸습니다.
◆ 김우성 : 천재인데...
◇ 최민석 : 네, 심지어 경기 내내 심드렁하기까지 했어요.
◆ 김우성 : "왼쪽 뇌로만 승부하겠습니다." 이런 건가요? 정말 대단하네. 세계 챔피언이니까 당연한 것 같긴 해요.
◇ 최민석 : 네, 그래서 매코너가 승부욕이 굉장히 강하잖아요. 화가 나서 "한 판 더 하자"면서 두 번째 경기를 요청했죠. 어떻게든 이겨보고 싶었지만 두 번째 시합도 질 게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 김우성 : 이거 뭐 축구 경기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막 토너먼트처럼. 새로운 고수여야겠네요, 그러면?
◇ 최민석 : 네, 그렇습니다. 첸토비치와의 시합을 좀 설명하자면, 이 시합은 기본적으로 첸토비치가 한 수를 두면, 첸토비치는 옆방의 휴게실에 가서 담배를 피워요. 그럼 우리는 그동안 갑론을박을 펼치면서 대응할 한 수를 둡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충분하니까. 그런데 그게 잘될 리 없었죠. 이 광경을 지나가던 행인이 보더니만 "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훈수를 한번 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훈수 둔 대로 두니까 맙소사, 우리가 거의 다 졌던 게임을 첸토비치와 무승부로 끝내게 된 겁니다.
◆ 김우성 : 체스 천재 챔피언을 비길 수 있는 훈수를 둔 분. 이분도 진짜 은둔 고수 같습니다. 엄청난 고수예요.
◇ 최민석 : 심지어 거의 다 진 판이었는데... 그래서 이 매코너가 승부욕이 되게 강하잖아요. 심지어 이거 자기가 둔 것도 아니면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훈수를 둔 그 사람한테 당신이 첸토비치와 직접 한 판을 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하죠. 대국료는 자기가 직접 댈 테니.
◆ 김우성 : 엄청난 승부에, 흔히 말해서 꽂혀 있는 분이시네요.
◇ 최민석 : 물주로 자기가 서포트를 하죠.
◆ 김우성 : 그러니까요. 이분은 지금 이 판에 아예 몰입돼 있습니다. 은둔 고수, 지나가던 훈수, 그분은 뭐라고 합니까?
◇ 최민석 : 그러니까 그 행인이 깜짝 놀라면서 거절을 해요. 그런데 내가 찾아가서 다시 한번 설득을 하자 조심스럽게 "딱 한 판만 하겠다"고 승낙을 합니다. 이것도 고수 같습니다. 자, 시합은 며칠 뒤. 나는 너무 궁금해서 묻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체스를 잘 두게 됐는지, 그 사연을 묻죠.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반응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 김우성 : 아니, 이렇게 챔피언이랑 비길 만큼 잘 두시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신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뭔가요?
◇ 최민석 : 이 사람은 자기가 체스를 잘 둔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게다가 이렇게 체스를 두는 거는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합니다.
◆ 김우성 : 챔피언을 꺾었는데, "와, 왜 이렇게 잘하세요?" 하니까 "제가 잘하는 거예요? 저 이렇게 두는 거 처음이에요." 지금 이런 반응이잖아요. 이 사람도 천재네요, 그러면?
◇ 최민석 : 자, 이 남자는 자신이 어떻게 체스를 두게 됐는지 나한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김우성 : 야, 이건 체스보다 재밌습니다. 들어갑니다. 이 남자 은둔 고수, "내가 체스를 잘 둬요?"라고 말하는 천재. 어떻게 해서 잘 두게 된 겁니까?
◇ 최민석 : 낯선 이 남자의 정체는 B 박사입니다. 박사. 소설에는 그냥 알파벳 'B'라고 써 있어요. 이 B 박사는 오스트리아의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인데요, 원래는 아버지와 함께 황제 가족의 자금을 관리하는 법률사무소를 운영했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어딘가로 끌려갔죠.
◆ 김우성 : 유서 깊은 가문인데 끌려갔다... 뭔가 이 슈테판 츠바이크 같은 느낌도 드는데 어디로 끌려갔습니까?
◇ 최민석 : 그 시내의 한 호텔 방에 끌려갔습니다.
◆ 김우성 : 호텔 방이요?
◇ 최민석 : 네, 그런데 거기에는 가구도 없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읽을거리도 없고,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방이죠.
◆ 김우성 : 감옥이네요, 거의.
◇ 최민석 : 그렇죠. B 박사는 이 완전한 무(無)의 공간에 철저하게 고립이 된 거죠. 그리고 B 박사는 여기서 자신이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김우성 : 파괴됩니다... 여러분, 이거 잠깐 끼어드는 제 애드리브인데요. 저는 소리를 다루는 라디오 PD잖아요. 영국인가 어디서 소리가 없는 방에 한 사람을 가두는 실험을 했는데 정말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아무것도 없는 무의 방에 가둬놓고 방치를 했으니 이 사람은 너무 괴로웠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네, 그렇게 그 방에는 음식만 제공이 됐던 거죠, 죽으면 안 되니까. 그러다가 한 넉 달쯤 지나니까 나치가 "너 신문해야 되니까 나와라" 그런 겁니다.
◆ 김우성 : 신박한 고문이네요. 4개월 만에 나왔습니다.
◇ 최민석 : 그래서 4개월 만에 나와서 한 사무실에 앉아서 대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 벽에 외투가 딱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 외투... 당연히 거의 새로운 걸 처음 보잖아요.
◆ 김우성 : "외투야, 반갑다!"
◇ 최민석 : 외투도 반가운 거죠. 그래서 외투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는데 그 외투 주머니에 뭔가 불룩한 게 보이는 거예요.
◆ 김우성 : 여기서 심리학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술!' 이럴 것 같은데, 뭘까요?
◇ 최민석 : 바로 우리 청취자들이 사랑하는 '책'입니다.
◆ 김우성 : 최민석 작가님의 코너를 사랑하는 분들은 책, 저는 술.
◇ 최민석 : B 박사는 '아, 저 책만 있으면...' 네, 오직 그 무(無)만 존재하는 독방... 이게 소설의 표현입니다. '무만 존재하는 그 독방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겁니다. 먹는 '무' 말고요. 그래서 숨죽이고 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그 책을 훔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서 신문을 마친 다음에 내 독방에 돌아와서 그 책을 확인해 보죠.
◆ 김우성 : 이 무의 공간에서 책 하나. 여러분, 화장실에서 아무것도 없을 때 막막함 아시죠? 손에 폰이라도 쥐어져 있어야 되는데... 확인해 보니 뭡니까, 그 책은?
◇ 최민석 : 그동안 세계의 각종 체스 대회에서 벌어졌던 주요 시합의 체스 대결 과정을 복기해 놓은 책이었던 거예요. 무려 150편의 시합이 담긴 교습서였습니다. 그래서 B 박사는 이 독방에서 고독과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서 이 교습서에 실린 150편의 시합 과정을 모조리 외워버리죠.
◆ 김우성 : 뭔가 재밌는 소설이나 설레는 이야기면 좋았을 텐데, 체스 시합 복기 교습서... 근데 어쨌든 다 외워버렸다고 하는데, 이게 흔히 말하는 기보 같은 거잖아요, 바둑으로 치면. 근데 바둑돌도 없고 판도 없는데 어떻게 외워요?
◇ 최민석 : 그래서 일단은 아까 B 박사가 첸토비치랑 시합을 둔 후에 "자기가 제대로 체스를 둔 건 처음이라"고...
◆ 김우성 : 맞아요, 그렇게 말했죠.
◇ 최민석 : 그러니까 자기는 그 체스판과 말이 없었으니까... 그러면 B 박사는 어떻게 했느냐? 이 모든 것을 그냥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거죠, 이미지로. 마침 그 B 박사의 방에 있는 이불이 그 방에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는데, 이게 체크무늬였어요.
◆ 김우성 : 때마침 누워 있는데, 바둑 기보를 갖고 있는데, 이불이 바둑판무늬!
◇ 최민석 : 체크무늬 이불을 체스판 삼아서, 그 위에 말은 없잖아요? 말은 그냥 상상하면서 그 이불 판 위에 하나하나 올려놓으면서 복기를 했던 거죠.
◆ 김우성 : 정말 B 박사 대단합니다. 이게 넷플릭스의 체스를 주제로 한 여성 주인공 드라마 있잖아요, 《퀸스 갬빗》. 그분도 이렇게 천장에다가 막 체스를 두고... 저도 고등학교 시절에 자꾸 천장에 당구대 공을 쳐서.
◇ 최민석 : 그렇죠. 당구 처음 치면 원래 눈 감으면 눈앞에 공이 아른아른 거리죠.
◆ 김우성 : 그러니까요. 이게 누우면 천장에서 이렇게 당구대가...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거랑 똑같은 거예요. 잠깐 빗나갔는데 이해하기 쉽도록 예로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불밖에 없는데 때마침 체크무늬 이불이고요. 체스판도 말도 없는데 150개가 넘는 체스 교본에 있는 내용들을 다 외운 겁니다. 그러면 굉장히 집중하기 어려운 일일 텐데요.
◇ 최민석 : 집중하기 어렵죠. 근데 이건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고독과 처절하게 싸웠다는 거죠. 그러니까 고독을 견디느니 차라리 체스 말을 상상하면서 체스를 두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근데 또 새로운 문제에 부딪힙니다.
◆ 김우성 : 이 무(無)의 고독, 이 힘든 방에서 적어도 하나를 찾았는데 또 문제에 부딪혔다... 뭔가요?
◇ 최민석 : 이렇게 150편의 체스 대결을 모두 외우고 나니까 할 일이 또 없어진 거죠. 어떡합니까? 그래서 B 박사는 새로운 활로를 찾죠.
◆ 김우성 : 여러분, 다 외웠거든요. 눈으로 그냥 머릿속으로 체스를 다 뒀습니다. 다 외웠습니다. 근데 할 게 더 없어요. 어떻게 찾습니까?
◇ 최민석 : 자기 스스로 체스 대결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자아를 두 개로 분열을 시켜요. 그래서 '1번 나'와 '2번 나', 그러니까 1번 자아와 2번 자아가 각각 서로 맞붙어서 체스 시합을 두게 하는 거죠. 근데 이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잖아요. 굉장히 자아 분열적인 시합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자아 분열적인 게임을 한 탓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B 박사의 몸은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 김우성 : 히틀러의 수하들이 신문하려고 불러냈는데... "잠깐 기다려 봐, 1번 아니야, 2번 기다려!" 제가 연기를 한번 해 봤습니다. 실제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근데 정신병원에 있었잖아요. 그러면 회복이 돼야 밖에 나와서 여행도 하고 할 텐데요.
◇ 최민석 : 네, 치료를 받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배에서 우연히 체스 시합에 끼어들게 된 거죠. 그리고 다시 B 박사는 세계 챔피언인 첸토비치와 시합을 하기 위해서 첸토비치 앞에 앉아 있습니다.
◆ 김우성 : 재밌습니다. 이게 드라마 보시다가도 주인공의 과거사로 슉 액자식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런 구성이어서 아주 재미있게 잘 썼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 최민석 : 이렇게 소설은 B 박사의 사정을 들려줬죠. 그러니까 액자식 구성이니까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 내부 이야기를 마친 거죠.
◆ 김우성 : 사연은 다 소개했습니다.
◇ 최민석 : 그리고 원래의 이야기인 큰 이야기, 뭐 '틀 이야기'라고 해요, '프레임 스토리'. 이쪽으로 다시 돌아온 거죠. 즉, 체스 대결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자, 그런데 중요한 거는 이때부터 소설의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 김우성 : 분위기가 달라진다... 자, B 박사의 과거를 독자들은 알게 됐습니다. 갇혀 있었던 과정, 여러 가지 천재적인 수준으로 외웠던 것들 다 알게 됐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사연들을 다 알게 되니까 시선도 좀 다각화되고 관계도 좀 복잡하게 보일 것 같아요.
◇ 최민석 :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아까 작가 소개를 할 때 슈테판 츠바이크가 전기 작가였다고 얘기했잖아요.
◆ 김우성 : 사람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이에요.
◇ 최민석 : 네, 그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 김우성 : 그런 게 이 작품 속에, 즉 이 단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건가요?
◇ 최민석 : 그렇습니다. 네, 소설에서 그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묘사하는 이 첸토비치의 행동과 그 외양은 자신이 예전에 집필한, 아까 제가 프로필 얘기할 때 얘기했던 그 《어제의 세계》라는 작품에 등장한 실제 인물과 너무 겹칩니다.
◆ 김우성 : 실제 유명한 인물이요?
◇ 최민석 : 예, 첸토비치는 이 책에 등장한 인물과 성격, 행동 특징이 거의 유사하게 묘사가 됩니다.
◆ 김우성 : 유명해야 독자들이 알아먹기 쉬울 텐데... 누굽니까?
◇ 최민석 : 그 인물은 바로 히틀러입니다.
◆ 김우성 : 히틀러!
◇ 최민석 : 네, 아까 슈테판 츠바이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소개했던 거죠. 그래서 《어제의 세계》도 소개했던 거고요. 아무튼 좋아요.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보죠. 첸토비치는 B 박사와 시합을 하면서 한 수를 둘 때마다 시간이 10분이거든요. 주어진 10분을 모두 활용합니다.
◆ 김우성 : 천재인데도요?
◇ 최민석 : 네, 정말 10분을 활용하는 거죠. 그러니까 일찍 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간을 끌어서 반드시 한 수를 둘 때마다 10분을 꽉 채웁니다. 이렇게 19수를 두는 데 총 190분을 써먹죠.
◆ 김우성 : 앞에서 히틀러 얘기를 해서 그런가요? 뭔가 좀 전략적이고 집요하다라는 느낌도 들긴 하는데... 자, 우리의 뭐랄까요, 은둔 고수 천재 B 박사는요?
◇ 최민석 : B 박사는 그래서 조급해진 겁니다. 그래서 자기 차례가 되자마자 한 수를 두고 첸토비치가 수를 둘 때까지 기다리다가 피가 말라갑니다.
◆ 김우성 : 리듬이 안 맞아요.
◇ 최민석 : 네, 왜 피가 말라가냐. 이게 바로 첸토비치의 플레이 방식이 예전 독일의 비밀 경찰, 게슈타포가 했던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그렇군요.
◇ 최민석 : 게슈타포들은 천천히, 그러나 조직적인 파괴를 통해서 유럽인들을 잠식했거든요. B 박사는 자신이 예전에 그 호텔 감옥에 감금됐던 때가 떠올라서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 김우성 : 이거 진짜 고문의 방식 같기도 해요. 10분을 가득 채워서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고 기다림이라는 시간에 가둬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작품이 어디로 향할지 여러분들도 막 책 안 읽고 계신 분들도 워낙 설명을 우리 최민석 작가가 잘해주니까 막 손에 땀이 나겠죠. 어떻게 끝나갑니까?
◇ 최민석 : 그래서 결국 B 박사는 스스로 패착이 되는 수를 두고 이 대결에서 허무하게 지고 말죠. 결국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게임에 져버린 것입니다.
◆ 김우성 : 마음속으로 '히틀러인 것 같은데 이겼으면 좋겠어' 하시는 분들은 안타까울 것 같아요.
◇ 최민석 :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 김우성 : 와, 그런데 여운이 깊습니다. 이게 체스 이야기인지 시대와 사람의 내면의 이야기인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독자들이 좀 '시대의 거울과 같은 작품이다' 이런 느낌도 들어요.
◇ 최민석 :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이게 히틀러와 나치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정을 체스라는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풀어낸 수작인 거죠. 그리고 이 작품이 사람 심리를 굉장히 잘 묘사했거든요. 그래서 훌륭한 작품이고, 실제로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심취해서 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소설에 많이 접목해서 인물의 심리를 그려냈다고 해요.
◆ 김우성 :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줄거리 위주로 뭐 소개를 했는데 줄거리 외에도 인물 심리 묘사가 워낙 잘 돼 있기 때문에 줄거리를 알고 읽으시더라도 재미있을 겁니다. 당대 베스트셀러였습니다. 120만 부가 넘게 팔렸다라는 말도 있고요. 또 프로이트와 대학 동문, 빈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다 이런 정보도 있었는데요. 앞서 "복기 다 외웠으니까 1번 나와 2번 내가 대결해" 이런 것도 약간 프로이트 같은 느낌이 잘 듭니다. 근데 엔딩은 좀 아쉬워요. 사람들이 이야기에 거는 기대가 있잖아요. 막 좀 '우리가 이겨줬으면, 내가 원하는 결말로 갔으면...' 그렇게 안 갔네요.
◇ 최민석 : 그러니까 저도 처음에는 '야, 이 소설이 너무 갑자기 끝나는 게 아닌가' 너무 허무하게 져버리잖아요. 그래서 좀 당황을 했어요. 그런데 좋은 작품들은 자꾸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독서가 끝나도 나에게 계속 이 작품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잖아요.
◆ 김우성 : 맞아요.
◇ 최민석 : 그래서 좀 생각을 해 보니까 슈테판 츠바이크가 할 말을 그냥 다 한 거더라고요. 표면적으로 보이는 긴장감 넘치는 체스 대결뿐만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나치와 평범한 유럽인의 관계까지 전부 다 심어 놓았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을 주지만 곱씹어 보면 이미 작가는 작품 속 이야기를 통해서 할 말을 다 한 거예요. 그래서 더 쓰는 게 사족을 붙이는 거라고 생각을 해서 깔끔하게 끝낸 것 같습니다.
◆ 김우성 : 이거는 우리 최민석 셰르파만의 어떤 내공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평범하게 이야기 쓰는 사람은 욕심껏 다 써버리고...
◇ 최민석 : 그래서 제가 아까 나와 매코너와 여러 사람들이 연합군을 이루어서 체스를 뒀다고 했잖아요.
◆ 김우성 : 근데 연합군이...
◇ 최민석 : 연합군인 거죠.
◆ 김우성 : 매코너는 막 승부욕이 강하게 약간 미국 같기도 하고 영국 같기도 하고.
◇ 최민석 : 아무튼 그거는 각자 해석을 하시면 되고, 그러니까 첸토비치가 히틀러로 상정되는 거고...
◆ 김우성 : 정말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게 2차 대전 당시의 사회, 연합군과 히틀러를 놓고 보는 것 같지만 그걸 또 한 개인의 심리로 해석해 낸다면 시대를 읽는 다른 느낌이 들죠. 굉장히 감동적인 책입니다. 이게 1941년에 썼고요, 그 이듬해에 세상을 등졌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전쟁의 끝을 못 보고 우리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전쟁의 시대잖아요. 누구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까라고 여쭤보고 싶은데... 저는 트럼프가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하고 싶어요.
◇ 최민석 : 그것도 좋겠고요. 이 방송을 들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이야기도 훌륭하고 주제도 훌륭하고 문체도 훌륭한, 진짜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단편이에요.
◆ 김우성 : 맞아요.
◇ 최민석 : 그래서 이 작품은 뭐 특정한 누구를 생각해서 추천한다기보다는 그냥 모두가 두루두루 읽기에 좋은 작품입니다. 어렵지도 않고요.
◆ 김우성 : 네, 체스라는 틀 안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요. '포커페이스' 이런 표현도 아시죠? 포커 이런 게임 속에서 심리가 아주 치밀하게 묘사되는데 꼭 한번 찾아 읽어보시고, 지금은 우리 최민석 작가님이 단편 위주로 가볍게 올라가라고 하는데, 언젠가 저희를 또 히말라야로 이끌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금요일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되었겠습니다. 오늘도 독서 셰르파 최민석 작가님과 함께 《체스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민석 : 감사합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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