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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새아침] 절필 이후 8년 만에 시집낸 안도현 "절필 시기, 말하지 않는 것으로 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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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새아침] 절필 이후 8년 만에 시집낸 안도현 "절필 시기, 말하지 않는 것으로 대항"

2020년 09월 29일 09시 07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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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새아침] 절필 이후 8년 만에 시집낸 안도현 "절필 시기, 말하지 않는 것으로 대항"
YTN라디오(FM 94.5)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20년 9월 29일 (화요일)
□ 출연자 : 안도현 시인

- 박근혜 정부 때 시 안 쓰겠다 마음 먹고 4년 절필
- '식물도감' 연작시 80여편
- 시 쓰기 휴식으로 더 유심히 세상 바라봐
- 20대에 전교조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 해직당해
-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추석 되길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앵커 황보선(이하 황보선): 간장게장으로 절여지는 꽃게가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 마지막 순간에 품고 있는 알들에게 조용히 한 마디를 남깁니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의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시의 주인공이자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안도현 시인과 연결해서 8년 전 절필한 이후로 첫 출간한 시집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안도현 시인(이하 안도현 ): 네, 안녕하세요. 안도현입니다.

◇ 황보선: 8년 만에 시집이 나왔습니다. 시집 출간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 안도현: 시집이라는 것은 원고가 쌓이면 하게 되는 건데요. 보통 시인들이 3~4년에 시집 한 권씩을 내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번에 8년이나 걸렸습니다.

◇ 황보선: 이렇게 긴 시간 걸린, 그동안.

◆ 안도현: 그 사이에 박근혜 정부 때 시를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실제로 시를 쓰지 않은 게 4년 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집 발간이 늦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 황보선: 시집 제목이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는 건데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 안도현: 특별한 의미라기보다 저는 식물들을 굉장히 좋아하고, 식물들 관찰하고, 이름 알고, 생태 알고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이번 시집에도 ‘식물도감’이라고 하는 연작시가 80여 편 들어있는데요. 식물들을 보면서 식물들이 사람보다 오히려 나을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람보다 시간도 빨리 알아차리고, 계절 감각도 사람보다 훨씬 빠른 것 같고요.

◇ 황보선: 특별히 또 능소화를 꼽으신 이유가요.

◆ 안도현: 그것도 능소화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요. 능소화라고 하는 게 여름에 피는 꽃인데 마치 꽃 모양이 악기 같은, 트럼펫이나, 이런 악기 같은 모양이잖아요. 그래서 언젠가 몇 년 전에 어떤 바닷가 펜션 2층에서 묵게 됐는데, 2층까지 줄기가 올라와서 꽃을 피운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마치 내가 악기를 창가에 둔 것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 황보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정권이 바뀌기까지 4년간 시를 안 쓰신 게 아니라 못 쓰신 것 아닙니까? 절필해오셨습니다. 안도현 시인 같은 경우는 문인들이 사랑한 문인이자, 학생들 교과서에도 나오는 연탄재로 통용되는 이런 걸출한 작품을 써온 시인이지 않습니까?

◆ 안도현: 그렇지 않습니다.

◇ 황보선: 4년간 시간, 어떤 시간들로 기억하십니까?

◆ 안도현: 우리 문학은 보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어떤 불의한 권력에 맞서서 시인들이 펜을 날카롭게 이럴 때가 있었죠. 우리가 저항시라고 기억하는. 또 70~80년대에도 많은 시인들이 펜으로 권력에 맞선 적이 있는데, 투옥도 되고요. 그런데 제가 살았던 박근혜 정부는 워낙 비정상적인 일들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행세를 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펜을 써서, 글을 써서 발언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아예 내가 말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대항한다,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 황보선: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시구 하나하나를 추려 쓰시려고 할 때 어색하다든지,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 안도현: 저는 그 당시에 몇 년간 시를 쓰지 않았지만, 시는 쓰지 않지만, 종이에 적지 않을 뿐이지 바라보는 것은 다 바라보는 거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시 쓰기의 휴식기간이었다고는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사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더 유심히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황보선: 그나저나 이렇게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신 시점 이후에 오랫동안 거의 40년간 거주하지 않으셨습니까, 전주 쪽에?

◆ 안도현: 그렇습니다. 20살 이후에 전주, 전북 쪽에 살았으니까요.

◇ 황보선: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가신 시점하고 겹칩니다.

◆ 안도현: 제가 올해 2월에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가서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요. 보통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년을 마치고, 자기 일을 다 하고 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분이 있잖아요. 저는 경상도에서 전라도 쪽으로 가서 살았는데, 제가 아직 여력이 남아 있을 때 고향 쪽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고향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면 뭐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간 거고요. 또 아파트 생활을 워낙 오래했으니까 공중에 살다가 땅에 발딛고 살고 싶다는 이런 욕심도 있었고요.

◇ 황보선: 그렇게 오랫동안 계셨던 곳을 떠나시면 그쪽에 계셨던 분들이 굉장히 아쉬워하시고, 왠지 빼어난 시인을 저쪽으로 빼앗기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 안 하십니까?

◆ 안도현: 그런 이야기도 가끔 들었는데요. 다 인사 잘하고 왔고. 또 제가 전주에서 예천으로 돌아갈 때 전주에 있는 선후배들이 나무를 하나 선물로 주셨어요. 팽나무 40년산 정도 된 건데, 전라북도에 사는 나무를 예천에 가서 심어놓고 오래 생각해라, 이런 뜻으로 준다고 했는데, 저도 매일 그 나무하고도 같이 있으니까 전주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황보선: 그 나무를 보시면서 전주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마음을 느끼신다고요. 그 이야기를 여쭤봐야겠습니다. 1989년에 전교조 가입 교사라는 이유로 해직 당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보면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가 부적합했다는 대법원의 판결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요.

◆ 안도현: 오래 걸렸죠.

◇ 황보선: 이런 상황 지켜보시는 심정 어떠셨습니까?

◆ 안도현: 저는 20대 후반에 전교조에 가입해서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해직을 겪기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전국에 1500여 분 선생님들이 그때 그랬죠. 지금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도종환 의원도 그렇고요. 많은 시인들도 그때 해직을 당했는데. 그 시간으로 본다고 하면 거의 30년이 지났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전교조가 합법적인 공간 안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또 한편으로 전교조도 이제 과거와 같은 운영방식, 투쟁 중심의 운영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을 벗어나서 정말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주체 중 하나가 선생님들이기 때문에 전교조 선생님들이 우리 교육을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 역할을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 황보선: 다른 이야기를 여쭤보기 전에요. 이번에 내신 시집에서 가장 아끼는 시 한 편 읽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안도현: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집에 제일 앞쪽에 있는 시, 짧은 시 한 편을 읽겠습니다. “그릇 / 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얻었다 /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 나는 둘레를 얻었고 / 그릇은 나를 얻었다 /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루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네, 이런 시입니다.

◇ 황보선: 잘 들었습니다. 이 시 안에 둘레, 빗금, 때, 허물, 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시 한 편으로 안도현 시인께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시는 과정에서 느끼신 것을 담으신 것으로 저는 일단 생각이 드는데요.

◆ 안도현: 그런 시죠. 우리가 사람이 살면서 어떤 빗금이라고 할 만한 상처들, 이런 것들이 누구한테나 다 있죠. 그런데 그 상처만 자꾸 생각하다 보면 그게 아마 병이 돼서 행복해지지 못할 텐데, 그 상처마저도 자기 것으로 껴안고 허물마저도 자기 것으로 껴안고 살아가야만 그래도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 황보선: 잘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드리고요. 내일부터 추석 연휴입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들 얼굴 보기 힘든 상황이기는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께 힘이 될 만한 추석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도현: 좋은 가을에 곧 추석을 맞고 있습니다만, 코로나 상황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만큼 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남을 지켜야 하는 존재고, 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는 남을 조금 더 생각하는 그런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황보선: 네, 잘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안도현: 네, 고맙습니다.

◇ 황보선: 지금까지 안도현 시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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