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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있저] '쿠바의 숨은 영웅' 헤로니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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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있저] '쿠바의 숨은 영웅' 헤로니모를 찾아서

2019년 11월 21일 20시 31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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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변상욱 앵커, 안귀령 앵커
■ 출연 : 전후석 / 영화감독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쿠바 한인들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가 오늘 개봉했습니다. 지구 반대편 낯선 쿠바 땅에서 만난 한인의 모습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요?

오늘은 제작을 맡으신 전후석 감독과 얘기를 나눠보려고 자리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본래 변호사셨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스타일이 변호사 때하고 영화감독이 되신 다음에 바뀌신 겁니까?

[전후석]
많이 바뀌었습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처음에 이 영화 제작을 어떻게 하시게 됐습니까? 계기를 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전후석]
2015년 말에 제가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던 중에 휴가로 쿠바를 가게 됐는데요. 쿠바에서 공항을 나와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한인 3세이셨던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여정이 시됐습니다.
[앵커] 원래 영화에는 관심이 많으셨던가요, 어떤가요?

[전후석]
아니요, 영화를 제가 학교 때 전공을 하기는 했었어요. 그래서 영화에 대해서 조금은 알았지만 제가 전문 영화인으로서 하거나 그럴 목적은 없었어요.

[앵커]
그러면 흔히 디아스포라라고 하죠. 자기가 태어나고 살아야만 하는 곳에서 떠나게 된, 물론 자발적일 수도 있고 강제적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전후석]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자라서 다시 미국에 고등학교 말 때 가서 한국 밖에서 한인으로 산다는 게 어떠한 뜻일까? 이와 관련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또 LA 폭동 사건 1992년을 통해서 재미교포 코리안 아메리칸 아이덴티티가 형성하는 과정도 배우고 또 대학을 졸업하고는 연변도 갔었고 브라질도 갔었고 독일도 가고 하면서 제가 해외에서 사는 여러 동포들을 만나면서 재외동포,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깨우치게 된 것 같아요.

[앵커]
사실 국내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제일 약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워낙 순혈주의가 강해서 어디가서 디아스포라가 돼서 떠돈다는 것 또는 경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감이 부족하기는 하죠. 쿠바 얘기로 넘어가야겠죠.

[앵커]
단순히 쿠바 여행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원래 디아스포라 개념에 관심이 많으셨다고는 하지만 쿠바 여행을 갔을 때 혹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시게 된 강한 계기가 있을까요?

[전후석]
강한 계기는 우연성에서 시작한 그런 드라마 자체가 있었고요. 제가 만났던 택시기사분이 그냥 여느 쿠바 한인 이민자였으면 아마 제 관심도가 떨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분의 아버지, 아버지가 쿠바 혁명에 참여를 했다는 그 스토리를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분의 할아버지는 100년 전 대한제국 시절 때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왔던 노예같이의 삶을 사셨던 임천택 선생님이라는 얘기를 듣고 제가 큰 감흥을 받아서...

[앵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최근 끝난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선샤인, 그때 이제 배에 실려서 바다를 건너 멕시코 이런 곳으로 가게 된, 하와이 멕시코로 간 분이 임천택이라고 하는 임은조 선생님의 아버님이 되시는 거고 그다음 세대가 임은조 선생님인데 이분은 쿠바 혁명에 뛰어들었던 혁명가이기도 한 거네요.

[전후석]
맞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게 임은조, 이분을 일단 알아야 스토리가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

[전후석]
이분은 말씀하신 대로 대한제국 시절 때 1000명의 조선인들이 당시 황성신문의 묵서가라는 약속의 땅이 있다, 이런 광고를 읽고.

[앵커]
묵서가면 멕시코입니다.

[전후석]
멕시코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태평양에 정말 좋은 땅이 있을 거라는 믿음 하에 이분이 떠났는데 실제 멕시코 도착해서는 이분이 노예 같은 농장에 팔려가서 에네켄 농장에서 오랫동안 고생하시고 이 중의 일부가 십 몇 년 뒤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한일합방이 됐기 때문에 조국을 잃은 거죠. 이 중의 일부가 쿠바로 넘어와서 임천택 선생님이 나으신 첫 번째 장남이 임은조 선생님, 영화의 제목이에요. 스페니시명이 헤로니모거든요. 1926년생이시고 당시 착취받고 차별받던 한인들의 해방이라고 할까요. 그걸 위해서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거기에 앞장서서 이분이 하셨고. 이분이 정확히 어떠한 일을 하셨느냐면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등이 시에나 마에스트라는 정글에서 전투복을 입고 싸울 때 이분은 도시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그 공을 인정받아서 차관까지 하시고 그러셨습니다.

[앵커]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감은 잡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아는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는 쫓겨나서 해외에서 멕시코에서 군대를 조직해서 들어오는 거고 이분은 지하에서 쿠바에서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가 만나서 함께 싸우는 거군요.

[전후석]
맞습니다.

[앵커]
그리고 조금 전 저희가 에네켄 얘기가 나와서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가서 노예처럼 일을 했다고 우리 선조분들이 이야기해 주셨는데 에네켄은 선인장이고 우리말로는 흔히 용설란이라고 하죠. 잎이 용의 혀처럼 생겨서 용설란이라고도 하는 선인장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임은조 선생은 쿠바에 혁명 정부가 세워진 다음에 계속 거기서 일을 하시고 그다음에 한인이라는 정체성하고는 어떻게 이야기가 연결됩니까?

[전후석]
그래서 이분이, 그런데 이분 아버지를 보시면 임천택 선생님이라는 분께서 당시 쿠바 한인들이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서 허드렛일, 에네켄을 배우고 그러면서 모았던 그 품삯, 조그마한 돈을 끼니를 본인들이 거르시면서 그걸 모아서 임시정부, 독립 자금으로 많이 보내셨어요. 대부분의 쿠바 한인들이 그러셨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아마 그 아버님의 가르침과 평소의 교훈이 이분 헤로니모, 아드님의 마음 한구석에 늘 남아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회주의혁명 이후로 어떤 한 민족의 문화나 민족성이 부각되는 게 사실 금지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혁명 이후로 30, 40년간 사실 한인 정체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유지할 수 있는 한글학교라든지 문화생활이 전면 금지가 됐었어요. 그래서 정체성이 없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1995년에 한국을 적색국가에서는 처음으로 방문하시는 장본인이 되세요. 그때 한국에 오셔서 만났던 분들을 제가 인터뷰를 했는데 이분이 이구동성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이곳이 그렇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고국이구나. 내가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고 정체성을 등한시한 게 너무나 원망스럽고 내가 후회가 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그래서 그게 계기가 되신 것 같아요.

[앵커]
헤로니모 씨, 임은조 씨가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했다가 이제 나중에는 한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힘을 쏟으셨는데 그게 그러면 한국 방문이 계기가 됐을까요?

[전후석]
저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정체성이란 것 자체가 자기가 살갗으로 느껴야지 이제 크게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면에 당시 시대적, 정치적, 이념적 상황에서 대한민국과 이런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는 올라가는 반면에 구 소련이 망하면서 북한에는 고난의 행군 시절이 있었듯이 쿠바에는 특별식이라는 또 특별한 힘든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분이 그런 변화 속에서 많은 고뇌를 하셨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앵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낡은 차를 끌고 쿠바의 각 지역을 돌면서 한인들을 만나서 정체성을 일깨워주고 함께 학교도 만들어야 하고 한인회도 조직을 해야 되고 바삐 뛰시는 모습이 막 나오더라고요.

[전후석]
맞습니다. 이분이 한국을 다녀오시고 나셔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정말 살신성인으로 한인회를 조직하고 후손들에게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정말로 노력을 많이 하셨습니다.

[앵커]
저는 인상 깊었던 게 그래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인구조사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전후석]
고 헤로니모 부인께서 말씀하시기는 한인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헤로니모가 있었다. 그러니까 쿠바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그동안의 혁명 이후로 흩어졌던 한인들을 일일이 다 찾아다니셔서 그들의 인적사항이랑 그런 아이디라고 그러죠. 아이디를 모아서 쿠바 정부에 내야지만 한인회가 결성이 될 수 있었기에 이런 노고를 하셨죠.

[앵커]
그러면 영화 장면을 보면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의 문화를 가르친 학교들은 곳곳에 있는 모습을 봤는데 한인회는 아직 조직이 안 된 겁니까?

[전후석]
조직이 안 됐습니다. 그거는 여러 민감한 정치적, 이념적 이런 싸움이 아직도 쿠바에서는 지속이 되는 것 같아요.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한인회가 결성되었을 경우 이게 어느 나라, 북한과 남한 중에 어느 나라에 속할 것인지. 이것에 대한 그런 이슈가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그분들이 떠날 때는 우리나라가 하나였기 때문이죠?

[전후석]
네. 인터뷰를 하면서 모든 분들께 사실 쿠바는 대한민국과 수교가 안 된 2개 나라 중 하나거든요. 북한과는 1960년대부터 수교가 있어서 사실 저희는 편견을 갖고 있었어요. 이들은 아무래도 북한과 조금 더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데 모든 분들께서 아니다, 우리 선조가 한국을 떠났을 때는 한국은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하나의 코리아의 후손이라고 저한테 말씀하셨죠.

[앵커]
그런데 지금쯤이면 K팝이며 이런 것들이 다 쿠바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전후석]
우스갯소리로 쿠바인들이 임은조 선생님께서 몇 십 년 동안 하셨던 거를 BTS가 하루 만에 했다는...

[앵커]
쿠바에도 BTS가 큰 인기인가요?

[전후석]
그럼요, 장난이 아닙니다.

[앵커]
그런데 쿠바의 한인들은 지금 규모로 봐서는 얼마나 됩니까?

[전후석]
지금 한 1000여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집계가 되므로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직접 만나보신 한인들은 어떤가요? 지금 4세 정도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인상 깊었던 장면이 4세까지 내려와서는 순혈이 한 명도 없다고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전후석]
맞습니다. 지금 현재 사실 5세, 6세까지도 있고요. 며 말씀하신 대로 4세부터는 우리가 말하는 순혈하는 한국인이 1명도 없어요. 다 혼혈이죠.

[앵커]
그런데도 그분들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계신가요?

[전후석]
물론 말씀드렸듯이 BTS나 엑소나 블랙핑크나 이런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헤로니모 선생님, 임천택 선생님 그 외에 비인가의 여러 한인 선조들이 조국 애국을 위해서 보여주셨던 그런 정신이 저는 계승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 대로 육안으로는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은 코리안이고 그 꼬리아노에 대한 정체성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한국에서 한인이라는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되는지를 사실 굉장히 자문하는 그런 계기였습니다.

[앵커]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또 외국인들이 자기네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도 우리 국민회를 조직해서 한국과 하나가 되면서도 자기네 정체성을 유지하겠습니다라고 운동을 하거나 할 때 그들을 품어서 이렇게 해 줄 수 있을까, 과연. 이런 걱정도 많이 했는데 아무튼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봐야 하는데 보실 분들에게 이런 건 꼭 한번 생각하면서 봐주십시오라고 부탁할 게 있다면 이 자리에서 좀 해 주시죠.

[전후석]
저는 헤로니모 선생님이 한국 밖에서 사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실 지금 한반도 밖에 800만 명의 재외동포가 살고 있는데 이들은 자발적으로 떠났든 아니면 다른 외압적인 이유가 있어서 떠났든 고국에 대한 늘 염원을 갖고 있고 또 이들은 한인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발견해요.

그런데 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반도에서 너희들은 정당성이 덜한 한국인이야, 너희는 우리처럼 한국인이 아니야, 이런 말을 들을 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아픔을 겪는다고 하더라고요, 쿠바인들도 포함해서. 그래서 저는 한인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좀 더 우리가 넓히고 포용하고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새롭게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새로운 인종적으로는 순혈적으로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한인이 되려고, 한국인이 되려고 오는 사람들에 대한 포용이 헤로니모라는 영화를 통해서 표현되기 바랍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관련해서 저희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5633님께서 다큐 영화는 워낭소리가 대단했는데 헤로니모도 보고 싶네요. 대박 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의견 보내주셨거든요. 대박 나시기 바랍니다.

[전후석]
감사합니다.

[앵커]
대박과 함께 큰 감동도 모두 얻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후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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