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안보이야기-9] 중국 인민해방군 쑨젠궈(孫建國)는 누구인가?

[김주환의 안보이야기-9] 중국 인민해방군 쑨젠궈(孫建國)는 누구인가?

2016.06.07. 오후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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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의 안보이야기-9] 중국 인민해방군 쑨젠궈(孫建國)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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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부터 해마다 5~6월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전문가들이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로 모여든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가 주관하는 아시아 안보회의(Asia Security Summit, 일명 Shangri-La Dialogue)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2016년 6월 4일, 이 회의에 참가한 중국측 대표인 중국 인민해방군 쑨젠궈(孫建國) 부참모장(상장, 한국의 대장급)은 “사드 배치는 지역의 안정을 잠식할 것"이라며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주한미군 배치계획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했다. 지난해에도 중국측 대표로 참석했던 그는 당시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라'는 미·일의 협공에 대해 "정당한 주권 행사"라고 맞섰다. 중요한 점은 그가 발언한 사드 혹은 남중국해 문제 모두 시진핑의 의중이라는 점이다.

왜일까? 그는 시진핑의 복심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군내에서 가장 신임하는 인물가운데 한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중국 해군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운다. 경력 때문이다.

지난 1986년 1월 1일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의 핵잠수함 창정(長征) 3호가 90일간의 잠수 항해에 성공했다"고 긴급 타전했다. 이는 미군이 보유하던 세계 최장 잠함(潛艦) 기록 84일을 깬 세계 신기록이었다. 신화통신은 "중국 해군의 현대화에 이정표를 세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중국 해군의 영웅으로 떠오른 창정 3호의 함장이 바로 쑨젠궈 부총참모장이다. 이후 쑨젠궈는 '철의 함장' '작은 패튼(2차대전 때 미군 영웅)'이란 별명을 얻었다. 허베이성 출신인 그는 1968년 입대한 이후 줄곧 잠수함 부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핵잠수함 함장, 잠수함기지 부사령관을 거쳐 1999년 해군 소장(우리의 준장)으로 진급했다. 2004년 52세의 젊은 나이에 해군참모장도 역임했다. 2009년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으로 승진해 인사·훈련 등을 맡고 있다.

중국 시진핑 정부가 2년 연속 쑨젠궈를 샹그릴라 대화에 보낸 것은 남중국해 혹은 사드 등 (중국의 입장에서)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봐야 한다. 주목할 부분은 중국이 2010년부터 각종 해양분쟁에서 매우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9월 7일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중국 어선의 충돌 사건 이후 특히 그렇다. 이 시기를 전후한 인민일보의 보도를 보면 중국의 해양 정책이 크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인민일보가 ‘핵심이익’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는 2008년에 95건이었으나 2009년에는 260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 개념이 2010년 이후부터는 ‘해양이익(maritime interest)’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었다. ‘해양이익’이 사용된 횟수는 2010년 30건, 2011년 58건, 2012년 100건으로 많이 늘어났다. 동시에 중국 당국은 국민에게 조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가 중국의 영토라고 교육하고 있다. 동·남중국해도 마찬가지다.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배타적 제해권(制海權)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북극해(北極海)와 인도양으로의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중국 전승절 기념일(9월 3일) 하루 전날 모두 5척(구축함 3척, 보급함 1척, 상륙함 1척)으로 이뤄진 중국 해군전단이 알래스카 근처 베링 해에서 작전 중인 것이 포착됐다. 중국 해군이 미국 연안에 근접해 항해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인도양으로의 투사도 마찬가지다. 중국 해군의 본격적인 인도양 진출은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한 유엔결의안 1838호가 채택된 2008년 10월부터다. 중국은 2척의 군함과 1척의 보급선을 파견했다. 이후 2011년 3월 중국 군함으로는 처음으로 프리깃함 마안산호와 수송선 첸다오후호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인 아부다비 항에, 같은 해 11월에는 쿠웨이트 슈와이크 항에 입항했다. 2013년에는 중국의 핵 추진 잠수함이 최초로 인도양으로 나가기까지 했다. 중국은 또 자국의 군함을 정박시킬 수 있는 항구를 얻기 위해 인도양 인접국들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이른바 진주 목걸이 전략의 일환이다.

현재 이러한 모든 것을 지휘하는 인물이 바로 우성리(吳勝利) 해군사령원(사령관)이다. 지난 2006년 중국 해군 수장 자리에 오른 우 사령원은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을 갈구하는 시진핑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다. 지난 1842년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중국의 ‘굴욕의 세기’는 해군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그는 2015년 8월 청일전쟁 120주년 기념식에서 “(오늘날) 더 이상 바다가 장애가 될 수 없다. 치욕스러운 역사는 끝났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우 사령원은 2017년 쯤 예상되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에서 퇴임할 것으로 보인다. 그 후임 중국 해군사령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쑨젠궈이다.

그 다음이 중국 북해함대 사령관을 지낸 톈중(田中)이다. 그는 지난 2011년 8월 4일 북·중 우호협력조약 50주년을 기념해 정허(鄭和)함 등 해군훈련함대를 이끌고 북한 원산항을 방문했던 인물이다. 또 다른 인물이 장웨이례(蔣偉烈·) 중국 남해함대 사령관이다. 이들 모두 중국군 내에서도 소장파에 속하는 50년 이후 출생자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안보 문제와 관련해 향후 어떤 자세를 보일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정치선임데스크 김주환 [kim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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