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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수많은 조선인을 살육하고 그 전리품으로 머리 대신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땅이죠, 쓰시마에 조선인의 귀 무덤이 4백년 넘게 방치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최명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기자]
쓰시마 지역의 역사서인 '카미쓰시마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쓰시마를 통치했던 종의지가 잘라온 조선인의 귀를 공양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히코텐성 남쪽 끝에 적석묘, 이른바 귀 무덤이 있다는 내용이지만 그동안 정확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쓰시마의 한국 문화재 현황을 조사하던 역사학자 김문길 전 부산외대 교수는 성곽 터 근처에서 귀 무덤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인터뷰:김문길, 역사학자]
"쓰시마는 임진왜란 때 조선출병의 전진기지였습니다. 귀를 잘라서 쓰시마에서 먼저 도착했고 쓰시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살던 교토로 보내졌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4백 년 넘게 돌무덤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무덤 앞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다나카 준야, 쓰시마시 학예사]
"마을 주민들이 지금도 무덤을 찾아 혼령을 공양하거나 위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무더기 몇 개를 쌓아놓은 것에 불과해 무덤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
현재까지 밝혀진 일본 내 조선인 귀 무덤과 코 무덤은 모두 3곳입니다.
12만 명이 묻힌 교토의 귀 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일본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지만 다른 두 곳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4백 년 넘게 이국땅을 떠돌고있는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도쿄에서 YTN 최명신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수많은 조선인을 살육하고 그 전리품으로 머리 대신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땅이죠, 쓰시마에 조선인의 귀 무덤이 4백년 넘게 방치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최명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기자]
쓰시마 지역의 역사서인 '카미쓰시마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쓰시마를 통치했던 종의지가 잘라온 조선인의 귀를 공양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히코텐성 남쪽 끝에 적석묘, 이른바 귀 무덤이 있다는 내용이지만 그동안 정확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쓰시마의 한국 문화재 현황을 조사하던 역사학자 김문길 전 부산외대 교수는 성곽 터 근처에서 귀 무덤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인터뷰:김문길, 역사학자]
"쓰시마는 임진왜란 때 조선출병의 전진기지였습니다. 귀를 잘라서 쓰시마에서 먼저 도착했고 쓰시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살던 교토로 보내졌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4백 년 넘게 돌무덤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무덤 앞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다나카 준야, 쓰시마시 학예사]
"마을 주민들이 지금도 무덤을 찾아 혼령을 공양하거나 위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무더기 몇 개를 쌓아놓은 것에 불과해 무덤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
현재까지 밝혀진 일본 내 조선인 귀 무덤과 코 무덤은 모두 3곳입니다.
12만 명이 묻힌 교토의 귀 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일본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지만 다른 두 곳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4백 년 넘게 이국땅을 떠돌고있는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도쿄에서 YTN 최명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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