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불암 잠시 뒤 발인...염수정 추기경 애도 속 영면 [뉴스타트]

고 최불암 잠시 뒤 발인...염수정 추기경 애도 속 영면 [뉴스타트]

2026.11.02. 오전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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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조태현 앵커, 엄지민 앵커
■ 출연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START]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은 배우 최불암 씨가 오늘 영원한 안식에 듭니다. 고인이 우리 곁에 남긴 발자취를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잠시 뒤인 오전 7시 4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된다고 하는데요. 오늘 장례 절차 어떻게 진행됩니까?

[하재근]
말씀하신 것처럼 7시 40분에 서울아산병원에서 발인식이 엄수되고 그 이후에 오전 9시에 여의도성당으로 가서 장례미사가 열리게 됩니다. 오전 10시 40분께 고인의 유언대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에 운구행렬이 가서 마지막으로 고별행사를 치르게 되고 그 이후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장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앵커]
오전 9시에 장례미사를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고요. 또 팝페라가수 임형주는 아베 마리아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데, 두 분과 고인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재근]
염수정 추기경이 2018년에 최불암 씨한테 세례를 해 준 분이고 또 최불암 씨가 세상을 떠나기 9일 전에 병석에서 병자성사가 진행됐는데 그때도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을 했던 그런 인연이 있습니다. 또 임형주 씨 같은 경우 생전에 최불암 씨 부부하고 굉장히 가까웠던 사이였고 최불암 씨한테 이모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인연으로 이번에 장례미사 때 아베마리아를 부르게 된 것인데. 최불암 씨가 생전에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였거든요.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의미인데. 임형주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아베마리아를 불렀었거든요. 이번에 또 다른 프란치스코 최불암 씨 가는 길에 아베마리아를 부르게 됐습니다.

[앵커]
성인으로서 또 하나의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었고요. 이번 빈소에는 많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는데요. 고인이 한국 대중문화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다고 보십니까?

[하재근]
최불암 씨가 우리나라의 개발 시대, 고도성장기를 대표하는 배우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고 그 시대를 계속 연기하시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본인의 나이보다 훨씬 위의 역할을 맡았거든요. 계속 어른이었던 거예요, 수십 년 동안. 그러면서 한국인의 머릿속에 사회적인 어른의 대표 이미지, 하나의 표상으로 자리를 잡은 분이었고. 특히 이순재 씨와 더불어서 국민 아버지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순재 씨가 좀 더 엄격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순재 씨가 국민 가부장의 느낌이 있었다면 최불암 씨가 따뜻한 아버지의 느낌. 그렇게 두 분이 한국인의 머릿속에 남아 있고. 그러면서 특히 최불암 씨가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 주고 위로해 주는 그런 국민배우였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정말 많은 작품들을 하셨잖아요. 그중의 대표작 꼽을 수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하재근]
대표작은 누구나 아시다시피 수사반장, 전원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수사반장 극중에 나온 얘기가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거거든요. 빌딩을 보는 게 아니라 빌딩의 화려한 면에 가려진 그림자 속에 가려진 서민들의 아픔을 보겠다는 게 프로그램의 모토였고 그걸 대변하는 게 최불암 씨가 맡았던 박 반장 역할이었거든요. 이게 국민들한테 굉장히 감동을 주면서 당시 시청률 70% 이상이 나오고 박정희 대통령 부부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이 봤던 그러한 프로그램이었고 1980년부터 시작된 전원일기는 우리 농촌을 대변하면서 성장기의 수많은 국민들이 농촌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갔거든요.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거든요. 전원일기가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줬던 프로그램었고 정주영 회장이 그렇게 전원일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최불암 씨한테 지게 메는 법을 가르쳐주고 나 출연시켜 달라고 해서 전원일기 출연도 예정돼 있었는데 현대가 임원들이 결사반대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야말로 둘 다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은데 정 회장님은 워낙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셨기 때문에... 고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웃음소리라든지 아버지 같은 연기톤이라든지 이런 게 있을 텐데 연기방식 어떤 차별성이 있었습니까?

[하재근]
최불암 씨의 연기가 열정이 엄청났습니다. 배우로서의 열정, 그러면서 역할에 깊게 몰입해 들어가는 연기였거든요. 그래서 수사반장 찍을 때는 형사처럼 경찰처럼 실제로 살았다는 거예요, 완전히 몰입해서. 최불암 씨가 내 성격도 바뀌었다. 원래 젊었을 때는 내가 약간 한량이었는데 수사반장을 연기하면서 몰입하다 보니까 진짜 박 반장을 할 때 성격이 되어버렸다고 얘기했었고 디테일이 엄청났거든요. 디테일 잘 챙긴다고 봉준호 감독을 봉테일이라고 하는데, 최불암 씨도 그에 못지않게 하나하나의 설정을 다 챙기면서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연출자의 영역까지 대본만 잘 소화하면 된다, 이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가 그런 걸 항상 생각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서 전원일기에서 아랫목에 최불암 씨가 앉아 있는데 옛날 집들은 구들장이 있고 아랫목이 있고 그러면 아랫목이 까맣게 타 있었거든요, 불을 때다 보면. 그래서 최불암 씨가 세트에 방에 아랫목을 까맣게 칠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후배들 연기를 지도한다든지. 그리고 본인 스타일도 수사반장에서 권총 들고 나오고 수갑 들고 나오고 이런 반장 역할이었는데 본인 스타일을 다 바꿨다는 거예요. 권총, 수갑 없애고 트렌치코트 차림에 보다 따뜻한 느낌으로. 그렇게 연출까지도 생각하는 그런 연기였다는 게 최불암 씨 연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봉준호 감독 말씀해 주셨는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 살인의 추억 있잖아요. 그 영화에 보면 수사반장을 관람하는 그런 장면이 나오거면 봉준호 감독이 최불암 배우를 굉장히 좋아했었나 보죠?

[하재근]
그렇죠. 최불암 씨하고 수사반장을 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전 국민이 다 보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봉준호 감독이 수사반장의 팬이다 보니까 수사반장에서 악역에서 그렇게 많이 나왔던 변희봉 씨를 다시 캐스팅 해서 변희봉 씨한테 제2의 전성기를 만들어드리기도 했었고 수많은 수사반장 키즈들이 나중에는 나이를 먹어서 연출자가 되면서 요즘에 장르물 전성시대거든요. 그래서 수사반장의 키즈들이 나이가 들어서 장르물을 만들고 있는 거죠.

[앵커]
연기방식 때문에 동료들도 후배들도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빈소에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았잖아요. 동료와 후배들이 기억하는 고 최불암 배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재근]
동료, 후배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작품 속 캐릭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캐릭터하고 실제 모습이 다른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최불암 씨는 거의 똑같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도 작품 속 캐릭터처럼 인자하고, 그러면서도 엄격할 때는 엄격하고. 후배들이 잘못할 때는 확실하게 지적을 하면서도 후배들의 연기를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그런 선배이고 동료였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으로 빈소를 찾았던 분들이 김혜자 씨가 22년간 함께한 동료이자 가족 같은 인연이었다고 얘기했고 나문희 씨가 함께한 추억을 간직할 동료다. 유인촌 씨가 평소에도 아버지라고 불렀던 선배였다. 차인표 씨는 후배를 존중한 큰 어른이었다. 김혜수 씨는 부모처럼 따랐던 존재였다고 얘기했습니다.

[앵커]
많은 울림이 있는 분이었던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최불암 시리즈라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분이 나쁘실 법도 한데 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직접 연기하기도 하더라고요. 소탈한 면이 있으셨나 봐요.

[하재근]
최불암 씨가 국민들하고 , 젊은 사람들하고 친밀해진 계기가 90년대 최불암 시리즈인데 그게 나오게 된 게 90년대 신세대가 나타났거든요. 그래서 구세대하고 단절을 하게 되는데 그때 청소년들이 보기에 기성세대의 대표 어른이 최불암 씨로 인식됐던 거예요. 왜냐하면 워낙 그분의 비중이 크니까 10대 청소년들이 기성세대 대표격인 최불암 씨를 희화화하는 것에서 굉장히 통쾌감을 느끼고 재미를 느꼈는데 그때 최불암 씨가 자기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청소년들을 위해서 저작권을 풀어준 겁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최불암 씨를 내세워서 책도 내고 최불암 시리즈가 인기를 끌게 된 건데. 또 한편으로 최불암 씨가 파하 하고 웃는 모습, 그게 전원일기에서 큰소리로 웃으면 어머니한테 폐를 끼칠까 봐 큰소리로 웃지 못하고 조용히 숨죽이면서 웃던 소리가 파하 하고 숨만 쉬는 소리가 됐는데. 그게 하나의 웃음코드로 90년도부터 소비가 되면서 최불암 시리즈, 파하 웃음, 이런 걸 통해서 국민웃음의 소재가 되니까 그러면서 국민 아버지 겸 동시에 굉장히 친밀한 우리의 이웃. 그러한 성격으로 신세대한테도 깊게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앵커]
고 최불암 배우, 10분 뒤쯤에 서울아산병원에서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되는데요. 고인의 명복을 빌고요. 저희가 현장도 함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정선화 (jungsh@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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