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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5년 10월 11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신동광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열린라디오 YTN>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최휘 : 열린 라디오, 이번에는 미디어 속 언어를 재해석 해보는 미디어 언어 시간입니다. 개천절을 시작으로 추석, 한글날까지 이어졌던 긴 연휴. 오늘은 이 날들의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매일경제에서 ‘말록 홈즈’ 시리즈를 연재 중인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나오셨습니다.
◇ 신동광 :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 최휘 : 연휴 즐겁게 보내셨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셨나요?
◇ 신동광 : 한가위 아침에 온가족이 함께 한우를 구웠습니다. 특히 새우살이랑 살치살 맛이 감동적이었습니다.
◆ 최휘 : 송편이랑 전이 아니라 고기를요? 혹시 고기 드실 때도 어원을 찾아보시나요?
◇ 신동광 : 네, 아주 당연한 일상입니다. 새우살은 소의 꽃등심 중 한 부분인데, 세로로 썬 단면이 등이 굽은 새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마블링이 환상적이고 식감도 부드러워 가장 귀한 부위로 통합니다.
◆ 최휘 : 갑자기 식욕이 샘솟는데요. 그러면 살치살은요?
◇ 신동광 : 안타깝게도 살치살에는 공인된 어원은 없고, 다양한 추측들만 있는데요. 근육의 모양이 화살의 깃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란 설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곡식을 까불고 고르는 도구인 ‘키’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살치살의 마블링 모양이 키처럼 짜임이 촘촘해 보이는데, ‘키’를 방언으로 ‘치’라고 불러서 ‘살키살’이 ‘살치살’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이 밖에도 입안에서 살살 녹아서, 좋은 살이 많아서 유래한 이름이란 추측들이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 최휘 : 작가님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 신동광 : 그래서 한글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시기 전, 문자는 보통사람들에게 ‘배울 수 없는 너’였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누구나 짧은 기간 내에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도 버거웠던 조선시대, 가난한 사람들도 정보와 마음을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 최휘 : 그 시절 한글을 처음 배우는 분들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소통할 방법이 생겼으니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세종대왕님께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 신동광 : 한국문화가 눈부시게 발전한 바탕에도 이 한글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한글의 우수성이 지구촌에 널리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세계인이 한글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있다고 하죠.
◆ 최휘 : 한글날에는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시나요?
◇ 신동광 : 몇 해 전만 해도 신문과 방송에서는 청소년의 신조어와 외계어 사용을 꾸짖고, 외래어 남용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셨습니다. 거의 공식이었어요.
◆ 최휘 : 맞습니다. 항상 청소년들의 은어, 비어, 채팅용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뉴스들이 이어졌던것 같습니다.
◇ 신동광 : 언제부턴가 그 지적이 너무 지겹고 공감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한국어와 한글과 한글날에 대해 조금 색다르게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위대한 훈화말씀에 좀 대들어 보겠습니다.
◆ 최휘 : 기대되네요. 살짝 걱정도 들지만, 작가님을 믿겠습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첫 번째 주장은 “한글은 한국어가 아니다”입니다. 한글은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입니다. 로마자(알파벳)가 영어가 아니고, 한자가 중국어가 아니며, 카나가 일본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최휘 : 그렇군요. 많은 분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같은 의미로 쓰는 모습을 봤습니다. 한글날이 우리 말과 글을 함께 기념해서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그래서 10월 9일 한글날에는 한글에 집중하고, 하루를 더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 '한국어의 날'로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학계나 교육계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국어를 쓰는 보통 사람들이 한국어의 지혜로운 활용과 발전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 최휘 : 글의 날과 말의 날을 구분하자? 신선한 의견인데요.
◇ 신동광 : 하루에 담기엔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합니다. 더구나 말과 글을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혼동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글과 한국어를 누가 헷갈리냐고요? 한글날에는 신조어, 외계어, 외국어, 외래어 사용 지적이 항상 이어지는데, 이게 글의 날인지 말의 날인지 혼동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 최휘 : 깊이 생각해 볼 주제인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한글이란 이름의 뜻도 제대로 알면 좋겠습니다. 최 휘 아나운서님은 한글이라는 단어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 최휘 : ‘한민족의 글’, ‘한국인의 글’ 아닐까요?
◇ 신동광 : 아주 우수한 답변입니다. 사실 한글이란 이름은 창제시기에서 500년 가까이 지난 20세기에 지어졌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문자의 이름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였죠. ‘속된 말’이란 뜻의 언문(諺文)으로 불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나라의 글’을 의미하는 ‘국문’으로 불렸지만, 일본에게 정복당하면서 이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한글이란 이름은, 1910년대에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님 혹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최남선이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한(韓)민족의 글' 혹은 '아름다운/큰 글'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사라질 뻔한 긴 위기를, 목숨 바쳐 헌신한 분들의 노력으로 이겨냈습니다.
◆ 최휘 : 정말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거쳐 보존되어 왔군요. 그러니 더욱 아끼고 발전시켜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모두 함께 한글의 의미, 소중히 간직해야겠습니다.
◇ 신동광 : 이번에는 한국어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어는 과연 탁월한 언어일까요?
◆ 최휘 : 우리말은 표현이 참 다채로운 우수한 말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신동광 : 우리말 발전을 위해, 순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인류의 가장 완벽에 가까운 문자인 한글과 달리, 한국어는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언중(言衆)이 적어, 세계로 뻗어가는 확장성이 떨어집니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의 경우 사용지역이 넓고 언어 사용자도 많아, 새로운 컨텐츠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 유리합니다.
◆ 최휘 : 방금 거론하신 언어들에 비해 한국어 언중이 적긴 하죠.
◇ 신동광 : 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미생'을 '죽은 시인의 사회', '머니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보다 재미있게 읽고 보았습니다. 정서와 문화 공감대를 넘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다면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을 거라 확신합니다.
◆ 최휘 : 실제로 ‘오징어게임’이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들의 사례들이 있죠.
◇ 신동광 : 어떤 이들은 우리말의 강점으로 어휘의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파란색을 예로 들며, ‘새파랗다’, ‘시퍼렇다’, ‘푸르스름하다’ 등 접사와 어미 등을 활용한 다양한 어휘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영어에도 ‘라이트 블루’, ‘네이비 블루’, ‘코발트 블루’, ‘앨리스 블루’ 등 다양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우리만의 특장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현실을 인정하는 모습이 먼저 필요합니다.
◆ 최휘 : 신선한 의견 많이 들려주고 계신데요. 또 어떤 생각들을 말씀해 주실지 기대됩니다.
◇ 신동광 : 완벽한 언어는 업습니다. 한국어에도 아쉬운 점이 분명 있습니다. 강연을 자주 하는 분들은, 종종 한국어의 단점으로 에너지 소모를 거론합니다. 기역(ㄱ)이나 비읍(ㅂ)으로 끝나는 한자어 종성이 많고, 말에도 리듬이 적어 영어나 중국어로 말할 때보다 힘이 더 들고 허기가 일찍 찾아온다고 토로합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 최휘 : 한국어와 외국어 강연을 병행하는 분들은 공감하시겠군요.
◇ 신동광 :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말의 가장 큰 개선할 점은, 뜻 모르고 말하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어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라고 합니다. 점점 영어와 프랑스어 같은 유럽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이는 한자어가 줄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새로운 낱말들은 여전히 대부분 한자어로 만들어집니다.
◆ 최휘 : 저도 한자어는 무조건 배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지역, 모든 역사 속에서 단어는 짧고 발음하기 편하게 변화하는데, 한자는 짧은 음절에 다양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포용하기에 적합한 문자죠.
◇ 신동광 : 오늘 제가 쓴 한자어들을 모두 순우리말로 풀어 쓴다면, 문자의 분량이 크게 늘어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공교육에서 사실상 한자교육이 소멸되며 언중의 집단지성이 쇠퇴된다는 점입니다. ‘문해력’이라 불리는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하락하고 있는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뜻 모르고 쓰는 말이 많아지면서 소통에 오해와 갈등이 발생하며, 사회 변화의 신속성과 유연성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 최휘 : 크게 공감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미디어 언어’ 코너에 특별한 애정을 느낍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제가 말록 홈즈 시리즈를 연재하는 목적은, 사람들이 좀더 말을 쉽게 이해하고 편하게 사용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이를 통해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바탕을, 함께 일구고 싶습니다.
◆ 최휘 : 그렇다면 대중과 함께 한국어가 발전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신동광 : 한국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곳은 바로 국립국어원입니다. 우리말 어법이나 맞춤법에 대한 사이버강좌를 무료로 운영하고, 언중들의 궁금증도 해결해 줍니다. 저도 10여 년 전 띄어쓰기와 우리말 어법 등 세 과목을 공부해 아직까지 효율적으로 활용 중입니다.
◆ 최휘 : 네. 국립국어원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 신동광 : 하지만 종종 갈증과 허기를 느낍니다. 국어원의 설명과 답변들은 가끔 지나치게 방어적이라고 느낄 때들이 있습니다. 어떤 말의 뜻을 물어보면, 문헌이나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답변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자주 받습니다.
◆ 최휘 : 답답하시겠어요?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이라 기대하셨을 텐데요.
◇ 신동광 :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말은 국가의 문화와 국민의 정서를 담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예산이 모자라면 증액하고, 인력이 부족하면 충원해서 운영할 가치가 충분한 영역입니다.
◆ 최휘 : 저는 학교 교육도 지금보다 개선되면 좋겠어요. 모든 낱말은 ‘뜻의 뿌리’인 어근과 ‘뜻을 가진 최소 단위의 구성 요소’인 형태소를 가지고 있죠. 꼭 국어시간이 아니라도, 새로운 혹은 익숙한 단어들을 이야기할 때, 말의 기본 뜻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면, 학생들의 이해력과 학습능력이 더 크게 향상될 거라 믿습니다.
◇ 신동광 : 아주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좀 더 나은 언어생활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면 좋겠다”입니다. 국가가 투자를 늘리고, 대중도 즐겁게 참여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재미있는 활동들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 최휘 : 그렇게 재미있게 우리말을 사랑하고 활용하는 날들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신선한 의견들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 최휘 : 지금까지 신동광 작가였습니다.
YTN 신동진 (djshin@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5년 10월 11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신동광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열린라디오 YTN>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최휘 : 열린 라디오, 이번에는 미디어 속 언어를 재해석 해보는 미디어 언어 시간입니다. 개천절을 시작으로 추석, 한글날까지 이어졌던 긴 연휴. 오늘은 이 날들의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매일경제에서 ‘말록 홈즈’ 시리즈를 연재 중인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나오셨습니다.
◇ 신동광 :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 최휘 : 연휴 즐겁게 보내셨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셨나요?
◇ 신동광 : 한가위 아침에 온가족이 함께 한우를 구웠습니다. 특히 새우살이랑 살치살 맛이 감동적이었습니다.
◆ 최휘 : 송편이랑 전이 아니라 고기를요? 혹시 고기 드실 때도 어원을 찾아보시나요?
◇ 신동광 : 네, 아주 당연한 일상입니다. 새우살은 소의 꽃등심 중 한 부분인데, 세로로 썬 단면이 등이 굽은 새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마블링이 환상적이고 식감도 부드러워 가장 귀한 부위로 통합니다.
◆ 최휘 : 갑자기 식욕이 샘솟는데요. 그러면 살치살은요?
◇ 신동광 : 안타깝게도 살치살에는 공인된 어원은 없고, 다양한 추측들만 있는데요. 근육의 모양이 화살의 깃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란 설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곡식을 까불고 고르는 도구인 ‘키’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살치살의 마블링 모양이 키처럼 짜임이 촘촘해 보이는데, ‘키’를 방언으로 ‘치’라고 불러서 ‘살키살’이 ‘살치살’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이 밖에도 입안에서 살살 녹아서, 좋은 살이 많아서 유래한 이름이란 추측들이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 최휘 : 작가님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 신동광 : 그래서 한글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시기 전, 문자는 보통사람들에게 ‘배울 수 없는 너’였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누구나 짧은 기간 내에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도 버거웠던 조선시대, 가난한 사람들도 정보와 마음을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 최휘 : 그 시절 한글을 처음 배우는 분들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소통할 방법이 생겼으니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세종대왕님께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 신동광 : 한국문화가 눈부시게 발전한 바탕에도 이 한글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한글의 우수성이 지구촌에 널리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세계인이 한글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있다고 하죠.
◆ 최휘 : 한글날에는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시나요?
◇ 신동광 : 몇 해 전만 해도 신문과 방송에서는 청소년의 신조어와 외계어 사용을 꾸짖고, 외래어 남용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셨습니다. 거의 공식이었어요.
◆ 최휘 : 맞습니다. 항상 청소년들의 은어, 비어, 채팅용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뉴스들이 이어졌던것 같습니다.
◇ 신동광 : 언제부턴가 그 지적이 너무 지겹고 공감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한국어와 한글과 한글날에 대해 조금 색다르게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위대한 훈화말씀에 좀 대들어 보겠습니다.
◆ 최휘 : 기대되네요. 살짝 걱정도 들지만, 작가님을 믿겠습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첫 번째 주장은 “한글은 한국어가 아니다”입니다. 한글은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입니다. 로마자(알파벳)가 영어가 아니고, 한자가 중국어가 아니며, 카나가 일본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최휘 : 그렇군요. 많은 분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같은 의미로 쓰는 모습을 봤습니다. 한글날이 우리 말과 글을 함께 기념해서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그래서 10월 9일 한글날에는 한글에 집중하고, 하루를 더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 '한국어의 날'로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학계나 교육계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국어를 쓰는 보통 사람들이 한국어의 지혜로운 활용과 발전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 최휘 : 글의 날과 말의 날을 구분하자? 신선한 의견인데요.
◇ 신동광 : 하루에 담기엔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합니다. 더구나 말과 글을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혼동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글과 한국어를 누가 헷갈리냐고요? 한글날에는 신조어, 외계어, 외국어, 외래어 사용 지적이 항상 이어지는데, 이게 글의 날인지 말의 날인지 혼동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 최휘 : 깊이 생각해 볼 주제인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한글이란 이름의 뜻도 제대로 알면 좋겠습니다. 최 휘 아나운서님은 한글이라는 단어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 최휘 : ‘한민족의 글’, ‘한국인의 글’ 아닐까요?
◇ 신동광 : 아주 우수한 답변입니다. 사실 한글이란 이름은 창제시기에서 500년 가까이 지난 20세기에 지어졌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문자의 이름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였죠. ‘속된 말’이란 뜻의 언문(諺文)으로 불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나라의 글’을 의미하는 ‘국문’으로 불렸지만, 일본에게 정복당하면서 이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한글이란 이름은, 1910년대에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님 혹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최남선이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한(韓)민족의 글' 혹은 '아름다운/큰 글'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사라질 뻔한 긴 위기를, 목숨 바쳐 헌신한 분들의 노력으로 이겨냈습니다.
◆ 최휘 : 정말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거쳐 보존되어 왔군요. 그러니 더욱 아끼고 발전시켜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모두 함께 한글의 의미, 소중히 간직해야겠습니다.
◇ 신동광 : 이번에는 한국어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어는 과연 탁월한 언어일까요?
◆ 최휘 : 우리말은 표현이 참 다채로운 우수한 말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신동광 : 우리말 발전을 위해, 순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인류의 가장 완벽에 가까운 문자인 한글과 달리, 한국어는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언중(言衆)이 적어, 세계로 뻗어가는 확장성이 떨어집니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의 경우 사용지역이 넓고 언어 사용자도 많아, 새로운 컨텐츠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데 유리합니다.
◆ 최휘 : 방금 거론하신 언어들에 비해 한국어 언중이 적긴 하죠.
◇ 신동광 : 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미생'을 '죽은 시인의 사회', '머니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보다 재미있게 읽고 보았습니다. 정서와 문화 공감대를 넘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다면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을 거라 확신합니다.
◆ 최휘 : 실제로 ‘오징어게임’이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들의 사례들이 있죠.
◇ 신동광 : 어떤 이들은 우리말의 강점으로 어휘의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파란색을 예로 들며, ‘새파랗다’, ‘시퍼렇다’, ‘푸르스름하다’ 등 접사와 어미 등을 활용한 다양한 어휘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영어에도 ‘라이트 블루’, ‘네이비 블루’, ‘코발트 블루’, ‘앨리스 블루’ 등 다양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우리만의 특장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현실을 인정하는 모습이 먼저 필요합니다.
◆ 최휘 : 신선한 의견 많이 들려주고 계신데요. 또 어떤 생각들을 말씀해 주실지 기대됩니다.
◇ 신동광 : 완벽한 언어는 업습니다. 한국어에도 아쉬운 점이 분명 있습니다. 강연을 자주 하는 분들은, 종종 한국어의 단점으로 에너지 소모를 거론합니다. 기역(ㄱ)이나 비읍(ㅂ)으로 끝나는 한자어 종성이 많고, 말에도 리듬이 적어 영어나 중국어로 말할 때보다 힘이 더 들고 허기가 일찍 찾아온다고 토로합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 최휘 : 한국어와 외국어 강연을 병행하는 분들은 공감하시겠군요.
◇ 신동광 :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말의 가장 큰 개선할 점은, 뜻 모르고 말하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어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라고 합니다. 점점 영어와 프랑스어 같은 유럽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이는 한자어가 줄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새로운 낱말들은 여전히 대부분 한자어로 만들어집니다.
◆ 최휘 : 저도 한자어는 무조건 배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지역, 모든 역사 속에서 단어는 짧고 발음하기 편하게 변화하는데, 한자는 짧은 음절에 다양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포용하기에 적합한 문자죠.
◇ 신동광 : 오늘 제가 쓴 한자어들을 모두 순우리말로 풀어 쓴다면, 문자의 분량이 크게 늘어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공교육에서 사실상 한자교육이 소멸되며 언중의 집단지성이 쇠퇴된다는 점입니다. ‘문해력’이라 불리는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하락하고 있는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뜻 모르고 쓰는 말이 많아지면서 소통에 오해와 갈등이 발생하며, 사회 변화의 신속성과 유연성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 최휘 : 크게 공감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미디어 언어’ 코너에 특별한 애정을 느낍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제가 말록 홈즈 시리즈를 연재하는 목적은, 사람들이 좀더 말을 쉽게 이해하고 편하게 사용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이를 통해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바탕을, 함께 일구고 싶습니다.
◆ 최휘 : 그렇다면 대중과 함께 한국어가 발전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신동광 : 한국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곳은 바로 국립국어원입니다. 우리말 어법이나 맞춤법에 대한 사이버강좌를 무료로 운영하고, 언중들의 궁금증도 해결해 줍니다. 저도 10여 년 전 띄어쓰기와 우리말 어법 등 세 과목을 공부해 아직까지 효율적으로 활용 중입니다.
◆ 최휘 : 네. 국립국어원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 신동광 : 하지만 종종 갈증과 허기를 느낍니다. 국어원의 설명과 답변들은 가끔 지나치게 방어적이라고 느낄 때들이 있습니다. 어떤 말의 뜻을 물어보면, 문헌이나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답변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자주 받습니다.
◆ 최휘 : 답답하시겠어요?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이라 기대하셨을 텐데요.
◇ 신동광 :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말은 국가의 문화와 국민의 정서를 담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예산이 모자라면 증액하고, 인력이 부족하면 충원해서 운영할 가치가 충분한 영역입니다.
◆ 최휘 : 저는 학교 교육도 지금보다 개선되면 좋겠어요. 모든 낱말은 ‘뜻의 뿌리’인 어근과 ‘뜻을 가진 최소 단위의 구성 요소’인 형태소를 가지고 있죠. 꼭 국어시간이 아니라도, 새로운 혹은 익숙한 단어들을 이야기할 때, 말의 기본 뜻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면, 학생들의 이해력과 학습능력이 더 크게 향상될 거라 믿습니다.
◇ 신동광 : 아주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좀 더 나은 언어생활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면 좋겠다”입니다. 국가가 투자를 늘리고, 대중도 즐겁게 참여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재미있는 활동들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 최휘 : 그렇게 재미있게 우리말을 사랑하고 활용하는 날들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신선한 의견들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 최휘 : 지금까지 신동광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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