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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2년 3월 16일 (수요일)
■ 대담 : 김누리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윤석열 당선자.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김누리교수)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이번 주부터 수요일 새롭게 시작하는 코너입니다. 한 주간의 뜨거운 이슈를 담는 핫이슈 시간인데요. 첫 시간, 뭐니뭐니해도 우리의 핫이슈는 대선 이후 대한민국이겠죠. 윤석열 당선자는 당선 직후 통합과 번영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통합과 번영의 나라로 가려면 우리는 지금 뭘 해야 할까요. 통렬한 성찰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며 우리의 나아갈 길을 깊이 고민하는 학자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중앙대 김누리 교수 나오셨어요. 교수님 어서 오세요.
◆ 김누리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이하 김누리)> 예, 반갑습니다.
◇ 김혜민> 반갑습니다. 저는 김누리 교수님께서 진짜 민주주의에 대해 누구보다 대중들에게 잘 설명하고 또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잖아요. 선거 끝나고 꼭 교수님 모시고 싶었고요. 대선이 끝났는데 아주 적은 표차로 끝났기 때문에 사실 아직도 뜨거워요. sns 보면 아직도 서로 공방하고 이런 뜨거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교수님께 좀 묻고 싶습니다. 진짜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대선이 끝난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합니까.
◆ 김누리> 그건 질문 자체가 정말 긴 얘기라서 제가 짧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아무튼 저도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가장 인상적인 게 새벽 3시경에 이재명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최소한 형식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성숙했구나, 여러분들, 작년의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작년에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작년 미국에서 대선 후에 벌어진 일련의 난동들, 그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제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 민주주의, 또는 서구의 민주주의가 배워야 할 굉장히 성숙한 민주주의의 단계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차이도 안 났어요. 무효표보다도 적은 표차 24만 표. 0.73%밖에 차이가 안 났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라면 거의 예외 없이 재검토 주장을 했으리라고 생각하고요. 미국 같으면 아마 난동이 벌어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주목하지 않지만 새벽 3시에 그러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후보가 승복하고 축하를 했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굉장한 수준의 성숙함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측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인 측면. 형식적인 측면은 상당히 훌륭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저는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이념과 정책을 지향하는 두 개, 혹은 많은 세력 간의 경쟁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다른 정책과 이념을 가진 정당이 사실상 정의당을 빼고는 없어요. 거기에 좀 주목해야 됩니다. 지금 윤석열, 이재명 후보가 굉장히 요란스럽게 서로 대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이들의 정책에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은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예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결정적인 한계는 거대한 두 개의 정당이 차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 김혜민> 분열. 갈등.
◆ 김누리> 그러니까 분열과 갈등 분열과 갈등은 왜 생겼나요.
◇ 김혜민> 분열과 갈등은 원래 달라야 생기는 거 아닙니까.
◆ 김누리> 그러니까 이 분열과 갈등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것을 낳은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불평등이에요. 이 불평등이 지금 그걸 자세히 설명드릴 시간은 없으니까 제가 말씀은 안 드리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지금 한국 사회이고요.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라는 것은 뭐죠. 이러한 정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합법적인 절차예요. 그런데 이렇게 불평등이 극심한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지금 가장 거대하다고 하는 이 두 정당이 무슨 차이를 보였죠. 잘 생각해 보세요. 이 불평등의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은 이걸 해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되죠, 우리 사회를 보다 평등한 사회로 만들면 되는 거죠. 그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게 이제 정치가 할 일이에요. 여기서 해야 될 게 뭐죠.
◇ 김혜민> 글쎄요. 세금을 올리고 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런 일이겠죠.
◆ 김누리> 그렇죠. 그건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어느 나라에서나 이 정도의 불평등이 되면 당연히 국가가 재분배에 적극적으로 관여를 해서 증세하고요. 부유세 같은 거 도입하고요. 이걸 통해서 너무나 심각한 불평등 사회를 조정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 김혜민> 그런 부분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교수님 보시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 김누리> 아니, 지금 생각을 해보세요. 이번 선거에서 지금 말한 재분배, 증세, 부유세, 이런 걸 거대 정당에서 주장한 적이 있나요.
◇ 김혜민> 제가 금요일에 대선 꼭짓점 코너에서 증세 이야기 안 그래도 했었거든요. 세금 증세 이야기 했는데 어느 후보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야기 했습니다.
◆ 김누리> 그래서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예요. 지금 한국 사회가 이야기를 안 한 게 문제가 아닙니다. 두 개의 거대한 정패가 굉장히 서로 경쟁을 하고 대결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일 뿐이고요.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역설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는 곳인데요. 또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두 정당 간의 정책 차이가 없는, 그러한 정당이 다투고 있다는 것. 그것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김혜민> 제가 교수님 말을 좀 정리해 보면 형식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훌륭했다. 하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던진 사람을 뽑았어야 했는데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거기에 대한 답변을 주지 못했고.
◆ 김누리>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이 문제에 대해서 4명의 후보가 대결을 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후보는 심상정 후보 하나밖에 없어요. 어처구니가 없는 거죠.
◇ 김혜민> 정의당 후보 한 분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불평등 이야기 하셨으니까요. 정말 대한민국이 불평등한 거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잘 알고 그 결과 사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라는 세계적인 콘텐츠가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가 이 평등, 불평등의 개념을 너무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이게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이 부분을 좀 새롭게 불평등·평등 문제를 새로운 정부에서 개념을 세우고 해결을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새 정부에서는 이 불평등한 대한민국 바로 세우려면 제일 먼저 뭐 해야 됩니까. 증세하면 됩니까, 교수님.
◆ 김누리> 지금 오징어 게임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지금 최근에 한국에서 소위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 수준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그 주장. 지금 오징어 게임이라든가 지옥이라든가 지금 우리 학교는, 또 그 이전에 있었던 기생충. 이런 것들. 이러한 방송 프로그램을 실제로 지금 유럽 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못 봐요. 너무 잔혹해서. 제가 제 친구, 독일 교수들이죠. 이걸 한 번 보라고 했더니 못 보겠다는 거예요. 너무 잔혹해서. 그것이 뜻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러한 프로그램, 그러한 문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전 세계에 유례없는 잔혹 사회라는 걸 뜻하는 거예요. 그 정도의 잔혹한 상상력을 다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아예 상상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런 잔혹한 현실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 문화적 성공이 우리의 정치적 실패를 보여준다고 하는 것. 그것을 사실은 같이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려운 게 아니에요. 국가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초래하는 시스템이에요.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어마어마한 생산력과 효율성을 가진 경제 체제인데 이 자본주의는 두 가지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게 뭐겠어요. 실업과 불평등 문제에요. 지금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죠. 이것 때문에 사실은 근대 국가가 필요한 거예요. 근대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사회적 비극, 즉 가장 큰 게 불평등이죠. 이것에 개입해서 이걸 조정하라는 것인데 지금 한국은 어때요. 의회에 300명이 앉아 있는데 그중에 294명이 자유시장 경제를 주장하는 자들이 앉아 있어요. 그것은 두 개 양당의 차이가 없어요. 사실은. 자유시장 경제라는 건 뭐예요. 시장을 자유롭게 놔둬야 된다는 거죠.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정치 구도가 지금 한국 사회를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수준까지 만들어 놨어요. 그것 때문에 한국 자살률이 계속 세계 1위인 거고요. 또 한국이 계속 가장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나라인 거고요. 그것 때문에 아이들을 낳지 않는 것이고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되는데, 저는 이번 대선이 이러한 한국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리라고 기대를 했는데 전혀 그러한 성찰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어요.
◇ 김혜민> 한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였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이번 선거 총평을 하신다면 이번 선거의 핵심 아젠다는 뭐였습니까.
◆ 김누리>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생각을 해보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하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두고 경쟁을 했어야 돼요. 그런데 아무도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들이 내세운 것은 여야가 차이가 없어요.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차이가 없어요. 똑같아요. 이들이 왜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들이 내세운 모든 주장은 다 뭐예요. 공정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정, 이재명 후보도 공정, 윤석열 후보도 공정이에요. 이것은 이들이 전혀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공정이라는 것이 뭡니까 공정이라는 것은 추구할 가치가 아니에요. 지켜야 할 규범이죠. 당연히 공정해야죠. 지켜야 할 규범을 마치 추구할 가치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 김혜민> 지켜야 할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 대한민국은 불평등한데, 그 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사람들이 예민한 이 단어에만 정치권이 집중하고 있군요.
◆ 김누리> 집중한다기보다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간단한 문제죠. 공정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누구나 지켜야 할 하나의 규범적 차원의 개념인 것인데 이러한 공정 위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가 가능한 것이죠. 그것은 추구할 가치죠, 가치. 공정을 가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건 게임의 룰이죠. 게임의 룰이 어떻게 추구할 가치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런 꼴이에요. 이렇게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지금 너무나 불평등한 사회가 돼서 이걸 사회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까지, 이 불평등이 너무나 심각해요. 이런데 이 문제를 정치가 해결해야 된다. 이러니까 이들이 전부 한 목소리로 공정, 공정, 떠들어요. 이게 무슨 얘기예요. 공정이란 말은 바로, 그래. 너희가 이 불평등한 세계의 지배자가 되면 되잖아. 이 얘기예요. 이게 과연 답입니까 이건 완전히 게임의 룰을 내가 공정하게 해놓으니 네가 지배자가 되면 되잖아. 네가 1등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이것은 정치인들이 그야말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대한 분명한 성찰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지금 정권이 바뀌고 해도 한국 사회가 나아질 가능성은 저는 없다고 봐요.
◇ 김혜민> 오늘 그 말씀 들으려고 모신 건 아니었는데, 결론이 이렇게 났네요. 아니, 저도 교수님 몇 차례 인터뷰했고 교수님 강의도 많이 봤지만 이렇게 흥분하시고 목소리를 높이시는 건 참 낯설어요. 그만큼 지금 이 사회가 너무 답답하고 제가 사실 교수님 칼럼을 모아둔 ‘우리에게 절망할 권리가 없다.’ 이 책을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2015년도에 쓴 칼럼을 지금 썼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이 사회가 어떻게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더 퇴보했다라고 느껴지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굉장히 답답한 마음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럼 우리 정부 이야기했으니까 우리 이야기해 보죠, 교수님. 교수님께서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다,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갖췄다고 하셨지만. 그러면 우리는 이 시대에 진짜 민주주의를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지금 이 시점에.
◆ 김누리>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세계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없어요. 그러니까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정말 훌륭하고 또 실제로 많은 외국의 제 친구들도 한국 민주주의 너무 대단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거죠. 우리가 집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과연 민주적이냐 하는 거죠. 그렇지 않은 거죠. 제가 비유적으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지요. 광화문 광장에서 막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전철 타고 서서히 집에 가는 동안에 변신을 하죠. 집에 딱 도착하면 완전히 가부장적인 아비가 되는 것이고요 그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을 아주 쥐 잡듯이 들볶는 권위주의적 교사가 되는 거구요. 회사에 가면 갑질을 일삼는 상사가 된다 이거예요. 그렇다면 민주주의 어디서 해요. 우리는 광장의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가 괴리돼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 한국사회는 엄격하게 말하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에요. 민주주의자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저는 지금 한국 사회를 엄격하게 말하면 후기 파시즘 사회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후기 파시즘 사회. 다시 말하면 전기 파시즘 시대는 지났어요. 이것은 전기 파시즘의 주인공들이 이미 생물학적으로 다 소멸했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제 이 지상의 사람이 아니에요. 전기 파시즘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제도적인 독재는 사라졌어요. 그러나 그들 30년이 남겨놓은 태도로서의 파시즘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지금 한국 사회에 거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국민들은 인식도 못해요.
◇ 김혜민> 문화생활 속에 전기 파시즘의 열매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 김누리> 아니, 우리 모든 것에. 우리 태도에도 남아 있고요. 우리의 몸짓, 우리의 제스처, 이런 것들을 사회학에서는 아비투스라고 하죠. 한국인들은 화가 나면 손이 올라가잖아요. 이런 것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에 밴 거죠. 말하자면 이런 류의 폭력성, 공격성, 또 강자에게 계속 자기를 동일시하는 강자 동일시, 약자를 혐오하는 태도, 우열 의식, 이 세계를 계속 우열로 나누는 것, 그다음에 경쟁적인 사고, 또 어떤 다수에게 무조건 동조해야 한다고 하는 동조 강박. 이런 것들이 다 파시즘의 행태들이에요. 이게 우리에게는 너무나 강하게 박혀 있어요. 저는 이것을 다른 책에서는 바로 68혁명의 부재가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막고 있다. 이런 표현을 썼어요. 이것이 바로 저는 다른 면에서 보면 후기 파시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선 사실 많은 설명이 필요해요. 제가 그냥 딱 한 가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릴게요. 예를 들면 우리의 교실, 우리의 선생님들을 생각해 보세요.
◇ 김혜민> 아주 집약적으로 알 수 있겠네요.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 김누리> 지금 우리 선생님들의 경우는 전 세계에서, 특히 OECD 국가 38개국 중에서 우리의 교사들만 정치적 시민권이 없습니다.
◇ 김혜민> 할 수 없죠.
◆ 김누리> 지금 교사는 정치행위를 할 수 없고요, 국회의원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지금 독일에서는 독일 연방의회에 약 700명이 있는데요. 그중에 81명이 교사입니다. 81명. 독일 의회에서 가장 많은 직업군 2위예요. 교사가. 교사는 당연히 그가 가지고 있는 지적, 도덕적 역량, 그걸 통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러한 교사 50만 명을 지금도 열중쉬어 시켜놓고 있어요. 아무것도 못해요. 이건 어처구니없는 거예요. OECD 국가 38개국 중에서 한국 교사들만 지적인 능력이 떨어져요? 그들만 정치적 금치산자로 묶어놨어요. 이걸 묶어놓은 자가 누구입니까. 박정희입니다. 박정희.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 놓은 이런 파시즘적 관행이 아직도 그대로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국가적 수치에요.
◇ 김혜민> 그러면 그 말씀과 제 질문을 조금 연결시킨다면, 결국 민주주의자가 되려면 학교에서 정치적 교육들이 이루어져야 되고 학교에서 먼저 민주주의가 일어나야 된다. 그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오늘 핫이슈, 대선 이후에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 김누리 중앙대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이번 대선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돼서 처음 치른 선거가 아닐까 싶어요. 이제 시대와 세계가 대한민국이 원하는 과제가 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 이번 당선자.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어떤 과제를 좀 풀어야 되겠습니까.
◆ 김누리> 지금 이번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대단히 큰 역사적 사명이 주어져 있다고 봐요. 그리고 당선자가 그런 것들을 성찰하고 정책으로 반드시 구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지금 말씀드린 대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가 해방 이후에 100년 동안의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맞는 첫 번째 대통령 선거예요. 한번 돌아서서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1919년에 임시정부 형태로 건국을 했죠. 그 이후에 우리가 거쳐 온 지난 100년은 어느 근대국가도 이러한 비극적 정치사를 겪은 나라가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근대국가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비극을 남김없이 경험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식민의 역사, 분단의 역사, 냉전의 역사, 한국전쟁, 내전의 역사, 군사 독재의 역사까지 겪었어요. 이런 걸 다 겪은 나라가 어디 있어요. 유일합니다, 한국이. 그러한 100년을 거쳐서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훌륭한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뤘어요. 이제 새로운 100년은 지난 100년 동안의 비극의 세기를 보내고 이제는 우리에게도 희망찬, 성숙한 시대를 여는 100년이 돼야 된다는 거죠. 그걸 위해서 새로 뽑힌 대통령은 역사적인 사명의식을 가져야 되고요. 결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혜민>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 사실 현안 여쭤보면 지금 MB 사면권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거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통합의 관점에서 봐야 된다. 어떤 사람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를 되돌리는 거다. 오늘 청와대 회동도 무산이 됐는데 이런 부분들은 어떻게 봐야 됩니까.
◆ 김누리> 그것은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하신 건데요. 지금 우리 역사 안에서 보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 100년을 돌아보면 지금 우리는 과거 청산이 안 된 나라, 하면 일본을 많이 이야기하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실은 일본보다도 더 과거 청산이 안 된 나라예요. 단 한 번도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한 역사가 없어요. 식민의 과거, 아까 말씀드렸죠. 청산이 된 적이 있나요. 우리처럼 이렇게 식민시대 36년을 거치고서도 거의 식민 부역자들을 한 명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이런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 일본군 장교를 했던 자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고요. 그 딸이 또 대통령이 되는, 세상에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이후에 한번 따져보세요. 수많은 양민 학살이 있었고요. 그 양민 학살의 역사. 그 다음에 군사 독재 하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법살인, 넥타이를 맨 살인자들이죠. 사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죽인, 그게 얼마나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빈,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끔찍한 한 세기를 보내고 나서 그 과정에서 과거 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런 나라가 없다는 걸 그야말로 잘 기억할 필요가 있고요. 그때마다 똑같은 논리입니다. 국민통합, 이런 논리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과거 청산을 오히려 막아내는 역사가 반복되다 보니까 말하자면 응징이 없는 역사가 돼버린 거죠. 그게 한국사회의 정의라고 하는 가치가 완전히 소멸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 김혜민> 교수님, 전에 칼럼의 진정한 적폐 청산 이야기하시면서 독일 사례 드신 거, 저도 굉장히 재밌게 봤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청취자분들도 한번 찾아보시고요. 이 책 제목, ‘우리에겐 절망한 권리가 없다.’ 이 제목처럼 청취자분들에게 이 제목 자체가 되게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가 되든 대한민국이 정말 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여기까지 왔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수많은 고난을 겪어서 왔는데 잘 될 거다. 저는 그런 희망을 갖고 지금 기대하고 있고요. 새 정부에. 저는 국민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국민들께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 김누리> 예. 제가 그 책 제목도 ‘우리에게는 절망할 권리가 없다.’ 이렇게 돼 있는데요. 볼프 비어만이라고 하는 독일의 시인이 있어요.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들어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에요. 역사는 나선형을 그리면서 발전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현재의 국면이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나선형의 원이 후방을 향하고 있는 그 단계라고 봐요. 이 나선형의 원이 후방으로 간다고 하는 것은 다음에 더 큰 원으로, 전방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절망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저는 그래서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대선에 나온 세 후보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런 겁니다. 지금 윤석열 당선자의 경우는 어쨌든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았어요. 저랑 같은 학번입니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거예요. 그 시절이라고 하는 게 저는 대학 다니는 내내 육군 소장 출신의 군사 독재자에 의한 경험을 했어요. 그 과정이 우리의 세대적 정체성을 만든 겁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역사를 퇴행시켜서는 안 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요 지금 이재명 후보는 정말 아쉽죠. 아쉽습니다. 그런데 저는 0.73% 때문에 아쉬운 게 아니에요. 이재명 후보의 경우는 정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어요. 이재명 후보의 경우는 정말 자기가 원하는 세상, 자기가 꿈꾸는 사회, 이것을 펼치지 못했어요. 그것을 계속 억눌렀습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저는 앞으로 그러한 부분을 스스로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펼치는 과정에서 더 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고요. 마지막으로 심상정 후보께는 이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이상주의자가 좌절한 만큼 발전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심상정 후보에게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김혜민> 감사합니다. 날카로운 말도 위로가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한 인터뷰였습니다. 김누리 교수님, 고맙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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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민의 이슈&피플] 윤석열 당선자.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김누리교수)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이번 주부터 수요일 새롭게 시작하는 코너입니다. 한 주간의 뜨거운 이슈를 담는 핫이슈 시간인데요. 첫 시간, 뭐니뭐니해도 우리의 핫이슈는 대선 이후 대한민국이겠죠. 윤석열 당선자는 당선 직후 통합과 번영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통합과 번영의 나라로 가려면 우리는 지금 뭘 해야 할까요. 통렬한 성찰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며 우리의 나아갈 길을 깊이 고민하는 학자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중앙대 김누리 교수 나오셨어요. 교수님 어서 오세요.
◆ 김누리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이하 김누리)> 예, 반갑습니다.
◇ 김혜민> 반갑습니다. 저는 김누리 교수님께서 진짜 민주주의에 대해 누구보다 대중들에게 잘 설명하고 또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잖아요. 선거 끝나고 꼭 교수님 모시고 싶었고요. 대선이 끝났는데 아주 적은 표차로 끝났기 때문에 사실 아직도 뜨거워요. sns 보면 아직도 서로 공방하고 이런 뜨거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교수님께 좀 묻고 싶습니다. 진짜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대선이 끝난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합니까.
◆ 김누리> 그건 질문 자체가 정말 긴 얘기라서 제가 짧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아무튼 저도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가장 인상적인 게 새벽 3시경에 이재명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최소한 형식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성숙했구나, 여러분들, 작년의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작년에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작년 미국에서 대선 후에 벌어진 일련의 난동들, 그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제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 민주주의, 또는 서구의 민주주의가 배워야 할 굉장히 성숙한 민주주의의 단계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차이도 안 났어요. 무효표보다도 적은 표차 24만 표. 0.73%밖에 차이가 안 났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라면 거의 예외 없이 재검토 주장을 했으리라고 생각하고요. 미국 같으면 아마 난동이 벌어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주목하지 않지만 새벽 3시에 그러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후보가 승복하고 축하를 했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굉장한 수준의 성숙함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측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인 측면. 형식적인 측면은 상당히 훌륭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저는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이념과 정책을 지향하는 두 개, 혹은 많은 세력 간의 경쟁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다른 정책과 이념을 가진 정당이 사실상 정의당을 빼고는 없어요. 거기에 좀 주목해야 됩니다. 지금 윤석열, 이재명 후보가 굉장히 요란스럽게 서로 대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이들의 정책에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은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예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결정적인 한계는 거대한 두 개의 정당이 차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 김혜민> 분열. 갈등.
◆ 김누리> 그러니까 분열과 갈등 분열과 갈등은 왜 생겼나요.
◇ 김혜민> 분열과 갈등은 원래 달라야 생기는 거 아닙니까.
◆ 김누리> 그러니까 이 분열과 갈등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것을 낳은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불평등이에요. 이 불평등이 지금 그걸 자세히 설명드릴 시간은 없으니까 제가 말씀은 안 드리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지금 한국 사회이고요.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라는 것은 뭐죠. 이러한 정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합법적인 절차예요. 그런데 이렇게 불평등이 극심한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지금 가장 거대하다고 하는 이 두 정당이 무슨 차이를 보였죠. 잘 생각해 보세요. 이 불평등의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은 이걸 해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되죠, 우리 사회를 보다 평등한 사회로 만들면 되는 거죠. 그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게 이제 정치가 할 일이에요. 여기서 해야 될 게 뭐죠.
◇ 김혜민> 글쎄요. 세금을 올리고 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런 일이겠죠.
◆ 김누리> 그렇죠. 그건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어느 나라에서나 이 정도의 불평등이 되면 당연히 국가가 재분배에 적극적으로 관여를 해서 증세하고요. 부유세 같은 거 도입하고요. 이걸 통해서 너무나 심각한 불평등 사회를 조정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 김혜민> 그런 부분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교수님 보시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 김누리> 아니, 지금 생각을 해보세요. 이번 선거에서 지금 말한 재분배, 증세, 부유세, 이런 걸 거대 정당에서 주장한 적이 있나요.
◇ 김혜민> 제가 금요일에 대선 꼭짓점 코너에서 증세 이야기 안 그래도 했었거든요. 세금 증세 이야기 했는데 어느 후보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야기 했습니다.
◆ 김누리> 그래서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예요. 지금 한국 사회가 이야기를 안 한 게 문제가 아닙니다. 두 개의 거대한 정패가 굉장히 서로 경쟁을 하고 대결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일 뿐이고요.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역설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는 곳인데요. 또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두 정당 간의 정책 차이가 없는, 그러한 정당이 다투고 있다는 것. 그것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김혜민> 제가 교수님 말을 좀 정리해 보면 형식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훌륭했다. 하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던진 사람을 뽑았어야 했는데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거기에 대한 답변을 주지 못했고.
◆ 김누리>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이 문제에 대해서 4명의 후보가 대결을 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후보는 심상정 후보 하나밖에 없어요. 어처구니가 없는 거죠.
◇ 김혜민> 정의당 후보 한 분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불평등 이야기 하셨으니까요. 정말 대한민국이 불평등한 거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잘 알고 그 결과 사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라는 세계적인 콘텐츠가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가 이 평등, 불평등의 개념을 너무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이게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이 부분을 좀 새롭게 불평등·평등 문제를 새로운 정부에서 개념을 세우고 해결을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새 정부에서는 이 불평등한 대한민국 바로 세우려면 제일 먼저 뭐 해야 됩니까. 증세하면 됩니까, 교수님.
◆ 김누리> 지금 오징어 게임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지금 최근에 한국에서 소위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 수준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그 주장. 지금 오징어 게임이라든가 지옥이라든가 지금 우리 학교는, 또 그 이전에 있었던 기생충. 이런 것들. 이러한 방송 프로그램을 실제로 지금 유럽 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못 봐요. 너무 잔혹해서. 제가 제 친구, 독일 교수들이죠. 이걸 한 번 보라고 했더니 못 보겠다는 거예요. 너무 잔혹해서. 그것이 뜻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러한 프로그램, 그러한 문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전 세계에 유례없는 잔혹 사회라는 걸 뜻하는 거예요. 그 정도의 잔혹한 상상력을 다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아예 상상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런 잔혹한 현실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 문화적 성공이 우리의 정치적 실패를 보여준다고 하는 것. 그것을 사실은 같이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려운 게 아니에요. 국가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초래하는 시스템이에요.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어마어마한 생산력과 효율성을 가진 경제 체제인데 이 자본주의는 두 가지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게 뭐겠어요. 실업과 불평등 문제에요. 지금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죠. 이것 때문에 사실은 근대 국가가 필요한 거예요. 근대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사회적 비극, 즉 가장 큰 게 불평등이죠. 이것에 개입해서 이걸 조정하라는 것인데 지금 한국은 어때요. 의회에 300명이 앉아 있는데 그중에 294명이 자유시장 경제를 주장하는 자들이 앉아 있어요. 그것은 두 개 양당의 차이가 없어요. 사실은. 자유시장 경제라는 건 뭐예요. 시장을 자유롭게 놔둬야 된다는 거죠.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정치 구도가 지금 한국 사회를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수준까지 만들어 놨어요. 그것 때문에 한국 자살률이 계속 세계 1위인 거고요. 또 한국이 계속 가장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나라인 거고요. 그것 때문에 아이들을 낳지 않는 것이고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되는데, 저는 이번 대선이 이러한 한국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리라고 기대를 했는데 전혀 그러한 성찰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어요.
◇ 김혜민> 한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였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이번 선거 총평을 하신다면 이번 선거의 핵심 아젠다는 뭐였습니까.
◆ 김누리>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생각을 해보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하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두고 경쟁을 했어야 돼요. 그런데 아무도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들이 내세운 것은 여야가 차이가 없어요.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차이가 없어요. 똑같아요. 이들이 왜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들이 내세운 모든 주장은 다 뭐예요. 공정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정, 이재명 후보도 공정, 윤석열 후보도 공정이에요. 이것은 이들이 전혀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공정이라는 것이 뭡니까 공정이라는 것은 추구할 가치가 아니에요. 지켜야 할 규범이죠. 당연히 공정해야죠. 지켜야 할 규범을 마치 추구할 가치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 김혜민> 지켜야 할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 대한민국은 불평등한데, 그 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사람들이 예민한 이 단어에만 정치권이 집중하고 있군요.
◆ 김누리> 집중한다기보다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간단한 문제죠. 공정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누구나 지켜야 할 하나의 규범적 차원의 개념인 것인데 이러한 공정 위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가 가능한 것이죠. 그것은 추구할 가치죠, 가치. 공정을 가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건 게임의 룰이죠. 게임의 룰이 어떻게 추구할 가치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런 꼴이에요. 이렇게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지금 너무나 불평등한 사회가 돼서 이걸 사회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까지, 이 불평등이 너무나 심각해요. 이런데 이 문제를 정치가 해결해야 된다. 이러니까 이들이 전부 한 목소리로 공정, 공정, 떠들어요. 이게 무슨 얘기예요. 공정이란 말은 바로, 그래. 너희가 이 불평등한 세계의 지배자가 되면 되잖아. 이 얘기예요. 이게 과연 답입니까 이건 완전히 게임의 룰을 내가 공정하게 해놓으니 네가 지배자가 되면 되잖아. 네가 1등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이것은 정치인들이 그야말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대한 분명한 성찰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지금 정권이 바뀌고 해도 한국 사회가 나아질 가능성은 저는 없다고 봐요.
◇ 김혜민> 오늘 그 말씀 들으려고 모신 건 아니었는데, 결론이 이렇게 났네요. 아니, 저도 교수님 몇 차례 인터뷰했고 교수님 강의도 많이 봤지만 이렇게 흥분하시고 목소리를 높이시는 건 참 낯설어요. 그만큼 지금 이 사회가 너무 답답하고 제가 사실 교수님 칼럼을 모아둔 ‘우리에게 절망할 권리가 없다.’ 이 책을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2015년도에 쓴 칼럼을 지금 썼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이 사회가 어떻게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더 퇴보했다라고 느껴지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굉장히 답답한 마음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럼 우리 정부 이야기했으니까 우리 이야기해 보죠, 교수님. 교수님께서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다,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갖췄다고 하셨지만. 그러면 우리는 이 시대에 진짜 민주주의를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지금 이 시점에.
◆ 김누리>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세계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없어요. 그러니까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정말 훌륭하고 또 실제로 많은 외국의 제 친구들도 한국 민주주의 너무 대단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거죠. 우리가 집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과연 민주적이냐 하는 거죠. 그렇지 않은 거죠. 제가 비유적으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지요. 광화문 광장에서 막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전철 타고 서서히 집에 가는 동안에 변신을 하죠. 집에 딱 도착하면 완전히 가부장적인 아비가 되는 것이고요 그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을 아주 쥐 잡듯이 들볶는 권위주의적 교사가 되는 거구요. 회사에 가면 갑질을 일삼는 상사가 된다 이거예요. 그렇다면 민주주의 어디서 해요. 우리는 광장의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가 괴리돼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 한국사회는 엄격하게 말하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에요. 민주주의자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저는 지금 한국 사회를 엄격하게 말하면 후기 파시즘 사회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후기 파시즘 사회. 다시 말하면 전기 파시즘 시대는 지났어요. 이것은 전기 파시즘의 주인공들이 이미 생물학적으로 다 소멸했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제 이 지상의 사람이 아니에요. 전기 파시즘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제도적인 독재는 사라졌어요. 그러나 그들 30년이 남겨놓은 태도로서의 파시즘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지금 한국 사회에 거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국민들은 인식도 못해요.
◇ 김혜민> 문화생활 속에 전기 파시즘의 열매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 김누리> 아니, 우리 모든 것에. 우리 태도에도 남아 있고요. 우리의 몸짓, 우리의 제스처, 이런 것들을 사회학에서는 아비투스라고 하죠. 한국인들은 화가 나면 손이 올라가잖아요. 이런 것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에 밴 거죠. 말하자면 이런 류의 폭력성, 공격성, 또 강자에게 계속 자기를 동일시하는 강자 동일시, 약자를 혐오하는 태도, 우열 의식, 이 세계를 계속 우열로 나누는 것, 그다음에 경쟁적인 사고, 또 어떤 다수에게 무조건 동조해야 한다고 하는 동조 강박. 이런 것들이 다 파시즘의 행태들이에요. 이게 우리에게는 너무나 강하게 박혀 있어요. 저는 이것을 다른 책에서는 바로 68혁명의 부재가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막고 있다. 이런 표현을 썼어요. 이것이 바로 저는 다른 면에서 보면 후기 파시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선 사실 많은 설명이 필요해요. 제가 그냥 딱 한 가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릴게요. 예를 들면 우리의 교실, 우리의 선생님들을 생각해 보세요.
◇ 김혜민> 아주 집약적으로 알 수 있겠네요.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 김누리> 지금 우리 선생님들의 경우는 전 세계에서, 특히 OECD 국가 38개국 중에서 우리의 교사들만 정치적 시민권이 없습니다.
◇ 김혜민> 할 수 없죠.
◆ 김누리> 지금 교사는 정치행위를 할 수 없고요, 국회의원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지금 독일에서는 독일 연방의회에 약 700명이 있는데요. 그중에 81명이 교사입니다. 81명. 독일 의회에서 가장 많은 직업군 2위예요. 교사가. 교사는 당연히 그가 가지고 있는 지적, 도덕적 역량, 그걸 통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러한 교사 50만 명을 지금도 열중쉬어 시켜놓고 있어요. 아무것도 못해요. 이건 어처구니없는 거예요. OECD 국가 38개국 중에서 한국 교사들만 지적인 능력이 떨어져요? 그들만 정치적 금치산자로 묶어놨어요. 이걸 묶어놓은 자가 누구입니까. 박정희입니다. 박정희.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 놓은 이런 파시즘적 관행이 아직도 그대로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국가적 수치에요.
◇ 김혜민> 그러면 그 말씀과 제 질문을 조금 연결시킨다면, 결국 민주주의자가 되려면 학교에서 정치적 교육들이 이루어져야 되고 학교에서 먼저 민주주의가 일어나야 된다. 그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오늘 핫이슈, 대선 이후에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 김누리 중앙대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이번 대선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돼서 처음 치른 선거가 아닐까 싶어요. 이제 시대와 세계가 대한민국이 원하는 과제가 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 이번 당선자.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어떤 과제를 좀 풀어야 되겠습니까.
◆ 김누리> 지금 이번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대단히 큰 역사적 사명이 주어져 있다고 봐요. 그리고 당선자가 그런 것들을 성찰하고 정책으로 반드시 구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지금 말씀드린 대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가 해방 이후에 100년 동안의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맞는 첫 번째 대통령 선거예요. 한번 돌아서서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1919년에 임시정부 형태로 건국을 했죠. 그 이후에 우리가 거쳐 온 지난 100년은 어느 근대국가도 이러한 비극적 정치사를 겪은 나라가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근대국가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비극을 남김없이 경험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식민의 역사, 분단의 역사, 냉전의 역사, 한국전쟁, 내전의 역사, 군사 독재의 역사까지 겪었어요. 이런 걸 다 겪은 나라가 어디 있어요. 유일합니다, 한국이. 그러한 100년을 거쳐서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훌륭한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뤘어요. 이제 새로운 100년은 지난 100년 동안의 비극의 세기를 보내고 이제는 우리에게도 희망찬, 성숙한 시대를 여는 100년이 돼야 된다는 거죠. 그걸 위해서 새로 뽑힌 대통령은 역사적인 사명의식을 가져야 되고요. 결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혜민>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 사실 현안 여쭤보면 지금 MB 사면권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거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통합의 관점에서 봐야 된다. 어떤 사람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를 되돌리는 거다. 오늘 청와대 회동도 무산이 됐는데 이런 부분들은 어떻게 봐야 됩니까.
◆ 김누리> 그것은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하신 건데요. 지금 우리 역사 안에서 보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 100년을 돌아보면 지금 우리는 과거 청산이 안 된 나라, 하면 일본을 많이 이야기하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실은 일본보다도 더 과거 청산이 안 된 나라예요. 단 한 번도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한 역사가 없어요. 식민의 과거, 아까 말씀드렸죠. 청산이 된 적이 있나요. 우리처럼 이렇게 식민시대 36년을 거치고서도 거의 식민 부역자들을 한 명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이런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 일본군 장교를 했던 자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고요. 그 딸이 또 대통령이 되는, 세상에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이후에 한번 따져보세요. 수많은 양민 학살이 있었고요. 그 양민 학살의 역사. 그 다음에 군사 독재 하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법살인, 넥타이를 맨 살인자들이죠. 사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죽인, 그게 얼마나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빈,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끔찍한 한 세기를 보내고 나서 그 과정에서 과거 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런 나라가 없다는 걸 그야말로 잘 기억할 필요가 있고요. 그때마다 똑같은 논리입니다. 국민통합, 이런 논리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과거 청산을 오히려 막아내는 역사가 반복되다 보니까 말하자면 응징이 없는 역사가 돼버린 거죠. 그게 한국사회의 정의라고 하는 가치가 완전히 소멸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 김혜민> 교수님, 전에 칼럼의 진정한 적폐 청산 이야기하시면서 독일 사례 드신 거, 저도 굉장히 재밌게 봤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청취자분들도 한번 찾아보시고요. 이 책 제목, ‘우리에겐 절망한 권리가 없다.’ 이 제목처럼 청취자분들에게 이 제목 자체가 되게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가 되든 대한민국이 정말 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여기까지 왔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수많은 고난을 겪어서 왔는데 잘 될 거다. 저는 그런 희망을 갖고 지금 기대하고 있고요. 새 정부에. 저는 국민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국민들께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 김누리> 예. 제가 그 책 제목도 ‘우리에게는 절망할 권리가 없다.’ 이렇게 돼 있는데요. 볼프 비어만이라고 하는 독일의 시인이 있어요.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들어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에요. 역사는 나선형을 그리면서 발전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현재의 국면이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나선형의 원이 후방을 향하고 있는 그 단계라고 봐요. 이 나선형의 원이 후방으로 간다고 하는 것은 다음에 더 큰 원으로, 전방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절망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저는 그래서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대선에 나온 세 후보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런 겁니다. 지금 윤석열 당선자의 경우는 어쨌든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았어요. 저랑 같은 학번입니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거예요. 그 시절이라고 하는 게 저는 대학 다니는 내내 육군 소장 출신의 군사 독재자에 의한 경험을 했어요. 그 과정이 우리의 세대적 정체성을 만든 겁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역사를 퇴행시켜서는 안 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요 지금 이재명 후보는 정말 아쉽죠. 아쉽습니다. 그런데 저는 0.73% 때문에 아쉬운 게 아니에요. 이재명 후보의 경우는 정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어요. 이재명 후보의 경우는 정말 자기가 원하는 세상, 자기가 꿈꾸는 사회, 이것을 펼치지 못했어요. 그것을 계속 억눌렀습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저는 앞으로 그러한 부분을 스스로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펼치는 과정에서 더 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고요. 마지막으로 심상정 후보께는 이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이상주의자가 좌절한 만큼 발전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심상정 후보에게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김혜민> 감사합니다. 날카로운 말도 위로가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한 인터뷰였습니다. 김누리 교수님, 고맙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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