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맛집] 노비에 다문화가정 출신 장영실이 조선 최고의 발명가가 된 이유?

[역사맛집] 노비에 다문화가정 출신 장영실이 조선 최고의 발명가가 된 이유?

2020.01.16. 오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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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뉴스FM, 조현지입니다’]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12:20~14:00)
■ 진행 : 조현지 아나운서
■ 대담 : 김준우 신일고 역사교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역사맛집] 노비에 다문화가정 출신 장영실이 조선 최고의 발명가가 된 이유?





◇ 조현지 아나운서(이하 조현지)> 위인전이나 사극 속에 등장하는 역사 속 주인공들을 보면요. 하나같이 재주가 많은 팔방미인이었습니다. 역사에 약간의 과장이 보태진 걸까요? 아니면 한 사람의 재주를 시대가 알아본 걸까요? 2020년에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역사맛집> 역사셰프, 신일고 김준우 선생님과 함께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준우 신일고 역사교사(이하 김준우)>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조현지> 이제 겨울방학이다 보니까 매번 스튜디오에서 함께해주셔서 너무 기쁜데, 개학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요?

◆ 김준우> 맞아요. 1월 말에 개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조현지> 학생들은 개학을 미루고 싶어 하고, 방학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 김준우> 사실 교사 입장에서 역시나 개학은 좋지는 않죠. 그런데 다른 의미로써 좋지 않은 거라고 할까요? 개학을 하면 방학 동안에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새로운 수업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요. 그런 것들이 긴장되잖아요. 뭔가 새로운 시작? 이런 의미에서의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 이런 것들이 있는 거죠.

◇ 조현지> 특히나 겨울방학을 했다가 개학을 하게 되면, 아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학교가 달라지는 친구들도 있고, 한 학년이 바뀌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될까. 이 과목은 또 어떤 선생님한테 배우게 될까, 이런 기대감, 설렘, 걱정이 교차하는 게 겨울방학 끝내고 학교에 가는 그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 김준우> 학생들도 그렇지만, 사실 교사들도 그래요. 내가 몇 학년을 하게 되는가, 그리고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인가 하는, 역시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기대감과 두려움을 약간씩은 다 가지고 있죠.

◇ 조현지> 마찬가지네요. 오늘도 맛있는 역사 이야기할 텐데요. 오늘은 어떤 역사를 요리해볼까요?

◆ 김준우>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 역사 영화가 있더라고요. 조선시대 때 세종과 장영실을 다룬 영화, 혹시 보셨나요?

◇ 조현지> 아니요. 저는 아직 못 봤어요.

◆ 김준우> 이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래서 오늘 장영실에 대해서 다뤄볼까 합니다.

◇ 조현지> 영화 <천문> 이야기를 해주신 건데요. 사실 장영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자격루, 측우기, 이런 발명품들이 떠오르고, 조선시대에 천재 과학자, 발명가, 이 정도 알고 있는데요. 영화 속에서는 이런 발명품보다도 세종과 장영실의 우정이 주로 다뤄졌다고 들었거든요?

◆ 김준우>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으로 장영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최고의 과학자이고, 그리고 발명품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요. 이 영화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그런 과학자적인 측면도 있지만 세종과의 관계, 약간의 브로맨스, 이런 것들을 강조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역사 속에서의 기록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어요. 세종실록에 “매일 강무할 때에는 나의 곁에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매일 옆에 두고 명령도 대신 전해주고, 이런 각별한 사이였음이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이것을 토대로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는 보통 관계는 아니었겠구나, 이렇게 추론을 해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조현지> 어떻게 보면 둘 사이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 그런 스토리인데요. 그런데 장영실이 노비였다면서요?

◆ 김준우> 네. 장영실의 집안을 보면 이런 식의 이야기가 쓰여 있어요. 아버지는 원나라 사람. 원나라라는 건 중국 사람이거든요? 몽골족이잖아요. 원나라 사람으로서 지금 현재 항저우 지역의 출신 사람이다. 그런데 고려 말에 귀화한 것이죠. 우리나라에 귀화해서 살면서 장영실의 어머니가 관노예요. 노비입니다. 그런데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사람의 신분은 어머니 신분을 보통 따라가거든요. 그래서 장영실의 신분도 천한 노비의 신분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죠.

◇ 조현지> 그러면 지금으로 치면 다문화 가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 건가요?

◆ 김준우> 그렇죠. 아버지가 중국, 이쪽에서 귀화를 했으니까 다문화 가정에 신분은 가장 낮은 노비 신분이었다는 겁니다.

◇ 조현지>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장영실이 과학적 재능을 가진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세종이 알게 된 걸까요?

◆ 김준우> 장영실이 소속되어 있는 관청이라고 해야죠. 어머니가 관청 노비니까요. 그게 동래헌이에요. 부산 쪽에 있습니다. 그쪽 지역에서 있었는데 나름 유명했나 봐요. 그래서 세종대왕 때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였던 태종 이방헌 때부터 장영실이 워낙 손재주가 좋다는 소문이 나서 관청 소속 노비다 보니까 중앙에 올라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세종대왕이 왕이 되기 전부터, 충녕대군이었을 때부터 장영실을 알았고, 장영실의 솜씨 좋음을 알고 왕이 된 뒤에 그를 중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 조현지> 그렇군요. 이미 그전부터 능력이 소문이 난 그런 상태였는데요. 조선시대는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어요. 그러니까 지금 장영실이 노비였다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데요. 그런데 세종은 오로지 장영실이 가진 재주만 보고 인재를 등용한 거잖아요. 그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거 아니었을까요?

◆ 김준우> 아무래도 조선 초기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신분 낮은 사람들이 올라간 케이스들이 종종 있기는 했어요.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혼란기를 겪다 보니까요. 그런데 장영실뿐만 아니라 다른 기록을 살펴봐도 세종대왕이 인재를 등용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능력을 굉장히 중요시여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인물이 있는데 구설수가 있어요. 논란이 조금 있어요. 그런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면 그래도 그 인물을 사용하는 그런 모습들이 꽤나 많이 보입니다. 장영실도 이 능력이 훨씬 출중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으니까요. 세종이 즉위하자마자 중국에 유학을 보내 버립니다. “내가 천문에 관심이 많은데 지금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천문이 발달한 나라는 중국이다 보니 중국에 가서 그 천문을 익히고 돌아와라.” 계산하거나 이런 방법뿐만 아니라 관측하는 기구도 되게 정교하거든요. 너는 손재주가 뛰어나니까 그런 관측하는 기구를 보고 와서 그대로 모방해서 우리나라에 와서 제작을 하라고 해서 세종 3년에 장영실을 비롯한 몇몇 사람을 중국에 보냅니다.

◇ 조현지> 그러니까 나라에서 투자를 한 거네요. 그 이후 장영실이 배워서 돌아와서 어떻게 됐을까요?

◆ 김준우> 돌아와서 천문 기구를 많이 만들게 됩니다. 하늘을 관측하는 혼천의라든가, 또 여러 가지 기구들을 만들게 되는데요. 대표적인 기구 중 하나가 자격루를 만들게 돼요. 이 자격루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 조현지> 시계요?

◆ 김준우> 그쵸. 자격루는 물로 움직이는 시계거든요. 루를 물 샐 루(漏) 자를 써서요. 물시계가 되는데, 자격이라는 말 자체가 스스로 친다, 울린다는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자격루는 물시계인데, 이 물시계보다 더 의미가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시계는 옛날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딱 보면 지금 몇 시가 되었구나, 하고 관리가 보고 알려줬어야만 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계속 지켜보기도 힘들고, 아차 싶으면 또 때를 놓치는 거예요. 그러면 정확한 시간이 안 되니까 스스로 알려주는 기계를 만든 게 바로 이 자격루라고 하는 자동 시보장치라고 이야기를 하죠.

◇ 조현지> 지금 자격루, 측우기,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까 내가 알고 있었던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영실의 발명품을 지금 다른 청취자 분들께서 “측우기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라고도 해주셨는데요. 자격루나 측우기뿐만 아니라, 많았잖아요?

◆ 김준우> 많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시계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일단 측우기 같은 경우에는 장영실이 발명했다고 많이 알고 계시는데, 사실 요즘에는 장영실이 측우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현재 남아있지는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정말 장영실이 만든 걸까? 하는 논란이 조금 있고요. 심지어는 측우기와 비슷한 형태를 세종의 아들이었던 문종이 관심을 가지고 제작한 게 있거든요. 그래서 측우기는 문종이 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도 나오고는 있습니다.

◇ 조현지> 학계에서는 아직 논란이 있나 보네요.

◆ 김준우> 그래서 이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영실이 만든 것은 시계에요. 아까 이야기했듯 물이 떨어지는 것들, 그 시간을 통해서 시간을 알려주는 이런 자격루가 있고요. 그다음에 하늘을 관측하는 기계인 혼천의가 있습니다.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거죠.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다 보면 시간을 알 수가 있거든요. 보통 조선시대 때에는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을 관측하면서. 만약에 어두워서 그림자가 안 지거나 별을 볼 수 없으면 전혀 시간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만들어진 게 자격루. 그것은 전혀 상관이 없이 시간을 알 수가 있는 거죠.

◇ 조현지> 그렇군요. 전반적으로 발명품들이 여러 개가 있지만 결국은 다 시간을 알기 위한 시계였다는 건데요. 장영실이 이렇게 유학까지 세종이 보내주고, 갔다 와서 이런 훌륭한 성과들을 내다보니까 쭉쭉 승진을 했다고 알고 있어요.

◆ 김준우> 그렇죠. 세종이 시키는 것들을 다 잘 이루어내고 자격루를 만들었을 때 세종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제 자격루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했지만 만약 장영실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상을 줘서 승진을 시키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신하들한테 물어봐요. 그랬더니 신하들의 반대라 어마어마하죠. 천민 주제에 어디 감히 관직을 얻습니까? 이런 식을 반대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례를 살펴보니까 관직을 준 사례가 있더라, 라고 해서 관직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뭐를 주게 되냐면, 상의원 별좌의 관직을 주게 돼요. 이게 5품의 관직입니다. 조선시대 때 관직 등급이 1품부터 9품까지 있거든요. 오늘 날 공무원도 1급 공무원, 또 9급 공무원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약 5급 공무원, 행정고시 패스하면 5급 공무원인데 그 정도 급이 되는 관직을 내려준 것이죠.

◇ 조현지> 처음부터 파격적인 그런 대우가 이루어진 건데, 그런데 그 이후 승승장구하던 장영실의 말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세종의 마음이 바뀐 걸까요?

◆ 김준우> 계속해서 승진을 해요. 5품부터 시작해서 그다음에 승진한 곳이 어디냐면 호군, 그다음에 대호군이라고 해서 최종적으로는 3품까지 올라갑니다. 이건 엄청 높은 거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또 이런 기록이 나오죠. 장영실의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 왕이 탈 가마를 제작하는 총 책임자가 돼요. 그런데 왕이 타기도 전에 이 가마가 부서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세종대왕은 사실상 약간 비만이었거든요. 고기도 되게 좋아하고 해서 덩치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가마를 탔는데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부서져서 다치고 이랬으면 진짜 큰일이 나는 건데, 문제는 타기도 전에 부서졌어요. 그래서 왕은 다치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변 신하들이 득달 같이 달려든 겁니다. 아니, 왕이 비록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빨리 장영실을 탄핵시키고 벌을 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평소 세종 같았으면 별 일 일어나지도 않았고, 만들다 보면 부서질 수도 있고 다시 만들면 되는데 하면서 능력이 출중하니 계속 쓰겠다고 하면서 벌을 감해주고 이럴 만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때는 세종이 그렇지 않았어요. 벌은 감해주기는 하는데 100대 맞을 것을 80대 맞을 것으로 조금 감해주고 끝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후 장영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요. 이것을 두고 역시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하죠. 약간 명나라에서 장영실이 하고 주도하고 있었던 천문 프로젝트, 물론 세종이 주관하기는 했지만요. 이것에 있어서 문제 삼고 들어오는 것을 일찍부터 장영실이 쉴드를 친 것이다. 보호막을 쳐서 우리 이렇게 처벌했다고 해서 장영실을 보호하려고 한 것이다, 라는 의견도 있고요. 아니면 그 프로젝트가 끝이 났기 때문에 더 이상 장영실이 필요가 없었다고 해서 내친 것이다,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조현지> 그 이후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보니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펼치고 유추를 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가지고도 영화나 드라마도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서 장영실이 만들었던 그 발명품들이 결국은 시계였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세종이 어쨌든 시계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으니까 장영실도 이런 것을 발명하게 된 거 아니에요? 왜 그거에 그렇게 집착이라고 할까요, 집중을 했을까요?

◆ 김준우>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왜냐하면 세종대왕이 시간에 집중했다는 것은 오늘 날에는 그냥 시계를 보면 시간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시계가 없잖아요. 그러면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뭐냐면 하늘의 별들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게 중국에서는 국가기밀입니다. 이거는 황제만이 아는 국가기밀이고, 황제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 별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계산하는 것은 황제만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즉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계산한 것을 받아서 쓸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그게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직접 관측해서 계산한 것을 토대로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도록 하겠다, 라는 거죠. 즉 하늘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은 왕권과 관련이 있고요. 두 번째로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는 자립하겠다. 세 번째로는 백성들에게 농사를 언제 지을 수 있는지 정확하게 절기를 가르쳐주겠다, 라고 하는 세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 조현지> 이게 정말 중요한 내용이네요. 오늘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또 세종이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기록에 없는 부분들, 과연 세종과 장영실 사이에는 어떤 일화들이 있었을지 궁금해지기는 하는데요. 오늘 역사맛집, 오늘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지금 청취자 분께서 “세종과 장영실 이야기, 잘 듣고 있어요. 역사 이야기 좋네요,” 라고 보내주셨어요.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많이 알고 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맛집, 오늘도 역사셰프 신일고등학교 김준우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준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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