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재도약' 상생의 길

광복 70주년 특집, '재도약' 상생의 길

2015.08.15. 오후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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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앵커]
저희 YTN이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특별대담을 마련했습니다. 그제는 통합을 주제로 했고요. 어제는 통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주제는 재도약, 마지막입니다.

오늘 저희가 초대한 분은 대한민국 지성을 대표하는 원로 철학자 그리고 한세기 가까이 살아오신 분입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건강하시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올해 실례지만 96세이신 걸로 들었습니다. 굉장히 정정하신데요,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시길래.

[인터뷰]
열심히 일하는 동안에 건강하죠.

[앵커]
지금도 계속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어떤 일을 집필하고 계십니까?

[인터뷰]
여전히 하는 일인데 강연하고 글 쓰고 출판하고 책을 내고 그런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특히 1960년대, 70년대 우리 젊은이들이 선생님이 쓰신 저술들을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었고 그걸 보면서 성장을 했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96세시니까 지금 광복 70주년이니까요. 광복 맞이하셨을 때 26살 청년이셨잖아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평양에서 맞이하셨다고요? 그때 어떠셨습니까? 기억이 나십니까?

[인터뷰]
글쎄요,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될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3.1절 다음 해에 태어나고 또 26살에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가 사는 고향이 지금은 평양특별시지만 그때는 평양에서 10km쯤 떨어진 농촌으로 생각하고 또 그곳에서 살았는데요. 공교롭게도 지금 우리가 김일성이라고 부르는 김성주와 앞뒤 마을이었습니다.

만경대가 여기에 있고 앞뒤 마을이었는데 해방되고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겠죠. 그러니까 9월쯤 되는 것 같은데. 동네에서 김성주가 고향에 돌아왔으니까 환영하는 조반을 같이 한다고 하는데 가자고 해서 저도 참가를 했어요.

그런데 다 모여서 식사를 끝내고 앞으로 이제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하겠느냐.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그때 김성주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랬더니 첫째는 친일파 숙청. 둘째는 토지 몰수화, 국유화. 셋째는 재산을 전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의 국유화. 그다음에 지주 부자들을 숙청하는 것. 그렇게 7가지인가, 8가지를 꼭꼭 순서대로 얘기하대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건 저 사람의 개인 생각은 아니고 어떤 조직을 대변하는 얘기인데 공산당원이라거나 그렇게 생각을 했죠.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이 저렇게 자신있게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자기 혼자가 아니고 그때 장군이 이끌어 가는 군정의 뒷받침 같은 것이 없이는 저런 이야기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불안한 생각을 가지고 그날은 헤어졌고요.

그리고 아마 한 달쯤 지났을 거예요. 동네 어른들이 김일성 장군 환영회를 한다고 하는 데 가자고 그날은 그만두겠다고 해서 안 가고 어른들이 다녀오게 됐어요. 그런데 그 당시 평양에 가게 되면 서울서 온 소식을 잘 모르고 있으니까요.

전해 들은 얘기가 벽보를 자꾸 붙여줬어요. 그런데 어디를 가든지 똑같은 벽보가 있는데 앞으로 우리 한국을 이끌어갈 사람이 누구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이승만, 그다음 서재필, 김구, 김일성 장군. 이 네 사람은 언제나 확정적이고. 나머지는 안재홍 이런 사람이 떠오르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 평양에서 생각하기에는 저분들 가운데 서울로 갈 사람은 다 있는데 우리 평양으로 올 사람은 김일성 장군밖에 없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중반까지 즈음의 나이가 든 분인데 그 분은 평양으로 올 것이다.

[앵커]
박사님이 말씀하신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조금 전 말씀하신 김성주와 다른 인물을 말씀하신 거죠?

[인터뷰]
그렇죠, 벽보가 그렇게 붙는 거죠. 그래서 벽보가 많이 붙고 있는데 김일성 환영을 한다 하니까 모조리 갈 거 아니에요. 다 모여서 환영하는 데 가는데 환영장에 가면, 나는 안 갔지만 조만식 선생이 첫째로 나오고 김성주가 나왔어요.

김일성이 아니라 김성주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너무 젊다. 우리가 기대했던 김일성하고는 다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과 마을 주변 사람들은 가보고서 우리 동네 성주 아니야. 그렇게 돼서 나보고 와서 하는 말이 김일성 장군이 우리 성주래. 그렇게 얘기가 됐죠. 그래서 사회를 흘러가고 변화가 되대요.

[앵커]
흥미진진한데요. 그러니까 김성주, 후의 김일성 주석하고는 7년 정도 김일성이 더 나이가 많고 고향은 비슷하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 7년 위니까 그때 김성주는 33살 정도였겠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보니까 평양을 비롯한 이북 사람들은 조만식 선생이 우리 이사회를 이끌어갈 것이다. 기대와 존경심은 90%까지 올라가 있고요. 북한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요.

또 진짜 김일성이 오게 되면 두 분이 같이 일할 거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김일성이 젊은 사람이 나타나니까 누군가 하다가 곧 공산당의 앞에 선 사람이다. 그리고 소련에서 밀어준 사람이다라는 걸 아니까 김일성이 집권을 하려고 하는 건 군정에서 다 지지를 받아도 조만식 선생이 있는 한은 자기는 거기에 올라갈 수 없거든요.

그래서 공산당에 반대되는 사람들을 먼저 숙청을 하고 조만식 선생이 만든 조선민주당 간부들 숙청하고. 조만식 선생은 숙청하거나 그럴 수 없으니까 평양 한가운데 고려호텔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연금시켰어요.

그리고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만 있게 하니까 소식을 모르는데 사모님이 한 달에 한 두 번쯤 면회를 하러 오는데 여기에 와서 사모님을 자주 만났어요.

만났는데 사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한 달에 한두 번씩 면회를 갔는데 마지막 갔을 때는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한 번 더 오고 이제는 오지 말라고. 그래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했더니 세상이 자꾸 변하는데 그대를 잊겠느냐고. 아픈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에 갔더니 하시는 말씀이 뭔고 하니 나나 우리 나이 든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우리 아들들은 여기 있으면 안 되니까 데리고 3.8선 넘어서 가라고 그러면서 커다란 흰 봉투를 하나 내줬어요.

이게 뭡니까 했더니 가보라고. 봉투를 받아서 집에 와서 뜯어보니까 당신 머리카락을 잘라서 봉투 속에다 넣었거든요. 그러니까 사모님이 깜짝 놀랐거든요.

당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계시고 이 다음에 소식이 전해지면 장례식을 전하라 해서 머리카락을 넣었구나. 그리고 와서 세상 떠났다는 걸 확인하고 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례식을 치렀죠.

저는 그런 생각을 할 때 지금 8.15 전우 이야기를 제가 두 가지를 얘기했는데 우리가 공산주의 철학과 사상을 너무 모르고 있던 것이 통일을 늦췄다 하는 것하고 우리가 화합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지금도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화합에는 몇 가지 국민의 공감된 의식구조가 있어야 돼요.

첫째는 나라 걱정을 먼저 하는 사람들은 통합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나라 걱정보다도 이데올로기 걱정, 민족과 국가를 이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하는 극좌파 사람들의 국가는 이념 밑에 있다고 하는 것. 그 사람들은 계급 밑에 있고 그렇잖아요.

그걸 버리지 않으면 통일은 어렵죠. 그다음에 두 번째 우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내 정권력 때문에 국가를 이용하거나 국민을 이용하는 건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드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지금 정치 하는 사람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내 정권에서 국민을 이용하려고 하지 내 정권을 양보하더라도 국민이 행복하면 내놓겠다, 그건 해방 때는 다 가졌던 생각인데 지금 없습니다.

그게 첫째 문제고요. 우리 사회가 금년 70주년을 계기로 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서 선진국가로 가야겠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제일 겪고 있는 게 무엇인고 하니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들이 법치사회만이루어지면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법치사회 가지고는 안 되고요. 법치사회 위에 질서사회가 있어서 되는 건데 지금 그게 없습니다.

[앵커]
질서가 법치 위에 있어야.

[인터뷰]
그렇죠, 예를 들어 말하면 교육이라든지 문화라든지 모든 사회는 질서가 움직이는 거지 법이 움직이는 건 그걸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죠. 그러니까 법은 왜 있느냐.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을 억제하기 위해 있지 질서사회를 키워주기 위해 있다는 생각을 지금도 못 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 전부, 경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법에만 안 걸리면 나는 잘못이 없다. 법에만 벗어날 수 있으면 나는 어디를 가든지 정당하다. 그건 아주 잘못입니다. 법은 몰라도 양심은 알잖아요. 그래서 법치사회가 질서사회로 올라가야 되고요.

[앵커]
질서사회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은 양심과 도덕입니까?

[인터뷰]
윤리죠, 윤리성이죠. 그리고 윤리적인 애국적인 가치관이죠.

[앵커]
그것을 어떻게 하면 고양시킬 수 있겠습니까?

[인터뷰]
그 생각을 지금 우리가 할 때 말이죠, 무엇이 지금 우리에게 부족하냐? 내가 국가로부터 뭘 받아 가지려고만 생각하지 내가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 무엇을 주겠다, 지금 그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노사문제, 세금 문제 항상 문제 아니에요? 그런데 해방을 그때 맞이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문제가 아닌데 지금 문제가 돼요.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마는 올림픽에서 마라톤에 나갔던 분이 손기정 선수 아니에요.

제가 종로에 있는 세무사를 만나러 갔더니 그분이 손기정 선수 다녀가셨는데 보셨어요 해서 나는 못 봤다고 그랬어요. 지금 다녀가셨다 그래요.

그 할아버지가 왜 오셨냐 했더니 그 할아버지 뵙고 나니까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요. 무슨 얘기세요, 그랬더니 그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하신 말씀이 내가 어디서 상을 좀 받았는데 상금도 좀 받았다고. 그런데 세금을 내고 써야 돼서 세금을 먼저 내려고 왔는데 그거 얼마나 어떻게 세금을 내는지 좀 도와달라고. 그래서 선생님 연세도 많으시고요.

고정수입도 없어서 세금 안 내도 괜찮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노. 내가 평생 대한민국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아왔는데 세금이라도 내야지. 그래서 계산해서 이만큼 내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보시더니 그거밖에 안 되나. 이거면 됩니다 했더니 좀 많이 나게 해 줘. 공짜로 생긴 돈인데.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거 아니야. 그래서 많이 냈더니 됐어, 그래야지. 그걸 다 처리하고 복도를 쭉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데 세무사가 가서 배웅하고 나와서 보니까 이거 나라 없이 산 때 어른들은 다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우리는 있는 나라에서 즐겁게 살았으니까 더 즐거워지려고 그랬는데 저분들은 참 나라 먼저 걱정하고 내 걱정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게 꿈 같은 얘기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그거 있으면 70년 안 걸렸어요. 그거 있으면 모든 화합은 돼요. 그래서 표면적인 화합을 자꾸 강조하지 말고 국가와 민족을 먼저 위하자고 하는 생각으로 아마 화합하는 것, 그게 아마 지금 우리 민족병을 치료하는 최대 과제일 것 같아요.

[앵커]
통합이라는 것이 정치인들한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각자각자 먼저 시작을 해야 되는 것이군요. 그래야 가능하군요.

[인터뷰]
전체죠, 사회에 여러 가지 병이 있잖아요. 그 책임을 우리 교육자와 종교인들의 책임이지 정치 책임은 아니에요. 우리가 정부가 잘못한다, 지방자치가 잘못한다. 그러지만 따지고 보면 교육을 잘못했구나. 또 우리 신부님이나 목사님이나 스님들이 국민들의 양심을 일깨워주는 책임을 못 가졌구나. 그걸 먼저 내가 가져야지 이 책임은 정부에 있다라는 건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건 무책임한 일이에요. 나라 위해서 하는 생각이죠.

[앵커]
저도 개인적으로 선생님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선생님 그래서 우리가 70주년, 70년을 보내왔고 재도약을 해야 되는 그 시기에 와 있는데 선생님이 꿈꾸시는 도약한 대한민국, 우리 조국의 미래, 어떤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도약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인터뷰]
이제 보면 통일을 거쳐서의 도약인데 통일까지는 아무래도 연장이 되겠죠. 통일 거쳐서 도약을 해야겠는데 다른 나라를 봤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세계에 세 가지 큰 사회적 흐름을 가진 나라가 있는데 영국과 미국을 경험주의국가라고 해요.

경험주의국가인데 이 사람들은 통합을 대화를 통해서 통합을 해요. 그다음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이 사람들은 합리주의사회라고 하는데 통해서 통합을 해요.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가 무엇인고 하니 혁명과 투쟁을 통해서 통합하겠다고 해요.

그러면 세 사회 가운데 분단이 없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경험주의사회예요. 분단 자체를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어리석은 일을 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 공산주의사회를 하게 되면 하나가 되는 길이 없어요.

역사가 생긴 이래 이제까지 없어요. 여기서 정가운데 합리주의는 뭔가 하니 토론해서 이기면 따라가주게 되어 있어요. 셋 가운데 그러면 통합을 생각하고 통합을 하는데 어느 방법을 택해야 하는데 정치, 경제는 경험주의를 택해야 돼요. 그래서 대화를 해서 상대방의 얘기도 내가 듣고 내 이야기도 상대방에게 전하고 더 좋은 것이 뭐냐?

더 좋은 건 이거다. 그래서 따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나도 철학분야인데요, 미국이 오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큰 나라로 올라간 건 대화 교육을 100년 동안 했거든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그건 대학 가도 토론회라 가지 강의라고 안 그래요. 유럽 가면 전부 대화거든요. 대화를 잘 하는데 우리가 그걸 몰라요. 독일이 전쟁에 지고서 분단됐을 때 서독이 대화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거기 사람들이 대화로 시작해서 통합을 했거든요. 셋 가운데 어느 편을 택하느냐. 역시 경험주의대화를 해야 돼요. 그다음에 또 하나 생각하는데 전세계가 분단에서 하나가 되는 그 순서가 다 있어요.

첫째는 뭐인가 하니 문화가 먼저 교류돼요. 사람이 왔다갔다 하고. 그다음에 경제가 교류돼요. 마지막으로 정치가 교류되는 거예요. 남북관계 지금 지혜롭지 못했던 것이 뭐냐하면 정치가 앞장섰어요.

그러니까 정치가 앞장서니까 자꾸 갈등이 생기고 싸움을 하고. 지금도 그렇잖아요. 싸움을 하는데 그거보다 먼저 하는 게 무엇인고 하니 운동선수도 다녀오고요. 문화인 교류가 자꾸 깔려서 우리도 모르게 하나가 되고 그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게 경제 교류예요.

경제를 하고. 그다음에 정치적인 통합은 그다음에 오는 거고. 그 순서를 좀 앞으로는 지혜롭게 지나갔으면 통합과 도약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광복 70주년 특별대담으로 우리 사회의 연로이시고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교수 말씀 들었습니다. 온고지신이라고 과거를 역사를 특히 해방 전후의 역사를 알아야 우리가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말씀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고요.

그리고 선생님 말씀을 통해서 역사를 꿰뚫는 혜안 같은 걸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 스승 역할 계속 건강하게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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