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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78학번 시위 참여자 "부마항쟁, 이제 정말 대한민국 역사가 됐다"
Posted : 2019-09-17 19:13
부산대 78학번 시위 참여자 "부마항쟁, 이제 정말 대한민국 역사가 됐다"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 대담 : 정광민 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부산대 78학번 시위 참여자 "부마항쟁, 이제 정말 대한민국 역사가 됐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1979년 10월 16일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항거해 부산과 마산의 시민과 학생들이 일으킨 대규모 민주화운동,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4.19,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우리나라 4대 항쟁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만,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못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평가받게 됐습니다. 부마항쟁연구소 정광민 이사장과 함께 부마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 남은 과제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이사장님, 나와 계십니까?

◆ 정광민 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이하 정광민)> 네, 반갑습니다.

◇ 이동형> 부산, 경남 지역 시민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일단 축하드리고요.

◆ 정광민>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국가기념일이 지정되고, 안 되고, 이게 어느 정도 중요한 문제일까요?

◆ 정광민> 그렇습니다. 부마항쟁 40년이 되었는데, 사실은 부마항쟁을 기억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부마항쟁은 잊힌 역사였는데, 이것을 다시 기억하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제도적 인프라가 국가기념일 지정입니다. 그래서 국가기념일을 통해서 우리가 잊었던 역사, 완전히 우리가 잊어버린 역사를 다시 되찾는, 그래서 부마항쟁이 정말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는, 그런 전환점이 되는, 그런 조치라고 생각하고 저희들은 대단히 반갑게 생각합니다.

◇ 이동형> 부마항쟁, 박정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작점이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마사태’로 불렸습니다?

◆ 정광민> 그렇습니다. 여전히 우파적인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부마사태라고 하고요. 전두환 같은 경우는 자기 회고록에 부마사태라고 이렇게 적혀 있고요. 그래서 부마항쟁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써 이것이 정당하게 평가 받는 것조차도 참으로 굴곡이 많은 그런 세월이었습니다.

◇ 이동형> 당시 부마항쟁은 어떤 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를 했었습니까?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었나요?

◆ 정광민> 처음 시작은 부산대학에서 학생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가두로 진출하고, 시내로 나가서 시민들과 같이 결합하면서 그야말로 시민항쟁으로 이게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부마항쟁,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학생들로부터 시작해서 일반 직장인, 그다음에 도시 서민들, 화이트칼라라든지, 이런 층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박정희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그런 민주화 투쟁을 했었습니다.

◇ 이동형> 처음에는 부랑아, 깡패, 거지, 사회 부적응자가 일으킨 폭동이다, 이런 식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김재규 중정 부장이 직접 내려가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학생들이 중점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방금 이사장님 말씀처럼 시민들이 합세해서 독재정권을 타도하자, 이렇게 시민사회 운동으로 완전히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렇게 해서 보고가 올라간 것 아니겠어요?

◆ 정광민> 맞습니다. 차지철이나 박정희는 이것을 폭동, 소요사태, 이런 식으로 몰아갔습니다만, 김재규 부장이 현지를 시찰하고 이것은 민란이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나 차지철의 대처방안. 강경, 무력에 의한 진압방식으로는 굉장히 더 많은 유혈 피해 사태가 일어난다고 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을 건의를 했습니다만, 결국은 김재규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 이동형> 당시에 시위하면서 다치신 분들도 많고, 희생된 분들도 계실 텐데 지금까지 국가기념일로 지정이 안 되고 해서 그분들이 제대로 된 보상이나 이런 것은 받지 못했습니까?

◆ 정광민> 그렇습니다. 지난 40년 동안에 부마항쟁에 대한 진상규명조차도 대단히 늦게 시작됐고요. 지금 부마항쟁 진상규명위원회가 있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박근혜 정부 때 처음으로 만들어졌는데, 그게 진상규명이나 이런 것이 제대로 되지는 못 했고요. 다행히 문재인 정부 하에서 위원들이 새롭게 바뀌고 하면서 상당히 활성화되고, 그러면서 부마항쟁 관련자 인정 범위도 넓어지고, 또 얼마 전에 보도가 되었습니다만, 사망자도 처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 점에서는 저희들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보다 많은 피해자들이 정당하게 보상을 받고, 그렇게 되기를 저희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이사장님도 당시 부산대 78학번으로 시위에 참여하셨는데, 당시 경찰의 진압과정은 어땠습니까?

◆ 정광민> 경찰의 진압이나 이런 것은 대단히 원시적이고, 폭력적이고, 그랬고요. 또 연행자들이 거의 1500명가량 되는데, 수사과정에서도 박정희 10.26 이전에, 김재규 부장의 총탄으로 피살되기 전까지는 중앙정보부가 거의 수사를 진두지휘했는데, 굉장히 수사가 가혹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고, 40년이 지났습니다만, 아직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 이동형> 당시 피해를 보신 분들이 불법 구금 및 가혹 행위, 고문 같은 것이 당연히 있었겠고요. 그리고 원치 않게 감옥에 갔다 오신 분도 계실 텐데, 지금 부마 민주항쟁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계신 겁니까?

◆ 정광민> 네, 지금 현재는 부마항쟁법인데, 이거는 광주처럼 특별법이 아니고요. 일반법인데, 법적으로 제대로 된 조사활동을 하고, 또 보상을 하고 하는데는 저희들은 애시당초 특별법을 요구했습니다만, 국회라든지, 이런 데서 정치적인 관심들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일반법으로 되었습니다. 특별법도 특별법이지만, 우선 지금 당장 부마항쟁법이 활동시한이 올해 연말이면 만료가 되는데, 저희들은 계속적인 진상규명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선 빨리 시한을 연장하는 법 개정이라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이래서 저희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관계 국회의원들에게 만나서 협조 요청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 이동형> 대답이 있었습니까?

◆ 정광민> 일단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해보겠다고 해답을 주었습니다.

◇ 이동형> 부마항쟁 보상법이네요, 그러면?

◆ 정광민> 네, 부마항쟁 지금 보상법 체계 하에서라도, 이 법을 잘 살려서라도, 어쨌든 진상규명과 보상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조금 더 내실 있게 해야 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이동형> 이 부마항쟁 보상법,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 또 관련자들 명예회복, 이 두 가지입니까?

◆ 정광민> 네. 지금 진상규명 활동이 상당히 속도를 내어서 관련자 인정을 받은 사람 숫자가 올 연말이면 한 300명 정도 될 것으로 저희들은 보고 있는데요. 그러나 전체적인 총 연행자 수가 1500명입니다. 거기에 비한다면 아직도 그 숫자는 결코 많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피해자들이나 이런 분들이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제대로 적극적으로 관련자 인정 신청을 하지 않는 분들도 많고요. 조금 더 법적으로 활동 시한이 연장되고, 그런 진상규명,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될 필요가 있고요. 명예회복과 관련해서는 저희들이 부마 관련자들의 보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4대 항쟁 말씀하셨는데, 5.18이나 6.10과 비교하면 상당히 보상은 미미한 정도입니다. 그래서 부마항쟁 관련자에 대한 유공자 예우법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상당히 큽니다. 저희들은 유공자법이 없습니다. 유공자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제도적인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문자로 3646님께서 “5.18 유공자 혜택과 똑같이 받으면 좋겠네요. 같은 민주화 운동이니까.” 이런 문자를 남겨주셨는데.

◆ 정광민> 아이고, 고마운 말씀입니다.

◇ 이동형> 아무래도 부마항쟁 다음 해에 5.18 민주항쟁에서 희생자가 너무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 정광민> 네, 맞습니다. 5.18로 인해서 사실은 묻히고 가려진 그런 측면이 있고요.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 5.18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참 이런 것으로 초기에는 맞서서 문제를 말하기도 어려운 그런 분위기였고요. 그런데 5.18은 상당 정도로 진상규명이 되고, 또 보상도 되고, 많은 부분 진전이 있기 때문에 40년 된 부마항쟁이 자기 자리를 찾는 이런 것에 대해서 5.18이나 오히려 앞서 갔던 민주화 운동이 부마를 돌보고 지원하고, 이래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첫 국가 기념식이 10월 16일 날 창원에서 열릴 예정인데요. 이사장님, 이 자리가 어떤 자리가 됐으면 합니까? 바람이나 이야기 한 마디 해주시죠.

◆ 정광민> 부산과 마산에서 오래 전에 큰 희생을 치러서 박정희 유신체제에 저항하고, 결국 박정희 독재를 끝장낸 그런 자랑스러운 민족 운동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부산, 마산의 시민들이 거기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으로 창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은 부산, 마산 시민의 민주화에 대해서 위로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그리고 우리들이 더 큰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그런 것들을 이 기념식에서 대통령님이 만약에 참석하신다면, 그런 것을 제안하고, 이끌어 가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늦었습니다만, 다시 한 번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거 축하드리고요.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 정광민>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지금까지 부마항쟁 연구소 정광민 이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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