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안보이야기-14] 북핵과 역사의 운율

[김주환의 안보이야기-14] 북핵과 역사의 운율

2017.05.30. 오후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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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의 안보이야기-14] 북핵과 역사의 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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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0월 16일.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틀 뒤인 10월 18일, 존슨 미 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들을 내놨다. 첫째, 군사행동에 나서는 것. 둘째, 소련과의 협조로 중국의 핵개발을 억제하는 것. 셋째, 아시아 국가를 지원해 중국의 핵확산을 억제한다는 것이 주된 요지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옵션이지 않는가?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방안과 매우 흡사하다. 미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최대한 압박과 관여)으로 처음 거론됐던 것이 바로 군사행동(선제타격)이다. 두 번째가 중국을 지렛대로 하는 대북 압박이다. 세 번째가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화테이블에 앉을 경우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마치 1960년대 핵실험에 성공한 중국처럼 말이다. 중국은 197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탄도미사일 개발에 집중했다. 그 무렵인 1972년 닉슨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이 이뤄졌다. 당시로서는 거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대전환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서로 싸웠고, 미국은 중국을 소련에 비해 훨씬 교조적인 공산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핵보유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피로도가 쌓여가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국제적 변화가 생겨났는데, 바로 소련의 군사력 강화였다. 소련은 1960년대 중반부터 핵전력 및 운반능력 확충에 노력했다. 그 결과 1968년에는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전략무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련에 대한 전략적 우위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핵보유국이 된 중국까지 적대적 관계로 남겨 놓을 수는 없었다. 이런 배경 하에 역사적인 데탕트가 이뤄졌다는 것이 『제2차 핵시대』의 저자, 폴 브래큰의 주장이다. 핵무기가 바로 중국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중국이 유일한 사례도 아니다. 1971년 당시 미국은 인도에 적대적이었고, 반면 파키스탄과는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도를 향한 미국의 반감은 1998년 인도가 핵 실험을 강행하면서 한층 더 고조됐다. 그러나 2006년부터 미국은 인도와 한편이 되어 중국과의 균형을 맞추게 됐다. 미국이 중국과 인도와의 관계 변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역시 핵무기였다.

북한의 핵질주가 계속되자 최근 미국은 군사옵션 대신 북한의 체제보장이라는 당근책을 내놨다. 미국의 이런 제안에 대해 북한은 ‘유치한 기만극’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도발을 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제재 이상의 응징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은 미국과의 데탕트 서막을 연 이후에도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1975년에는 워싱턴과 뉴욕 등 미 동부지역에까지 이르는 ICBM(DF-4)개발에 성공했다. 이 과정 역시 북한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2016년 9월 9일, 제5차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은 이후 핵무기 운반체인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지금까지 북한이 시험 발사한 미사일은 무려 220여발에 달했다. 김일성 시기에 약 15발, 김정일 시기에 약 58발을 발사했던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 있다. “역사 그 자체가 반복되지는 않는다. 다만 운율을 갖고 있다(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does rhyme).” 중국의 핵개발 과정을 답습하는 북한, 너무나 기막힌 우연일까?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김주환[kim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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