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공예에 녹인 정체성"…친가족 찾는 입양동포 예술가

글로벌 코리안
글로벌 코리안
2023.09.30. 오후 7:36
글자크기설정
[앵커]
세계 곳곳 재외동포들의 다양한 삶을 소개하는 <글로벌 코리안>입니다.

이번 주는 입양인의 정체성을 직물공예에 녹여낸 스위스 입양 동포의 사연입니다.

양가족에게 받은 학대의 아픔을 예술로 극복해낸 말루 씨는 방송을 통해 친가족을 꼭 찾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함께 만나 보시죠.

[말루 즈리드/ 스위스 입양동포]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스위스로 왔습니다. 산에 대한 열정은 어릴 때부터 키워왔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빚어내는 다양한 색감이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 재봉틀에 앉아 실을 손에 잡으면 바늘은 제가 그리는 세계의 중심이 되고 창작은 제게 곧 투쟁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새로운 조각을 엮어냅니다.

입양으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스위스에 도착한 네 살 무렵부터 제가 태어난 고향과 저의 이야기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상실감이 저를 계속 따라다녔죠. 그래도 어렸을 땐 제게 가족이 있다고 믿었어요. 실제로 양아버지의 성을 따르기도 했고요. 하지만 양부모님이 저를 진정한 의미의 가족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이후에 저는 보호 가정에 넘겨졌는데, 그분들이 저를 최종적으로 입양해줬어요. 저의 진짜 가족이 돼준 거죠. 지금도 그분들과는 잘 지내고 있어요.

2008년에 직물 공예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걸 통해 그동안 외면해온 어린 시절 입양의 상처를 다시 되돌아보고 '나'를 발견할 수 있었죠. 입양기관에서 확인한 제 입양서류를 보면 어릴 때 제가 노란색과 빨간색을 인지했다고 나와 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저한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저는 작업할 때 동양적인 시각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모국과 저의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휘몰아치기 시작했죠.

한국 입양기관 건물 앞에 섰을 때 아주 오래전부터 느꼈던 감정이 치밀어 올랐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요. 가족을 만난다면 저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만약 제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다른 세계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다만, 이제는 우리나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의 저를 발견하고 싶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