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등 혐의를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1심 선고가 시작됐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류경진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기존에 확인했던 주소지 등의 변동은 없으시죠? 피고인 선고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일단 선고 내용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어서 잠시 앉아서 진행하시겠습니다. 피고인은 내란중요임무종사, 직권남용 및 위증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각 죄명별로 공소 사실의 요지와 그에 대한 판단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선고에 앞서서 이 사건은 관련 법령에 따라서 기본적으로 저희가 중계를 해서 재판 진행했고요. 선고 관련해서는 실시간 중계 신청이 들어와서 그 부분 허가해서 실시간 중게로 진행되고 있는 점 먼저 고지드립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공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윤석열, 김용현 등은 비상계엄 선포 후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우선 국회를 봉쇄하고 장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저지하는 등 국회를 무력화시킨 다음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하고 선관위를 장악한 두 부정선거 및 여론조작 관련 증거 확보를 내세워 법률상 근거 없이 선관위의 전산자료를 영장 없이 압수하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사와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인 여론조사 꽃 사무실 등을 장악하는 한편 포고령에 근거하여 국회의원, 정치인 등 주요인사와선관위 관계자들을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MBC, JTBC, 한겨례 등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언론사에 대한 공세 및 단전, 단수조치를 하려고 계획하였다. 이와 같은 모의에 따라 윤석열, 김용현 등은 2024년 12월 3일 22시경을 기하여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로 하고 사전에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인 피고인, 통일부 장관, 외교부 장관, 국가정보원장만을 대통령실로 불러 피고인에게 국회, 선관위, 민주당 당사, 언론사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시간대별 봉쇄 계획 및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 조치 지시가 담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한덕수와 조태열에게도 각 해당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각각 건네주는 등으로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조치사항을 지시하였다. 이후 윤석열, 김용현은 기획재정부 장관, 농림축산부 장관 등 국무의의를 추가로 소집할 것을 지시하였고 22시 16분경 국무회의 구성원 11명이 모이자 국무위원들에게 미리 준비한 계엄선포문 사본을 나눠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통보한 후 대접견실에서 나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이후 김용현은 미리 작성하여 가지고 있던 포고령을 계엄사령관에게 건네주면서 이를 발령하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박안수는 23시 23분경 포고령을 발령하였다.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22시 27분경부터 다음 날 04시 20분경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할 때까지 군인과 경찰, 공무원등으로 하여금국회를 봉쇄하고 국회, 선관위의 과천청사, 관악청사, 수원선거연수원, 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을 장악하며 포고령에 근거하여 국회의원, 정치인 등 주요인사와 선관위 관계자들을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부정선거 및 여론 조작 관련 증거 확보를 구실로 내세워 법률상 근거 없이 선관위의 전산자료를 영장 없이 압수하며 군 병력을 국회의사당에 침투시켜 국회의원들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의 의결을 저지하고 국회를 무력화시켜 헌법기관인 국회 및 선관위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특정 언론사에 대한 봉쇄 및 단전, 단수조치를 함으로써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언론, 출판자유 등을 침해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국군 방첩사령부 등 무장 군인 1600여 명과 경찰관 약 3790명 등을 동원하여 국회, 선관위, 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 등을 점거, 출입통제하는 방법 등으로 강압하여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피고인은 이와 같이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도착하여 윤석열로부터 오늘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김용현을 통하여 국회, 민주당사 등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조치 지시 문건을 받아 이에 관한 지시를 받은 후 이를 이행하기로 마음 먹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국회 주변의 서울경찰청 소속 기동대가 배치되어 국회를 통제하고 포고령이 공포된 상황에서 23시 34분경 서울정부청사 12층에 있는 본인의 집무실에서 경찰청장인 조지호와 통화한 이후 계속하여 23시 37분경 소방청 상황판단회의를 주재하고 있던 소방청장 허석곤에게 전화하여 특별한 사건사고에 소방이 출동한 것이 있는지, 소방청이 단전, 단수 요청을 받은 것이 있는지를 묻고 한겨레, 경향, MBC, JTBC, 김어준 뉴스공장에 24시에 경찰이 투입된다 연락이 가면 서로 협력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취지로 말하며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를 지시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윤석열, 김용현 등과 순차 공모하여 윤석열로부터 받은 국회 등 주요기관 시간대별 봉쇄 계획 및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 조치 지시를 소방청장에게 전달하면서 소방청으로 하여금 경찰과 협력하여 특정 언론사 건물 5곳에 대한 단전, 단수 조치를 시행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위 내란행위에 대한 중요임무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공소 사실에 대해서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주장 중에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에 대한 주장을 먼저 살펴보면 피고인 및 변호인은 이 사건 공소장에는 피고인이 관여하지 않은 비상계엄 및 내란 행위에 대한 상세한 기재가 있고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이 다수 기재되어 있으며 여러 관계자들의 행위를 연결하여 기재함으로써 법관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예단을 가지도록 하고 있어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반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공소사실에 구속 요건적 행위 이외에 사건의 배경, 전제사실, 공모에 이르게 된 경위 등 다소 장황하게 기재되어 있는 부분은 있으나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내란중요임무종사 부분은 윤석열을 우두머리로 하는 내란죄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써 집합범인 내란죄의 특성상 단일범죄나 사건으로 특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을 비롯한 내란 우두머리 및 여러 주요 임무 종사자들의 행위를 기재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 사건 공소사실의 적용 법조 및 죄명에 의하면 피고인에 대한 공소는 내란중요임무종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위증 등에 대해서만 제기된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공소장 기재가 법관에게 예단이 생기게 하여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고 심증을 형성하는 데 장애를 일으킬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에 대한 내란중요임무종사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서 윤석열과 김용현 등의 내란죄 성립 여부를 살펴보면 이 법원이 적법하게 조사하여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됩니다. 윤석열은 계엄 당일 19시경부터 19시 30분경 사이에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 안전가옥에서조지호, 김봉식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동석한 김용현은 윤석열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지호, 김봉식에게 계엄군의 출동 시각과 출동 장소를 의미하는 22시 국회, 23시 민주당사 등과 같이 기재된 문건을 교부하였습니다.이후 서울경찰청으로 복귀한 김봉식은 19시 50분경 여의도 인근에 배치된 경찰기동대 현황을 파악하였고 20시 07분경 조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여의도 인근에 네다섯 개의 기동대가 있다고 보고하였으며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을 통해 광화문 타격대의 여의도 배치를 지시하였다. 윤석열이 22시 27분경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조지호와 김봉식은 22시 30분경 경찰 300여 명을 국회 주출입문 및 담장 중심으로 배치하였고 조지호가 22시 45분경 김봉식과 통화를 통해 국회 출입 차단을 지시하자 22시 47분경부터 국회 출입이 전면적으로 차단되었다가 23시 07분경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직원 등은 신분확인을 거쳐 출입하도록 하였다. 조지호는 23시 30분경 포고령 발령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윤석열로부터도 23시 28분, 30분, 34분에 걸쳐 전화를 받아 국회 통제와 관련된 지시를 받았다. 결국 23시 37분경부터 다음날 01시 45분경까지 국회 출입이 전면적으로 차단되었다. 또한 김용현의 지시를 받은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은 22시 30분경부터 22시 31분경 사이에 707특수임무단 소속 2개의 지역대에 헬기를 통한 국회 투입을 지시하였고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도 비상계엄 선포 후 소속 군인들과 함께 국회로 출동하였다. 특수단 707특수임무단 출신 군인들은 국회 운동장에 도착한 후 국회 본관으로 이동하여 국회 본관으로 이동하는 출입문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그 후 일부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고 본관 내부로 진입하였다. 제1공수여단 소속 군인들도 12월 4일 00시 30분경 국회에 도착하여 그 무렵 국회 경내로 진입하였다. 한편 윤석열은 2025년 12월 4일 0시 30분경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아직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취지로 지시하였고 이진우도 같은 날 0시 40분부터 0시 45분경 사이에 제1경비여단장에게 국회 본관 내부로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 10여 명은 비상계엄 선포 후 선관위 과천정사에 진입해 선관위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외부연락 출입 통제를 하였고 선관위 서버실을 촬영하기도 하였고 제3공수여단 소속 군인들은 선관위 과천청사와 수원에 있는 선거연수원으로 출동하였고 제9공수여단은 선관위 과천청사에 출입하였다. 또한 곽종근은 비상계엄 선포 무렵 민주당사로의 편의대 출동 지시를 하였고 제9공수여단 소속 군인들에게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여론조사 꽃으로의 출동을 지시하였다. 민주당사로 이동 중이던 제1공수여단 소속 군인들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이후인 24년 12월 4일 01시 06분경 육군특수전사령부로부터 대기 지시를 받고 그때부터 02시 35분경까지 당산역 일대 도로에서 정차 후 대기하다가 부대로 복귀하였으며 여론조사 꽃으로 출동한 제9공수여단 군인들은 0시 50분경 여론조사 꽃에 도착한 후 같은 날 01시 09분경까지 건물 앞을 점거한 채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 판단하건대 윤석열, 김용현 등은 국회와 야당 당사 및 언론사를 물리적으로 봉쇄하여 이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헌법의 대의제 민주주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규범적 의미를 상실하게 다고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국헌문란 목적 아래 이루어진 행위들로 판단된다. 윤석열, 김용현 등이 일련의 지휘 체계에 따라 집단적으로 다수의 군병력 및 경찰력을 동원하여 국가 기관 인국회, 선관위를 점거, 출입통제하고 그 활동을 제한하려 한 이상 윤석열, 김용현 등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다수가 유형력을 행사하고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한 지방의 평온을 행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 즉 내란 행위를 일으켰다고 판단된다.피고인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행위와 관련하여 피고인 주장의 요지는 피고인은 윤석열, 김용현 등과 사전에 내란을 공모한 적이 없고 오히려 계엄 선포에 반대하였으며 당시에는 윤석열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비상계엄 선포권을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여 행사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허석곤과 통화할 당시에는 포고령이 내려진 사실 및 국회 봉쇄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국헌문란의 목적이나 폭동에 대하여 인식이나 고의가 전혀 없었으며, 윤석열이나 김용현 등으로부터 특정언론의 봉쇄 및 단전, 단수 조치에 대한 지시를 받거나 이에 따라 소방청장에게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에 대한 협조 지시 내지 내란중요임무에 해당하는 지시를 내린 바가 전혀 없으며 실제 계엄선포 당일 특정 언론사에 대한 봉쇄가 이루어진 사실도 전혀 없으므로 피고인이 내란의 중요임무를 분담하거나 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피고인이 계엄 선포 당일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계엄 선포 당일 오전 개최된 국무회의에 참석 후 자신의 집무실에서 김용현과 따로 5분에서 10분가량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에는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국민통합 김장행사에 참석하였고 이어 중앙지방정책협의회에 참석하였다가 17시경 회의 도중 나와 KTX를 타고 상경하였다. 피고인은 상경 도중 김용현과 비화폰으로 통화하고 서울역에 도착한 이후에는 바로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으로 이동하였다. 피고인이 도착했을 당시 집무실에는 윤석열, 김용현 그리고 먼저 도착한 박성재가 있었고 피고인 도착 이후 한덕수, 김영호, 조태용, 조태열이 순차로 집무실로 들어왔다. 21시 09분경 조태열, 김영호, 박성재, 조태용, 한덕수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와 대접견실로 이동하였는데 당시 한덕수, 조태열, 조태용은 각각 손에 A4 크기의 문건을 들고 나왔고 피고인 박성재, 김영호는 손에 문건을 들고 있지 않았다. 피고인은 21시 48분경 상의 왼쪽 안주머니에서 A4 크기의 문건을 꺼내 펼쳐보았고 21시 51분경 다시 문건을 꺼내어 잠시 확인 후 다시 상의 왼쪽 안주머니에 넣었다. 피고인은 21시 56분경에도 위 문건을 꺼내어 펼쳐보았다. 그 무렵 조태열은 대접견실에서 김용현에게 그럼 군대가 이제 다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까라는 취지로 물었고, 김용현은 그렇다고 답하였다. 그 자리에는 피고인을 비롯한 한덕수, 박성재, 조태용 등이 동석하고 있었다. 윤석열은 22시 14분경 연결 출입문을 통해 집무실에서 대접견실로 나와 자리에 앉았고 비상계엄 선포의 필요성, 정당성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영주가 22시 16분경 도착하여 국무회의 구성원 총 11명이 모이게 되자 김용현은 복사한 비상계엄 선포문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윤석열은 22시 18분경 대접견실 자리에서 일어나 김용현과 함께 나갔고 이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22시 27분경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비상계엄 선포 후 윤석열은 23시 31분경 대접견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고 22시 32분경 최상목에게 조속히 예비비를 확보하여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자금을 완전 차단할 것,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는 취지가 기재된 문건을 교부하였다. 피고인과 한덕수 이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22시 42분경 대접견실을 퇴장하기 시작하였고 피고인과 한덕수만이 22시 54분경부터 약 11분간 대접견실에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피고인은 자신의 상의 왼쪽 주머니에 소지한 문건들을 꺼내어 일부를 한덕수에게 건네주거나 손으로 짚어가며 한덕수와 대화를 나눴고 대화가 끝나자 피고인과 한덕수는 23시 05분경 각자 문건을 챙긴 후 대접견실에서 퇴장하였다. 대통령실에서 나온 피고인은 정부종합청사로 돌아와 23시 34분경 본인의 집무실에서 조지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지호와 통화가 종료된 직후인 23시 37분경 허석곤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2024년 12월 4일 자정부터 0시 30분경까지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안전부 실장급 긴급 간부 회의를 주재하였고 01시경 정부청사에서 자택으로 귀가하였다가 다시 03시 11분경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실 대접견실에 도착하였다.이런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먼저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단전, 단수 조치 문건의 존재 여부와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에서 살피는 각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주요기관 봉쇄 및 단전, 단수 조치 문건은 존재하고 위 문건에는 군, 경찰이 투입되어 봉쇄할 기관과 투입시간대가 기재되어 있었으며 소방청은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를 이행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우선 김용현은 2025년 10월 23일 헌법재판소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해서 제가 비상계엄을 주도하는 주무장관으로서 윤석열의 지시에 따라 국무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외교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에게 건넬 협조사항 문건을 작성하였고 준비한 문건은 총 6~7장 정도이다. 조지호, 김봉식에게 건넨 문건에 22시 국회, 23시 민주당 당사.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앞의 숫자는 시간을 의미하고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뒤 장소에 민주당 당사, 선관위, 국회, 방송사, MBC, 여론조사 꽃 등이 적혀 있었다. 행정부 장관의 문건에 있는 내용은 경찰청장에게 건넨 문건과 똑같은 내용이다라고 진술하였다. 조지호, 김봉식, 조지호의 배우자가 이 법정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윤석열이 동석한 자리에서 김용현이 조지호와 김봉식에서 교부한 문건에는 22시 국회, 23시 민주당 당사라고 기재되어 있었고 그 밑에도 이런 식으로 기관명이 쭉 기재되어 있었으며 그중에는 MBC, 여론조사 꽃 등의 단어도 기재되어 있었다. 피고인도 이 법정에서 대통령실 집무실 원탁 위에 소방청, 또는 소방청장, 24시, 단전, 단수, JTBC, MBC,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단어가 기재된 문건을 보았다라는 취지로 진술해서 단전, 단수를 지시하는 내용의 문건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고 있고 그 내용은 김용현, 조지호, 김봉식 등의 진술과도 일부 일치한다. 조지호, 김봉식은 비상계엄 선포 무렵 국회 주변에 경찰기동대를 배치하고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의원 등의 출입을 제한하였으며, 김용현의 지시로 군인들의 국회 경내 및 본관에 진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관위 과천청사, 관악청사, 수원 선거연수원, 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에도 출동한 바 있다. 여기에다가 윤석열, 김용현은 경찰력이 주로 투입되고 군 병력은 숙련된 간부 위주로만 투입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점, 김용현은 병력을 투입할 우선순위는 국회와 선관위였고 민주당 당사와 여론조사 꽃은 우선순위에서 떨어지는 곳이었다. 여기는 병력이 제한되다 보니까 시간을 봐서 병력을 투입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진술하기도 한 점을 더하여 볼 때 결국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단전, 단수 조치 지시 문건은 윤석열, 김용현 등 내란 집단의 내란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해당하고 비상계엄의 선포 및 이에 따른 구체적 폭동행위의 전개 과정을 종합해 볼 때 실제 내란 행위 과정에서도 위 문건에 기재된 내용이 상당수 이행되었거나 적어도 실행 착수에 이어졌으므로 위 문건은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 피고인은 윤석열으로부터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단전, 단수 조치 문건을 교부받고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이행을 지시받았는지 여부를 살피건대 이도 다음에서 살피는 사정과 사실들을 종합해서 볼 때 피고인이 위 문건을 교부받고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이행 지시를 받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관련 사실은 김용현이 윤석열의 지시로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외교부 장관, 기획재정부 장관, 경찰청장 등에게 교부한 문건을 만들었고 실제 한덕수, 조태열, 최상목, 조지호, 김봉식에게 해당 문건들이 교부되었다. 더구나 윤석열은 김용현이 19시경 찾아와 국회 외곽은 경찰이 경비를 서야 할 것 같다고 하길래 내가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주려고 하다가 서로 지위, 소관분서가 아니기 때문에 조지호와 김봉식을 삼청동 안전가옥으로 오라고 하고 김용현을 데리고 들어갔다. 거기서 잘 협조해 달라고 했다라거나 김용현이 국회 바깥 외곽을 경찰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경찰청장 및 서울경찰청장을 연결시켜주었다라고 각 진술하고 있는 점을 더하여 볼 때 김용현이 내란행위에 대한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윤석열은 각 부처의 소관 부서나 지휘 감독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윤석열이 수립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요기관 봉쇄 및 단전, 단수 조치 지시 문건의 내용은 경찰청, 소방청과 관련된 업무이고 경찰청과 소방청을 지휘할 권한이 있는 소관부처는 행정안전부 장관이므로 그 장관인 피고인도 위 문건을 교부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또한 피고인은 허석곤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이 24시 특정언론사에 대한 진입 계획을 알려주며 특정언론사 단전, 단수를 언급한 사실이 있는데 이는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단전, 단수 조치 문건 내용과도 일치하며 계엄 당일 소방청에 경찰의 특정 언론사 진입 계획 및 단전, 단수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은 피고인이 유일하다. 대통령 CCTV 영상에는 피고인이 여러 차례 상의 왼쪽 안주머니에서 문건을 꺼내와 펼쳐 보이며 확인하는 장면, 대접견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퇴장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문건을 꺼내어 한덕수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다. 피괸은 21시 14분경 다시 집무실에 잠깐 들어간 자리에서 원탁 위에 놓인 언론사 단전, 단수 계획이 기재된 문건을 얼핏 보았을 뿐이고, 상의 안쪽 안주머니에 있는 문건은 주요기관 봉쇄 계획 및 단전, 단수 조치 지시 문건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 스스로도 본인이 세 차례에 걸쳐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내 펼쳐 보고 약 11분간 한덕수와 주고받고 손으로 짚어가며 대화를 나눈 문건이 무엇인지 특정조차 하지 못하고 단지 해당 문건이 당일 울산 국민통합 김장행사 등 관련 인터뷰 자료, 일정표 등일 것이라는 가능성만 제기하고 있을 뿐인데 한덕수는 당시 대접견실에서 피고인으로부터 당일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또한 피고인은 국민통합 김장행사에 같이 동행한 아내와 연락 없이 왔기 때문에 아내의 귀가를 걱정하며 일정표를 봤던 것 같다라는 취지로도 주장하나, 피고인은 서울행 KTX 열차를 탑승하고 난 이후인 18시 20분경 이미 아내와 통화를 하였고 피고인이 한덕수와 대화를 나눌 시점에는 일정상 피고인의 아내가 이미 김포에 도착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위 주장은 그대로 신빙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이 허석곤에게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 지시를 하였는지 여부를 보건대 허석곤은 이 법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피고인이 특별한 사건 사고에 소방이 출동할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 특별한 상황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더니 이어서 피고인이 소방청이 단전, 단수 요청받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래서 제가 요청받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피고인이 한겨레, 경향, MBC, JTBC,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24시에 경찰이 투입, 또는 진입된다. 연락이 가면 서로 협력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라라고 말하였다. 피고인이 언론사를 빠르게 말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제가 몇 번 되묻고 이를 혼잣말로 되뇌이면서 메모를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습니다. 당시 소방청 상황판단 회의에 참가했던 배덕곤, 김학근 등도 허석곤이 몇 군데 언론사를 말한 것이 기억이 나고 전화를 끊고 단전, 단수가 업무에 맞는지 등을 논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금 피고인과의 전화통화 이후 허석곤이 차장인 이영팔, 배덕곤 등과 소방청의 업무에 단전, 단수가 포함되는지에 대해서 논의한 사실, 이영팔은 특정 언론사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서울소방재난본부 측에 전화를 하여 경찰과의 협조를 강조한 사실, 허석곤도 황기석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의 협조가 있었는지를 묻는 통화를 한 사실 등이 있고 여기에다 소방과 경찰의 협조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소방청장과 경찰청 차장이 이를 직접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강조할 필요성이 전혀 없고 소방청 판단회의에서는 특정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해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이 기재되었던 점 등을 더하여 볼 때 허석곤과 이영팔은 피고인의 전화가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 지시임을 전제로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단전, 단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경찰로부터 단전, 단수 협조 요청이 온 것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향후 있을 경찰의 단전, 단수 협조 요청에 대비하여 서울소방재난본부 차원의 대응을 강조하는 등 피고인의 지시에 부합하는 후속행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허석곤에게 한 전화를 단순 업무협조 내지 협조 요청으로 볼 수는 없고 행정안전부 장관인 피고인이 직접 그 소속 외청인 소방청의 장에게 특정 언론사에 대해 경찰이 투입되는 것과 관련한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고의 및 국헌문란의 목적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보겠습니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범죄성립을 위하여 고의 외에 요구되는 초과 주관적 위법요소로서 엄격한 증명사항에 속하나 확정적 인식임을 요하지 아니하며 다만 미필적 인식만 있으젼 족합니다.한편 내란죄는 다수인이 집단을 이루어 국헌문란 행위라는 하나의 내란행위에 나아가는 것이므로 내란 행위를 포괄적으로 인식, 용인하고 있는 이상 내란집단의 구성원 각자가 내란을 구성하는 모든 개별적, 구체적 행위, 즉 내란집단의 행위라고 인정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거나 관여할 필요는 없고 전체적으로 내란에 각자가 가공할 의사를 가지고 이에 기여한 점이 있는 바 내란죄의 죄책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인은 법조인 겸 정부의 고위공직자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비상계엄의 의미와 그 요건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고 더군다나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다수의 시민들이 국회로 모였고 국회의원들은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등원하였으며, 내란행위에 대한 지시를 받은 일부 군과 경찰의 지휘관들과 그 소속 인원들은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그 지시를 사실상 거부하기도 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평균적 법 감정을 가진 사회 일반인으로서도 윤석열, 김용현 등의 비상계엄 선포 및 그에 따른 후속 행위에 위헌, 위법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피고인은 적어도 20시 36분경 대통령실에 도착한 이후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하였고 윤석열로부터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언론사 단전, 단수 조치 지시 문건을 받아 그 이행의 지시를 받았으며, 위 문건에는 군 내지 경찰이 투입하여 봉쇄할 여러 기관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은 해당 기관들의 병력 및 경찰력 투입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윤석열로부터 위 지시 문건을 교부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에 따라 직접 경찰청장에게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를 지시하였습니다.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조치는 내란행위의 국헌문란의 목적 달성을 위한 직접적인 계획과 그 수단의 일부로써 내란죄의 중요임무에 해당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에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내란행위에 대한 비판여론의 결집을 저해하고 전체 내란행위를 용인하게 하여 내란행위에 의해 달성한 상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피고인은 허석곤과의 통화 직후 조지호와의 통화를 통해 국회 상황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당시 조지호가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이후에 그 지시사항을 하달하느라 피고인과는 제대로 통화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나 조지호의 이 법정 및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증언한 내용, 통화 시간 등에 비추어볼 때 피고인은 조지호와 실질적인 통화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당시 비상계엄 선포 및 포고령 발령, 경찰의 국회 출입 통제 등은 여러 언론에서 속보로 보도되고 있었던 점, 피고인은 조지호, 허석곤과 통화를 하기 직전까지 강원도지사, 서울시장 등 다수의 사람들과 여러 차례 통화를 하기도 한 점. 피고인은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하여 비상계엄이 선포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긴급 간부 주재 회의를 주재하였는데 이는 계엄선포 이후 국회 등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고 실제 간부회의에서도 국회 상황 보고가 있었던 것보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허석곤과 통화할 당시에는 국회 상황에 대하여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단전, 단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이 내란죄의 죄책을 지는지 여부를 살피건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내란 집단이 경찰력을 동원해 국회에 대한 출입을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국회 병력을 국회 및 본회의장에 위치한 국회 본관에 투입하여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 협박을 행사한 이상 전체 내란행위의 구속요건은 완전히 충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결국 피고인이 윤석열, 김용현 등의 내란 집단이 구체적으로 계획한 개별적인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사전에 모의하거나 여기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란행위의 실행 착수 직전에 내란 집단으로부터 위 중요 임무 중 하나인 언론사 단전, 단수 관련지시를 받고 그에 따라 내란이 개시된 이후 허석곤에게 전화하여 특정언론사 단전, 단수를 지시함으로써 내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전체 내란 행위에 포함되는 개개의 행위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며 내란행위에 가담함이 인정되는 이상 일련의 폭동행위로 인하여 기수에 이른 내란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고 이는 피고인이 관여한 개개의 행위, 즉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전제에 있어서는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윤석열로부터 주요기관 봉쇄 계획 및 단전, 단수 조치 지시 문건을 교부받아 그 이행의 지시를 받고 허석곤에게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 협조 지시를 함으로써 윤석열, 김용현 등의 내란 집단의 내란 행위에 있어 그 중요한 임무에 종사하였다고 판단됩니다. 다음으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의 점을 살펴보겠습니다.이에 대한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23시 37분경 허석곤에서 전화하여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관련 협조를 지시하였고 피고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지시를 받은 허석곤은 당시 상황 판단 회의에 참석 중이던 차장 이영팔과 소방청이 취하여야 할 조치를 논의한 후 이영팔로 하여금 피고인의 지시 사항을 일선에 하달하게 하고 그에 따라 이영팔이 서울소방재난본부장 황기석에게 전화하여 포고령과 관련하여 경찰에서 협조요청이 오면 잘 협력해달라라고 지시하였으며, 이와 같은 지시를 받은 황기석이 곧바로 서울소방재난본부 당직관에게 전화하여 전달받은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관할 소방서에 긴급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출동 대비태세 철저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하는 등 일선 소방서의 단전, 단수 관련 경찰 요청에 즉각 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고인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하여 소방청장으로 하여금 소방청 차장을 통해 서울소방재난본부장 황기석에게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관련 경찰의 협조 요청 시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하게 함으로써 일선 소방서에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관련 경찰의 요청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게 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과 변호인은 행정안전부 장관인 피고인에게는 소방청 또는 소방청장이 지휘감독할 일반적인 직무권한이 존재하지 않고 소방청에서 의무 없는 일을 한 사실도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살피건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는 단순히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직권을 남용하여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고 그 결과의 발생은 직권남용 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합니다. 구 정부조직법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등 관련규정에 의하면 피고인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법령에 규정된 권한 행사, 재난관리 등을 위해 그 소속청인 소방청을 지휘할 수 있고 소방청장을 상대로 이에 필요한 업무 지시, 협조 요청 등을 하고 승인 및 보고를 요구할 일반적 직무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고 피고인이 허석곤에게 한 언론사 단전, 단수 협조 지시는 형식적, 외형적으로 집무집행으로 보이는 외관을 갖췄으며 피고인이 허석곤에 대한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지시는 직권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도 해당합니다. 다만 당시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였는지와 관련하여 공소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이 허석곤으로 하여금 하게 한 의무 없는 일이란 서울소방재난본부 관할 일선 소방서에 언론사 단전, 단수와 관련한 소방청의 요청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게 한 것과 황기석에게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를 지시한 것인데 황기석은 이영팔 또는 허석곤과의 통화 이후에도 서울소방재난본부 차원의 특별한 조치를 취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하였고 서울소방재난본부 차원에서 일선 소방서에 시달한 지시는 위 출동대비태세 철저 공문이 유일한데 황기석은 이영팔, 허석곤으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인 22시 50분경부터 비상계엄에 대한 서울소방재난본부 차원의 대응을 준비하였고 그 일환으로 경찰 등 유관기관 공조 체계로 현장 활동 공동 대응의 내용이 포함된 공문도 통상적인 선례에 따라 이미 작성하고 있었으며 이영팔 또는 허석곤과의 전화통화와 위 공문 작성은 아무런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황기석은 이 법정에서 이영팔이 전화를 하면서 24시 언론사 5곳 단전, 단수라는 단어를 말한 사실이 없다. 이영팔이 말한 포고령과 관련하여 경찰에서 협조 요청이 오면을 경찰의 요청이 올 수도 있나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고 허석곤으로부터 받은 전화에서도 당시 서울 상황 및 경찰 측 협조가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과 상황 관리를 잘하라는 취지의 말만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며 설령 이영팔, 허석곤의 전화를 소방청 차원의 업무지시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던 이상 경찰 협조 요청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는 취지의 일반적인 지시로밖에 볼 수 없어서 허석곤, 이영팔이 황기석과 통화한 내용은 경찰의 협조 요청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는 취지의 일반적 지시에 불과하여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따라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허석곤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해서 무죄를 선고하기로 합니다. 다음으로 위증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공소사실 요지는 피고인이 2025년 2월 11일 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는 과정에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 조치에 관한 문건을 받아 이에 관한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고 이에 따라 허석곤에게 단전, 단수 지시를 한 사실이 있음에도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는 취지로 허위로 증언하고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온 윤석열이 재외공관 지시 문건을 전달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직접 목격하였고 대접견실에서 윤석열이 최상목에게 문건을 전달한 사실을 목격하였음에도 이를 보지 못하였다고 허위로 증언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과 변호인은 위와 같은 지시 문건을 교부받거나 그 이행 지시를 받지 않았고 허석곤에게 이를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조태열, 최상목이 문건을 전달받은 것도 보지 못하였고 설령 피고인이 이를 목격하였다 하더라도 급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인하여 정신적 충격과 혼란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피고인이 윤석열로부터 주요기관 봉쇄 계획 및 단전, 단수 조치 문건을 교부받아 그 이행을 지시받고 그 지시에 따라 허석곤에게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 지시를 했는지를 살펴보면 이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두 그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이 이 부분 각 증언은 객관적 사실에 반한 진술임이 인정되고 피고인이 헌법재판소에 증언을 한 시점과 그사이 피고인이 단전, 단수 지시에 대한 다수의 보도가 있었던 점을 비춰볼 때 피고인이 불과 3개월 만에 그 기억을 모두 상실하였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유죄로 인정합니다. 다음으로 조태열 문건 관련 증언의 경우 조태열, 조태용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갈 당시 피고인은 이미 한덕수, 박성재 등과 함께 집무실에 입실해 있는 상태였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 조태열은 제가 집무실에 도착한 이후 반대하는 입장을 말하고 이에 대하여 윤석열이 대답을 한다고 10여 분이 흐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말할 틈도 없었다. 제 입장에서는 좀 거들어주기를 바랐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한 점을 종합해 볼 때 당시 집무실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화의 화자인 윤석열과 조태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보입니다. 또한 조태열의 진술에 의할 때 윤석열은 재외공관 지시 문건을 조태열에게 집무실 원탁 위로 던지듯이 건네주었고 당시 집무실의 자리 배치 등을 고려해볼 때 피고인이 이를 보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당시 피고인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에 있었던 김영호는 윤석열이 조태열에게 재외공관 지시문건을 교부한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고 김용현도 당시 집무실에서 제가 직접 외교부 장관에게 문건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 대통령님께 전달해드려서 대통령님께서 외교부 장관에게 문건을 건네주었다는 취지로 집무실 상황을 상세히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피고인은 윤석열이 조태열에게 지시 문건을 전달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위증을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도 유죄로 인정합니다. 최상목 문건 관련 위증의 점에 대해서 보건대 대통령 접견실 CCTV에 의하면 윤석열이 최상목에게 예산 관련 지시문건을 건네줄 당시에 단순히 피고인의 얼굴과 몸이 윤석열과 최상목 쪽으로 향하고 있는 점은 확인이 되지만 피고인이 이를 주시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피고인이 최상목에게 예산 관련 문건을 건네둘 당시에 윤석열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박성재, 송미령, 피고인 순으로 착석해 있었고 오른쪽에는 정진석이 착석해 있었으며 테이블 끝에는 신원식이 착석해 있었는데 송미령, 정진석, 신원식도 윤석열이 최상목에게 A4 용지 한 장을 건네는 것을 본 적이 없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고 한편 당시 대접견실 안에 있던 상당수 국무위원들은 윤석열로부터 급작스럽게 비상계엄 선포 계획에 대해서 들었고 실제로 그 계획에 따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상당히 당황스러웠을 것으로 보이고 당시 상황 또한 매우 어수선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국무위원들은 대접견실에서의 상황에 대해서 다소 실제와 다르게 진술하거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도 했던 점을 종합해 볼 때 피고인이 해당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하더라도 증언 과정에서 이를 단순히 기억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그렇다면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나, 이와 포괄일죄 관계에 있는 위증죄를 다른 위증죄를 유죄로 인정하는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의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유죄에 관한 위증죄에 관한 양형의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내란죄는 국가의 존립과 헌법 기능을 파괴하고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국가적 범죄로써 그 위험성은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전체에 미친다. 피고인을 비롯한 윤석열, 김용현 등의 내란 행위는 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국회를 포함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여 그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으로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므로 그 목적의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피고인은 정부 고위공직자로서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해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함에도 윤석열, 김용현 등의 지시에 따라 소방청에 직접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를 지시함으로써 내란행위에 가담하였으므로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 더구나 피고인이 윤석열, 김용현 등의 내란행위를 적극적으로 만류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고, 오히려 이후 내란행위의 진실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위증까지 하였다는 점에서 피고인에 대한 비난 가능성은 더욱 크다. 다만 피고인이 비상계엄 선포일 이전에 내란을 모의하거나 예비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은 점, 피고인이 내란중요임무로 수행한 행위는 소방청에 대한 전화 한 통이고 그 이외에 반복적으로 단전, 단수 조치를 지시하거나 지시 사항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보고를 받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내란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피고인이 단전, 단수 조치 실행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거나 이를 지휘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 점, 결과적으로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 단수 조치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고 그밖에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 요소를 참작한 바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피고인 잠시 일어서시죠. 주문. 피고인을 징역 7년에 처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의 점은 무죄. 피고인은 이 판결에 불복이 있으면 7일 이내에 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해서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피고인에 대해서 일부 무죄 판결이 선고된 결과, 그 부분은 공시될 수 있는 공시 혹시 희망하시나요? 그 부분은 그러면 공시를 원하시나요? 이 부분은 공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선고 마치겠습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