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전한 진심'…일본 할아버지의 한국어 도전기

'한국어로 전한 진심'…일본 할아버지의 한국어 도전기

2019.02.24. 오후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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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젊은 나이에도 쉽지 않은 게 외국어를 배우는 거죠.

그런데 도쿄에서는 백발의 70대 일본인 할아버지가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도전했습니다.

말을 배운 이유는 한국 사람의 말로 꼭 전하고 싶은 고마움이 있어서라는데요.

일본 할아버지의 한국어 말하기대회 도전기를 강현정 피디가 현장에서 전해왔습니다.

[기자]
도쿄 토박이 후루사와 할아버지는 매일 하던 산책길이 요즘 들어 더 설렙니다.

탁 트인 강변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부터 생긴 변홥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

누군가는 백발노인의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후루사와 할아버지에게는 이유가 있습니다.

5년 전 한국의 전주에서 만난, 그날의 기억 때문입니다.

[후루사와 이사오 / 76세·도쿄 거주 : (전주 노인회관에서) 안녕하세요? 라고 하니까 '오하요, 곤니치와' 라고 답해서 놀랐습니다.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일본어밖에 쓸 수 없었고 가장 한국말을 많이 쓴 아이는 맞았다고 합니다. 모국어를 빼앗기는 슬픔은 잊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껴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꼭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말로 말입니다.

그래서 꼬박 5년을 한국어와 씨름했습니다.

[후루사와 이사오 / 76세·도쿄 거주 : 5년 전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통역해주셨는데 안녕하세요 정도는 물론 말했지만, 다음에 갈 때는 조금은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 번은 가서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늦겨울 도쿄에도 제법 매서운 칼바람이 붑니다.

하지만 후루사와 할아버지를 지금 얼어붙게 하는 건 추위가 아니라, 대회 당일의 긴장감입니다.

한국어 입문 10개월 차 병아리부터 20년 넘은 베테랑까지.

예선을 거친 참가자 11명의 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할아버지에겐 꼭 다시 만나 수다를 나눌 '전주의 친구'라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습니다.

[후루사와 이사오 / 76세·도쿄 거주 : 모국어를 빼앗긴 할머니들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에서는 한국어만으로 말하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드디어 발표의 순간.

최우수상은 '한국에서 재미있게 노는 법'을 소개한 토미나가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토미나가 마유미 / 최우수상 수상 : 믿기지 않아요. 그냥 좋아서 공부했던 것뿐인데 도전한 것인데 도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열심히 할게요!]

[기무라 유코 / 관객 : 모두 한국어를 잘해서 이야기도 잘 전달됐어요!]

물론 할아버지도 사연만큼이나 값진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후루사와 이사오 / 76세·도쿄 거주 : 이제 5년 동안 공부해온 보람이 있어서 기뻐요. 지금 우리 아내와 전주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김경호 / 심사위원장 : 직접 한국어라든가 한국문화를 접하고 경험하면서 자신들이 느낀 그런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넣어서 스토리를 만들었어요 . 내용도 재밌었고 전달도 굉장히 잘 됐어요.]

우리 나이로 일흔여섯, 하루라도 건강할 때 전주로 가려 합니다.

모국어를 빼앗긴 가슴 시린 조선의 역사를 결코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다소 서툰 한국어가 식민지를 살았던 모든 이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후루사와 이사오 / 76세·도쿄 거주 : 전주 가서 (한국어 말하기 대회 참가) 했어요, 라고 보고하는 게 기대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서시에 쓰여있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70살 넘어서 시작해서 역시 죽는 날까지 신세 진 한국 사람들과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것을 죽는 날까지라는 제목을 해서 공부하겠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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