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묻힌 어느 독립운동가의 꿈

프랑스에 묻힌 어느 독립운동가의 꿈

2019.07.28. 오전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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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렸을까.

'콜롱브'라는 도시에 다다른다.

한때는 청춘이던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곳.

저마다의 꿈이 여기 묻혔으리라.

이곳에 유일한 한국인의 묘비가 있다.

'홍 재 하'.

세상을 떠난 지 59년이 지났지만 그의 꿈은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다.

고 홍재하의 행적을 찾아 나선 기나긴 여정.

이곳에 그의 막내아들이 살고 있다.

196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여든을 바라보는 아들은 늘 한국을 그리던 아버지를 생생히 기억한다.

[장자크 홍 푸안 / 故 홍재하 차남 : 굉장히 엄격한 아버지였어요. 우리에게 늘 한국식으로 교육하셨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꿈을 안고 만주와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까지 건너온 홍재하.

당시 서른네 명의 한인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폐허가 된 현장에서 힘들게 일해 번 돈을 임시정부 파리 위원부에 보내 독립운동 자금을 보탰다.

[이장규 / 재프랑스독립운동사학자 : 전쟁터에서 포탄 자국을 지우거나 포탄을 줍거나 전쟁터를 청소하는 작업이죠. 시신도 치우고…. 이 사람들이 인당 (한 달에) 100프랑 정도를 받았다고 해요. 30여 명이 월 1천 프랑씩 (파리 위원부에) 기부했으니까 (한 사람당) 30프랑 이상이 되잖아요. 인당 (한 달 수입의) 3분의 1 정도를 냈다고 생각하는 거죠.]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2남 3녀를 뒀지만 늘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는 홍재하.

그러면서도 프랑스 최초의 한인 단체 '재법한국민회' 회장을 맡아 한인들을 살뜰히 챙겼단다.

[장자크 홍 푸안 / 故 홍재하 차남 :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많은 시간을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우리의 조국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하고, 독립국이 돼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홍재하의 삶의 궤적은, 이제라도 아버지의 업적을 알리기로 다짐한 아들과, 한인 동포들의 오랜 연구로 세상에 알려졌다.

[김성영 / 렌 경영대 교수 : 어느 날 아저씨가(장자크 홍 푸안) 조심스럽게 말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아버지가 한국인인데 독립운동을 하신 것 같다…. 내가 죽기 전에 아버지가 남겨준 편지나 서류를 가지고 책이라도 써서 마무리를 짓고 싶은데 도통 내가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다 한글로 쓰여 있으니까….]

한국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이 보낸 편지에는 원망과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다.

[김성영 / 렌 경영대 교수 : 제가 처음 봤던 편지는 100년 전이죠. 100년 전에 홍재하의 동생이 형님에게 쓴 편지였어요. 도대체 형님은 왜 안 돌아오십니까. 형님이 안 돌아오시는 동안 아버님은 너무 힘들어하시고. 장남이 나가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구구절절 쓰여있는 거예요. 다른 편지를 봤더니 그때는 너무나 원망 섞인 표현. 왜 안 오십니까. (광복 이후에?) 아뇨. 해방이 될 수가 없다. 그런 느낌이죠. 이제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고, 해방될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독립운동하신다고 하셨으니 많이 했소. 이제 들어오시오….]

해방 후, 프랑스에 설치된 주불공사관에 제출한 홍재하의 신상명세.

체류목적을 적는 칸에 그는, '나라를 빼앗긴 것을 복수하고, 인류 평등에 공헌하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고 적었다.

[이장규 / 파리 7대학 사회연구학자 : 꾸준히 임시정부에 자기의 한국행을 요청했고, 해방 후에도 한국 주불 대사관에 요청을 해서 한국에 가길 원했어요. 그런데 (귀국 경비 지원을) 번번이 거절당했고, 마지막에 답변이 온 것이 지금 도와주지 못하지만 올 수 있으면 와라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을 받고 좌절을 했는데요. 그 답변을 받고 난 이후 얼마 지나서 사망을 했어요.]

지독한 가난과 모두의 무관심으로 해방 후에도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한 홍재하.

아들은 부친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을 안고 산다.

[장자크 홍 푸안 / 故 홍재하 차남 : 저는 진심으로 아버지의 유골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삶을 기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의 꿈은 여전히 파리 근교 도시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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