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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전하는 '6·15 공동선언' 생생한 뒷얘기
Posted : 2017-06-1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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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 국민의당 前 대표

[앵커]
17년 전인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이 두손을 맞잡고 공동선언을 하던 모습. 아직도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겁니다.

당시 대북 특사로서 정상회담 성사를 이뤄냈던 주역이었죠.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와 함께 당시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벌써 17년이 되었네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대표님한테는 이 6. 15가 어떤 의미입니까?

[인터뷰]
제가 정치를 하는 목표가 6. 15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으로서 그것을 계승,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전부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앵커]
저의 전부라고 하셨는데 의원회관, 가벼운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회관에 호도 615호라고요?

[인터뷰]
네. 의원회관 방번호가 615번이고 이메일도 615 숫자를 씁니다.

[앵커]
지금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두 손을 같이 드는 모습, 지금도 생각나시죠?

[인터뷰]
생생하죠.

[앵커]
알겠습니다.

[인터뷰]
그때 그 두 손을 맞잡고 손을 올렸을 때 우리 국민들은 보통 사람들은 전부 그 손만 봤지만 사실 저희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손바닥이 굉장히 울긋불긋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 하는 것 등을 세밀하게 보았습니다.

[앵커]
지금은 도착했을 당시. 저때가 순안공항에 나왔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마중 나오는 것을 예상치 못했었다고요?

[인터뷰]
당시 저와 특사로 함께 다닌 분들이 김보현 국장, 현 서훈 국정원장 과장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실제로 국보 같은 존재다, 제가 대통령께도 말씀을 드렸는데 이분들의 분석에 의거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올 것 같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께서 평양 도착 성명을 준비해 가지고 평양 순안공항에서 그것을 발표하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거 발표할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저는 그랬어요. 이게 좀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

[앵커]
처음에는 발표하지 말라고 하고.

[인터뷰]
네. 그랬는데 역시 김보현 국장과 서훈 과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나오는 것으로 해석을 하더라고요.

[앵커]
그 서훈 과장이라고 한다면 지금 국정원장. 당시 과장이었을 때. 그걸 예상을 미리 했었군요, 서훈 당시 과장이.

[인터뷰]
그러니까 분석을 해서 그분들은 대북전문가이기 때문에 제가 나중에 대통령께 보고할 때 그랬다니까요. 김보현 국장과 서훈 과장은 대북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 국보입니다.

그래서 3차장을 신설해서 김보현 국장은 3차장으로 승진했고 서훈 과장은 국장으로 승진했었죠.

[앵커]
그랬군요. 그리고 아까 평양 순한공항 도착 화면을 북한 조선중앙TV에서 어떻게 보도를 했는지 먼저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보도 내용인데요. 우리와는 다른 카메라 앵글을 사용해서 북한의 방송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때 지금 대표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인터뷰]
바로 사진 뒤에 보이네요. 당시 제가 문화관광부 장관이어서 바로 뒤에, 저는 공식 수행원이었으니까 바로 뒤에 따라왔는데 지금 북한 주민들이 꽃수를 흔들면서 막 뭐라고 하잖아요.

그게 얼마나 시끄러운지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나중에 저와 함께 차를 타고 간 북한 선전부장에게 물어봤더니, 노동당 선전부장이죠. 결사옹위라는 말을 그렇게.

[앵커]
결사옹위.

[인터뷰]
결사옹위라고 하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을 목숨을 걸고 모신다, 그런 뜻이죠.

[앵커]
이때는 만찬장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는 장면인데요. 이것을 급하게 제안을 하신 분이 박 대표님이라는 얘기도 있고요. 설명을 해 주시죠.

[인터뷰]
지금 저 순간은 바로 17년 전 아마 지금 시간 정도 될 겁니다.

[앵커]
점심 먹고 오찬 끝나고 2시 정도.

[인터뷰]
고별 오찬 석상에서 술들도 많이 마셨어요. 또 저도 김정일 위원장이 요청을 해 가지고 내 곁에 있어주오 노래도 불렀고 앵콜송으로 우리는 너무 쉽게 헤어졌어도 불렀고.

[앵커]
그 노래는 직접 부르셨고요.

[인터뷰]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저분들이 대개 특별수행원들로 기업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언론사 대표도 계셨고요. 그런데 저분들에게 헤드 테이블로 오셔가지고 술을 한 잔 따르겠다고 하니까 다 오셨어요.

[앵커]
김정일 위원장이?

[인터뷰]
그래서 와인을 한잔 따랐는데 다 섰잖아요. 그러니까 당시 김대중 대통령 부속실장 김한정, 지금 현재 민주당 남양주 출신 국회의원인데. 김한정 부속실장이 저한테 와서 장관님 저 선 김에 우리의 소원 통일 노래를 한번 합창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해서 제가 두 정상에게 또 여러 분들에게 손잡고 노래를 하자 했더니 손잡고 노래를 했어요. 역사적인 순간인데. 그러니까 김정일 위원장은 그 노래를 우리의 소원 통일 노래를 모르는지.

[앵커]
그러니까 김정일 위원장은 그 노래를 모르잖아요.

[인터뷰]
모르는지 안 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대통령 내외분이나 저희 일행들은 큰 소리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건배사하고. 잠깐만 들어볼까요. 당시에 오찬장에서 남북 정상이 함께 손을 맞잡고 불렀던 노래 우리의 소원 통일입니다만 아직은 그 노래가 다 완성이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에 특사로서 계속 방문을 하고 그러셨잖아요. 그 뒷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최종 성사되기 전에 무산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2000년 1월달에 지금은 작고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우연한 장소에서 저와 조우를 해 가지고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저는 김대중 대통령님께 그러한 보고를 했더니 가능할 것이다.

추진해 봐라 그래 가지고 제가 요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3월 초, 소위 북한에서 국정원은 빠져라.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님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특사로 나오면 만날 용의가 있다 하는 것을 밝혀 와서 김대중 대통령께서 제가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는데 저에게 특사를 하라고 해서.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제가 가는 것은 부적절하니까 당시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가시면 좋겠습니다 했더니 대통령께서 저한테 가라고 해서 모두에 제가 말씀드렸던 김보현 국정원 국장, 서훈 과장 이렇게 세 사람, 보좌관 네 사람이 극비리에 싱가포르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첫 대면을 했는데 사실 그때는 배우 최은희 선생 등 납치 사건도 있고 그래서 저는 사실 북한 사람들을 뿔이 5개 정도 달린 사람으로 알았어요.

[앵커]
그때 처음 보시는 거죠?

[인터뷰]
처음 보는 거죠. 그런데 호텔에서 만났는데 사투리만 다르지 똑같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거기에서 밤을 새가면서 며칠 했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 베를린에 가서 베를린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베를린선언문을 가지고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역설을 했더니 당시 송호경 북한 특사가 마치 김대중 대통령의 음성을 듣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저는 그 순간 아, 정상회담은 성공한다 이렇게 느꼈는데 그 후 상해, 북경 등 수차례 접촉을 했는데 북한에서 1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원해 달라.

[앵커]
어떤 명목으로요?

[인터뷰]
우리 남한은 잘 살고 자기들은 어려우니까 지원을 해 달라 해서.

[앵커]
경제지원.

[인터뷰]
그것도 현금으로.

[앵커]
달러로.

[인터뷰]
그래서 그것은 안 된다. 우리는 예산을 수립해서 사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앵커]
정부가 준 돈을 줄 수 없죠.

[인터뷰]
절대 줄 수 없고 아직 이것이 비밀로 접촉을 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10억 달러를 주고 정상회담을 사느냐, 이런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예산 절차상도 불가능하다 했더니 깨졌어요. 깨져가지고 한 한 달 지났는데 아마 현대와.

[앵커]
4억 5000달러를 줬죠.

[인터뷰]
4억 5000달러를 항만, 통신, 철도 등.

[앵커]
투자하는 곳에.

[인터뷰]
일곱 가지 사업 대가로 4억 5000만 달러를 현대가 지급하고 정상회담을 다시 하자, 이렇게 해서 북경에서 만나 가지고 최종 타결을 했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을 하셨으니까 저도 이 질문을 드릴까 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결국은 정상회담 이후에 돈을 지금 말씀하신 북한에서 10억 달러를 요구했고 우리가 거절했고.

그 대신 현대가 대신이라는 표현은 제가 좀 그렇습니다마는 4억 5000달러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계속 그 뒤에 대북송금 특검이 발생을 했고 그리고 사실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민정수석이었기 때문에 이 사안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직접 그래서 재판까지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 대북송금에 대해서 하실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이게 지금 야당의 공세의 빌미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박지원 대표님께서 보시는 대북송금 특검은 어떤 의미입니까?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이제 다 지났으니까요.

[인터뷰]
대북송금 특검은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서 당대표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다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청와대에 가서 노무현 대통령께도 그러한 의사를 전달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에서 영남 정서가 있기 때문에 차라리 특검을 해서 정리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 저희는 굉장히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북송금 특검으로 된 게 아니고 나중에는 제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후자금 500~600억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것으로 비화돼 가지고 결국 150억 사건으로 돼서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마는.

이 4억 5000만 달러도 정부 예산이 아니고 대북송금 특검에서 이것은 현대가 상업베이스로 준 것이다 하고 무죄가 확정됐는데 단 그 당시 국정원의 계좌를 이용해서 4억 5000만 달러를 북한 마카오 구좌로 보냈는데 이것이 유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국정원 계좌를 이용해서 송금된 것은 몰랐기 때문에 무죄가 된 거죠.

[앵커]
짧게 질문드릴게요. 그 당시 문재인 수석한테 섭섭한 점은 없었습니까?

[인터뷰]
지난 대선 과정에서 많이 싸웠는데 그때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정대철 대표가 얘기를 했을 때 아무 소리 안 하고 땅만 쳐다보고 있더라, 이런 얘기를 듣고 굉장히 섭섭했죠.

그렇지만 이제 대통령에 당선돼서 다시 햇볕정책을 승계한다 그리고 대북 문제를 저렇게 잘 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역시 잘 됐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옛날 화면 하나만 더 보도록 하죠. 고은 시인의 시 낭독 장면이 있는데요.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과거 얘기를 많이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요.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고은 시인의 당시 대동강 앞에 서서라는 시 낭독을 잠시 보셨습니다. 시간관계상 당시 얘기는 이 정도로 하도록 하고요. 17년이 이제 지났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남북 관계가 6. 15 선언 이후 아직도 6. 15정신을 계승해야 된다라는 얘기만 있지 실질적으로 계승된 건 지난 과거 한 10년 정도 남북 관계가 거의 대치 상태로 가면서.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마는 계속 발전을 못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마저 지금 폐쇄를 했으니까요. 어떻게 풀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남북관계를 망친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그분들이, 두 대통령이 강경정책을 쓰고 햇볕정책, 저희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퍼주기 했다고 하는데 안 퍼주기 해서 북한 핵이 미사일이 그대로 있느냐. 어차피 우리는 북한은 전쟁의 대상도 되지만 평화의 대상입니다.

통일의 대상입니다. 형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추구하던 햇볕정책이 계속됐다고 하면 오늘날 더 큰 평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는데 이렇게 긴장관계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아쉬울 뿐입니다.

[앵커]
최근 북한이 무인기와 관련해서 또 정보위에서도 조사도 하고 그렇습니다마는 남북관계가 북한의 계속되는 핵 도발, 미사일 도발 이런 게 계속되는 한 먼저 우리가 해 줄 수는 없지 않느냐, 이런 주장들이 많지 않습니까?

사실 그런 것도 현실이고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긴장 속에서도 전쟁 속에서도 대화는 하는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그렇게 강한 제재를 하면서도 평화를 주장하고 대화를 주장합니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전쟁은 하지 않겠다, 체제를 보장해 주겠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남북대화에 노력하겠다.

그렇지만은 아직 그러한 진전이 없는 것은 북한이 태도 변화를 해야 됩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금 현재, 물론 경제가 매년 8% 이상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특히 중국이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서 제재를 가한다고 하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차제에 김정은 위원장도 이 기회를 포착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 평화 정책의 기회를 포착해서 핵실험, 미사일 같은 건 하지 마라, 이렇게 경고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짧게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지금 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서 박지원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거나 도움을 요청한다면 적극 나설 용의가 있으십니까?

[인터뷰]
제 경험을 토대로 해서 저는 도와드릴 자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박지원 대표께서 도와주셔야 될 일이 많으신데요. 그 중 하나가 현안이 하나 있어서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재송부를 요청을 했습니다. 시간은 3일 토요일까지. 아마 재송부를 요청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임명 강행 쪽으로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박지원 대표의 입장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제가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제가 청와대에서 극비리에 만났습니다. 저를 불러주셔서. 그래 가지고 당시 G20 문제가 있으니까 김성환 외교부 장관을 도와달라고 해서 초스피드로 청문회를 통과시켜드렸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외교부 장관이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차 강경화 장관은 충분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통과시켜줘야 된다라고 했지만 아직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소통이 아직 부족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대통령께서 적격 판정을 안 받더라도 임명할 권리가 있고 법적으로 하자가 없습니다.

[앵커]
물론 그렇죠.

[인터뷰]
그렇지만 지금 현재 어차피 여소야대 정국이고 협치를 강조하신다고 하면 조금 더 야당을 설득하고 명분을 주는 것이 좋다, 이런 생각을 갖지만 개인적으로는 강경화 장관 임명하는 것 반대하지 않습니다.

[앵커]
개인적으로는 반대하지 않지만.

[인터뷰]
그러나 우리 당의 분위기는 의원총회나 엊그제 있었던 우리 당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강경화 장관은 안 된다 하는 강경 분위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찬성하는 것은 당론에 위배되지만 저는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대개혁을 위해서 우리가 당리당략 단견적으로 보지 말고 좀 국가를 위해서 도와줄 일은 도와주자.

지금 현재 박수를 칠 때는 박수 쳐 주고 그리고 그물 쳐놓으면 걸려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앵커]
지금은 협력을 하고 협치를 할 때이지.

[인터뷰]
우리가 좀 도와드릴 때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거기까지만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와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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