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역사속 오늘

9월 15일 역사속 오늘

2004.09.15.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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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 상륙작전 (1950)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이 한반도 상륙에 앞서 인천에 대대적인 포격을 감행했다.

유엔군의 함포 공격에 인천 앞바다는 불바다가 됐다.

6.25 발발 이후 북한군은 남진을 계속했으나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선은 낙동강에서 교착상태를 맞았다.

유엔군은 북한군의 후방을 공격하고 수도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펼쳤다.

인천상륙작전의 총지휘관은 맥아더 장군!

유엔군은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인천 앞바다에 있는 월미도를 점령했다.

유엔군은 두번째 목표인 인천과 김포비행장에 상륙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인천 시내가 폐허로 변하는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서울로 진격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2) 고상돈 에베레스트 등정 (1977)

1977년 오늘 산악인 고상돈씨가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태극기를 꽂았다.

한국 등반대가 히말라야에 도전한지 15년만에 거둔 쾌거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최정상을 정복한 여덟번째 나라로 기록됐다.

고상돈 대원과 네팔인 노르부가 정상공격에 나선 것은 새벽 4시!

정상을 백미터 가량 앞두고 산소 튜브가 작동하지 않아 예비용 튜브로 갈아끼우는 등 어렵고도 험한 등정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고 바람이 거세 로프가 날리는 악조건에서도 고상돈씨는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해발 8,848미터 정상에서 고상돈씨는 만세를 불렀다.

3) 챔벌린 영국 총리 독일 방문 (1938)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8년 오늘!

영국의 챔벌린 총리가 독일을 방문해 히틀러를 만났다.

앞으로 닥칠지 모를 전쟁을 막기 위해서였다.

히틀러는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다.

히틀러는 독일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체코의 수데덴 지방마저 노리고 있었다.

챔벌린 영국 총리는 이런 히틀러의 의도를 묵인해 주고 그 대신 전쟁을 피해 보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와 두번째 회담을 가진 챔벌린 총리!

기자회견에서 회담의 성과에 대해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챔벌린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챔벌린은 1940년 전쟁 발발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4) 제 2차 대전 영·독 공중전 (1940)

영국 공군 전투기가 1940년 오늘 독일군과 공중전을 치르기 위해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

석 달전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의 히틀러는 유럽의 마지막 보루인 영국으로 병력을 집중시켰다.

영국은 영국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어 독일군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히틀러는 공중전을 통해 제공권을 먼저 장악한뒤 영국에 상륙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독일 공군은 레이더망을 피해야 하고 막강한 영국의 허리케인 전투기와 싸워야 했다.

영국과의 공중전에서 독일 공군은 참패했다.

히틀러는 공중전의 패배로 영국 해협을 통한 침공 계획을 취소했다.

5) 여성 유엔총회 의장 탄생 (1953)

1953년 오늘 유엔총회 회의장!

유엔회원국 대표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인도의 팬딧 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성으로는 첫 유엔총회 의장을 맞게 된 팬딧 여사!

팬딧 여사는 1947년 부터 3년간 소련 대사도 지냈다.

팬딧 여사는 인사말에서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공정하게 사무를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로 진격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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