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회장의 두 번째 사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와이파일]

정용진 회장의 두 번째 사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와이파일]

2026.05.25. 오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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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회장의 두 번째 사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와이파일]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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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26일) 오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서울 역삼동 조선팰리스 호텔 기자회견장에 섭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동시에 사용한 스타벅스코리아의 마케팅 파문이 촉발한 공개 사과 자리입니다. 정 회장은 일주일 전 이미 한 차례 서면 사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매운동은 더욱 거세졌고, 이재명 대통령까지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직격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과가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용진 회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위기 앞에 선 기업과 공인이 반복적으로 빠지는 함정입니다. 사과의 형식은 갖추되, 사람들이 진짜 듣고 싶은 것에는 답하지 않는 것. 정용진 회장의 두 번째 사과는 그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위기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자주 인용되는 사례를 살펴봐야 합니다. 2015년 6월 2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현 회장)의 메르스 사태 대국민 사과입니다. 다만 한 가지를 먼저 밝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과를 '정석'으로 부르는 것은 당시의 여론과 커뮤니케이션 효과에 대한 평가이지, 이재용이라는 인물 전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아닙니다. 2015년 이후 그가 경영권 승계 의혹과 뇌물 공여 유죄 판결 등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이 사과와 별개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2015년 6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현 회장) 대국민 사과

'정석'이라 불린 사과 - 무엇이 달랐나

2015년 6월,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최대 진원지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음압병실 부족, 환자 보고 지연, 의료진 산업재해 은폐 의혹까지 겹치면서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이 부회장은 이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이후 언론과 SNS에서는 '사과의 정석'이라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보건의료 노조 등 일부는 즉각 "통렬한 반성이 없다", "위기모면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긍정 평가가 우세했던 것은 사실이나, 만장일치의 호평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과가 지금도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참조 사례로 남아 있는 이유는 세 가지 구조적 특징 때문입니다.

첫째, 책임의 주체와 잘못의 내용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사과문 첫 문단에서 '삼성서울병원'을 주체로 명시하고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라는 표현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유감입니다'나 '오해를 드려서'가 아니었습니다. 잘못했다고 직접 말했습니다.

둘째, 수용자가 듣고 싶은 언어를 골랐습니다. "저의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십니다. 환자분들과 가족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재벌 총수가 환자 가족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입원 중이라는 사실이 공감의 근거를 만들었고, 그것이 메시지의 온도를 바꿨습니다.

셋째, 비판의 대상을 경영진으로 한정하고 실행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음압병실 확충, 백신과 치료제 개발 지원 등 구체적 개선책을 사과문 안에 담았고, 현장 의료진과 직원은 비판에서 구분했습니다. 사과가 조직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이 세 가지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으로서 참고할 만한 요소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기법들이 당시 상황의 맥락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통했다는 사실입니다. 구조만 똑같이 가져다 쓴다고 같은 효과가 나지는 않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 탱크데이 홍보물 캡쳐

탱크데이 파문은 왜 더 어려운가

정용진 회장이 공개 사과 자리에섯 마주할 상황은 2015년 메르스 사태와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단순히 사안이 무거워서가 아닙니다. 사과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 자체가 다릅니다. 메르스 사태에서 삼성의 잘못은 '과실'이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를 의도적으로 확산시켰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잘못된 결과'에 대해 사과하면 됐습니다.

탱크데이 파문에서 대중의 분노는 다른 층위에 있습니다. 5·18 기념일에 '탱크'와 '책상에 탁!'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대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믿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스타벅스코리아를 포함한 대부분 기업의 마케팅 콘텐츠는 여러 단계의 결재라인을 거쳐 배포됩니다. 이것이 한 명의 실수라는 해명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의도의 진위와 무관하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대중의 의심이 이미 형성됐다면, 그 의심을 해소하는 것이 사과의 첫 번째 과제가 됩니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심이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정용진 회장의 과거 이력이 더해집니다. 2022년 '멸공' SNS 논란과 2021년 박정희 뮤지컬 관람은 이미 공론화된 이력입니다. 이것이 이번 사태에 대한 해석의 맥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정용진 회장이 사과해야 하는 것은 의도라고 해석되는 마케팅 실수에 대한 해명과, 자신의 역사적 감수성에 대한 불신, 이 두 층위를 동시에 다뤄야 합니다.

두 번째 사과에서 달라야 할 것들

이재용 회장의 사례를 구조적 참고점으로 삼되, 탱크데이 파문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하면 이번 사과에서 반드시 달라져야 할 네 가지 지점이 있습니다.

1. 경위의 투명한 공개

첫 번째 서면 사과가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 회장은 19일 사과문에서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이었다고 규정했습니다. 결과에 대한 규정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였습니다. 여러 단계의 결재라인을 거쳤음에도 이 문구들이 살아남았다면,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인식했음에도 묵인된 것인지, 이것이 밝혀지지 않는 한 의혹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진상조사 결과가 함께 발표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솔직하게 공개되느냐가 이번 사과의 진정성을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내부 검수 프로세스의 미흡"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마무리된다면, 공개 사과는 또 다른 분노의 불씨가 될 것입니다. 이재용 회장의 사과가 '잘못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삼성서울병원을 주체로 명시하고 "막지 못해"라고 명확히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 회장에게도 같은 수준의 구체성이 요구됩니다.

2. 개인 이력에 대한 직접 언급

이재용 회장 사과의 핵심 기제는 개인적 공감이었습니다. 재벌 총수가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말함으로써 거리를 좁혔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이 정용진 회장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5·18 피해자의 고통을 정 회장이 공유할 수 있는 개인적 경험은 없기 때문입니다. 형식을 모방한다고 진정성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정용진 회장이 해야 할 것은 다른 방식의 공감입니다. 바로 자신의 과거 이력이 이번 사태의 해석 맥락이 됐다는 사실을 직접 인정하는 것입니다. '멸공' SNS와 박정희 뮤지컬 관람이 5·18 피해자와 유족에게 어떻게 읽혔을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불신이 형성됐다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사안에서 가능한 유일한 공감의 방식입니다. 이 이력을 없는 것처럼 사과한다면, 그것은 회피로 읽힐 수 있습니다.

3. 피해자 중심의 언어

기업의 위기관리 사과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브랜드를 지키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사과의 형식을 빌리는 것입니다.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검수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내부 관리의 언어입니다. 5·18 피해자와 유족에게는 공허하게 들립니다. 이재용 회장의 사과가 달랐던 것은 한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아버님도 병원에 누워 계십니다." 경영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였습니다. 그 문장이 나머지 모든 형식적 표현보다 강력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재용 회장의 상황이 그런 언어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정용진 회장이 같은 문장을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리는 같습니다. 5·18의 역사적 무게를 관리자의 언어로 처리해선 안 됩니다. 광주 시민들이 수십 년 동안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왔는지, 그 상처가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을 정 회장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 이해가 느껴지지 않으면, 사과문의 다른 어떤 표현도 공허하게 들릴 뿐입니다.

4.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이 포함된 행동의 약속

이재용 회장의 사과가 신뢰를 얻은 또 다른 이유는 구체적 실행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 중 일부는 실제로 이행됐습니다. 사과가 말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만든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정 회장의 사과 역시 행동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진상조사 결과의 완전한 공개, 책임 소재의 명확한 규명이 우선입니다. 그 이상의 후속 조치는 정용진 회장과 신세계그룹이 스스로 판단할 몫입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의 내용이 아니라, 그 약속이 진심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자회견장에서 정 회장이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멸공 논란'을 일으킨 정용진 회장 과거 SNS 게시물

두 번의 사과 사이에서

사과를 두 번 해야 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이미 첫 번째 사과가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직시하는 것이 두 번째 사과의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2015년 이재용 회장의 사과가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참조 사례로 남은 것은 형식이 완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했던 것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정용진 회장에게 필요한 것도 같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5·18 피해자와 유족은 지금 무엇을 듣고 싶어 할까요. 불매운동에 동참한 시민들은 무엇에 분노하고 있을까요. 그 답이 기자회견장에서 나온다면,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나오지 않는다면, 세 번째 사과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과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언제나 기법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그리고 태도는 숨길 수 없습니다. 사과도 실력입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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