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임대차 3법' 1년, 정부 "주거 안정성 제고"...시장은?

[와이파일] '임대차 3법' 1년, 정부 "주거 안정성 제고"...시장은?

2021.07.24. 오전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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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3법' 강행처리 1년…전세난 심화
정부 "임차인 다수, 제도의 혜택 입어"
시장 반응 싸늘..."전세 물량 줄고 전셋값은 폭등"
"정부 성과 홍보 보단 정책적 보완 시급"
[와이파일] '임대차 3법' 1년, 정부 "주거 안정성 제고"...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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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임대차 3법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행 처리로 국회 문턱을 넘은 지 1년이 돼갑니다. 정부에서 자체 평가를 할 때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죠. 지난 20일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요, 다음 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임대차 1년에 대해 발언을 할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정도 내용을 예상했습니다. "애초 기대했던 정책 효과가 나타났지만, 전세 시장이 불안해지는 등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정도로요. 수적 우위를 앞세운 집권 여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이니, 부작용의 책임은 온전히 여당과 정부에게 돌아가겠죠. 따라서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되,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 섞어 발표하는 정도를 예상한 거죠.

다음 날, 그러니까 21일이죠. 오전에 관련 회의 자료가 나왔는데요,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거든요. 그야말로 자화자찬으로 점철돼 있었습니다. 임차인 다수가 제도 시행의 혜택을 누렸다로 시작해서, 전세 갱신율이 높아졌고, 평균 거주 기간도 증가해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 크게 제고됐다는 거죠. 백문이 불여일견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입니다. 직접 보시죠.

반면 전세 시장 불안에 대해선 '일부 불확실성'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갱신 계약까지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금 더 시장과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죠. 부작용은 두루뭉술하게 넘긴 건데요, 이 내용도 직접 보시죠.
이 자료를 보는 순간, 저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정부가 시장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데, 해법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거죠.

◆ 사라져 가는 전세에 치명타 된 '임대차 3법'

임대차 3법과 함께 거론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전세난'입니다. 요즘엔 이 말 자체가 '전세대란'으로까지 발전했죠. 임대차 3법만이 전세난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 기사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와이파일] '25번' 찍은 부동산 대책…전세난은 언제까지?(https://www.ytn.co.kr/_ln/0134_202102270900018102)

전세는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임대차 계약이고, 경제 구조가 변화하면서 소멸할 수밖에 없는 형태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시장 금리가 지속해서 낮아진다는 점이 전세 소멸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썼습니다.

그렇다고 임대차 3법의 영향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라져 가는 전세 시장에 다시 한 번 치명타를 준 것이 임대차 3법이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 임차인 권리 높이는 '선의의 정책'이지만…

먼저 임대차 3법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계약갱신청구권입니다. 지금까진 임대차 기간이 2년이었는데, 임차인이 한 번에 한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쉽게 말하면 2+2로 임대차 기간이 늘어난 겁니다.

두 번째는 전·월세 상한제입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한 재계약에선 임대료의 오름폭을 연 5%로 제한한 거죠. 임대차 3법은 지난해 7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 상한제는 바로 다음 날인 31일부터 적용됐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전·월세 신고제입니다. 주택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30일 안에 계약 사항을 신고하도록 한 거죠. 이는 준비 기간이 필요해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와이파일] '임대차 3법' 1년, 정부 "주거 안정성 제고"...시장은?

여기까지 보면 이 법을 만든 사람은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보다 더 임차인을 위하는 정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의의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건 아닙니다.

◆ "임대차 갱신율 높아져…주거 안정성 개선"

임대차 3법 이후 시장에는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을까요?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 전부 담겨있습니다. 하나씩 짚어보죠.

먼저 임대차 갱신율입니다. 정부가 서울 100대 아파트(어디인지는 비공개입니다.)를 조사한 결과인데요, 법 시행 전 1년 평균 임대차 갱신율은 57.2%였습니다. 절반이 조금 넘네요. 그런데 법 시행 뒤에는 77.7%로 치솟았습니다.

이에 따라 임차인의 평균 거주 기간도 평균 3.5년에서 5년으로 늘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또, 6월 한 달 동안 이뤄진 갱신 계약의 63.4%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활용했고, 갱신 계약 가운데 76.5%가 인상률 5% 이하 수준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대차 신고제가 시행되면서 시장의 투명성이 크게 높아졌고, 정보가 축적되면 임차인의 가격 협상력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죠.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은' 장점의 나열입니다. 정부가 여러 가지를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핵심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기존' 임차인의 안정성이 커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장점, 조금 이상합니다. 애초에 임대차 3법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활용하도록 하고, 인상률을 제한하는 내용이거든요. 법률 시행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라기보단,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거죠. 이런 결과조차도 없었다면 해당 법안이 존재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 전셋값은 폭등…"서울 아파트 1년 만에 1억 넘게 올라"

어찌 됐든 장점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엔 부정적인 측면을 살펴보죠.

사실 임대차 3법 준비 단계에서부터 모두가 우려하던 일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전세물건이 확연히 줄어든 거죠. 한 번 세입자를 들이면 사실상 4년 동안 집을 빌려줘야 하는데, 전세금을 올리는 데에도 제한이 생기니까요. 아무래도 집주인은 안정적인 현금을 벌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게 되겠죠.

그럼 전셋집을 찾는 수요가 줄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죠. 전세를 찾는 실수요자는 여전히 많습니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은 줄었으니 어떻게 될까요? 가격이 오릅니다. 당연한 시장 원리입니다. 사실 이는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1989년 노태우 정부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세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확대했을 때 경험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KB국민은행 자료를 보겠습니다. 정부가 서울 아파트를 임대차 갱신율의 예시로 들었으니, 평균 전셋값도 서울 아파트로 살펴보죠. 지난해 초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 7,800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임대차 3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 직전인 7월에는 4억 9,900만 원이 됐죠. 8월부터 폭등이 시작됩니다. 올해 2월에는 5억 9,800만 원으로 불과 7개월 만에 1억 원이 올랐고요, 지난달에는 6억 2,70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정부의 공식 통계인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지난해 7월 이후 가파르게 오르는 모습이 보이죠. 다만 가격이 민간 자료보다 '훠어어얼씬' 낮을 뿐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5억 원에 조금 못 미치네요.
이번엔 서울 아파트의 ㎡당 평균 전셋값입니다. 아무래도 단위 평균이니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겠죠. 임대차 3법 통과 전 3,000만 원에 조금 못 미쳤는데요, 지난달에는 3,660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불과 1년 만에 20%가 넘게 오른 겁니다.


◆ "자화자찬 아닌 정책 보완에 나설 때"

어떤 장점이 있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이 급등해버렸다면 그 장점이 다 무의미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거기다가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은 이미 다 예견됐던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부와 여당이 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제대로 전망을 해보지 않았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윤희숙 의원이 본회의에서 했던 임대차 3법 반대연설이 공감을 받았던 것도 상당수가 이런 우려에 공감했기 때문이었겠죠.
확실한 점은 정부가 낯뜨거운 수준의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때는 아니란 겁니다. 홍남기 부총리 역시 임대차 3법 이후 극심해진 전세난의 피해 당사자이기도 하죠. 지난해 10월 홍 부총리는 서울 마포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한 거죠.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임대차 3법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더 나을 뻔했다"며 "현실과 너무나 다른 발언으로 시장의 신뢰를 한 번 더 잃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와이파일] '임대차 3법' 1년, 정부 "주거 안정성 제고"...시장은?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책의 보완입니다. 이미 전셋값이 급등한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당장 급한 건 신규계약 부분입니다. 전·월세 상한제는 갱신 계약에 적용되거든요. 이는 지난해 8월에 체결한 갱신 계약이 끝나는 내년 8월 이후론 집주인이 신규계약 때 전셋값을 대폭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집값이 전반적으로 급등하기도 했고요.

전세난은 실수요자들의 매수 심리를 부추겨 집값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집값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전셋값도 오르게 되죠. 악순환이 펼쳐지는 겁니다. 정부가 낯뜨거운 홍보보단 실수요자 보호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YTN 조태현 (choth@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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