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북한 미사일 사거리 탐지와 "지구는 둥글다"의 상관관계

[와이파일] 북한 미사일 사거리 탐지와 "지구는 둥글다"의 상관관계

2021.03.31.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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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북한 미사일 사거리 탐지와 "지구는 둥글다"의 상관관계
브리핑 중인 합동참모본부 김준락 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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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3/30)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탄도 미사일 탐지 능력과 관련해 제가 질문을 했는데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이 이례적으로 길게 답변했습니다.

참고로 김 실장은 사석에선 기자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잘 이어가는 타입이지만, 공식 브리핑 석상에선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절제된 워딩'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우리 합참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 김 부부장은 지난 1월 13일 "남조선 합동참모본부가 지난 10일 심야에 북이 열병식을 개최한 정황을 포착했다느니, 정밀 추적 중이라느니 하는 희떠운 소리를 내뱉었다"며 비난하기도 했고 "그 무엇을 날려 보내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목을 길게 빼들고 남의 집안동정을 살피느라 노고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는데 북한은 실제로 '무엇'을 날려보냄으로써 우리 합참이 목을 길게 빼들고 북한의 동정을 살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설명해준 셈이 됐습니다.

정례 브리핑에서 김 실장의 모처럼 긴 답변 중 핵심 내용을 그대로 복기해보면:

"저희가 설명드릴 때 초기에 포착된 정보를 바탕으로 포착했다고 말씀드렸는데, 탐지 레이더의 특성을 고려하면 지구 곡면에 따라서 동쪽으로 발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초기에 포착되는 부분을 설명드린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혹시 남쪽이나 방향이라면 우리가 모든 정보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 우리 군의 북한 탄도 미사일 사거리 분석 방법

답변 내용이 잘 이해가 되셨는지요? 솔직히 브리핑 당시에는 저는 바로 이해를 못했습니다.

참고로 우리 군에서는 초기 정보로 "北 미사일 사거리가 450km"라고 발표했는데 북측이 600km라고 발표한 사거리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을까요?

합참은 육지에 있는 '그린 파인' 탄도탄 조기 경보 레이더와 해군 이지스 구축함의 SPY-1 레이더를 통해 파악된 미사일의 속도, 거리 등을 분석해 예상 사거리를 판단합니다.

가장 초기에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우리 군에서 포착이 유리합니다. 따라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우리가 일본보다 파악이 빠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군에서 언론을 통해 이를 공개하는 시점은 상당히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면 됩니다.

아래의 한반도 지도를 한번 보시죠.

[와이파일] 북한 미사일 사거리 탐지와 "지구는 둥글다"의 상관관계

모두가 아는 것처럼 지구는 둥급니다.

이 지도 모습을 봐선 지구의 곡면이 사거리 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번엔 최대한 지표면에 근접한 높이에서 이지스함이 탐지에 나섰을 동해 북단에서 북한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만든 3D 지도인 '브이월드'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아래는 일단 합참에서 파악한 북한 미사일의 고도였던 60km 높이에서 바라본 동해상 북한 방면의 모습입니다.

아까 한반도 사진과 달리 북쪽이 잘 보이지 않죠?

좌우로 펼쳐진 지평선이 타원형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데 동해 바다에서 북쪽이 지평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에 미사일이 발사된 방향은 북동쪽입니다.

우리 군의 '그린 파인' 레이더의 탐지 거리가 800km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눈으로 볼 때 지평선 너머로 날아간 셈입니다. 둥구스름한 지구의 곡면 때문에 미사일이 일정 고도 이하로 내려갔을 때는 레이더가 탐지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걸 '레이더 상실 고도'라고 한다는데,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은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개량형으로 저고도로 날아 레이더가 있는 곳으로 먼 방향으로 날아갈 경우 '레이더 상실 고도'에선 탐지가 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겁니다.

레이더 상실 고도가 어떤지 느껴보려면 동해상 1km 고도 위치에서 북한 땅이 어떻게 보이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 위치에서 잡은 동해상 북한 방면의 모습입니다.

특히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풀업(pull-up·아래로 내려가다가 상승하는 것) 기동을 할 수 있어 탄도 미사일의 일반적인 곡선으로 계산하면 떨어졌어야 할 고도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더 멀리 날아갔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사일이 최종 도달한 탄착 지점을 발사 직후엔 당장 알 수 없는데다 저고도에서 특이하게 날아갈 수도 있으니 상식을 뒤집는 사거리가 나올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앞서 2019년 7월 25일에도 북한은 북동쪽 방향으로 KN-23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그 당시에도 초기 정보에선 탄도 곡선을 감안할 때 430km로 파악된 사거리가 나중에 미국의 위성 정보와 일본의 미사일 비행 궤적 관련 탐지 자산을 종합해 600km로 확인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하나의 신뢰할 만한 정보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영상, 이미지, 전자 신호, 통신, 인간 정보 등 전 출처 정보들이 하나로 모여져 분석이 이뤄지고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준락 실장이 얘기한 것처럼 북한이 남쪽으로 탄도 미사일을 쏜다면 곡면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측 '그린 파인' 레이더가 탐지는 제대로 하겠지만 진정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만큼, 그다지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닙니다.

2019년의 사례를 보더라도, 결국 한미일 정보 자산이 모두 합쳐질 때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정확한 사거리를 도출할 수 있어 최근 한미 외교-국방 2+2 장관 회의 때 서욱 국방장관이 과거사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건 이같은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일단 부승찬 대변인은 "북한이 발사하는 탄도 미사일을 포함한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 한국과 한미 미사일 방어 체계를 통해 충분히 요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다"면서 "우리 군의 탄도 미사일 방어 훈련은 연례적으로, 정례적으로 계획에 따라서 시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정확히 짚어보자면,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는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과 갈등을 빚었고, 최근 2+2 회의에서도 관련 언급이 나온 것으로 전해질 정도로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이 여전하지만, 한미 연합 전력의 미사일 방어 체계는 중요하고, 좀 더 세심한 국토 방어를 위해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 완성에 속도가 붙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일단 바이든 행정부에서 저강도 도발 카드를 꺼내든 북한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랫동안 주목을 받아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 발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는데, 군 당국이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발생하는 레이더 탐지 음영 지역의 한계를 넘어 한미일 안보 협력을 통해 정확한 분석을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을 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전망입니다.

바쁜 걸음으로 평평한 땅을 밟고 살다보니 지구 모양을 생각할 틈도 없었는데, 북한 미사일 사거리 논란 때문에 3차원 지도프로그램까지 실행해서 새삼 지구가 둥글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승윤 [risungyo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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