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95] '01X' 시절로 돌아가 2G폰처럼 살아보니

[해보니 시리즈 95] '01X' 시절로 돌아가 2G폰처럼 살아보니

2019.11.23.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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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95] '01X' 시절로 돌아가 2G폰처럼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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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어디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터져서 잠시 꺼두셔도 좋다던 SK텔레콤이 2G 서비스 종료를 신청했다. SK텔레콤은 지난 7일 과학기술정보통시부(과기정통부)에 2G 서비스 종료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올해 말을 목표로 2G 서비스 종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자도 2G 세대였다. 중학교를 입학하며 처음 구매했던 핸드폰이 016 번호, 2G 핸드폰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며 새 핸드폰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010이라는 번호로 앞자리가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스마트폰은 없었지만, 3G 핸드폰으로 변경하며 ‘010 통합번호 제도’ 때문에 010이라는 번호로 변경됐다. 2004년 1월 1일부터 무선통신(이동전화) 서비스에 도입된 제도로 새로 이동전화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번호를 바꿀 때는 통신사마다 달랐던 011, 016, 017, 018, 019 대신 ‘010’ 번호만을 부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01X' 번호를 이용하며 2G 핸드폰을 사용하는 분들이 있다. SK텔레콤의 현재 2G 가입자는 2019년 9월 기준 57만4736명, 2G 서비스 종료 계획을 밝히지 않은 LG유플러스는 57만5037명이다.

2G 서비스 종료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도 생각보다 많은 분이 '01X'을 유지한 채 2G 핸드폰을 이용하고 있었다. 기자는
'01X' 번호로 변경할 수는 없지만, 2G 서비스·'01X' 시절로 돌아가 피처폰을 개통해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 당시 주로 이용하던 전화·문자 기능만 사용해 보기로 했다.

'다시 만난 애니콜'

2G 신규 가입은 불가능해 최대한 그 시절과 비슷하게 체험해 보고자 피처폰을 집에서 찾아봤지만, 남은 건 배터리뿐이었다. 그런데 마침 회사 동료가 피처폰을 가지고 있다고 해 빌릴 수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회사 동료 아버지 핸드폰이었다) 애니콜 슬라이드 핸드폰으로 당시 스펙을 찾아보니 영상통화도 가능한 3G 핸드폰이었다.

자판이 있는 피처폰을 개통할 생각에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기자가 현재 이용하고 있는 통신사인 SK로 향했다. 그런데 핸드폰이 KT용으로 나오기도 했고 현재 이 핸드폰에서 사용 중인 유심이 제가 방문한 지점에 없어서 개통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현재는 각 통신사 전용으로 나온 핸드폰도 호환이 되지만, 예전 핸드폰들은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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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회사 앞에 위치한 KT 지점으로 갔다. 별 탈 없이 개통은 진행됐다. 기자가 이용하던 통신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규가입을 했고, 원하는 뒷번호를 지정해 새 번호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예전 핸드폰 충전기인 24핀 충전기를 구하지 못해 핸드폰이 꺼진 상태였고, 꺼진 상태여도 개통이 가능하다 해서 개통을 진행했다. 가입을 완료하고 충전기를 구한 뒤 켜보면 개통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말에 별걱정 없이 회사로 복귀했다.
'야심 차게 개통 실패'

충전기만 있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온라인에서 주문한 예전 핸드폰 충전기인 24핀 충전기가 원하는 날짜에 배달되지 않았다. 결국, 정말 어렵게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당일 직거래를 통해 충전기를 구할 수 있었다. 충전기를 꽂자 애니콜이 쓰여있는 로딩 바가 보이더니 익숙한 64화음이 들리며 핸드폰이 켜졌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원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카드를 교체하여 주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떴다. 유심이 예전 핸드폰과 맞지 않는 건지 정상적으로 개통이 이뤄지지 않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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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문한 KT 지점에서는 "기계 자체가 (오래돼서) 문제인 건지 세대가 달라서 문젠인 건지는 테스트를 해봐야 알 것 같다"라며 "예전 심 카드인 3G 심 카드를 구해오시면 가능할 수도 있는데. 현재 심 카드로는 불가능하다"라고 답변을 받았다. 결국, 그렇게 회사 동료 아버지 핸드폰은 개통되지 못했다.

'데이터 막고 문자와 전화만 하기'

애니콜 슬라이드 핸드폰의 개통 실패로 일명 '예쁜 쓰레기'로 불리는 블랙베리를 오랜만에 꺼냈다. 피처폰 기분이 나는 자판이 있는 블랙베리를 사용하며 데이터를 막고 문자와 전화만 사용해 보기로 했다. 공기계로만 갖고 있었던 블랙베리는 카카오톡 업데이트 지원이 끊겨 새로 카카오톡을 깔 수 없었기 때문에 데이터를 막으면 기능은 정말 피처폰이나 다름없었다. 더불어 PC 카톡 대신 네이트온 등 과거 사용했던 메신저를 사용해 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접속하고 있지 않아 업무는 사내 메신저와 이메일을 통해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3일간의 '01X' 시절 체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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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아닌 택시를 부를 수 없었다'

사실 카카오톡을 못 해서 겪는 불편함은 예상했었다. 그런데 출근길 버스가 오지 않아 평소처럼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던 찰나, 택시 앱을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빈 차를 계속해서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 결국 뒤늦게 온 버스를 이용했다. 콜택시 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포털사이트 앱에다가 검색하거나 해야 했지만, 그것 또한 스마트폰에서만 가능해 그냥 버스를 택했다. 생활의 불편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업무 카톡으로부터 해방 기쁨도 잠시'

직장인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수많은 카카오톡 단체방을 가지고 있다. 기자만 해도 프로젝트마다 방, 팀 방, 전체 방, 기사 발제 방 등 다양하다. 이번 체험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도 잠시나마 수많은 방에서 벗어나는 거였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였다.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너무 불편했다. 사내 메신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업무에는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 기사 주제를 발제할 때도 팀장께 직접 찾아가 말씀을 드리거나, 부재중일 때는 문자 또는 이메일을 통해 보고해야 했다. 카카오톡에서 어떤 기사를 발제할지, 누가 어떤 업무를 할지 오간 대화를 볼 수 없어 중복해서 업무를 하겠다고 보고한 경우도 있었다.

카카오톡을 못 하니 회의에도 늦었다. 체험 기간 중에 외부 업체 미팅이 있었는데, 카카오톡에서 미팅 시작한다는 공지를 보지 못해 전화를 받고 뒤늦게 미팅에 참석했다. '2G폰처럼 살아보니'가 아니라 ‘카카오톡 없이 살아보니’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배달 전단을 꺼냈다'

하필 체험 기간에 축구 대표팀의 브라질과의 평가전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치킨을 주문하려던 찰나 배달 앱을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화로 하는 주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 어딘가에 굴러다니던 전단을 찾아 치킨을 주문했다. 전화와 문자만 가능해도 주문은 할 수 있었지만, 배달 앱에 후기를 남기면 받는 서비스는 포기해야 했다.

'문자에 답이 없다'

이번 체험을 하면서 오랜만에 문자를 할 수 있겠다며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다들 문자를 잘 보지 않았다. 근무 중에는 더더욱 그랬다. 카카오톡은 업무를 하면서도 PC 카톡으로 답할 수 있지만,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들어 문자 답장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오전에 보냈던 문자는 대부분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 답장이 왔다. 그리고 평생 받지 않았던 문자도 왔다. "1일 200건 초과 문자 발송 횟수가 월 10회 초과 시 무료 혜택이 중단된다"는 내용이었다. 일방적 문자가 200건이 초과했나 보다. 외로운 체험이다.

[해보니 시리즈 95] '01X' 시절로 돌아가 2G폰처럼 살아보니

'은행 앱 대신 ATM'

체험 내내 빚의 연속이었다. 커피, 식권, 택시 자동결제 등 스마트폰이 없어 대신 부탁했던 것들에 대한 비용이 쌓여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돈을 보내기 위해서도 앱이 필요했다. 평소에는 은행 앱으로 송금하거나 카카오톡을 통해 카카오페이로 곧장 돈을 보냈었다. 그런데 현금을 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 ATM을 이용해야 했다.

사실 이번 해보니를 통해 카톡 지옥에서 벗어나 좋기도 했지만, 연락보다도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꼈다. 어딘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지도 앱이 필요했고, 스마트폰으로 클릭 한 번이면 가능했던 결제나 은행 송금도 컴퓨터를 켜서 처리하거나 아니면 직접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01X 번호로 2G 핸드폰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YTN 전 직원이 아는 011 번호 유저 YTN PLUS 크레이티브제작팀 서정호 팀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Q.011 번호를 언제부터 사용 중인가?
A.97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98년도에 군대에 갔고, 2000년에 제대한 다음 같은 번호를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Q.현재까지 011 번호를 사용 중인데 주변에서 뭐라고들 하나?
A.국정원이냐고 묻는다. 최근 한 국정원 직원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국정원 직원도 지난 해까지 2G 핸드폰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들은 2G 핸드폰을 쓰는구나’하고 생각하며, 사람들의 반응이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에 흥미를 느꼈다.

Q.카카오톡 없이 업무가 가능한가?
A.카톡을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카톡의 편리함에 대해서 잘 모른다.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팀원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 스타트 업에서 활용하는 일감도구들을 물색했다. 가장 많이 쓰는 툴이 디스코드, 슬랙이었다. 그 가운데 게임 개발사에서 많이 사용하는 슬랙을 우리 팀 공식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카카오톡은 어쩐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혼용된 것 같고, 단톡방은 상급자의 일방적인 공지사항 장으로만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나로선 선호할 수 없는 업무 도구다. 이 부분은 팀원들도 잘 이해해 주고 있는 것 같다.

Q.2G 핸드폰을 사용하며 가장 불편한 점?
A.잘 모르겠다.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스마트폰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점이 불편한지 모르겠다. 굳이 찾자면 주변 사람들이 ‘카톡’ 없어 불편하다고 불평할 때? 겸연쩍기 때문에 불편하다면 불편하다.

Q. 2G 핸드폰을 사용하며 가장 좋은 점?
A. 실수를 즐길 때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활용한 최적화된 길을 걸어갈 때, 나 홀로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나름의 경쟁력이 된다. 사유하고 사색하고 독서할 수 있는 시간도 많다. 핸드폰을 손에 붙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멍때리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그런 점이 2G 핸드폰의 매력이다.

Q. 여전히 ‘01X’를 사용하는 동지들에게 한 마디.
A. 얼마 전 그들이 모여 있는 한 카페에 가입했다. 울분이 많더라. 사연도 많더라. 각자 취재를 다 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카페 경험을 통해 느낀 바로는 01X가 그들 개개인의 토템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보내고 싶은 격려 한 마디? 여러분의 명철을 의지하시라.

또 다른 사내 01X 유저 YTN PLUS 디지털 뉴스팀장은 현재 010 번호를 쓰고 있지만, 매달 따로 요금을 지불하며 016 번호를 착신해 유지 중이다.

이에 대해 이유를 묻자 "016 옛 번호를 아직도 유지한다고 하면 다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처럼 오해하는데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다"라며 "2012년 애플 아이폰을 개설할 당시, 2G 번호를 없앨까 생각하다 잠시 보류한 것이 벌써 7년이 넘었다. 결과적으로 1999년부터 20년째 같은 번호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2G 핸드폰은 가지고 다니지는 않고 스마트폰에서 착신해 쓰고 있다. 기본요금만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화 발신은 안 되지만 전화 착신이나 문자 수신은 되기 때문에, 민감한 개인 정보인 전화번호를 노출하기 싫은 여러 활동 (각종 인터넷 사이트 가입, 서명운동, 택배) 등에 옛 번호를 쓰고 있는데, 나름 유용하다"라며 "사실 이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거나 문자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강제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하니 자발적으로 번호를 해지하기는 꺼려지는 마음도 솔직히 든다"고 답했다.

010 번호 통합에 반대하는 단체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 커뮤니티에는 '번호 사연'이라는 게시판이 존재한다. 이 게시판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시던 번호를 물려받았다", "20년 이상 지인들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 같은 번호이기 때문에 바꾸기 힘들다", "10년 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011 번호 덕분이다. 꼭 이 번호를 꼭 사용하고 싶다" 등 '01X' 번호를 유지하는 다양한 사연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01X 사용자들의 번호를 남겨두는 각자의 크고 작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의 번호 유지에 필요한 2G 서비스 자체의 종료가 멀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2G 조기 종료를 통한 공공자원의 효율적 운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질의에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관련 사업자와 협의해 2G망 조기 종료를 고려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업계 또한 통신사들의 2G 서비스가 완전히 종료되는 시점을 2021년 6월 이전으로 판단하고 있다. 각 이동통신사의 주파수 사용 기한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는 다시 헌법 소원을 제기한다. 지난달 30일 기각된 번호이동 청구 소송도 항소하기로 했다. 이들의 요구는 2G 서비스 유지가 아닌 01X 번호를 유지해달라는 거다.

01X 사용자들의 심정도 이해 가지만 010번호통합정책 규제상 불가능한 상황. 각자의 이유로 번호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국가 통신자원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확보에 나선 정부가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YTN PLUS 이은비 기자
(eunbi@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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