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94] '불법 촬영' 탐지 용품들을 써봤다

[해보니 시리즈 94] '불법 촬영' 탐지 용품들을 써봤다

2019.11.09.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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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94] '불법 촬영' 탐지 용품들을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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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촬영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여성 인턴은 회사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온갖 불법 촬영 탐지 장비를 들고 간다. 화장실에는 이 사무실 박 부장이 '취미'로 몰래 설치해둔 불법 촬영 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지난달 열린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해 큰 호응을 얻었던 신서영 감독의 단편 영화 '비하인더 홀'의 큰 줄거리다. 그리고 영화 이전에 며칠에 한 번씩 뉴스에 나오는 '현실'이기도 하다.

불법 촬영을 할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 2011년~2016년 불법 촬영죄로 기소된 사건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총 1,866건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5%에 그쳤다.

화장실, 숙박업소, 탈의실까지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불법 촬영 카메라에 대한 공포. 신고를 해도 미미한 처벌. 그로 인해 일부 여성들이 직접 탐지 장비를 마련해 카메라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시중에는 불법 촬영 카메라를 간이로 탐지할 수 있는 제품들도 여럿 나왔다. 적게는 몇천 원에서부터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탐지 용품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불법 촬영 탐지용 애플리케이션도 출시됐다. 그렇다면 이런 탐지 용품들로 불법 촬영 카메라를 찾아내는 게 정말 가능할까.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간이 불법 촬영 탐지용 카드, 스마트폰 케이스, 탐지기를 직접 구매해 3일간 사용해봤다. 전셋집과 회사, 지하철역, 홍대 인근 번화가 화장실 등 곳곳에서 탐지 용품을 써본 후기를 전한다.


■ '2,000원' 불법 촬영 간이 탐지용 카드 써보니

우선 가장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불법 촬영 간이 탐지용 카드를 사봤다. 신용카드 크기의 투명한 빨간색 플라스틱 카드로, 온라인에는 2,000원~5,000원 정도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중 리뷰가 150개 정도 달린 탐지 카드 한 장을 구매해봤다.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이 카드를 휴대폰 후방 카메라와 플래시 위에 두고 동영상 촬영 모드를 시행한다.

그리고 플래시를 켜고 불법 촬영이 의심되는 곳을 비춰보면 된다. 만약 그곳에 실제로 카메라 렌즈가 숨어있다면 흰색 빛이 반사돼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다.

이는 목표물에서 빛이 반사되는 적외선 탐지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플래시가 빨간 플라스틱 카드를 통과하면서 나오는 LED 빛은 600~700nm 파장을 낸다. 카메라 렌즈 구조상 이 파장대의 빛을 다시 반사하기 때문에 휴대폰 화면에서는 렌즈가 흰색 점으로 보인다. 이런 원리로 맨눈으로는 쉽게 보이지 않는 작은 불법 촬영용 렌즈를 간편히 추적해볼 수 있다.

카드는 두께가 얇고 가볍기 때문에 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다. 구매 후기를 살펴보니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플라스틱 카드이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번에 구매한 제품에는 실제로 카메라를 발견했을 때 신고할 수 있는 경찰과 여성가족부 연락처가 적혀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지갑이나 카드를 따로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가방을 들고 가야 하는 지하철역 화장실이나 공중화장실에서는 사용해볼 만했지만, 사무실에서 일하다 급히 화장실에 갈 때는 자주 잊게 됐다.

또 카메라 위를 덮은 카드가 수시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탐지 중에도 각도에 따라 화면이 흐리거나 번져 보이는 지점이 생기는 것이 단점이었다.


■ 불법 촬영 탐지용 '스마트폰 케이스'

3일 동안 가장 많이 사용했던 탐지 용품은 불법 촬영 탐지용 스마트폰 케이스였다. 20,000원대에 구매한 이 케이스의 원리는 위에서 설명한 간이 탐지 카드와 같다.

스마트폰 케이스 자체에 빨간색 투명 필터가 붙어있는데, 불법 촬영 탐지 시 슬라이딩 버튼으로 빨간 필터를 카메라와 플래시 위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 빨간 필터로 카메라와 플래시를 덮은 뒤 동영상 모드와 플래시를 켜고 불법 촬영 카메라 의심 구역을 비춰보면 된다.

가장 큰 장점은 휴대성이었다. 케이스 자체가 탐지 용품이기 때문에 화장실에 갈 때 특별히 다른 물건을 챙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이 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항상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꼭 화장실만이 아니라 대중교통 등 불법 촬영이 의심되는 장소 어디에서든 탐지를 볼 수 있었다.

겉으로 볼 때 일반 케이스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장기적으로도 사용할 생각도 있다.

다만 아직은 한 업체에서 특허를 낸 아이폰용 케이스만이 출시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유저들은 탐지용으로 나온 휴대용 빨간색 테이프나 카드 제품 등을 대안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 불법 촬영·도청 장치 탐지기

전파로 카메라를 찾아내는 탐지기도 사용해봤다. 탐지기는 성능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했다. 적게는 1만 원대부터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제품도 있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용도이므로 소비자 가격 25,000원의 KC 인증 마크가 달린 탐지기를 사봤다. 놀라웠던 점은 한 업체에만 구매 후기가 560개가 넘을 정도로 탐지기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산 탐지기는 무선으로 전송되는 전파 신호를 감지해 카메라나 도청 장치 등을 찾아내는 장비다. 불법 촬영 카메라를 비롯한 전자제품이 가까워질수록 알람 소리와 진동의 강도가 세진다.

소리가 커지면 장비 가운데의 빨간 레이저 창을 통해 렌즈가 의심되는 부분을 맨눈으로 보고 카메라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탐지기가 통신 가전이나 배선 등이 있는 곳에서 신호 반응을 하기 때문에 화장실 안에서 비데나 긴급 호출 벨 부근에 가져가면 소리가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탐지기 신호 반응이 세진다고 하더라도 카메라가 있는지는 꼭 맨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화장실과 일명 '홍대 놀이터'라 불리는 홍익 문화공원 내 야외 공중화장실을 찾아 이 탐지기를 이용해봤다. 지하철 역내 화장실과 야외 화장실 두 곳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들과 못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나마 홍대입구역 화장실 앞에는 불법 촬영 카메라를 수시로 점검한다는, 서울교통공사의 '여성 안심 화장실'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이날 오전 불법 촬영 장치 유무를 육안 및 탐지기로 점검했다는 표시도 되어있었다.

그러나 홍대 놀이터 야외 화장실의 경우 칸막이 문틈이 벌어져 있고, 창문을 통해 밖에서 화장실 칸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탐지기로 점검한 결과 카메라가 발견되진 않았지만 이용이 꺼려지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 간이 탐지 용품들, 정말 효과가 있을까

다행히 세 가지 탐지 용품을 실험하는 3일 동안 불법 촬영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렴한 간이 탐지 용품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소비자로서 수백만 원 대의 전문 장비를 구매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나마 점검해보고, 육안으로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는 방편이 최선이었다.

반도체 탐지기 등을 활용해 불법 촬영 탐지를 하는 불법감청설비 탐지 전문업체 한국스파이존 이원업 이사는 "간이 탐지 용품들이 나오는 것은 불법 촬영에 대해 우려하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라면서도 "다만 각 용품별 기능을 정확히 설명하고 홍보할 필요는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이사는 "'이거 하나만 있으면 불법 촬영 장비를 다 찾을 수 있다'는 식의 간이 탐지 용품 광고는 개인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라면서 "정확히 어떤 종류의 불법 촬영 카메라를 어떻게 잡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위장형 카메라나, 필터가 코팅된 렌즈 등의 경우 시중의 탐지 용품만으로는 온전한 탐색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소비자들이 참고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간이 탐지 용품을 활용하면 겉으로 노출된 카메라 렌즈를 잡아낼 수 있어 그 효과가 없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위장형 불법 촬영 장비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간이 불법 탐지 용품들로는 다 잡아낼 수 없는 한계가 생긴다.


■ 그런데,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불법 촬영 점검을 해보면서 가장 지배적으로 든 생각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였다.

가해자들이 불법 촬영을 하지 않으면 해결될 일인데, 매번 탐지 용품들을 꺼내어 둘러보고, 화장실 곳곳에 박힌 못과 구멍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지로 구멍을 막아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특히 이번에 구매해 본 세 가지 용품의 구매 후기에는 "아직 성능은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든든하다"라는 모순적인 댓글이 공통으로 달려있었다.

제대로 기능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불법 촬영 점검 장비를 사고도, '언젠가 카메라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점검 용품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는 후기가 쏟아지는 아이러니. 불법 촬영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여성들의 불안한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이동형 불법 촬영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서울시 불법 촬영 점검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2016년부터 예방 차원으로 시작한 서울시내 화장실 불법 촬영 카메라 점검에서 적발 건수는 '0건'"이라며 "경찰에 적발되는 불법 촬영 사례를 봐도 이동하면서 찍고 도망가는 불법 촬영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탐지기가 제대로 작동한다 해도 누군가 불법 촬영을 하고 도망간다면 무용지물이 아닐까.

고정형이든 이동형이든 불법 촬영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늘 존재한다. 그런 불안감이 '이렇게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불법 촬영 탐지 용품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비하인더 홀'에서 '홀(구멍)' 뒤에 숨은 카메라를 찾아내려 홀로 분투하는 여성 인턴사원의 모습은 일상에 가깝다. 하지만 여성들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구멍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카메라를 찾을 게 아니라, 카메라를 설치한 이들을 잡아내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게 급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YTN PLUS 문지영 기자(moon@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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