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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Posted : 2019-10-26 09:22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거친 호흡 뒤로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불 꺼! 돼지 같은데… 저건 돼지야" GPS에는 추적을 떠난 사냥개가 47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표시됐다. 수색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산줄기를 타고 오는 가을바람 탓인지, 식은땀 때문인지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멧돼지와 마주할 수 있다는 긴장감과 기대감에 걸음이 빨라졌지만 멧돼지 대신 우리를 반긴 것은 오소리 굴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색은 계속됐다.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전병호 엽사와 야생 멧돼지 피해를 입은 윤정식 씨가 수색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산소도, 밭도 전부 아수라장"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전국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난 24일, 야생 멧돼지 사냥 현장에 동행하기 위해 경기도 의정부를 찾았다. 이날 수색은 홍복산과 수락산 동막골 등지에서 약 3시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야생 멧돼지 수색 전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전병호 엽사


수색에는 35년 경력의 엽사 전병호(60) 씨와 지난 21일 야생 멧돼지 피해를 시청에 신고했다는 윤정식(63·교수) 씨가 동행했다.

"100평 정도 밭에 고구마, 옥수수, 고추를 심는데 멧돼지 때문에 농사는 다 포기했지. 펜스를 삼중으로 설치했는데도 다 뚫고 들어오니까 이건 뭐 말도 못 해" 윤 씨는 멧돼지가 산소와 밭을 전부 파헤쳐 피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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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도중 발견한 야생 멧돼지의 배설물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야생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


"육감이나 직감이 아니다"

야생 멧돼지 수색은 3마리의 사냥개와 함께 하는 협동 작전이었다. 이날 수색에는 전 씨가 키우는 메리, 수박, 불 세 마리의 사냥개가 함께 했다. 추적조인 메리가 냄새를 맡고 멧돼지를 발견하면 나머지 전투조가 합류하여 멧돼지를 공격한다. 추적조에는 메리 외에 똘이라는 개도 있었지만 지난 21일 멧돼지 공격으로 크게 다쳐 수색에 참여하지 못했다.

엽사는 사냥개들에게 부착한 GPS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이들을 뒤쫓는다. 대개 추적조가 50m 거리 밖으로 뛰어나가면 무언가 발견했다는 신호다. 이후 엽사는 사냥개들이 멧돼지를 붙잡고 있는 동안 총으로 멧돼지를 제압한다.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야생 멧돼지를 추적하는 사냥개에 부착된 GPS를 통해 위치를 확인한다.


전 씨는 "메리는 1억을 줘도 팔지 않을 만큼 추적을 잘한다"며 사냥개 없이 멧돼지를 잡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냥하며 총을 들고 홀로 산을 뛰어다니거나, 먼 거리에서 멧돼지를 저격하여 명중시킨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에서 마주한 풍경은 꽤나 달랐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는"

야생 멧돼지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 씨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라며 총기를 다루는 일인 만큼 안전이 사냥의 가장 기본이자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사냥개와 함께 수색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사냥개 없이 엽사만 투입될 경우, 멧돼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총알이 빗맞아 멧돼지를 더욱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것.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야생 멧돼지를 추적하는 전병호 엽사와 사냥개들


"돼지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부스럭 소리가 나는 쪽으로 총구를 들이댄다고. 그럼 총구가 사람한테 향하고… 돼지 잡으려다 사람 잡는 거지" 실제로 전 씨는 다른 사람이 쏜 총에 빗맞아 귀를 다친 적도 있다고 했다.

또한 멧돼지 사냥은 온도가 높아 활동이 어렵고 등산객이 많은 낮보다는 밤에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야간 산행에서 홀로 멧돼지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다 죽겠구나"

어둠이 내려앉은 산속에서 멧돼지를 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정표나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마치 눈을 감고 이동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특히 개가 짖는 쪽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길이 없는 산비탈을 가로지르고 수풀 속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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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뿐인 산속에서 야생 멧돼지 수색이 이어졌다


수색을 시작한 지 1시간 20분쯤 지났을 때, 짖는 개들을 따라가던 중 산비탈에서 발을 헛디뎌 온몸에 흙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사람들이 멧돼지를 쉽게 잡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닙니다. 내일 되면 온몸이 쑤시고 상처 난 것도 그제야 보일 거예요"

실제로 취재 후 머릿속과 속옷은 물론이고 온 주머니에서 모래와 지푸라기가 쏟아져 나왔다. 문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어갈수록 멧돼지를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의지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개들도 지쳤는지 '쎄엑쎄엑'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사람들의 말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결국 첫 번째 수색을 마무리하고 뒤이어 멧돼지 신고가 접수된 수락산 동막골로 이동했다. 휴대폰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등산로가 아닌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 일은 쉬이 적응되지 않았다.

"결국 마주한 멧돼지였지만"

두 번째 수색은 산에 오른 지 25분 만에 하산해야 했다. 도로변에서 로드킬 당한 멧돼지 수습을 도와 달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 그렇게 3시간 동안 진행된 수색에서도 보지 못한 멧돼지를 도로 한가운데서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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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당한 야생 멧돼지 사체


멧돼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일은 처음이었는데, 이 정도 크기의 개체면 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멧돼지를 눈앞에서 보니 아쉬움은 더욱더 짙어졌다.

"지난 5월부터 주에 2~3회씩 나와서 한 열댓 마리 잡았지요. 잡는 날, 못 잡는 날 반반입니다" 전병호 엽사 역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다음날 생업인 개인택시 영업을 위해 수색은 이쯤에서 마쳐야 한다고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막을 수 있을까?"

24일 기준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 폐사체는 총 14마리다. 이중 민통선 내에서만 발견된 개체 수만 11마리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멧돼지가 민통선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올 경우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이에 환경부는 바이러스 감염 멧돼지 주변으로 전기 펜스와 1.5m 높이의 울타리를 추가로 설치한다고 밝혔다. 민관군 합동포획팀 역시 1·2차 작전에서 262마리를 잡고 오는 29일부터 3일간의 3차 작전을 준비 중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2,180개의 포획 틀이 설치됐다.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전병호 엽사가 사냥개와 함께 야생 멧돼지를 쫓고 있다


이처럼 멧돼지를 막기 위해 총력을 펼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멧돼지의 신체 능력에 비하면 울타리는 크게 의미 있는 저지 도구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멧돼지의 이동량에 비해 합동포획팀의 활동 반경은 턱없이 좁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지자체별 남은 예산이 부족해 포획틀 구입이나 방역에 소요되는 인건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엽사들에게 보상금으로 마리 당 10만 원을 지급하는 방안 역시 검토 단계 수준에 머물러있다.

이에 환경부 아프리카돼지열병 총괄대응팀 관계자는 "예산과 보상금 등 현재 제기되는 문제들은 전부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하나씩 해결하기 위해 관계 부처들과 협의를 통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해보니 시리즈 92]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아라! 멧돼지 사냥 따라가 보니

앞서 멧돼지 사냥에 나선 전 씨가 만일 멧돼지 포획에 성공했더라도 그가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현재로서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전 씨는 "멧돼지에게 공격당한 사냥개 병원비만 6~70만 원"이라며 "농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들을 때 보람을 느껴 이 일을 계속한다. 봉사 정신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멧돼지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속에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언제까지 개인의 호의와 봉사 정신에만 기댈 수는 없을 것이다. 봉사자들에 대한 선제적 지원과 멧돼지 확산 방지를 위해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이번 사태가 마침표를 찍는 시간을 앞당기길 바란다.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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