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88]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받았다

[해보니 시리즈88]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받았다

2019.08.24.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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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88]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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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 제76조2, 3)이 신설됐다. 수년 전 갓 대학을 졸업하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업체를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수시로 언성을 높이고, 볼펜을 던지고, 농담으로 휴가를 주지 않겠다고 하던 상사가 있었다. 규모가 작다 보니 소리 지르며 다그치는 임원과도 부딪힐 일이 많았는데, 종종 휴대폰 녹음기를 준비하고 면담을 해야 했다. 나는 폭언 피해까지 당하진 않았지만, 폭언을 들은 동료들은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나 역시 그 회사를 얼마 다니지 않고 퇴사한 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남겨둔 피해 증거가 부족하고 이미 퇴사한 데다, 신설된 법에 소급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신고할 방법도, 생각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과연 이것이 나만의 경험일까. 직장 내 괴롭힘을 공론화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의 오픈 카톡방에서는 아직도 1,400명이 넘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매일 크고 작은 괴롭힘 피해에 대해 상담을 요청한다.

괴롭힘 금지법이 신설됐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법 시행 한 달을 맞아 직장인 6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2%는 이 법의 시행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에 일부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 21일 YTN PLUS에서도 법의 취지와 예방법, 피해 접수 방법 등을 알리는 교육이 열렸다. 이번 교육은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김유경 대표 노무사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과거 직장 내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입장에서, 여전히 피해에 시달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교육 내용을 공유한다.


■ "이것도 괴롭힘에 해당하나요?"

[해보니 시리즈88]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받았다

김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다니면서 "이것도 괴롭힘에 해당하나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만큼 '괴롭힘'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것이다. 이는 법 시행 첫날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된 점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 제76조2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그러나 업무상 적정 범위,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기준이 상대적이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가령 업무로 인한 갑작스러운 야근이나, 업무 시간 외의 업무 관련 문자를 보내는 것 자체가 반드시 괴롭힘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실제 '직장갑질119' 오픈 카톡방에 들어가 보면, CCTV로 근로 감시, 부당 인사 발령, 상사의 폭언으로 인한 정신과 치료, 임금 체납 등에 대한 피해 사례가 매일 같이 쏟아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이것도 신고할 수 있나요?'

각각의 사정도, 법 적용 여부도 달라서 이번 법안 신설을 이끈 '직장갑질 119'의 노무사와 변호사들은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저녁 21시까지(휴식 12시-13시 30분, 18시-19시 30분) 돌아가면서 상담을 한다. 깊고 자세한 내용은 메일, 밴드, 직접 상담으로도 문의를 받는다.

'직장갑질 119'로 제보된 피해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만 갑질이 아니라, 비하하고, 무시하고 소문을 내고 따돌리고 사적 지시를 하는 것 모두가 '괴롭힘'에 해당한다.

"개발자로 근무하던 중 공장 설립 때문에 충청도로 보내졌습니다. 밤새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다가 막노동 3개월, 농사꾼 2개월이 됐습니다. 새벽 4시까지 직원을 동원해 청소시켰습니다."

"회사 내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모니터는 중간 관리자의 자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CCTV로 직원들을 실시간 관찰하면서 간식 먹은 직원들에게 경고 메일, 메시지 등을 보냈습니다."

"상사가 퇴근 이후, 주말에 술에 취해 팀 단체 채팅방에 하소연하는 글을 올리고 답을 요구하며 팀원들을 괴롭힙니다."

"다른 업체 사람들과 미팅 중에 '또 까이고 싶어? 또 털리고 싶어?'라며 협박성 발언 및 공포감 조성을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그분의 잘못을 인정했는데 제가 정리되었네요. 권고사직으로요."


■ 사장이 괴롭혀도 사장에게 신고해야 한다고요?

그럼 이런 피해를 봤을 때는 어디에 피해 접수를 해야 할까. 우선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동료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하면 사용자에게 알려야 한다. 사용자라 함은 회사의 대표일 수도 있고, 근로자의 업무를 지휘, 감독하는 상관, 임원 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사용자는 피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피해자는 피해 당시 상황과 시간, 피해 정도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한 자료와 녹음 등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

문제는 회사 대표가 괴롭힘의 가해자일 경우에도 대표에게 접수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사업장 관할 지방 노동청에 신고하고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평범한 직장인들은 직장의 대표, 임원을 노동부에 신고하는 건 큰 부담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퇴사를 하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 가해자 처벌은 아직 어려워

용기를 내 피해 접수를 하더라도 가해자 처벌이 어렵다는 것은 더 큰 한계다. 현재 법안으로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각 사업장 내에서의 개선이 최선의 방법이다.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뒤 사용자는 피해 근로자에게 유급 휴가 명령을 내리거나, 요청에 따라 근무 장소를 변경해야 한다. 가해 행위자에 대해서도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행위자에 대한 징계 조치 전 피해 근로자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를 강제로 처벌할 규정이 없기 때문에 피해 근로자를 색출해 소문을 내고, 따돌림을 시키는 2, 3차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그래서 피해 사실을 알린 근로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사용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이 피해자 구제에 실효성이 있는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법 시행 후 한 달 동안 고용노동부에 들어온 진정만 379건이었다. 그러나 이 진정을 통해 괴롭힘이 실제로 방지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뿐 아니라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5인 미만 직장엔 적용이 안 된다. 5인 이상이더라도 소규모 작업장에선 여전히 사용자, 임원들의 직접적인 '갑질'에 시달릴 수 있다. 취업 규칙에 괴롭힘 금지 조항을 넣는 것도 10인 이상 사업장에만 의무 사항이다.

가해자 처벌이 어렵고, 피해자가 신고 시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고, 여전히 소규모 사업장에는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한계들은 법 개정을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남는다.


■ 그럼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은 필요해

[해보니 시리즈88]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받았다

사업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장 이후 "이래서 한국에서 사업하겠나"하는 볼멘소리를 내놓기도 한다. 업무와 관련된 지시조차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스웨덴, 프랑스 등에서는 이미 '형법'으로 직장 내 신체적, 정신적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가해자 또는 사용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만 유로(한화 약 4,0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한다.

법 시행 초기인 우리나라는 가해자 형사 처벌이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적어도 "원래 직장 생활이 그런거야"하는 인식을 바꾸고, 더는 직장 내 괴롭힘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작이 예방 교육 아닐까.

실제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지난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에 예방 교육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해서는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사전 대응을 사용자의 재량에만 맡겨 둬서는 안 된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 의무화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교육자료를 홈페이지에 배포하고 있기도 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인 70%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괴롭힘을 신고해도 신고자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을 애초에 줄이는 게 먼저여야 한다. 월급을 준다고 해서 사용자에게 직원의 인권을 짓밟을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YTN PLUS 문지영 기자(moon@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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