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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하거도' : 지옥도는 과연 사라졌는가?
Posted : 2019-03-15 18:40
[연극 리뷰] '하거도' : 지옥도는 과연 사라졌는가?


짙은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랜턴들이 어지럽게 점멸한다. 사이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철제 정글짐 사이에서 불안과 공포의 표정과 언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로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주민들의 아귀다툼을 철제 구조물을 이용해 역동적으로 표현한 첫 장면이 객석의 시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극단 작은신화 배우 28명이 동원된 대형 창작극 '하거도'(최용훈 연출)의 프롤로그 장면이다.

[연극 리뷰] '하거도' : 지옥도는 과연 사라졌는가?

▲ 사진 제공 : 극단 작은신화 / 코르코르디움



'바다 위에 잇따라 떠오른 시신들'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여 떨어진 섬 '하거도' 인근 바다에서 시신이 잇따라 떠올랐다. 섬 주변에 우연히 놀러온 연인과 유치원 교사에게 처음으로 발견된 데이어 바다에 떠오른 시신은 6개월에 걸쳐 무려 3백여 구에 달했다. 정부 주도로 세워진 살기 좋은 공업도시로 알려진 '유토피아' 하거도는 사실 강제 노역을 시키고 이익을 취해온 거대한 수용소였다. 옥수수죽과 절인 배추로 연명하는 수감자들은 도지사(정세라 扮)와 참모들의 모략으로 급기야 식량 배급이 끊겨 아사의 위기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는 아비규환의 상황에 몰리게 된다.

[연극 리뷰] '하거도' : 지옥도는 과연 사라졌는가?


[연극 리뷰] '하거도' : 지옥도는 과연 사라졌는가?

"내 안에서 저들과 같은 것이 나올까봐 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꿈꾸던 환상은 더 이상은 없다."

섬의 이름을 딴 주인공 하거도(박종용 扮)가 삶의 벼랑 끝에서 외치는 섬뜩한 절규는 하루하루 유토피아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뇌리에 불현듯 디스토피아의 존재와 공포를 되살린다.

'진흙'(2016), '토일릿 피플'(2017), '불의 가면'(2018) 등에서 에너지 넘치는 열연을 펼쳐온 박종용 배우는 이번 무대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복합적 캐릭터를 절제있게 구현하며 극의 중심축을 잡아줌으로써 존재감을 과시했다.

[연극 리뷰] '하거도' : 지옥도는 과연 사라졌는가?

하거도 이야기는 허구다. 하지만 하거도를 닮은 지옥도는 지구상에, 한반도에 존재했고, 존재한다. 제주 4·3사건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자행한 흑역사의 격랑 속에서 굶기고, 찢기고, 총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작품을 쓴 윤지영 작가를 분노하게 만든 2014년 신의도 염전 섬노예 사건도 그 중의 하나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따듯한 밥상에 둘러앉아 하루의 일과를 나눌 때 한 그릇의 죽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을 버려야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못내 외면하고 싶은 이 현실을 시퍼런 눈으로 다시 직시하려는 처절한 안간힘이 묻어 있다.

'하거도'는 '우연한 살인자'(2014년), '인간 김수연에 관한 사소한 보고(2018년)'에 이은 윤지영 작가의 '자아 3부작' 마지막 작품이다. 인간 내면의 악과 우리 사회의 참혹한 현실에 천착해온 윤 작가는 이달 28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전작과 결이 다른 낭독극 '생존 3부작'을 올릴 예정이다.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또다른 '고발'이 주목된다.

이교준 [kyojoon@ytn.co.kr]

[연극 리뷰] '하거도' : 지옥도는 과연 사라졌는가?


■ 공연 정보
연극 <하거도>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2019년 3월 8일~1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윤지영 작. 극단 작은신화 최용훈 연출.

박종용, 안성헌, 홍성경, 석소연, 백은경,
정세라, 김문식, 성동한, 오현우, 채은재,
홍승만, 박유진, 장영철, 조민교, 손성현,
김성준, 조영은, 박소아, 김나래, 최규대,
정지희, 이지훈, 권호조, 양어진, 박다혜,
최신희, 우성식, 성승연 출연

김혜지 무대 디자인, 나한수 조명 디자인
이형주 음악 디자인, 강기정 의상 디자인
백지영 분장 디자인, 정의순 움직임 지도
김정민 조연출, 이흥근 무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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