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독일에서 돌아오는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의 사연

[와이파일] 독일에서 돌아오는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의 사연

2019.02.22. 오후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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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독일에서 돌아오는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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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의미로 왕릉이나 사대부 무덤 앞에 세우는 사람 모양의 석상, 바로 문인석(文人石)입니다. 이름 그대로 모자를 쓰고 관복을 입은 문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무인석과 함께 무덤 주변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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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을 세우는 풍습은 B.C 206년에서 A.D 24년 사이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에서 8세기 무렵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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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릉에 있는 문인석 (출처 : 조선왕릉 홈페이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문인석 한 쌍이 독일에서 돌아옵니다. 원래 있던 장소가 어디인지, 누구의 무덤을 지켰는지도 알 수 없는 이 문인석 한 쌍이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 의심 품은 독일 박물관 '담요에 말려 컨테이너로 들어왔다' 확인

지금 이 문인석이 있는 곳은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입니다. 유럽에서 대표적인 민족학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인데, 2천7백 점이 넘는 한국 문화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 문인석은 독일인 업자인 헬무트(Helmut H. Peper)가 1983년 서울 인사동 골동품상에서 구입해 반출한 뒤 1987년 로텐바움박물관에서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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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함부르크 소재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반환의 계기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문화재 실태조사 중에 시작됐습니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조사해온 연구소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로텐바움박물관에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세 번째 조사를 하던 2016년, 박물관의 수석큐레이터인 수잔느 크뇌델(Susanne Knoedel)이 우리 조사단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문인석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죠.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은 "조상숭배 사상에 따라 무덤 앞에 세워놓기 위해 만드는 것이며 관상용이나 판매용으로 쓰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상적인 미술품으로 거래되지 않는다는데 의심을 품은 로텐바움박물관은 입수 경위를 밝히기 위해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문인석이 '불법적으로 담요에 둘둘 말려 이삿짐 컨테이너에 실려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불법 반출 확인, 반환요청서 보내줄 수 있겠나" 얘기 꺼내

이번 반환이 흥미로운 건 이 부분입니다. 로텐바움박물관은 먼저 "불법성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우리 측에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공식 반환요청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안을 넘겨받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해 3월 반환요청서를 작성해 전달했습니다. 로텐바움박물관과 함부르크 주정부, 독일 연방정부가 반환 절차를 진행한 끝에 지난해 11월 최종적으로 반환이 결정됐고, 문인석은 오랜 방랑을 끝내고 3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 강요한 것도 아닌데…자진해서 기본 지킨 독일

사실 독일이 문인석을 꼭 돌려보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유네스코 협약'과 '국제박물관협의회 윤리강령'에 불법 반출을 막는 내용이 있지만 반드시 지킬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네스코는 1970년 11월 14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재의 불법 반출을 막는 협약을 채택했습니다. 이른바 '1970년 유네스코 협약'이라 불리는 이 협약은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고, 더군다나 독일은 2007년에야 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굳이 이 협약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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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유네스코 협약 관련 이미지 (출처 : 유네스코 홈페이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도 윤리강령에서 '박물관 자료를 취득하는 경우에는 해당 자료가 불법적 소유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불법적으로 유출되지 않았음을 사전에 확인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강령일 뿐 꼭 지켜야 하는 건 아닙니다.

■ 독일 박물관장 "문화재 불법수출, 오랫동안 사소한 범죄로 여겨졌다"

이번 자진 반환에는 로텐바움박물관 관장의 의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바라 플랑켄스타이너(Barbara Plankensteiner) 관장은 반환이 결정된 뒤 "이번 사례가 역사적 문화재에 대한 불법수출이 오랫동안 사소한 범죄로 여겨져 왔고, 박물관 스스로도 자세히 살피지 않고 되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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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바라 플랑켄스타이너 관장 (사진 제공 : P. Schimweg/MARKK)

또 "유네스코 협약을 적용해 대한민국에 귀중한 유물을 돌려주게 되어 기쁘고, 한국 측과 협업을 견고하게 지속하는 과정이 한 걸음 더 진전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일제 강점기 때 가치 주목…해외로 빼돌리기 시작

그런데 이 문인석은 어떤 배경 속에 이삿짐 컨테이너에 숨겨져 독일까지 갔던 것일까요.

원래 무덤의 수호자인 문인석과 무인석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일반 예술품이 아닌 '별개의 예술품'으로 여겨져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 고미술상들이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도난당하거나 불법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일본 고미술시장에서 조각품으로서의 석물(돌로 만든 사람상과 동물상을 모두 포함합니다)의 가치를 주목하면서 불법 반출이 급증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까지 이런 관행이 꾸준히 이어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1990년대 들어서야 석물의 거래를 엄격하게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가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비지정문화재'의 경우, 구입해서 해외로 가지고 나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공항에 있는 문화재감정관실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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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벌리고 다물고' 닮은 듯 다른 문인석

끝으로 이 문인석이 지니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무엇인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문인석의 크기와 조각 수준을 봤을 때 왕릉이 아닌 일반 사대부의 무덤에 놓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높이가 각각 131cm, 123cm로 8cm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인체 비례나 조각 방식 등을 봤을 때 두 점은 같은 무덤에 놓인 '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홀이 턱에 닿아있는 모습은 16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또 소맷자락 하단이 몸 옆으로 돌아가서 끝나는 방식은 16세기 후반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 문인석은 1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와이파일] 독일에서 돌아오는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의 사연

이 문인석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입의 모양'입니다. 왼쪽에 있는 문인석은 입을 '아' 벌리고 있고, 오른쪽은 입을 꽉 다물고 있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평가 의견을 낸 석조각 전문가 김이순 홍익대 교수는 이 모습이 불교에서 말하는 '아훔'의 표현일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입을 벌린 모양과 다문 모양을 의미하는 '아훔'은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불교적 도상입니다. 경주 석굴암에 있는 '불교의 수호신' 금강역사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입 모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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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금강역사 (출처 : 석굴암 홈페이지)

만약 이 문인석의 입이 '아훔'을 표현했다면 유교적 의미를 담은 문인석에 불교적 요소가 더해진 특이한 경우가 된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 일본과는 다른 독일의 '양심적 결단'…4월 공개 행사 예정

이 문인석들은 다음 달 19일 독일에서 반환행사를 마친 뒤 국내로 돌아오게 됩니다.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돌려주는 독일의 이번 결정은 어떻게 보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을 지켰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현실에서 스스로 내린 '양심적 결단'이기에 더 놀라움을 안겨줬습니다.

긴 사연을 품고 36년 만에 돌아오는 문인석 한 쌍은 오는 4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우리와 만납니다.

###이지은[j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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