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2018.08.04.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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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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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일회용 컵 규제 시행 첫날이었던 8월 1일. '나부터 실천하자'는 마음으로 카페 내 머그잔, 텀블러 사용을 시작했다. 하지만 텀블러를 들고 찾은 내가 무색할 만큼 테이블 곳곳엔 일회용 컵을 지닌 손님들뿐이었다. 빵을 데워 그릇에 내어 주면서도, 손님의 컵은 일회용 컵이었다.

"오늘부터 카페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 아닌가요?" 주문을 받는 카페 직원에게 물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손님들이 일회용 컵 규제 시행 자체를 모르시고, 잠깐 있다가 바로 가신다고 하셔서 그냥 드렸어요"라고 말이다.

그렇게 찜찜한 기분으로 커피를 사 들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이드라인 재정비로 일회용 컵 규제 시행을 하루 늦췄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가 현장에서 보았듯, 너무나 갑작스럽게 시행된 규제 때문에 생긴 직원과 고객 혼선의 결과인 것 같았다.

다음은 환경부가 발표한 일회용 컵 규제 점검 기준 요약이다.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기본 점검 방식
▶지자체 담당자가 해당 현장을 방문하여 점검하는 것이 원칙
▶컵파라치 등 제보만으로 일선 매장에 과태료 부과 등을 불가
▶현장 점검 시, 실적 위주의 과태료 부과는 지양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조치)

◎현장 상황 확인 시 검토 필요사항
▶소비자의 테이크아웃 의사표명 여부
▶사업주의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불가 고지 및 테이크아웃 여부 확인
▶사업주의 규정 준수를 위한 노력 확인
- 적정량의 다회용 컵 비치(일정 수의 다회용 컵 비치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매장 규모에 비해 너무 적은 양의 다회용 컵이 비치된 경우, 규정 준수 의사가 미흡한 것으로 추정)
-안내 문구 부착 등 다회용 컵 사용을 위한 홍보 여부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2일 일회용 컵 규제가 본격 시작된 오전 10시쯤 서울 마포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았다. 무슨 메뉴를 고를까 고민하던 찰나, "매장에서 드실 건가요?"라고 직원이 물었다. 평소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묻던 멘트를 생략할 만큼 일회용 컵 규제 안내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나는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고, 머그잔에 음료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카페에 머물며 다른 손님들의 주문하는 모습을 살폈다.

손님 대부분은 카페 직원의 요청에 응했다. 텀블러를 건네는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직원의 설명을 들은 손님들은 머그잔에 음료는 받는 것에 대해 그다지 거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시간 대에 오는 손님들은 달랐다. "잠깐만 앉았다 갈게요", "5분만 있다가 갈 거니까 일회용 컵 에 그냥 주세요", "머그잔? 아뇨 일회용 컵에 주세요" 등 매장 내에서 먹지만 일회용 컵에 달라는 손님이 다수였다. 짧은 점심시간인 만큼 잠시 카페에 머물기 때문에 일회용 컵에 받겠다는 것.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직원은 "우선 머그잔에 받고, 음료 남으시면 나가실 때 일회용 컵에 담아 드릴게요"라고 안내를 했다. 손님 대부분은 직원의 설명에 머그잔으로 받겠다고 했지만, 일부 손님은 "매장 내에서 안 먹을 테니까 그냥 일회용 컵에 줘요", "그냥 주면 되는데 너무 깐깐하게 군다. 신고 안 할게요" 등의 격양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매장 내에서 안 먹겠다고 말한 손님이 커피를 받자 자신이 한 말을 잊은 사람처럼 테이블에 앉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유롭게 커피를 들이켰다. 직원의 설득과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확인했듯 이번 규제로 인해 가장 힘든 위치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생에게 직접 고충을 듣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 A 프랜차이즈 카페 아르바이트생 인터뷰 ■

Q. 일회용 컵 규제가 시작됐다. 카페 내에서 먹겠다는 손님들에게 어떻게 안내하고 있나?


카페 내에서 먹겠다는 손님들에게, ‘머그잔에 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묻지 않고, ‘매장에서 드실 건가요?’라고 물은 후 매장에서 드시겠다고 하면, 머그잔에 드린다고 곧장 안내하고 있다. 또 일회용 컵에 달라는 손님들에게는 ‘곧장 가실 건가요?’라고 물은 후, 잠시 머물겠다고 하면 ‘머그잔에 우선 드린 뒤 나갈 때 테이크 아웃 잔에 담아 드릴게요’라고 하고 있다. 번거로워도 어쩔 수 없다.

Q. '카페에서는 먹고 싶지만, 머그잔은 싫다'는 손님이 있었나?

끝까지 우기는 손님은 없었다. 대부분 벌금 이야기나 규제에 관해 설명해 드리면 손님들이 대부분 용인해 주신다. 아직 무례한 손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최대한 설득을 해서 대응할 생각이다.

Q.규제 시작 후 어려운 점?

설거지가 가장 문제다. 주문도 받고 음료도 제조하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니까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반복해서 규제 내용을 설명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손님이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규제 설명하랴 음료 제조하랴 매우 버겁다. 또 뚜껑이 없다 보니, 커피를 쏟는 손님이 좀 생겼다.

Q.텀블러 손님이 늘거나, 머그잔에 먼저 달라는 손님이 있었나?

텀블러 손님이 늘진 않았다. 텀블러를 들고 오는 손님은 기존에 들고 오던 분들이 꾸준히 가지고 오신다. 머그잔도 대부분 설명을 들은 후 '그럼 머그잔으로 주세요'라고 말씀하시지, 먼저 머그잔으로 달라는 손님은 아직 없었다.

Q.일회용 컵 규제의 빈틈 또는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환경부 자체에서 홍보를 제대로 안 한 상태에서, 일회용 컵을 규제하고 벌금을 이야기하니 좀 당황스럽다. 모두 업주 책임으로 돌리는 규제 또한 마찬가지다. 가이드라인에 사업주의 규정 준수를 위한 노력, 안내 문구 부착 등 홍보 여부가 검토 사항으로 있는데. 환경부가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후에 시행해야지 홍보마저 업주에게 맡기는 건 좀 이해가 안 간다.

Q.직접 손님들에게 머그잔을 권유해야 하는 카페 직원으로서, 손님 또는 규제를 하는 환경부에 당부의 말이 있다면?

환경부의 규제로 일은 많아졌지만,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은 똑같다. 힘든 걸 누가 알아주겠냐. 식기세척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는 심정이다. 카페 내에서 드실 거면 솔직하게 그렇다고 말씀하시고 머그잔에 드셔주셨으면 좋겠다. 또 벌금 자체를 업주 반 손님 반으로 책정하면 좀 더 실효성 있는 규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인터뷰 이후에도 업주들의 답답한 심경이 담긴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보게 됐다. 개인 카페를 운영 중이라는 이 업주는 "테이크 아웃 컵으로 테이블에 1분이라도 앉아서 마시면 안 되고, 일행의 다른 음료가 나올 때까지 서서 기다리면서 마셔도 안 된다"고 구청 직원이 말했다는 것이다. 정말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설명이었다. 혼선이 있었던 8월 1일 기준 규제 가이드였겠으나,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답변이었다. 업주와 카페 직원만 고생하는 규제 탓에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겨 환경부에 직접 묻기로 했다.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 환경부 박정철 사무관 인터뷰 ■

Q. 업주들이 가장 고민이 많은 부분인 '테이크아웃 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일회용 컵을 받아 테이블에 앉는 손님'이 골치다. 이 부분도 업주 과태료 부과 부분인가?

손님과 업주 양쪽에 다 확인을 한다. 손님에게는 매장 내 사용 불가 고지를 받았는지와 테이크아웃 의사를 밝혔는지를 묻고 점주에게는 손님에게 규제 관련 사항을 알렸는지 확인을 해서 판단할 예정이다. 만약 점주가 규제 사항을 알렸는데, 손님이 일회용 컵을 받고 앉아 계시는 거라면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는다.

Q. 플라스틱 컵만 규제고 종이컵은 점검 기준에 없다. 그럼 뜨거운 음료는 뚜껑만 아니면, 매장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이용해도 괜찮은 건가?

규제상 플라스틱 컵만 위반 사항으로 보고 있다. 뜨거운 음료를 담는 종이컵뿐만 아니라, 종이컵을 닫는 플라스틱 뚜껑도 현재 규제 사항에서는 위법이 아니다.

Q.일부 업주분들 사이에 '손님인 척'하고 점검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더라. 사실인가?

규제를 안 지키시기 때문에 하는 걱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장 점검은 점검이면 다 밝히고 할 예정이다. 안 밝히고 있다가 과태료 부과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어차피 다 확인은 해야 한다. 점주분께도 확인하고 소비자한테도 확인한다. 손님인 척 과태료 부과를 하는 등 단적인 면만 보고 결정하진 않는다.

Q. 2일 수정된 가이드라인에서 컵파라치 등 제보만으로는 과태료 부과가 불가하다고 했는데, 컵파라치의 제보로 불시 점검은 가능한가?

사진만 가지고는 판단이 안 된다. 하지만 제보가 들어오면 확인하기 위해 현장 점검을 할 수도 있다.

Q.지자체 담당자 현장 점검은 횟수나 기간이 정해진 상태로 점검이 이뤄지나? 점검은 언제까지인가?

점검은 8월부터 시작했고, 현장 점검을 나가는 일정은 지자체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상이할 수 있다. 점검 종료일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점검해나가면서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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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먼저 '왜'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바로 플라스틱 사용이 우리에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말이다. 우리는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과 페트병 등이 대부분 재활용될 것으로 생각하며 분류 배출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재활용이 불가하다. 재활용은 단일 재질로 이루어진 폐기물만 가능한데, 카페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컵의 대부분은 재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페트와 합성수지를 혼합해서 만든다.

이렇게 재활용할 수 없는 플라스틱은 영원히 썩지 않고 지구 온 곳을 떠돌다가 결국 바다로 유입돼 해양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일으킨다. 환경단체의 연구에 따르면 매해 평균 약 8백만 톤의 폐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으며, 바다에 떠 있는 쓰레기의 90%가 플라스틱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사진 = KBS 1TV 'KBS 스페셜' 화면 캡처)

지난달 5일 방송된 KBS 스페셜 '플라스틱 지구 - 플라스틱의 역습'에서 알갈리타 해양연구재단 무어 선장은 "지금 문명사회의 모든 사람은 플라스틱 홍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어느 곳에서든 플라스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플라스틱은 생태계 모든 곳에서 오염물질이 되어있다. 그리고 우리 몸과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공격하고 있다"라며 "365일 내내 빠르게 돌아가는 생활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쉽게 내버린다. 이 바쁜 삶으로 인해 우리는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해 보기 힘들어졌다. 소비를 늘린다고 해서 반드시 삶의 질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만이 플라스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해보니 시리즈 41] 일회용 컵 규제,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

그렇다. 일회용 컵 사용 자제는 불편함과 편함을 따지는 선택을 넘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일회용 컵 규제를 하면서 크고 작은 혼란이 있겠지만, 손님이 먼저 우리가 먼저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우리 몸과 모든 생명을 공격하는 플라스틱 홍수 시대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일회용 컵 규제를 행하고 벌금을 매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모두의 인식 개선과 우리가 왜 일회용 컵 사용을 줄여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할 때인 것 같다.

YTN PLUS 이은비 기자
(eunbi@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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