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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35] 일주일 동안 화장 안 하고 출근해보니
Posted : 2018-06-23 08:00
[해보니 시리즈 35] 일주일 동안 화장 안 하고 출근해보니
여자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꾸밈 노동’을 그만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팀장의 제안에 아침마다 화장하기도 귀찮은데 “잘 되었다!”라며 덥썩 미끼를 물었다. '일주일 동안 화장하지 않고 지내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팀장은 화장 안 하고 출근하기는 물론이고, 백화점에도 가고, 어른들도 만나고 오고 사람들의 반응을 잘 관찰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19세기 여성들이 가느다란 허리를 위해 고래 뼈로 만든 '코르셋'으로 신체를 구속했다면, 이 시대 여성들은 마른 몸매에 완벽한 피부표현, 커다란 눈매를 위한 인조 속눈썹, 어리고 생기있어 보이는 볼 터치와 계절과 화장법에 맞는 입술 색조 화장품으로 미의 기준을 충족하려 노력한다.

여성의 몸을 압박하는 코르셋은 지난 세기의 유물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그대로 남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여성의 몸을 옥죄고 있는 건 아닐까?

탈코르셋이 단순히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분야는 화장이다. 습관처럼 하던 화장을 멈췄다. 먼저 피부색을 하얗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자외선 차단제는 바르되 색조 화장은 전혀 하지 않고 비비크림도 바르지 않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옷은 평소와 같이 갖춰 입는다. 탈코르셋은 과도한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입는건 아니다.

첫날엔 어색해서 자외선 자단제를 바르고 선글라스를 쓰고 외출했다.

가장 처음 들은 말 : “오늘은 회사 안 가시나 봐요?”
평소와 같은 출근길, 경비원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나에게 “오늘은 일 안 나가시나 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닌데…

두 번째 들은 말 : “어디 아파? 입술 색이 없어”
화장을 하지 않을 때 가장 고민한 부분은 바로 입술화장이었다. 눈화장이나 눈썹 화장, 잡티를 가리는 컨실러는 사용하지 않아도 입술 색이 없는 편이라 꼭 틴트는 발라야 할 것 같았다.

급기야 틴트를 바르는 일이 대단한 유혹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틴트를 발라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주머니에 틴트를 따로 챙기기까지 했다. 여차하면, 이번 프로젝트를 '실패'로 돌리려는 내적 갈등이 일었다.

결국 동료에게 ‘입술 색이 없다’는 지적이 돌아왔다. 오늘따라 얼굴이 흙색(?)이라는 말도 함께.

세 번째 들은 말 : “그래도 화장을 하고 다녀야지”
가족들은 내 민낯을 보더니 "그래도 화장을 하고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활동을 하는데 때에 따라 맞는 복장이 있는 것처럼 여자에게 화장은 기본적으로 갖춰 입는 '옷'과 같다는 거다. 화장하지 않은 여자는 '게으르다'는 편견도 있었다. 늦잠 자서 화장 안 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해보니 시리즈 35] 일주일 동안 화장 안 하고 출근해보니

△ 화장품 파우치가 때로는 두개가 된다. 무게가 상당하다.

매일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 23분, 아침에 자외선 차단제만 바르고 나서면 '2분'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농담처럼 건네는 말 속에는 "여자의 화장은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
내가 있는 디지털 뉴스팀은 자유로운 분위기라 화장하지 않은 여성도 많고, 화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 나쁠 정도로 얼굴에 대한 지적을 들은 일은 없었다.
다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내 안의 '코르셋'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엔 충분했다.

미션을 수행하러 백화점에 갔을 때 특히 주눅이 들었다. 화장하지 않았으니 나를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완벽하게 화장한 얼굴이 여자의 무기(?)처럼 여겨진다는 건, 외모를 자산으로 삼고 있다는 뜻 아닌가. 여성을 외모로 줄 세우고,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에 반감을 품는 나도 그런 편견을 체화하고 있었다.

동시에 타인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거나 묘사하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거리낌 없는 사회라는 깨달았다. 민낯을 지적하는 사람들 모두 타인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거나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화장하는 걸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과한 화장을 기본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가 여성의 꾸밈 노동을 부추긴다. '탈코르셋'이 궁극적으로 나가야할 방향은 서로의 외모에 대한 지적과 편견을 입 밖으로 내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것이 아닐까?

일주일동안 화장 안 한 얼굴로 살면서, 꾸밈 노동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실적을 올려야 하는 은행 4년 차 행원, 아침마다 틴트를 바르는 여학생, 탈-코르셋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대학생이 그 대상이었다.

◇ 은행원(여·29세·4년 차)과의 인터뷰

기자: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혼나거나 지적받은 일이 있는지?"

-은행원 A 씨: 있다. 유니폼을 입는 직업이긴 하지만, 암묵적으로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남자는 아무도 화장하지 않는데 여자만 화장한다.

웃긴 건 남자 상사들은 뭐라고 한 적 없다. 여자 상사가 "○○씨, 립스틱 좀 바르지?"라고 말했다. 오히려 여자가 여자에게 화장을 강요한다.

본인도 신입 행원 때부터 화장하라고 지적을 받았다면서 후배한테도 강요하더라.

기자: "아침에 화장하고 출근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은행원 A 씨: 그래서 출근한 뒤에 화장한다. 그런데 얼마 전엔 상사가 "미리 화장하고 오는 게 더 보기 좋다"고 말했다. 여자와 여자의 문제라기보단 세대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은행에서 성희롱 방지 교육 같은 걸 많이 하고 징계도 적극적인 편이라 오히려 남자 직원들은 입조심을 하는 편이다.

기자: "화장을 안 하고 업무를 본 적 있나?"

- 없다. 방송하면서도 모두 화장을 하지 않나? 얼굴이 지저분하면 나라도 화면 보기 싫을 것 같다. 방송은 남자 아나운서도 여자 아나운서도 모두 화장하니까 공평하고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은행은 여자만 화장한다.

◇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틴트를 늘 챙기는 중학생(15세·2학년)

기자: "엄마가 틴트를 바르라고 먼저 권유하는 장면을 봤다. 아침마다 틴트를 바르고 학교에 가는지? 귀찮진 않은지?"

- 화장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으시는 편이다. 토요일에 친구들하고 약속을 잡을 땐 눈화장도 하고 나간다.친구들끼리도 화장품 정보 교환도 하고 예뻐 보이면 좋은 거 아닌가? 자기만족 같다.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들어봤는지?"
- 제 생각엔 화장이 불편하거나 학교에서 화장 꼭 하는 게 규칙이면 싫어질 수도 있는데, 화장하는 게 재밌다. 그리고 화장 안 하면 스스로가 못생겨 보일 때도 있어서 화장하면 예뻐지니까 기분 좋다. 화장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는 어른들이 더 싫다.


◇탈코르셋 운동을 열심히 하는 대학생(4학년·26세)

"탈코르셋 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뷰티 유튜버가 탈코르셋 한다고 말해서 알게 되었다. 화장품을 부술 정도로 용기 있진 않지만, 화장 안 하니 기분이 좋았고 화장이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약간 '이 좋은 걸 왜 안 해?'라면서 전도하는 기분? (웃음)

[해보니 시리즈 35] 일주일 동안 화장 안 하고 출근해보니

△ 탈코르셋을 선언한 뷰튜 유튜버 '우뇌'
"탈코르셋 하니까 좋은 점은 뭔가? 아침에 화장 안 하니까 나도 편하긴 하더라."

-취업 준비하면서 느낀 걸 말해보면…. 회사 면접 볼 때 여자 중 일부는 아침에 미용실을 다녀온다. 면접용 메이크업도 있다. 하지만 남자는 그냥 깔끔하게 면도하고 가면 된다. 여자도 깔끔하게 세수하고 가면 안 되나? 면접용 옷을 사는 것도 돈인데 여자라서 한가지 관문이 더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물론 나도 기초 화장품 바르고 피부 노화도 신경 쓰인다. 하지만 과한 돈을 들이는 일은 다른 것 같다. 여자라서 드는 비용에 대한 과감한 생략을 해보자는 거다.

학생이고 취준생이라 한 푼이 아쉬운데 압박에서 벗어난 거 같아서 좋다.

"본인이 탈코르셋을 해도 사회가 여전히 코르셋을 조이고 있다. 초등학생도 화장하고, 전에 인터뷰한 중학생은 엄마가 틴트를 챙겨준다."

- 맞다. 미디어가 조장한다. 어린이들도 화장하라고 부추기고. 걸그룹같이 보이게 하고. 다행히 요새는 경각심을 가지는 언론도 많고 취재도 많은 것 같다. 학교에서 무조건 애들한테 '화장하지마!'라고 하지 말고 페미니즘 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많은 여자가 화장 안 하면 "아 화장이 필수가 아니구나?","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선택이구나?"하고 누군가는 생각하지 않을까?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는 화장을 강요하듯 탈코르셋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대한 반감도 있다."

- 앞서 말했듯 방식이 좀 잘못되었을 수 있다. "좋은데 왜 안 해?"라고 말하는데 그게 폭력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고.사실 화장만 안 한다뿐이지 여전히 빡세게(?) 꾸미는 여성도 많다. 갈 길이 구만리다.

여성 중 탈코르셋을 하든 하지 않든, 외모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탈코르셋'은 타인의 기준으로 만든 압박을 버리는 일이며 타인의 외모를 함부로 재단하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뿐이었지만 내게 화장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그 자유는 곧 '꾸민 나'에게 만족했던 시간만큼, '꾸미지 않은 나'라는 자유를 알게 해주었다.

문제는 화장이 가벼운 선택인 사람도 있지만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거다. 한 영화관은 티켓 판매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화장에 대한 기준을 요구해 논란이 된 적 있다. 붉은색 립스틱과 스타킹이 갖춰지지 않으면 '복장불량'으로 지적했고, 백화점 판매 사원도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만 완벽한 화장을 요구한다.
언제나 '용모단정'의 기준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엄격하다.

학생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근 경기도의 한 여자 중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여자는 다리가 굵으면 매력이 없다"는 말과 함께 성차별적인 발언을 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일이 있었다.
여전히 숨쉬듯이 여성에게 외모의 중요성을 주입시키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는 사회다.

[해보니 시리즈 35] 일주일 동안 화장 안 하고 출근해보니

△ '알바 복장' 규정에 항의하는 알바노조원들

여성은 입사 면접에서도 화장이 기본이다. 누가 민낯으로 면접에 들어갈 수 있을까?

단순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편의점, 음식점,영화관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45%가 화장이나 옷차림 등 외모 통제를 경험했다(알바노조 2017년 495명 대상)
알바를 하기 위해 화장품을 구입하고, 기업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예상에 없던 지출을 한다.
여성에게 꾸밈노동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로 인한 지출을 요구한다.

여성에게 화장이나 꾸밈이 가벼운 '선택'이 될 날이 곧 올까? 여자에겐 선택처럼 위장된 강요가 곳곳에 있다는 걸 깨닫는 이 시간이 다른 여성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며, 일주일을 정리한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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