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26] 감기몸살로 27만원?! 스페인 병원에서 살아남기

[해보니 시리즈 26] 감기몸살로 27만원?! 스페인 병원에서 살아남기

2018.01.24.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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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26] 감기몸살로 27만원?! 스페인 병원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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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스페인의 병원이"
은행을 찾아 총 271,674원을 스페인의 한 병원으로 송금하며 해묵은 큰 숙제를 처리한 기분이 들었다. 빚을 갚는 기분에 마음은 편안했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찝찝함도 감출 수 없었다. 스페인에서부터 떠오른 온갖 궁금증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병원비는 원래 이렇게 비싼 것일까?
도대체 병원 대기 시간이 왜 이렇게 긴 것일까?
어떻게 병원 수납처가 오후 2시에 문을 닫을 수 있지?
내가 만약에 병원비를 안 내면 어떻게 하려고 나를 그냥 보내줬지?

이 기사는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쓰러져도 병원에서"

[해보니 시리즈 26] 감기몸살로 27만원?! 스페인 병원에서 살아남기

지난 12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낯선 스페인 땅 한가운데서 병원을 가게 되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독한 몸살에 한국에서 챙겨간 상비약과 현지 약국에서 구입한 약은 무용지물이었다.

스페인 땅을 밟은 지 겨우 3일 만에 '이러다가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쓰러져도 병원에서 쓰러지는 것이 낫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숙소의 외국인 직원에게 병원을 소개받았지만, 국내 포털 사이트와 여행자 정보 공유 카페 등에서는 유용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이 기사는 해외여행 중 갑자기 병원을 찾아야 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스페인 병원 방랑기"

[해보니 시리즈 26] 감기몸살로 27만원?! 스페인 병원에서 살아남기

기나긴 스페인 병원 유랑기는 택시가 잘못된 목적지에 정차하면서 시작됐다. 첫 병원에서는 병원비로 "최소 200유로(12월 18일 당시 시세 기준 약 26만 원)가 나올 텐데 정말 진료를 받겠냐" 물어왔다. 무언가 이상한 마음에 확인해보니, 숙소 직원이 알려준 곳은 10분 거리에 위치한 다른 병원이었다.

그렇게 다시 택시에 몸을 싣고 겨우 병원에 도착했지만, 접수만큼 어려운 것이 없었다. 안내 창구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첫 번째 병원에 경험했기에,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직원부터 찾아 나섰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플리즈 헬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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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장만 끝없이 반복하며 대여섯 명의 직원을 붙잡았을 즈음, 마침내 의사소통이 가능한 직원을 만났고, 덕분에 무사히 접수까지 할 수 있었다.

접수처에서는 여권 혹은 여권 사본을 제출하고, 집 주소를 영어로 기재해야 했다. 다행히 여행 내내 여권 사본을 지참했기에 접수는 별 탈 없이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아예 자세를 잡고 누워 자거나, 졸고 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배고픔과 추위에도 고개를 가눌 수 없을 만큼 졸음이 몰려왔다.

"선생님! 저희 또 헤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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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후 1시간 40분이 지나 처음으로 내 이름이 불렀을 때 눈물이 나올 뻔했고, 의사 선생님과 마주했을 때는 정말 울컥할 정도로 서러움이 몰려왔다. 다행히 그와는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지만 사실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 영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온갖 단어와 몸짓이 동원됐다.

"무척이나 아파 보이네요. (이마를 만지며) 열도 좀 있고, (목을 만지며) 여기 아파요? 아프군요. (청진기를 가슴에 대며) 숨 크게 쉬어 보세요. 잘했어요. 이제 약을 맞고, 가슴 사진을 찍어야겠어요. 나가서 기다리세요"

1시간 40분을 기다렸는데, 또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울상을 지으며 "너무 아파서 더 이상은 기다리기 힘들다"고 말하자 의사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스페인에서는 인내와 대기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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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기본 2~3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해요.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 봤죠? 6시간 기다리는 일도 흔한 일이에요. 지금 당신은 빨리 진료받은 편이에요. 하지만 많이 아파 보이니까 약을 빨리 맞을 수 있도록 얘기해볼게요"

[해보니 시리즈 26] 감기몸살로 27만원?! 스페인 병원에서 살아남기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링거를 맞기까지 40분을 대기했고, 이후 폐렴 여부 확인을 위한 엑스레이 촬영까지 1시간 30분을 또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엑스레이 촬영이 끝날 때까지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링거 바늘을 꽂은 채로 병원을 전전해야만 했다.

"병원비를 내야 하는데, 수납처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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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대기시간보다 더욱 황당한 상황은 모든 진료가 끝난 후에 펼쳐졌다. 병원비 결제를 위해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수납처를 찾았는데, 이미 직원들은 퇴근하고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한 멕시코 직원은 나에게 병원 안내도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주며 말했다.

"수납처는 아까 오후 2시에 문을 닫았으니까, 꼭 이 번호로 연락해서 병원비를 내야 해요"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갈로 향한다'는 나의 말에 그는 웃으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포르투갈? 와우! 알았어요. 하지만 꼭 전화해서 병원비를 내야 해요. 잘 가요"

"몰래카메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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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양심카메라나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황당했던 순간이었고, 그렇게 한동안 로비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다 다시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를 찾아가 물었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면 병원이 알아서 할 것이다. 물 많이 마시며(3L) 편히 쉬고 있어라'라며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태평한 그와 달리 나는 정확한 병원비도 모른 채 불편한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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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행한 포르투갈과 스페인 남부의 풍경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병원에서의 기억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귀국 8일 뒤인 지난 1월 9일 익숙하지만 낯선 스페인어가 적힌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됐다.

"병원비는 무려 27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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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스페인어로 적혀 있었지만, TOTAL 175 EUROS라는 숫자와 ES92 2038 1859 5760 0388 0326이라는 것이 계좌번호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A4 용지 한가득 적힌 내용을 전부 번역할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이것은 진료비를 납부하라는 안내문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진료비에 가슴이 쓰렸지만, 은행 어플을 통해 계좌이체를 시도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에 직접 은행을 방문해 '외화 송금신청서'를 작성했고, 병원비 175유로와 송금 수수료 25유로, 전신료 등을 포함해 총 271,674원을 계산했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나와 같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까?

"스페인 사람, 스페인 교포, 스페인 유학생에게 묻다"
해답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주한스페인대사관과 외교부 측에 문의했으나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스페인 현지에 거주하는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번째, 병원비는 원래 이렇게 비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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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스페인 병원비'라고 검색을 할 경우, 병원비가 무료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스페인의 사회보장제도인 'Seguridad Social'에 가입된 스페인 현지인이나 현지 근로자의 경우, 국립병원에서의 진료는 모두 무료다.

치료는 물론이고, 수술이나 입원 등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스페인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스페인의 건강보험 제도는 전 세계 최고라고 자부해요. 정말 멋진 제도죠" 바르셀로나 출신인 이선 팔라우스(Isern Palaus, 28) 씨는 자국의 의료보험체계에 굉장한 만족감과 함께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 사립병원의 경우, 스페인 사람들도 진료비를 내야한다. 스페인 사회보장제도에 가입이 되어있지 않은 여행객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여행객의 경우, 사립병원이든 국립병원이든 당연히 진료비를 내야만 한다.

두 번째, 대기 시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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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체험한 것처럼 기본 대기 시간이 1~2시간으로 굉장히 길어지는 이유 역시 국립병원의 무료진료 때문이다. 작은 통증이나 가벼운 질병에도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아 자연스레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

대기 시간이 긴 이유는 또 있다. 병원이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갑자기 아픈 경우, 환자들은 응급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심장마비처럼 긴급한 환자부터 우선순위로 치료하는 응급실 특성상 일반 환자들은 마냥 대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날의 나처럼.

"한국에서는 정말 위급한 상황에 응급실을 이용하잖아요.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조금만 아파도 누구든 무조건 병원부터 가요. 하지만 예약을 못 하고 응급실부터 가니까 정말 죽기 직전까지 아프지 않은 이상, 보통 응급실에서도 2시간은 거의 기본이에요. 게다가 예약하지 못한 외국인까지 오니까 환자들이 정말 많죠"

스페인에서 26년을 살았다는 교포 박명(29) 씨는 스페인 응급실은 경상 환자부터 중상 환자, 그리고 외국인 환자까지 정말 다양한 이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피부병으로 스페인 병원 응급실을 찾았었다는 7개월 차 교환학생 최민지(27) 씨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고 했다. "응급실 대기실에 환자들이 가득 차 있었고, 아파서 울고 있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다들 기다리더라고요. 저 역시 5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어요"

정리하자면, 스페인에 거주하지 않거나 현지에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이나 유학생의 경우 무조건 병원비를 내야 한다. 또한, 예약하지 않고 갑작스레 방문할 경우, 현지사정상 최소한 1~2시간 정도는 대기해야만 진료를 볼 수 있다.

세 번째, 수납창구는 왜 오후 2시에 문을 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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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스페인인 이선 씨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스페인 사람이잖아!(That's just a Spanish being Spanish!)" 스페인의 경우, 보통 은행이나 병원 행정 업무가 오후 2시경에 마감한다. 이어 그는 '그 부분은 본인도 꽤 놀랐다'며, '돈을 낼 거라고 믿고, 그냥 가라고 했다는 것이 놀랍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교포 박명 씨는 '스페인에서는 국립병원이 무료이기 때문에 실제로 병원에서 현금이 오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병원 수납처가 오후 2시에 업무를 종료해도 병원 운영에 크게 무리가 없는 것.

외국인의 경우, 보험 회사나 현재 거주 중인 주소로 청구서가 발급되는 것이다. 그 날의 나처럼

교환학생 최민지 씨 역시 진료가 늦게 끝나 수납처에서 진료비를 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최 씨 역시 진료비청구 관련 내용을 담은 우편을 현지 숙소에서 받아본 경우다.

그렇다면 스페인 현지에서 병원을 이용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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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사는 세 사람 모두 입을 모아 말한 것은 출국 전 '여행자보험'을 가입하는 것이다.

여행자보험은 여행 중 사고, 질병, 도난 등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이다. 성별이나 연령별 가입 제한이 없고, 가입 또한 매우 쉽고 보험료도 저렴하기 때문에 반드시 가입하는 것이 안전하다.

여행자보험은 보상 한도액과 보험 기간에 따라 납부료에 차이가 있으므로 여행의 성격과 기간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가입은 여행사, 인천국제공항의 여행자보험 창구, 온라인, 휴대폰 어플, 은행 등에서 가능하다.

또한, 보험 청구 시 필요한 각종 서류가 있기 때문에, 미리 숙지한 후 이를 현지에서 반드시 챙겨와야 한다. 이를테면 진단서, 진료 세부명세서, 치료비 영수증, 처방전 및 영수증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 '팁'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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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팔라우스 씨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면 안 된다. 스페인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박명 씨 역시 "통역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최민지 씨는 "정말 급한 경우 전문의를 찾아가 ' 예약을 못 했지만 응급이니 진료를 해달라'고 부탁하면 대기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팁'은 '건강'이다.

병원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보험비 청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스페인 현지 병원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몇 가지 서류가 빠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담당자가 계속해서 바뀌는지, 영어와 스페인어를 뒤섞인 메일을 번역해가며 언제 올지 모르는 서류를 기다리고 있다.

진료비를 보험사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며, 무엇보다 마드리드에서의 소중했던 4일은 그 기억조차 흐릿하다.

출국 전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고, 스페인 진료 체계를 간단히 이해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출국하고, 건강하게 여행하여, 건강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외여행, 특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에게 이 기사가 작은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Adios!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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