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⑧] 여성 택시 운전 100년, 여성 운전사의 이야기

[해보니 시리즈 ⑧] 여성 택시 운전 100년, 여성 운전사의 이야기

2017.09.20. 오후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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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⑧] 여성 택시 운전 100년, 여성 운전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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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성 택시 운전기사를 만나기 어렵지 않다. 대부분 택시 운전은 남성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2017년 4월 기준 여성 택시 운전사의 수는 766명이다. (개인 482명 법인 284명 -서울도시교통본부 택시물류과)

여성 택시 운전사는 최근의 직업이 아니다. 약 100년 전에도 '선배' 여성 택시 운전사가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남성의 직업'이라고 여겨지는 택시 운전을 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싶었기에 이번 해보니 시리즈에서 다뤄보기로 했다.

내가 탄 여성 택시 운전기사는 세 명이고, 시간대는 아침부터 점심, 점심부터 오후, 그리고 밤 시간대(야간근무)에 대화를 나누고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YTN에서 신논현, YTN에서 광화문, YTN에서 강서보건소였다.

이들은 모두 기사식당에 가기보다는 직접 싸온 도시락을 싸서 식사를 해결했고, 야간 운전보다 수입이 적어도 주간 운전을 하는 것을 선호했다. 셋 다 이전에 다른 직업에 종사했지만 경력 단절로 인해 운전대를 잡았다. (기사들의 신원은 모두 익명으로 표시했다.)

[해보니 시리즈 ⑧] 여성 택시 운전 100년, 여성 운전사의 이야기

"나를 가르치려 드는 손님"

ㄱ씨(50세)는 야간 운전 근무에 막 나온 참이다. 목적지는 YTN에서 신논현 역이다.

택시에 타서 "택시 하신지 얼마나 되셨냐?"고 묻자 ㄱ씨는 버럭 화부터 냈다. "왜 운전 경력을 묻냐. 할만큼 했다"고 대꾸했다. 순간 '왜 이렇게 예민하시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게 바로 항상 남자들이 해오던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택시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라는 질문에도 벌컥 화를 낼 정도로 곤두서 있는 모습. 여유로움과 대비되는 조바심과 수동-공격적인 자세. 남초 집단에 있을 때 여성의 자기 방어적 모습이다. 그녀가 나고 내가 그녀다.

ㄱ씨는 내게 사과하며 "사실 남자들이 운전 몇년 했냐면서 길도 모르냐고 타박하고, 운전 못 한다고 할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남자들이 일단은 자기네가 우월해야해. 여자들이 잘하는 꼴이 싫은거지 뭐. 기자는 안그래? 여자들이 잘 해서 대우받는건 싫고 지들은 일 안하면서...여자가 항상 아래있어야하고. 해봤자 니네가 얼마나 잘 하냐? 이렇게 깔아뭉개야 좋은가봐."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김여사'라는 별명과 유행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지만, '잡에서 밥이나 하라'는 말과 접촉사고가 나면 상대방이 일단 자신을 탓하는 걸 보면서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여사? 그래 있을수도 있지. 다들. 남녀 할 것이 없이 어디가서 매너교육좀 받고왔으면 좋겠어. 그런데 여자만 그런게 아냐, 나이든 운전사들도 못해. 아줌마만 갖다 붙일게 아니리니까? 젊은 남자애들은 운전을 잘하는게 아니라 무모하게 하는거구. 어디든 끼어들고... 누가 지들이 잘해서 끼어들 수 있는건가? 누가 양보해주니까 그러는거지."

[해보니 시리즈 ⑧] 여성 택시 운전 100년, 여성 운전사의 이야기

택시는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향해갔다. 택시를 타서 이렇게 대화를 많이 나눠본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주로 택시의 손님인 나는 침묵을 지키고, 택시 기사는 내게 결혼했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를 묻고, 내 외모를 칭찬하거나 옷차림에 대한 말을 거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자친구와 택시를 탔을 때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택시 기사와의 기억이다. 내가 타는 택시와 남자친구가 타는 택시는 이세계(異世界)의 택시였나. YTN 라디오 방송만 흐르는 적막한 택시에서 내리고 나서 나는 한마디 했다. "오빠, 원래 택시 타면 기사님이 말 안 걸어?" 당시 남자친구의 의아한 표정과 대답을 잊을 수 없다. "왜 말을 걸어?"

이 일화를 말하자 ㄱ 씨는 "택시기사가 쓸데없는 말을 하면, 전화통화를 하라"는 팁을 전했다. "타서 내릴 때까지 계속 통화하면 말을 할 수 있겠어 뭘 하겠어? 나이든 아저씨들 진짜 웃기네."라고 말했다.

택시운전사와 손님의 관계는 다른 대중교통과는 조금 다르다. 기사에게 택시는 직장인 동시에 홀로 일하고 쉬는 공간이다. 대리운전기사와 손님의 관계와 비교하면 더 확실히 그 특수성이 드러난다. 택시 기사는 손님에게 말을 붙이지만, 대리운전기사는 손님에게 최대한 말을 붙이지 않는다.

택시는 손님이 기사 소유의 차에 타는 공간이라면, 대리운전기사는 자신이 타인 소유의 차에 탑승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이 '주인 의식' 덕분에 택시운전사는 때로 손님에게 "내가 아는 길이 더 낫다."는 의견제시를 할 수 있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손님에게는 "내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운전을 잘 하고, 길을 잘 알며, 손님을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줄 수 있는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러나 여성 택시 운전사에게는 운전을 잘 못 하고, 길을 잘 모르고, 손님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는 의심이 따라붙는다. 운전 15년 경력의 베테랑도 의심을 받는 직업이 여성 택시운전사다.

[해보니 시리즈 ⑧] 여성 택시 운전 100년, 여성 운전사의 이야기

"이혼 후 할 수 있는 직업이어서 선택했다"

ㄴ 씨는 개인택시를 한 지 3년 되었다. 전 재산을 털어서 개인택시를 샀지만, 최근 고민이 많다고 했다. 야간 운전은 하고 싶지 않은데 수지가 안 맞다 보니 야간에도 운전을 해야 하는데, 술주정을 하는 손님이 무서워 꼭 카카오 호출만 받는다고 한다. 무례한 손님이 매일 있는 건 아니지만, 걸리면 그 날은 운전 못 할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밤에 택시 운전하는 거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세상에 나쁜 택시기사보다 좋은 사람이 많은 것처럼, 손님도 그래요. 아주 진상은 몇 없어. 그래도 걸리면 피곤하지."

ㄴ씨가 운전대를 잡게 된 이유는 이혼 후 생활고 때문이었다. 험한 일이라 망설였지만 결국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ㄴ씨는 평생 맞고 살다가 죽을 것 같아서 이혼했지만 이번엔 굶어 죽을 것 같았다며 웃었다.

자신은 젊지 않은 나이라 무섭진 않지만, 같은 여자 운전사끼리 만나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택시 노동자끼리 만나거나 개별적인 모임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여자 택시운전사가 얼마 없기도 하거니와 택시 기사들은 교대근무를 하다 보니 개인적일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과거에 '핑크 택시'(여성이 운전하는 택시로 여성 안심 택시) 논의가 있어서 여성 택시기사들에게 좀 처우도 나아지고 하려나 했더니 수지가 안 맞아서 엎어졌다면서 그 뒤 여성 택시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못 들어봤다고 한다.

이혼 후 택시를 잡으면서 긴 머리도 짧게 쳤다. 얼핏 봤을 때 남녀 구분이 안 되게 하려는 의도다. 여성 택시기사들의 머리 모양은 대부분 비슷하다. 짧은 커트 머리에 얼핏 밖에서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게 짧게 친다. 나이 든 여성의 머리 커트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들의 머리 모양은 미적인 모습보다는 직업적 필요에 의한 손질에 가깝다. 모자를 쓰는 건 시야를 가리고 운전에도 위험하고 복장 규정에도 어긋난다고 한다.

ㄴ 씨는 광화문까지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택시가 나아요. 그래도. 혼자 있을 수 있잖아. 어디든 갈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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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하면서 좋은 건 계절을 알 수 있어서"

마지막으로 탄 택시는 6년 차 택시운전사 ㄷ 씨의 택시였다. ㄷ 씨는 집에서 싸 온 점심 도시락을 뒤늦게 먹었다. 기사 식당은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번잡한 식당에서 허겁지겁 먹고 주차공간 찾아 헤매느니 오후에 한가할 때 혼자 차 안에서 먹는 게 낫다고 했다. 처음 택시를 하게 된 계기는 일하던 식당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서빙을 하지 말고 주방에서 일하라고 했을 때였다.

"원래는 나도 회사 다니던 회사원이었는데, 자식 키우고 뭐 집안일 하다 보니까 경력이 뚝 끊긴 거야. 뭐 어쩌겠어. 만만한 게 식당이라고 식당일 했지. 근데 너무 힘들어. 이상한 손님도 너무 많고…. 나이 들었다고 얼굴 보이지 말고 주방으로 가서 일하래. 그래서 친구가 권유했지. 나 택시 하는데 그런 사람들 상대 안 하고 운전만 잘 하면 된다고 그러대. 그래서 막 망설이다가 난 운전도 잘 못 하고 그러는데 무서운데…. 하다가 생계가 급하니 잡았지 뭐."

처음 6개월은 길도 헤매고 돈도 떼이고, 다른 차와 접촉 사고도 나고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제법 여유가 생기고 자신은 다른 여성 운전자들과 달리 연락하고 지내는 운전사들도 있어서 이 일이 외롭진 않다고 했다.

"이상한 아저씨 손님들 있잖아. 블랙박스 생기고 많이 줄었어. 그게 좋아. 다 녹화되잖아. 그러니까 이제 찍소리 못해. 밤에 일하기 싫어서 주간에만 일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아무튼 많이 줄었어."

택시 운전하면서 ㄷ씨가 가장 가장 힘든 건 주간에만 일하니 돈이 적게 나온다는 거였다. 여성 운전자들은 야간을 피하지만 돈이 필요하면 야간에도 운전하는데 신경이 곤두선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주간에만 하게 되고, 지금도 넉넉하진 않지만, 주간이 나아서 주간에만 나온다고 한다. 주간은 아침 7시 출근해서 저녁 7시 퇴근이다.

택시 운전을 하며 가장 좋은 건 "계절을 알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예전엔 몰랐지…. 회사에 있을 때, 식당에서 일할 때. 종일 건물 안에 있다가 나와서 바쁘게 집에 가니 주변을 알 수 있나. 근데 서울에 봄이 오면 꽃들이 순서대로 피어. 개나리, 벚꽃…. 철쭉…. 가로수가 짙어지면 여름이구나, 낙엽이 물들면 가을이구나…. 풍경 보는 맛에 운전해. 풍경 좋은 길 운전할 때가 제일 좋아."

[해보니 시리즈 ⑧] 여성 택시 운전 100년, 여성 운전사의 이야기

"우리에게 필요한 건 편견없이 대해주는 손님"

여성 택시 운전사가 겪는 성희롱과 추행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기사들이 나온 건 2014년 무렵이다. 사실 여성 운전자가 그 무렵 늘어난 건 아니다. 여성 택시 운전사는 약 100년 전부터 있었다. 우리가 '택시 운전=남성'의 직업으로 대했을 뿐.

여성 택시 운전기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대중잡지 <별건곤>에 실려있다. 최초의 여성 택시 운전사의 이름은 '이정옥'. 20대 초반의 나이에 교사를 하다가 택시 기사가 된 그녀는 당시 남자도 하기 힘든 택시를 하며 겪은 고충과 즐거움을 담담하게 인터뷰했다.

이정옥이 겪은 무례한 손님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운전사들이 겪는 고충과 다른 바 없다. 술 취한 남성 손님들의 주정과 희롱, 맨스플레인까지….

"여자 운전사라니까 시험 조로 한번 타고자 해서 타는 손님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이왕이면 여자 운전사를 불러라, 히야카시(희롱)나 좀 하자꾸나! 이런 생각을 하고들 부릅니다그려. 그래서 어떤 때는 얘, 조수를 치워라, 내가 운전대에 앉겠다는 둥 별별 추잡스런 농을 다 걸지요. 처음에는 어찌나 속이 상하든지 당장 뺨이라도 갈기고, 채신없는 자식들이라고 욕이나 실컷 해주고 싶었지만 직업의 성질상 어디 그럴 수가 있나요. 그래서 그런 농지거리를 들어도 잠자코 있지요. 그러면 또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트집입니다그려."

그러나 이정옥은 덤덤하게 택시를 운전했고 집을 담보로 잡아 산 택시 빚을 수개월 내에 갚아버렸다. 나중에는 동양 택시를 인수해 택시 10대를 운행하기도 했다. 최초의 여성 택시 운전사의 기록이자 이 분야로 성공한 여성 택시 운전사의 독보적인 기록이다.

내가 만난 운전사들은 모두 "지금 이대로 먹고살만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안전에 대한 문제보다도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택시에 운전사 보호를 위한 투명 가림막 설치는 20만원 가까이 드는 일이라 사비를 들여서 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 이들은 그래도 '블랙박스'가 믿을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처음부터 운전대를 잡고 택시 운전사의 꿈을 꾸지는 않았지만, 남자보다 못하다는 손님들의 무시가 싫어서, 내 몫을 하고 내 돈으로 돈 벌고 싶어서 잡은 택시에 대한 생각은 모두 같았다.

말이 안 통하는 중국인 손님에게 톨게이트 비용을 받지 못했지만, 제시간에 배를 태워서 뿌듯했던 기억을 말하던 ㄷ 씨와 자신이 여자라고 트집을 잡는 남성에게 위엄있게 '돈을 안 받겠으니 내리라'고 말한 ㄱ 씨, 모두 손님에게 친절하고, 원하는 길로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을 자신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프로였다.

여성 택시운전사들에게 최초의 여성 택시 운전사 '이정옥'의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다들 '꿈같은 이야기'라며 좋아했다. 여성이 운전하는 택시가 남자가 운전하는 택시와 다를 건 없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뿐이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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