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인터뷰] 양기대 광명시장 “요동치는 광명, 대한민국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리더스인터뷰] 양기대 광명시장 “요동치는 광명, 대한민국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2015.08.26. 오후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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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인터뷰] 양기대 광명시장 “요동치는 광명, 대한민국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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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만나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5년간 광명시를 이끌어 온 양기대 광명시장의 야심찬 목표이다.

양기대 시장은 끊임없는 추진력으로 수도권의 배후도시였던 광명시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을 광명시민들로부터 받고 있다.

양기대 시장은 물론 시정에 대한 정책 비판이나 불만도 쏟아지고 있고 일부 광명 시민들로부터 따끔한 질책도 받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의견을 수렴해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면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자세로 광명시민들과 소통을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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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시장은 “방치되어 있던 광명동굴의 재탄생과 KTX 광명역세권에 대형 유통업(코스트코, 이케아,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등을 입점 시킨 것을 성과로 꼽았다. 즉 광명시의 발전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해 조율을 한 바탕에서 정책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성실하게 노력한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낸 시민들과의 합작품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광명동굴’ 개발은 양기대 시장의 창의적인 정책 아이디어가 빛을 본 성공 사례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금, 은과 아연 등을 캐던 금속 광산은 새우젓을 저장하던 창고에서 현재 와인 동굴, 동굴 예술의전당, 황금궁전, 아쿠아월드, 동굴식물원, 공포체험관 등 다채로운 문화콘텐츠의 테마파크로 탈바꿈 되었다.

광명동굴은 유료개장 4개월 만에 관광객 60만 명을 돌파하며 광명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떠올랐다. 내년 4월에는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광명동굴에서 세계적인 고대 사료로써 평가받고 있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가 아시아 최초로 전시돼 세계적인 동굴 관광명소를 향한 힘찬 시동을 걸었다.

양 시장은 지난 7월 15일부터 이틀 동안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2015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폐 광산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창조문화・관광산업의 롤 모델인 광명동굴’을 주제로 발표해 공약이행분야에서 2회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YTN PLUS는 양기대 광명시장을 찾아가 광명을 발전시킨 추진력과 정책,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리더스인터뷰] 양기대 광명시장 “요동치는 광명, 대한민국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다음은 양기대 시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취임 전 광명시는 어떤 모습이었나?

“2010년 7월에 시장이 되었을 때 광명시는 전형적인 서울의 위성도시, 서울의 베드타운, 주민의 60-70퍼센트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특색 없는 도시였다. 서울과 밀접하기 때문에 교통이 좋고 KTX 광명역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어렴풋이나마 알려진, 좋게 말하면 미지의 도시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명의 도시다. 그래서 주요 인력을 뽑는 곳에 광고를 해도 구직자들이 안 왔다. ‘광명이 어딘지도 모르고 시골에 있는 줄 알고 젊은 사람들이 오질 않는다’고 기업주들이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


- 광명동굴을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2010년 7월에 광명시장이 되고 9월에 광명동굴에 처음 들어가 봤다. 그때는 광산이 위치된 곳이 가학산 이기에 ‘가학광산’이었다. 1912년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탄압하면서 금, 은, 동, 아연을 캤던 금속 광산이었다. 1972년에 가학 광산 앞에서 광석을 캐고 분류하고 남은 광석 찌꺼기인 광미가 산더미처럼 쌓였었는데 그게 홍수가 나면서 마을을 휩쓸었다. 이후 환경오염 문제와 보상 문제 등이 얽히면서 개인 소유였던 광산이 문을 닫았다. 금, 은, 동, 아연이 없어서가 아니라 홍수에 의해 문을 닫아 주인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해 했다.

그런데 이 동굴 안 평균 기온이 12도인 것에 착안해 광산 주인이 1979년부터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소래포구 젓갈 상인회와 협의를 해 거기 젓갈을 저장을 하고 저장료를 받아왔다. 그때가 1979년이고 우리 시가 광산을 샀던 2011년 2월까지 유지됐다. 이렇게 천연 자연 냉장고에 새우젓을 저장했었는데, 1999년부터 조사도 해보고 탐사도 해 봤는데 그게 개인 소유였기 때문에 늘 동굴 문을 닫아놓고 새우젓 드럼통을 입출고 할 때만 문을 열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조사는 중단됐다.

동아일보 기자를 15년 넘게 하고, 연고 없는 광명에 17대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러 왔었다. 상대인 전재희 후보에게 두 번 낙선했는데, 당시에는 남들도 다 하는 ‘가학 광산 테마파크개발’ 공약을 냈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6월에 시장선거에 나가 다시 가학 광산 테마파크개발 공약을 걸었고 이때 당선이 됐다.

9월에 광산에 처음 들어갔는데 안으로 갈수록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개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이 광산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것이 돼야 광산 개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의원들을 설득해 예산을 세우고 2011년 1월에 43억 원을 주고 가학산의 일부를 샀다. 산을 사니까 동굴은 가업권이 자연적으로 따라왔고 우리 소유가 되었다.”


[리더스인터뷰] 양기대 광명시장 “요동치는 광명, 대한민국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개발했는가?

“처음에는 광산 내부 상태가 안 좋아 새우젓 드럼통을 다 빼고 최소한의 내부정리를 했다. 그런데 총 내부의 길이가 7.8km, 지하는 275m였다. 지하에는 물이 차있어 1km남짓만 정리를 했고 2011년 8월부터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차츰 늘어 백여 명 씩 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동굴을 어떻게 만들어야겠다 하는 틀이 잡혀갔다. 2010년 9월부터 몇 번 들어가 보면서 큰 동굴이 있었는데 거기에 ‘예술의 전당도 만들어 3D영화도 상영하고 공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여기가 1년 내내 12도니까 ‘와인 레스토랑과 와인 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가학산을 이용해 코끼리 열차를 운영해보자’하는 계획이 섰다.

2011년 10월 31일에 가장 원시적인 ‘동굴 음악회’를 열었다. 더불어 문화, 예술 복합 콘텐츠가 있는 동굴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2013년 6월에 350석 규모의 ‘동굴 예술의 전당’이 완성 됐고, 가수 인순이와 JK김동욱이 와서 축하공연을 했다. 그 때부터 중앙의 언론들, 방송과 신문들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 이 동굴 ‘예술의 전당’이 오픈하면서 40만 명이 왔다. 이후 지하 3레벨과 5레벨에서 1급수 지하 암반수가 나왔다. 확인해보니 지하에 저수지 3개 분량의 물이 차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 그 물을 이용해 수족관도 만들고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결국 작년에 무료 입장객이 47만 명이 왔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걸 무료로 만들 수도 없고 돈을 받으려면 작년 수준으론 안 된다고 판단해 광명동굴을 와인동굴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약 200m 지하를 뚫고 거기에 와인레스토랑 와인 시음장, 그리고 신비의 지하세계를 만들었다. 거기에 황금궁전, 귀신의 집, 환타지방 등을 만들었다. 또 나오는 물을 이용해서 황금 폭포와 식물원, 대형 아쿠아리움, 황금굴등도 만들어 지난 4월 4일 개장을 했다. 공무원들이 주말도 없이 365일 중에 한 350일 이상은 출근을 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현장에서 전문가들하고 상의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 유료화 추진 중 문제는 없었나.

“무료였던 곳을 유료화 개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무료였을 때 지난 3년간은 약 98만 명이 왔다. 그런데 유료화해서 관람객들이 많이 안 오면 분명히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하고 광명동굴의 미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유료화를 하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3년간 느낀 광명동굴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었다. KTX 광명역에서 5분 거리, 시청에서 20분 거리, 여의도에서도 30~40분 거리다. 우려한 걱정과 달리 개장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그래서 어린이날에만 만여 명이 왔다. 최근에는 메르스도 있었는데 8월 초까지만 약 38만 명을 넘어섰다. 오는 8월 말까지 관광객을 70만 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시 수익은 25억 이상이 예정돼 어느 정도 성공 했다고 본다. 대한민국에 넉 달 만에 60만 명의 유료관광객이 몰린 곳은 사실 흔치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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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하는 과정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나.

“주말에도 공무원들과 함께 아침마다 회의하며 안전문제 해결, 오염물질 파악 등에 주력했다. 2011년부터 추진하다보니 이 지역에서 반대하는 사람들과 지역 언론, 지역 정치인 등 반대자들의 비난과 방해와 음해도 있었다. ‘광산 안에 카드뮴 비가 내린다, 무너진다, 물은 오염돼 있다는 등의 음해도 받았다.

당시 내가 속한 정당이 6표, 반대당이 6표이었는데 6표가 무조건 반대하니까 통과가 안 됐다. 그래서 내가 때로는 그 분들을 설득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 시 예산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속도가 더뎠다. 당시 새누리당 김문수 경기도 도지사가 주는 ‘시책 조정금’이라고 있었다. 각 시와 군에 내려주는 80억 가량의 조정금을 5억, 10억으로 나눴다. 의미 있는 길, 가고자 하는 길을 힘차게 걷고 의미 있게 가니까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고 여기까지 왔다”


- 반대를 어떻게 설득했는가?

“반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실제 안전과 오염에 대한 우려, 돈을 쏟아 부으면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반대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중간에 예산이 막히고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인 것들에 대해 풀고 해결해야하는 것들도 너무 많았다. 아무도 개발해보지 않은 광산을 개발했는데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여러 가지 법과 제도, 규정 같은 것 때문에 산 넘어 산이라고 할 정도로 돌이켜 보면 힘든 여정이었다.

이 때 가장 힘이 된 건 공무원들이었다. 동료 공무원들과 토론하고 벤치마킹 하고 전문가를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겪으면서 동지애가 생겼다. 처음엔 공무원들이 일을 하다가 문제 생기면 징계를 받을지 모르니 위험한 일을 안 하려고 했다. 시의회와 반대 세력도 심하고 언론도 노출돼 나를 따라 나갔다가 잘못되면 피해보고 손해 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제일 중요한 것이 공무원들을 설득해나가는 것이었다. 설득의 중심은 '인간적인 것'과 '진심'을 전하는 것이다. 시장의 권위로 지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선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서로 진심이 통하게 하려고 마음 먹었고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승진의 기회와 이외에 여러 가지 보상책도 마련했다.”


- 동굴의 안정성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광명동굴은 금, 은, 동, 아연이 있는 금속 광산이었다. 암질이 석탄과 다르고 석회석과도 다르며 화강암 같이 단단하다.

물론 취약부분이 있긴 하겠지만, 우선 1912년부터 100여 년 동안 이렇다 할 사고가 없었다는 것과 내가 2010년 9월부터 어제까지 계속 하루에도 몇 번씩 갔지만 돌멩이가 떨어지거나 하는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광해관리공단이’라고 정부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철저하게 안전문제에 신경을 썼고 보강을 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모든 구간에서 안전을 점검해 보강했고 작년까지는 헬멧을 쓰고 입장을 했지만 올해 4월 4일부터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본인이 원하면 헬멧을 주고 안 써도 되도록 했다. 또 정기적으로 안전 전문가들한테 안전 진단을 맡기고 있다. 적어도 2011년 8월에 개장한 이후로 지금까지는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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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 역세권과 이케아(IKEA)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광명을 대표하는 두 가지는 KTX역세권과 광명동굴이다. 2004년에 당시 가격으로 4068억 원을 들여 KTX의 출발역을 지었다. 처음엔 터가 황량해서 선두기업이 들어와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침 2012년 말 코스트코가 역세권에 광명점을 짓겠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어 코스트코가 들어오면서 2011년 상반기에 이케아가 수도권에 1호점을 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2012년 4월에 TF팀을 구성했고 9월에 상해 이케아 1호점을 방문한 뒤 그해 12월에 스웨덴 본사에 갔다. 그리고 그룹 총괄 CEO를 만나 이케아가 광명에 1호점을 짓겠다는 것을 확정 시켰다. 총 면적 2만 2천 평 중 나머지 만 평은 KB국민은행 자회사에 땅을 팔았고 KB국민은행 자회사는 롯데에 20년간 연 5% 이자를 갖고 임대를 해줬다. 다만 이케아가 오면서 300명 이상의 광명 시민을 고용하는 등 이케아 본사와 여러가지 협약을 맺었다. 또한 광명시에 있는 전통시장, 슈퍼연합회, 가구협회 등과도 협약을 이끌어냈다. 사례를 들면 코스트코가 들어올 때는 평일 밤 9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방침과 무, 배추, 상추 등 6대 농산물을 코스트코에서 못 팔게 한다든지 한편으로는 대형 슈퍼 연합회를 위한 물류창고를 주고 주차장도 만들어주기도 하며 협약이 마무리가 되었다.”


- 교육과 일자리에 대한 계획은 어떠한가.

“광명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었기에 취임하자마자 교육에 목표를 두었다 광명이 대한민국에서 지난 1년 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상승한 이유에는 다른 역세권의 개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교육의 안정이 주가 되었다. 또 일반 시민들을 위해 특색 있는 과감한 일자리 사업을 시행했다. 일례로 ‘청년 잡스타트’가 있다. 만 19세에서 35세까지의 청년들을 6개월마다 약 70명 정도 모집해 6개월 각 부서에서 공무원 경험과 취업, 창업교육을 시킨다. 지난 3년 동안 약 500명이 했는데 60%이상 취업을 했다. 또 50 60베이비부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한식조리 과정, 창의인성교육과정 등 전문교육과정을 개설해서 전문가를 기르고 자격증을 따게 해서 취업할 수 있게 도와준다”


- 복지를 위한 특별한 시책은 무엇인가?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전국 최초로 시행된 ‘광명시 복지동(洞)’ 제도는 전국 읍면동장이 1박 2일 동안 광명시에서 현장 연수를 오는 등 대한민국 복지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 제도는 2013년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 18개동 전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동장이 주말을 제외한 매일 주민센터에 추가 배치된 사회복지사, 방문간호사와 함께 3인 1조가 되어 독거노인 등 복지소외계층을 방문하고 있다. 방문을 통해 건강을 체크하고 일상의 여러 가지 문제도 상담한다. 또 동에 배치된 직업상담사에게 직업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변호사를 통해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광명시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광명이 한편으로선 발전하고 있지만 또 안 되는 분야도 있다. 끊임없이 광명의 고질적으로 안 되는 것들을 공무원들과 의기투합하여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겠다.

대표적으로 광명동 뉴타운 문제도 큰 틀에선 방향을 잡았지만 마지막까지 잘 정리해야 한다. 또 광명동굴이 아시아 최초로 내년 4월부터 9월까지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의 모형을 그대로 가져오는 국제 순회 전시회를 연다. 그래서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내가 9월 중순 계약을 체결하러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로 간다. 그런 것들을 철저히 준비해 대한민국과 중국, 동남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그런 동굴, 관광지로 만들어 대한민국에 국제적인 좋은 관광명소로 발돋움 하게 할 것이다.

또 광명 시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뿌듯하게 생각하는 세계적인 동굴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이제는 조금 더 큰 틀의 그림을 구상하고 있으며 35만 시민들에게도 함께 헤쳐 나가자는 당부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양기대 광명시장은 1962년 전북 군산 출신으로 전주고,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이 달의 기자상’을 7번, ‘한국기자상’을 2번 수상했다. 2004년 처음 정치에 입문해 열린우리당 수석부대변인, 민주당 광명을 지역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당대표 언론특보 등을 거쳐 2010년 제16대 경기도 광명시 시장이 되었다. 2013년부터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공약 분야’로 2회 연속 수상을 했고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인 ‘혁신경영 부문’에서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이기도 한 양기대 시장의 저서로는 ‘희망은 힘이 세다’, ‘양기대의 열정’, ‘기대하시라, 광명’ 등이 있다.


[YTN PLUS] 진행 이윤지 앵커, 취재 공영주, 공태현 기자, 사진 정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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