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다] (7) 대릉원과 황리단길(上), 큰 무덤들 사이 '경주스러움'을 느끼다

[다시, 걷다] (7) 대릉원과 황리단길(上), 큰 무덤들 사이 '경주스러움'을 느끼다

2021.03.17. 오후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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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걷다] (7) 대릉원과 황리단길(上), 큰 무덤들 사이 '경주스러움'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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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무덤이 보인다...여기는 경주

여행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다는 기분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풍경부터가 일상의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

경주가 훌륭한 여행지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눈 앞에 보이는 풍경 아닐까. 시가지로 들어섰을 때 보이는 거대한 무덤들. "아, 여기가 경주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 거대한 무덤들이 모여 산책로를 이루고 공원처럼 형성된 곳, 바로 대릉원이다. 다른 어느 여행 명소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경주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아닐지.

[다시, 걷다] (7) 대릉원과 황리단길(上), 큰 무덤들 사이 '경주스러움'을 느끼다

돌이켜보면, 대릉원을 방문했던 횟수는 3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릴 적 처음 와 봤던 대릉원은 그저 신기한 곳이었다. 경주라는 도시 자체도 그랬지만, 세상에 무슨 무덤이 이렇게 큰지... 특히 무덤 자체가 마냥 신기했다.

고등학생 때, 현장학습으로 찾았던 대릉원은 재미없는 곳이었다. 교사의 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했던 경험은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왜 이렇게 많이 걸어야 하는지, 왜 '놀러' 와서까지 '학습'을 해야 하는지, 차라리 경주월드 같은 데 가서 놀게 해 주면 안 되는지... 반항기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했던 걸까. 그저 만사가 불만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때만 해도 대릉원 옆 '황리단길' 같은 게 없기도 했다. 있었다 하더라도 가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겠지만. 좌우지간 참 재미없는 여행지였다.

어른이 돼서 다시 찾으니, 어릴 때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저 천 년 전 높으신 분들이 묻힌 무덤인줄만 알았는데, 다시 보니 상당히 괜찮은 공원이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면서 혼자 조용히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많이 걸어야했던 곳"이라는 어릴 적 기억은 "부담스럽지 않은 산책 코스"라는 기억으로 '업데이트'됐다. 몸이 훌쩍 자랐기 때문일까,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보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산책을 통해 머릿속을 비우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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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속이 궁금해?...천마총에선 보여요

"저 커다란 무덤들,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가장 잘 알려져있는 방법은 '샘플' 격인 천마총을 관람하는 것 아닐까. 경주에 있는 거대 무덤 중 일반인들이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현재로서는 아마도 유일한 곳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천마총이 선택된 것인가... 그 이유가 재미있다.

1970년대 초, 충남 공주에서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됐다. 도굴되지 않아 '상태 좋은' 왕릉이 나타난 데 고무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경주에도 뭔가 무덤이 많지 않느냐. 발굴해 보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주목했던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 하지만 학계에선 주저했다. 발굴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짜고짜 밀어붙이는 대로 따라한다면 졸속 발굴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단 시험삼아 바로 옆에있는 저 무덤 먼저 한 번 살펴보시죠"

이렇게 시작된 '옆 무덤' 발굴. 그런데 그 '옆 무덤'이 대박을 터뜨린다. 그 유명한 '천마도'를 비롯해 금관, 관모, 허리띠 등이 우루루 나온 것이다. 그게 바로 천마총이다.

"다른 무덤 하나 발굴하고나면 조용하겠지"라는 학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필 받은' 박 대통령은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을 지시하고, 결국 경주라는 도시 자체가 관광도시로 개발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관광도시 경주'를 만든 시작점인 만큼, 이 '천마총'은 일반인 누구나 와서 내부를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지금의 천마총 내부는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후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쎄... "무덤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신기한 곳"에서 "수많은 흔한 박물관 중 하나"로 바뀐 느낌이다.

현대화 되고 쾌적해진 환경이 무작정 좋아보이지만은 않는다. '무덤 속엘 들어가본다'는 신비감과 긴장감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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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신지는 몰라도...가장 큰 무덤, 황남대총

천마총 맞은 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커다란 무덤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독보적으로 거대한 무덤이 있다.

다른 무덤보다 클 수밖에 없는 게, 두 개의 무덤이 하나의 덩어리로 붙어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알려진 경주시내 무덤들 중에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두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쪽에 무덤에서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자가 적힌 여성용 허리띠가 나왔고, 남쪽 무덤의 유해를 조사해보니 60대 남자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다. 왕족 부부인가, 또는 여왕과 그 남편의 묘인가... 여러 설이 나오지만 확인된 건 없다.

거대한 무덤 답게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만 무려 5만 8천여점이라고 한다. 참 뉘신지는 몰라도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천 년 전 세상의 모습이 어땠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또, 천 년 뒤 후손들에게 훌륭한 산책 장소를 제공한 조상님들 아닌가. 그저 감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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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인가 정원인가...대나무가 아름다운 미추왕릉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지나는 길엔 아름다운 대나무길이 펼쳐져 있다.

"'대'나무가 많아서 '대'릉원이다"라고 주장해볼까? 그러면 누군가는 믿지 않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망상마저 하게 될 정도다.

이 미추왕릉은 대릉원 내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 곳이다. '대릉원'이라는 이름도 사실 미추왕릉에서 유래했다. "미추왕을 대릉(大陵)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따왔다는 것.

삼국유사에는 신라가 적군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미추왕릉에서 대나무에 귀를 꽂은 병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적을 물리친 뒤 유유히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적혀있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어라? 그러고보니 이미 삼국시대부터 이 아름다운 대나무길이 존재했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게 천 년 된 길이었다니...

[다시, 걷다] (7) 대릉원과 황리단길(上), 큰 무덤들 사이 '경주스러움'을 느끼다

불국사 경내, 사라진 옛 절터 등을 걷는 것만이 과거와의 소통은 아닐 것이다. 이 훌륭한 공원, 아름다운 산책로를 만끽하는 것도 천 년 전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코스인 셈이다.

대릉원 담벼락 바깥을 보니 그 '힙하다'는 황리단길이 보인다. 천 년의 길 옆에 새로 조성된 젊음의 거리라니,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까. 지나치게 상업화된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런 재미 덕분에 젊은 층이 경주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니 나빠 보이지만은 않은 듯도 하고... 참 어렵다.

(下편에 계속)

Travel Tip : 자전거와 스쿠터, 퀵보드 등은 경주 여행객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용해 대릉원 내부를 산책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겠다. 대릉원 내부로는 입장 금지다.

대릉원 인근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주차하기 쉽지 않다.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하는 방법이 좋겠다. 경주터미널 기준 도보로 15분이면 대릉원 후문까지 갈 수 있다.

트래블라이프=진영택 ever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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