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포인트] 쉬엄쉬엄 '수리산'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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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오후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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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포인트] 쉬엄쉬엄 '수리산'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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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모봉 정상


◇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국운이 쇠퇴해 지면 주변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에만 관심이 있고, 백성들의 안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거기에 더하여 정치적인 이슈만 있으면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권력을 잡아보려는 욕심에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조선조 후기 헌종 5년(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己亥迫害)는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권력 지형이 변하는 사건으로 전개된다. 이 일로 수리산 병목안에서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던 최경환 스테파노 성인이 체포되었다. 그는 한양으로 압송된 이후 천주교를 배교(背敎)하라는 권유를 끝까지 거부하다 옥사하였다. 그 사건이 있고 난 이후 그의 거룩하고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자 이곳 병목안에 기념성지를 세웠다. 이처럼 수리산은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산이다.

18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역사는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사연을 안고 있는 산이 수리산이다. 산행은 ‘병목안 시민공원’에서 시작한다. 계곡의 모양이 병의 입구처럼 좁게 생겼다고 하여 ‘병목안’이라 부르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가 양쪽의 산 능선 끝이 좁은 계곡을 꽉 물고 있는 형상이다. 관모봉, 태을봉, 수암봉에서 흘러내리는 정기가 더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있다. 입구를 지나면 병처럼 내부는 넓다. 우리나라의 지명은 지형형세를 잘 설명해 주는 이름들이 많다. 조상들의 번뜩이는 지혜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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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목안 석탑

이런 병목안에는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민공원이 있다.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인공폭포의 요란한 물소리가 모든 번잡한 일들을 묻어버리고 있다. 마음이 복잡하면 이곳 인공폭포 아래에 서 있으면 마음속에 있는 화(火)를 물(水)이 깔끔하게 씻어 줄 것이다. 지금 공원이 있던 자리는 1930년대부터 철도 건설에 사용하던 자갈을 채취하던 채석장이었다. 이런 것을 보노라면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덩어리만 남은 곳에 아무런 식물이 살 수 없었지만, 계단을 만들고 흙을 돋우어서 잔디와 나무를 심은 결과 지금은 녹색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이곳이 채석장이었던 탓인지 시민공원에서 수리산 정상으로 가는 입구에는 이 지역의 명칭에 걸맞게 거대한 병 모양의 돌탑 2개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 있던 돌들을 모아서 쌓은 탑인데 정교함이 장인의 솜씨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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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옆 개울


◇ 관모봉과 수리산(태을봉)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관모봉(冠帽峰)이다. 멀리서 보면 갓을 쓴 모습처럼 보인다. 이 봉우리 영향으로 관모봉 기슭에 살았던 사람들이 관직에 진출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이곳이 우뚝 솟은 곳이라서 북쪽과 동쪽의 많은 산들이 보인다. 북쪽으로 관악산과 북한산이 보이고, 동쪽으로 청계산이 보인다. 오늘처럼 맑은 날에는 시선의 끝이 없을 정도로 산 너머 너머에는 무슨 산들이 이렇게 많은지 궁금증이 일 정도이다.
여기서 수리산 정상인 태을봉까지는 1k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나무 밑으로 걷다 보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적당하게 땀을 쏟으면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 여기가 정상이다. 그런데 정상석 명칭이 수리산(修理山)이 아니고 ‘태을봉(太乙峰)’이다. 이곳은 고려 시대부터 북쪽에 있는 신령한 별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산신제를 지냈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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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을봉 조망


◇ 슬기봉

쏟은 땀방울만큼의 물을 보충해 주고 슬기봉으로 간다. 수리산 코스 중에서 가장 멋진 코스라고 생각한다. 칼바위능선 위를 걷는다는 것은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그러면서 기쁨 또한 큰 것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것은 값이 비싼 것이다. 이곳에는 등산인들의 안전을 위하여 계단을 만들어 위험성을 줄이고 있지만, 모험을 즐기는 이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스릴을 즐기고 있다. 만일에 사고라도 나면 화재업무에 집중해야할 공무원들이 개인의 취미생활에 동원되는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니 가급적이면 안전한 산행을 하면 좋겠다. 이 코스 중에 바위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으면 영화 ‘타이타닉’과 같은 연출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런데 자주 오는 사람들만 아는 곳이라 초행자들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안내팻말이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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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봉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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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촬영장소

능선을 걸으면서 좌우 어디를 보아도 시야가 트여있다. 그렇다고 늘 이런 것은 아니다. 오늘처럼 쾌청한 날에만 특별히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왼쪽을 보면 멀리 시화호가 보이고, 오른쪽을 보면 북한산 인수봉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7월의 짙은 녹음이 시야까지 선명하게 해주고 있다. 사람의 시력은 녹색을 많이 보면 좋아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테니스 스타인 정현선수는 어린 시절 시력이 좋지 않아서 그의 부모는 아들의 시력을 좋게 하려고 녹색의 코트로 되어 있는 테니스를 가르쳤다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대표선수로 성장하여 국제무대까지 진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어디를 가든 장맛비를 맞은 나무들이 다가오는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탄소동화작용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산소를 뿜어내고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산길을 걸으면 깨끗한 산소를 마시게 된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울창한 숲이 많으면 좋다고 한다. 나무는 이처럼 생태계는 물론 인간에게 이로운 일을 한다. 의사들은 공기가 깨끗한 곳에서 걷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건강하다고 한다. 초록색의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정신적인 건강도 좋아 질 것이다. 산림을 이용한 건강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산과 들을 걷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운동이 등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산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오히려 나무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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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객들


◇ 슬기봉과 수암봉

슬기봉이다. 원래 정상은 보안 시설이 들어서 있으니 그 옆에 작은 봉우리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슬기봉은 6.25전쟁 이후 통신부대가 자리를 잡은 이래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이 되었다. 그 대신 슬기봉 바로 아래 기슭에 조망대를 설치하여 인천 앞바다와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으니 굳이 정상이 아니더라도 정상과 같은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슬기봉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이 길을 잠시 걸으면 왼쪽으로 작은 정자가 보인다. 정자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면 수암봉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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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암봉 정상석

수암봉에 올라서면 서해안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울 외곽순환도로의 수리터널과 수암터널 사이에 약 500m 정도의 흰색도로만 살짝 보인다. 여기서부터 안양시민공원이 있는 병목안까지는 계속 하산하는 길이다.

하루 동안 수고한 발의 피로를 풀어 주려면 시원한 개울물에 발을 씻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며칠 전에 내린 장맛비에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수고한 발에 감사하면서 수리산 산행을 마무리한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김두환)
www.mountain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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