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上), ‘그대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필리핀 세부(上), ‘그대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2019.12.12. 오후 1:19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필리핀 세부(上), ‘그대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AD
해외여행 자율화가 남 얘기처럼 느껴지던 까마득한 시절, 인도로 여행을 떠난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시도조차 해보기 힘든 한 달 동안의 배낭여행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착 후 하루 만에 난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일주일이 되자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한 달이 되자 난 그곳을 떠나기 싫어졌다.”

단순한 적응의 문제는 아닌 듯싶어 자세한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그는 가봐야 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난 인도를 가보지 못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한 달 배낭을 싼다면 그가 말한 것을 느끼고 돌아올 수 있을까.

필리핀 세부(上), ‘그대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열대기후 특유의 후덥지근함이 확 불어온다. 자정이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한국의 열대야 정도는 장난 같다. 대형리조트의 차량이 몇 번 움직이자 비행기에 같이 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간 듯하다.

세부로 오는 관광객 95%는 막탄 섬의 리조트로 향한다. 그곳에는 호핑과 다이빙을 포함한 모든 액티비티가 있고, 리조트 안에는 모든 편의 시설이 들어차 있어 밖으로 나올 필요조차 없다. 마지막 날 세부시티에 있는 대형 몰에서 쇼핑을 하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게 가장 보편적인 여행코스다.

필리핀 세부(上), ‘그대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예전에 어떤 친구는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잠이 부족하지 않는지 배가 고프지 않는지를 확인하라고 했다. 그래도 우울하다면 우울한 게 맞는다고. 굳이 버트런드 러셀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는 행복을 방해하는 온갖 복잡다단한 방해물들을 개인에게 던져준다.

‘행복의 정복’은 커녕 불행으로부터 도망치기도 급급하다. 시름에 빠진 사람에게 여행을 가라고 충고하는 것은 그래서 현명하다. ​낯선 상황, 새로운 풍경은 잠시나마 고민에 썩어가는 머리를 구해낸다.

필리핀 세부(上), ‘그대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세부는 해양 액티비티의 천국이라고 한다. 섬들을 옮겨 다니며(그래서 이름이 호핑이다) 수영과 다이빙을 하고, 고래상어 투어를 하며, 폭포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물에 발조차 담그기가 싫다면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배위에서 볼 수 있는 유람선 코스도 있다. 미리 준비해가지 않아도 현지의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필리핀 액티비티 여행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가성비’다.

​하루 종일 투어를 도와준 진행요원에게 주는 팁이 100페소(약 2,300원) 정도니 더 이상 설명할게 없다. 땅에서 보는 바다는 예쁘지 않아, 진정한 필리핀의 에메랄드 바다는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3박5일이나 4박6일 코스면 위의 액티비티만 소화해도 체력이 고갈될 정도라고 한다. 잡다한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가? 저녁엔 한잔 하고 마사지 한번 받으면 자동으로 지쳐 쓰러지게 된다.

필리핀 세부(上), ‘그대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이런 것들로 기분전환이 되진 않는다고? 그렇다면 다른 의미의 필리핀 여행을 떠나야 한다.
리조트의 섬 막탄을 떠나 세부시티로 간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탈순 없지만, 모든 호텔 로비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남반구를 가본 적이 없어 이 더운 날씨에 크리스마스라니 기분이 묘하다. 생각해보면 남반구용 산타 패션은 따로 있을까, 반바지라도 입어야 하지 않을까.

사진= 웨일즈다이브(리조트 사진), NHN여행박사(바다사진)

양혁진 dwhhhj@naver.com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