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소돌 해수욕장과 오징어 물회의 추억

주문진, 소돌 해수욕장과 오징어 물회의 추억

2019.07.18. 오전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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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소돌 해수욕장과 오징어 물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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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힐링 스팟이 있다.
혹자는 강화도 언덕 위 카페에서 노을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시골의 잊혀진 읍성 길을 터벅터벅 걷는 것이라고도 한다.

언제부턴가 주문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마음속에 들어앉은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징어다.
물론 드넓은 소돌 해수욕장과 인근의 카페에서 파는 1리터짜리 아메리카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일종의 코스 같은 느낌.

주문진, 소돌 해수욕장과 오징어 물회의 추억

휴가철을 피해서 다녀서인지 소돌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많았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몇몇의 사람들만이 그 큰 바닷가 속에서 녹아드는 광경은 늘 텅빈 그림 같았다.
그것은 아련함이고, 희미함이며, 가슴 서늘해지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곳 소돌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오징어 물회의 추억 때문이다.
해변의 상가가 끝나는 곳에 자리 잡은 해오름횟집, 전화해서 오늘 오징어 물회가 가능하냐고 물어보고 출발할 정도였다.

주문진에 없다면 전국에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이곳은 오징어 집산지다.
언젠가 삼척 언저리에서부터 강릉에 이르는 해안 길을 가며 오징어 물회를 두루 섭렵해본 적이 있는데, 동네마다 맛 집으로 꽤나 유명한 곳을 다녔지만 만족스런 맛이 나오지 않았다.
경포대의 유명짜한 곳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인줄 알았다.
갖은 채소와 해산물이 화려한 시각 효과를 불러오지만, 정작 맛은 '글쎄'였다.

물회는 바쁜 뱃사람들이 현장에서 간편하고 빠르게 먹기 위해 고안된 음식이다.
회를 치고, 채소를 듬성듬성 잘라 넣고, 고추장과 식초와 물을 부으면 끝이다.
쉽게 얘기하면 투박한 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물회의 맛은 고추장이 좌우한다.

주문진, 소돌 해수욕장과 오징어 물회의 추억

그럼 고추장의 맛은 무엇인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창의 그것도 내겐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농촌 출신 사람들에게 고향의 된장 맛이 쉽사리 대체되지 않는 것처럼, 바닷가 출신들에겐 고추장이 그러하다.
지금도 오징어 물회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포항 쪽으로 가면 이런 전통 방식의 물회 맛을 볼 수 있다.
잡다한 게 다 배제된 단순한 '그 맛' 말이다.

소돌의 해오름은 전통 방식에서는 조금 진일보 했다.
양념도 새콤달콤함이 더해졌고, 살얼음까지 스며든 발랄한 맛은 도시 사람들도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그래도 맛의 기본은 훌륭하다. 주문진 시장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

아무래도 서울 관광객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건 원조와 퓨전의 절묘한 타협인가.
알 수 없다. 알고 있는 건 다시 소돌을 갈 것이며 그곳에 간다면 이 오징어 물회를 먹을 것이라는 사실 뿐이다.

양혁진 dwhhh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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