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피플] “모래로 알아보는 내적세계”, 김정국 휴(休) 모래놀이센터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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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1. 오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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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앤피플] “모래로 알아보는 내적세계”, 김정국 휴(休) 모래놀이센터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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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모래를 느끼고 교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김 양은 선천적으로 한쪽 뇌가 함몰된 채 태어났다. 자궁암을 앓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언어장애와 심리불안 등으로 한글조차 깨우치기 어려웠던 김 양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한 채 늘 소외된 생활을 했다.

이런 상태의 김 양이 ‘모래놀이 상담’을 통해 내면을 치유 받았다고 한다. 김 양은 모래를 손으로 만지며 다양한 인형들을 이용해 형상을 만드는 모래놀이를 통해 마음 속 상처를 치유 받았다. 전문가 상담은 약 8개월 간 진행됐다. 이후 김 양은 눈에 띄게 밝아졌으며 점차 자신감을 갖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김 양은 상담이 끝날 무렵 모래상자 안에 ‘스쿠터를 타고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러 떠나는 인형’을 넣었다.

[피플앤피플] “모래로 알아보는 내적세계”, 김정국 휴(休) 모래놀이센터 연구소장

이에 대해 김정국 ‘휴(休) 모래놀이센터’ 연구소장은 마음의 안정을 어느 정도 되찾은 상징적인 내면 표출로 풀이했다.

김 소장은 “모래놀이 상담은 유아에서 노년까지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며 “모래상자 안에서 모래와 인형 등을 갖고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심리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 속 트라우마나 불안감이 모래를 어루만지면서 심리적인 안정으로 이어진 실제 사례를 이야기 하면서 “정서가 안정돼야 인지능력도 향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래놀이상담 프로그램’은 1929년 영국의 의사인 로웬펠트(Lowenfeld)가 아동의 내적인 치유를 위해 처음 시도했다. 이후 1986년 스위스의 칼프(Kalff) 여사가 이 치유 프로그램을 성인에게 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확산시켰다. 우리나라에는 1975년 처음 소개됐으며 모래놀이상담 시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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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정국 소장과의 일문일답.


Q. ‘휴 모래놀이센터’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만 3세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심리적인 문제를 모래놀이 상담을 통해 내담자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있다. 유치원, 학교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분리불안, 위축감을 느끼는 것을 비롯해 사춘기 자녀와 부모 사이에 생기는 갈등, 청년들의 우울감과 무기력감, 부부의 이혼 문제까지 심리적 문제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들이 모래놀이를 통해 불안 심리를 표출하고 해소함으로써 심신의 건강을 되찾도록 하는 게 목표다. 심리 문제를 극복하고 안정과 행복을 되찾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


Q.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반항하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이 많다.

대부분 사춘기 자녀들의 문제는 부모로부터 비롯된다. 어릴 때부터 쌓였던 불만이 이 시기에 주로 표출이 된다. 이때 부모 입장에서는 ‘그동안은 내 아이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말도 잘 듣고 따랐는데 나쁜 친구를 만나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개 부모 말을 잘 듣고 따르는 아이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착한 아이는 내적인 힘이 없는 아이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하고 경청하는 가정에서는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서 진정한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피플앤피플] “모래로 알아보는 내적세계”, 김정국 휴(休) 모래놀이센터 연구소장

Q. 정신분석에 원리를 둔 심리치유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모래놀이 상담’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정신분석이 프로이트에 의해 창안됐다면 모래놀이상담은 칼 구스타프 융(C. G. Jung)의 분석심리학에 기반을 뒀다. 무의식을 얘기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사실 많은 차이가 있다.

모래놀이 상담은 인간이 가진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 두 정신세계를 조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두 세계 모두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할 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 건강한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트라우마는 언어 상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이혼 문제로 찾아온 내담자는 어린 시절 겪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모래놀이 상담은 상처가 억압돼있던 그 시기로 돌아가 당시의 내면 치유 또한 가능하게 한다.


Q. 가장 자연에 흡사한 물질이 모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래놀이 상담’의 특징은 무엇인가?

모래는 억겁의 세월을 존재해온 만큼 긴 세월을 담고 있는 물질이다. 우리 내면에 에너지가 흐르듯이 손으로 마른 모래를 만지는 것만으로 치유의 에너지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상담에 사용되는 모래상자는 마른 모래와 젖은 모래, 이렇게 2개의 상자로 되어 있다. 마른 모래는 우리 몸의 에너지처럼 흘러 모래를 만짐으로써 안정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젖은 모래는 애착 문제가 있는 내담자들이 사용하게 되는데 젖은 모래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단단히 구축하고 강화하도록 돕는다.

모래놀이 상담에 쓰이는 도구는 모래를 담는 상자와 모래, 인형(피규어) 등이 있다. 눈이 가는 인형을 집어 와서 놓는 방법으로, 상자에 그림을 그리듯이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초기의 상자들은 대부분 혼돈의 상태를 보여주다가 대립 등의 단계를 거친 후에 조화로움을 찾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또 자신의 자아의식이 강화되면서 진정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것을 자기실현을 통해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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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내면심리를 치유하는 정신과 치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국제모래놀이학회나 외국에서는 ‘Sandplay Therapy’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의사협회에서 ‘치료’란 말을 금지해 지난해부터 모래놀이 ‘상담’이라고 부르게 됐다.

모래놀이 상담은 정신과 진단을 받은 병에 대해 모래를 만지면서 얘기하고 인형을 놓음으로써 쌓여있던 자신의 콤플렉스들을 표출하게 도와준다. 스스로 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서 자아가 건강해지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모래놀이 프로그램은 상담자가 치료를 한다기보다 내담자 본인이 내면에 있는 자기치유력을 믿고 프로그램에 임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Q. 모래놀이 상담사가 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가?

임상 사례를 접하고 시험 등을 통해 공식 상담사 자격을 획득하게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담사의 ‘인격’이다. 상담사 자신이 가진 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역전이’가 일어나 내담자를 상담할 수 없게 된다. 적어도 자신이 가진 어두운 면은무엇이고, 콤플렉스는 없는지 등 자신의 내면을 알아야 내담자를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고 서로 교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식 상담사가 되기 전 교육상담을 받는다.


Q.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경우에도 모래놀이 상담 효과가 탁월한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래놀이 상담으로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림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인 알렉산더 이스트호이젠 국제모래놀이치료학회장은 모래놀이 조울증 상담에 대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말한바 있다. 내가 맡았던 조울증 내담자의 경우 4년 반 정도 모래놀이를 받았다. 힘들었지만, 시작한지 1년 만에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사실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상담자가 “3년 반 동안 약을 먹다가 약을 끊고 나니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피플앤피플] “모래로 알아보는 내적세계”, 김정국 휴(休) 모래놀이센터 연구소장

Q. 현대인들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성 상처를 안고 있다.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거나 언어적인 상담만 받는 경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는 모래놀이상담 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몸이 직립보행까지 진화해 왔듯이 영혼의 성장에도 과정이 있다”고 융은 말했다. 이것은 마치 직립으로 선 몸이 문 안에 들어오면 다 들어온 듯이 문을 닫지만 자신의 영혼의 긴 꼬리는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고 몸처럼 영혼도 진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Q. ‘건강한 가족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가족이 사회구성의 가장 기본 단위다. 우리 몸에 병든 세포가 많아지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듯이 가족구성원들의 조직인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병들게 된다.

모래놀이상담에서 진행되는 ‘건강한 가족 공동체’는 건강한 가족이 되도록 이끌어가는 일종의 ‘부모 교육’이다. 다른 곳의 부모 교육과의 차이점은 부모 자신의 무의식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것으로, 의식에서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도 내면의 장애물이 있으면 의지대로 자신을 끌어가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선 자녀의 행동 양상에 대해 이해를 한 뒤, 그 다음은 부모의 내면세계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다음으로는 가족 공동체의 손과 발이 되는 의사소통에 대해서 훈련하고, 마지막으로 가족공동체를 운영해가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미국 뉴욕의 데이탑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을 서울 시립 동부아동상담소에서 수정 보완한 내용이다.


Q. 앞으로 계획은?

현재 일본은 전체 학교에서 모래놀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남교육청과 한국 모래놀이상담협회가 협약을 맺고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각 학교에 모래놀이 시설을 보급하고 있다.

앞으로 전국의 각 학교에서 모래놀이 상담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시점에서는 그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사는 학생들이 행복해지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


[YTN PLUS] 취재 공영주, 사진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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