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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스노우보드 역사에 남을 충격적인 결과. 17살 소녀 최가온 선수가 미국의 클로이 김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따낸 뒤 미국 공영방송에서 나온 반응입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떠오른 스타 13명,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8개 순간 등 올림픽 폐막 뒤에도 외신들은 최가온 선수의 활약을 다시 조명하고 있는데요.
그 주인공이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자, 최가온 선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최가온]
안녕하세요.
[앵커]
정말 시청자분들이 걸그룹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랄 것 같습니다.
아, 이제 뭐 귀국한 지 한 일주일쯤 되셨죠? 어떻게 지내셨어요.
[최가온]
네, 들어오자마자 또 할머니, 가족들을 만나고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면서 행복하게 지냈어요.
[앵커]
네, 귀국했을 때, 그러니까 그 할머니의 육전이 먹고 싶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금메달을 따고 돌아와서 실제 할머니 육전을 좀 맛을 봤습니까?
[최가온]
네, 오자마자 도착,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랑 맛있게 먹었어요.
[앵커]
아, 할머니가 또 얼마나 예쁘게 또 반갑게 맞아주셨을까요? 친구들과 혹시 파자마 파티도 했나요.
[최가온]
네, 친구들하고 이틀 연속으로 파자마 파티.
[앵커]
이틀 연속으로. 친구들이 만나서 어떤 얘기들 좀 해주던가요.
[최가온]
어, 깜짝 파티도 많이 준비해주고, 그리고 울고 친구들도 많이. 너무 축하한다고 계속 지금까지도 말해주고 있어요.
[앵커]
네, 친구들이 평소에도 경기 전에 응원 영상도 많이 보내주고 그런다고 들었어요. 많은 힘이 됐을 것 같아요.
[최가온]
네, 저 시합할 때 둘이 영상통화 하면서 봤다, 울면서 봤다고 해서 그 시합 끝나자마자 영상통화 일 초라도 하고 막 나왔어요.
[앵커]
한국에 돌아오셔서 검사한 뒤에 그 세 곳이 골절됐다라는 그거를 이제 SNS에 올려서 사람들이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어디에 어떻게 다쳤는지, 언제 다쳤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최가온]
올림픽 전에 스위스 훈련에서 제가 넘어졌는데 그때 손바닥 세 군데가 골절되고 인대까지 조금 손상이 있어서. 근데 그 당시에는 저는 어, 검사를 안 받아봐서 몰랐었어요. 근데 끝나고 한국에 들어와서 찍어봤더니 알게 됐어요.
[앵커]
그러니까 올림픽 때는 골절까지 된지는 몰랐었다라는 말씀이시죠.
[최가온]
네.
[앵커]
근데 올림픽에서 결승전 1차 시 때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그 당시 떠올려봤을 때 어땠나요, 상황이?
[최가온]
어, 그 기술을 원래 연습 때 잘 안 넘어지던 기술이었는데 그날 시합 파이프가 저한테 살짝 안 맞아서 그런 실수가 나왔고, 정말 저도 크게 당황하고 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한동안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잖아요. 그 당시에 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최가온]
어, 정말 절망적이었고, 제가 이렇게 올림픽이 끝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힘 내보고 움직여보자. 좀 다리에 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하고 코치님들하고 그렇게 기다렸어요.
[앵커]
네, 그때 DNS, Did Not Start. 출전하지 않는다는 표시까지 떴었거든요. 코치님이나 아버님께서도 출전을 말리셨다고 하던데... 그런데 2차 시기 때 눈에 넘어지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최가온]
네, 제가 어느 시합을 가나 1차전 넘어지면 약간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그런 스타일이라서 그때도 딱 넘어지자마자 3차전 잘하면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앵커]
결국에는 3차 시기에서 정말 기적처럼 높이 올라갔고, 멋지게 좀 해냈습니다. 당시에 이제 경기가 딱 끝나자마자 들었던 어떤 생각 같은 게 있나요.
[최가온]
어, 그래도 내가 1차, 2차 이렇게 넘어지고 아팠지만 행복하게 마지막까지 해냈다 하고 감격스러웠어요.
[앵커]
음, 점수 발표가 나기 전부터 울고 계셨잖아요. 그게 메달 입상의 눈물로 바뀌었는데 언제쯤 그 기쁨의 눈물로 좀 바뀌었을까요.
[최가온]
어, 이제 제 딱 런 성공하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고 있었는데 이제 그리고 아픈 것 때문에도 울고 있었는데, 딱 기다리면서 전광판을 이렇게 보는데 갑자기 1등이라고 떠서 그때부터는 더 오열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앵커]
사실 많은 분들이 클로이 김 선수와의 어떤 관계도 관심이 많거든요. 실제 클로이 김 선수와 어떻게 그런 관계를 좀 가지게 되신 거예요.
[최가온]
제가 어렸을 때 첫 원정을 뉴질랜드로 갔었는데 그때 제가 부모님 없이 코치님하고 가서 조금 코도 많이 흘리고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았었는데 클로이 언니가 많이 그때 도와주고 인사도 해주고요. 매일매일 사진 찍고 그랬었어요.
[앵커]
네, 클로이 김 선수가 자신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최가온 선수에게 달려가서 안아주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잖아요.
어떤 말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최가온]
어, 시합 끝나고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그래도 클로이 언니가 오늘 너무 수고했고, 너무 멋있다, 그런 얘기 했었어요.
[앵커]
자, 최가온 선수 금메달 뒤에는 이제 아버지의 어떤 역할을 저희가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YTN과의 인터뷰에서도 유독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최가온 선수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최가온]
어, 처음에는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코칭도 해주시고, 그리고 항상 한 아빠가 하는 일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설거지, 요리 다 하시니까 정말 감사한 것 같아요.
[앵커]
네, 아버지 말고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이 참 많을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테고, 아픈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어떤 사람이 머릿속에 싹 스치나요.
[최가온]
물론 아버지도 있지만 항상 모르게 응원해주신 친할머니, 외할머니도 항상 생각나고, 그리고 언니, 오빠도. 제가 외국에 나가면 항상 엄마, 아빠가 따라 나와서 집에 둘이 같이 있는데 그것도 조금 마음에 안 좋았는데, 그것도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앵커]
네, 앞서 저희가 소개를 해드렸지만 정말 금메달 따고 기사가 많이 났습니다. 외신들도 이제 스노보드 슈퍼스타가 태어났다, 이렇게 기사를 많이 쏟아내고 있는데 이런 관심 좀 어떠세요.
[최가온]
네, 이런 관심이 처음이라서 좀 부담스럽고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저한테 이렇게까지 관심을 주시니까.
[앵커]
네, 금메달을 땄지만 이제 시작이잖아요. 우상이었던 클로이 김 선수를 이겼으니까 다음 목표는 이제 뭔가 그것도 궁금한데요.
[최가온]
네, 일단 첫 번째 목표였던 제 금메달을 이뤄서 다음 목표는 지금의 저보다 더 잘 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앵커]
네, 자, 최가온 선수와 또 다른 선수들의 어떤 활약에 힘입어서 마치 이제 스노보드 붐일 것 같다, 이런 얘기들도 지금 많이 나오고 있고요. 만약에 국내에서 뭐 스노보드, 이제 많은 분들이 사랑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보면 어떤 게 좀 가장 중요하다, 필요하다 생각하세요.
[최가온]
어, 일단 하프파이프라는 시설이 저희 나라에는 또 많이 없어서 그게 하프파이프라는 게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그리고 에어매트 시설이나 조금 스노우보드를 발전할 수 있는 시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앵커]
네, 이제 부상에서 회복해서 다시 우리 최가온 선수가 비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최가온]
어,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 다음 년도 시합부터 또 나가고 할 것 같아서 지금 준비 중이에요.
[앵커]
우리 최가온 선수를 위해서 그동안 응원했던 많은 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남겨주세요.
[최가온]
네, 저한테 이렇게까지 항상 관심을 주시고 또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제가 더 최선을 다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앵커]
네, 앞으로 더 멀리 높이 날으는 최가온 선수 기대하겠습니다. 부상에도 얼른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최가온]
감사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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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보드 역사에 남을 충격적인 결과. 17살 소녀 최가온 선수가 미국의 클로이 김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따낸 뒤 미국 공영방송에서 나온 반응입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떠오른 스타 13명,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8개 순간 등 올림픽 폐막 뒤에도 외신들은 최가온 선수의 활약을 다시 조명하고 있는데요.
그 주인공이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자, 최가온 선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최가온]
안녕하세요.
[앵커]
정말 시청자분들이 걸그룹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랄 것 같습니다.
아, 이제 뭐 귀국한 지 한 일주일쯤 되셨죠? 어떻게 지내셨어요.
[최가온]
네, 들어오자마자 또 할머니, 가족들을 만나고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면서 행복하게 지냈어요.
[앵커]
네, 귀국했을 때, 그러니까 그 할머니의 육전이 먹고 싶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금메달을 따고 돌아와서 실제 할머니 육전을 좀 맛을 봤습니까?
[최가온]
네, 오자마자 도착,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랑 맛있게 먹었어요.
[앵커]
아, 할머니가 또 얼마나 예쁘게 또 반갑게 맞아주셨을까요? 친구들과 혹시 파자마 파티도 했나요.
[최가온]
네, 친구들하고 이틀 연속으로 파자마 파티.
[앵커]
이틀 연속으로. 친구들이 만나서 어떤 얘기들 좀 해주던가요.
[최가온]
어, 깜짝 파티도 많이 준비해주고, 그리고 울고 친구들도 많이. 너무 축하한다고 계속 지금까지도 말해주고 있어요.
[앵커]
네, 친구들이 평소에도 경기 전에 응원 영상도 많이 보내주고 그런다고 들었어요. 많은 힘이 됐을 것 같아요.
[최가온]
네, 저 시합할 때 둘이 영상통화 하면서 봤다, 울면서 봤다고 해서 그 시합 끝나자마자 영상통화 일 초라도 하고 막 나왔어요.
[앵커]
한국에 돌아오셔서 검사한 뒤에 그 세 곳이 골절됐다라는 그거를 이제 SNS에 올려서 사람들이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어디에 어떻게 다쳤는지, 언제 다쳤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최가온]
올림픽 전에 스위스 훈련에서 제가 넘어졌는데 그때 손바닥 세 군데가 골절되고 인대까지 조금 손상이 있어서. 근데 그 당시에는 저는 어, 검사를 안 받아봐서 몰랐었어요. 근데 끝나고 한국에 들어와서 찍어봤더니 알게 됐어요.
[앵커]
그러니까 올림픽 때는 골절까지 된지는 몰랐었다라는 말씀이시죠.
[최가온]
네.
[앵커]
근데 올림픽에서 결승전 1차 시 때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그 당시 떠올려봤을 때 어땠나요, 상황이?
[최가온]
어, 그 기술을 원래 연습 때 잘 안 넘어지던 기술이었는데 그날 시합 파이프가 저한테 살짝 안 맞아서 그런 실수가 나왔고, 정말 저도 크게 당황하고 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한동안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잖아요. 그 당시에 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최가온]
어, 정말 절망적이었고, 제가 이렇게 올림픽이 끝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힘 내보고 움직여보자. 좀 다리에 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하고 코치님들하고 그렇게 기다렸어요.
[앵커]
네, 그때 DNS, Did Not Start. 출전하지 않는다는 표시까지 떴었거든요. 코치님이나 아버님께서도 출전을 말리셨다고 하던데... 그런데 2차 시기 때 눈에 넘어지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최가온]
네, 제가 어느 시합을 가나 1차전 넘어지면 약간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그런 스타일이라서 그때도 딱 넘어지자마자 3차전 잘하면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앵커]
결국에는 3차 시기에서 정말 기적처럼 높이 올라갔고, 멋지게 좀 해냈습니다. 당시에 이제 경기가 딱 끝나자마자 들었던 어떤 생각 같은 게 있나요.
[최가온]
어, 그래도 내가 1차, 2차 이렇게 넘어지고 아팠지만 행복하게 마지막까지 해냈다 하고 감격스러웠어요.
[앵커]
음, 점수 발표가 나기 전부터 울고 계셨잖아요. 그게 메달 입상의 눈물로 바뀌었는데 언제쯤 그 기쁨의 눈물로 좀 바뀌었을까요.
[최가온]
어, 이제 제 딱 런 성공하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고 있었는데 이제 그리고 아픈 것 때문에도 울고 있었는데, 딱 기다리면서 전광판을 이렇게 보는데 갑자기 1등이라고 떠서 그때부터는 더 오열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앵커]
사실 많은 분들이 클로이 김 선수와의 어떤 관계도 관심이 많거든요. 실제 클로이 김 선수와 어떻게 그런 관계를 좀 가지게 되신 거예요.
[최가온]
제가 어렸을 때 첫 원정을 뉴질랜드로 갔었는데 그때 제가 부모님 없이 코치님하고 가서 조금 코도 많이 흘리고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았었는데 클로이 언니가 많이 그때 도와주고 인사도 해주고요. 매일매일 사진 찍고 그랬었어요.
[앵커]
네, 클로이 김 선수가 자신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최가온 선수에게 달려가서 안아주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잖아요.
어떤 말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최가온]
어, 시합 끝나고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그래도 클로이 언니가 오늘 너무 수고했고, 너무 멋있다, 그런 얘기 했었어요.
[앵커]
자, 최가온 선수 금메달 뒤에는 이제 아버지의 어떤 역할을 저희가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YTN과의 인터뷰에서도 유독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최가온 선수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최가온]
어, 처음에는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코칭도 해주시고, 그리고 항상 한 아빠가 하는 일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설거지, 요리 다 하시니까 정말 감사한 것 같아요.
[앵커]
네, 아버지 말고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이 참 많을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테고, 아픈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어떤 사람이 머릿속에 싹 스치나요.
[최가온]
물론 아버지도 있지만 항상 모르게 응원해주신 친할머니, 외할머니도 항상 생각나고, 그리고 언니, 오빠도. 제가 외국에 나가면 항상 엄마, 아빠가 따라 나와서 집에 둘이 같이 있는데 그것도 조금 마음에 안 좋았는데, 그것도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앵커]
네, 앞서 저희가 소개를 해드렸지만 정말 금메달 따고 기사가 많이 났습니다. 외신들도 이제 스노보드 슈퍼스타가 태어났다, 이렇게 기사를 많이 쏟아내고 있는데 이런 관심 좀 어떠세요.
[최가온]
네, 이런 관심이 처음이라서 좀 부담스럽고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저한테 이렇게까지 관심을 주시니까.
[앵커]
네, 금메달을 땄지만 이제 시작이잖아요. 우상이었던 클로이 김 선수를 이겼으니까 다음 목표는 이제 뭔가 그것도 궁금한데요.
[최가온]
네, 일단 첫 번째 목표였던 제 금메달을 이뤄서 다음 목표는 지금의 저보다 더 잘 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앵커]
네, 자, 최가온 선수와 또 다른 선수들의 어떤 활약에 힘입어서 마치 이제 스노보드 붐일 것 같다, 이런 얘기들도 지금 많이 나오고 있고요. 만약에 국내에서 뭐 스노보드, 이제 많은 분들이 사랑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보면 어떤 게 좀 가장 중요하다, 필요하다 생각하세요.
[최가온]
어, 일단 하프파이프라는 시설이 저희 나라에는 또 많이 없어서 그게 하프파이프라는 게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그리고 에어매트 시설이나 조금 스노우보드를 발전할 수 있는 시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앵커]
네, 이제 부상에서 회복해서 다시 우리 최가온 선수가 비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최가온]
어,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 다음 년도 시합부터 또 나가고 할 것 같아서 지금 준비 중이에요.
[앵커]
우리 최가온 선수를 위해서 그동안 응원했던 많은 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남겨주세요.
[최가온]
네, 저한테 이렇게까지 항상 관심을 주시고 또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제가 더 최선을 다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앵커]
네, 앞으로 더 멀리 높이 날으는 최가온 선수 기대하겠습니다. 부상에도 얼른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최가온]
감사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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