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에서 '백년가약'...'박제' 대신 일상 속으로

고궁에서 '백년가약'...'박제' 대신 일상 속으로

2026.10.10. 오전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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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궁에서 백년가약을 맺는 특별한 예식이 펼쳐졌습니다.

문화재를 일상으로 돌려주는 반가운 시도지만 여러 우려도 공존하는데, 해외 사례와 함께 이준엽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기자]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증인을 서고, 금발의 신부가 하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곳, 다름 아닌 조선의 법궁, 경복궁입니다.

위엄을 뽐내는 근정전을 배경으로, 새하얀 하객석이 늘어섰습니다.

엄격하게 관리되던 문화유산이 부부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축제의 장이 됐습니다.

예식의 주인공은 에스토니아 출신 마이 씨와 한국인 신랑입니다.

10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선정된 예비부부 28쌍 가운데, 고궁의 문을 가장 먼저 열었습니다.

[마 이 / 신부 : 10년 전, 2016년 10월 2일에 처음으로 경복궁에 왔는데 완벽하게 오늘(10월 2일) 결혼을 하게 되는 거 꿈 같아요.]

올해 첫발을 뗀 국립고궁박물관 야외 결혼식은 과거 왕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내사복시' 터에서 펼쳐졌습니다.

국가유산을 일상으로 돌려주자는 취지의 첫 예식은 현장을 특별한 낭만으로 채웠습니다.

[피 아 / 신부 어머니 : 믿기지 않아요. 강철 새(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날아왔네요. 너무 아름답고, 동화 속 이야기 같아요.]

[박세진·이지은 / 하객 : 좋은 것 같아요. 저도 나중에 결혼식을 한다면 이런 곳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해외에서는 영국 켄싱턴 궁전이나 프랑스 로댕 미술관처럼 역사적 공간을 예식장으로 개방하는 시도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천 년 된 로마 원형극장에서 헤비메탈 콘서트가 열리거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무대로 패션쇼가 펼쳐질 만큼, 활용의 지평도 넓어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문화재의 보존이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늘 뒤따르고 있습니다.

'청와대 화보 논란' 여파로 취소 위기를 맞았던 경복궁 패션쇼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해외에서도 고대 유적지에서 펼쳐진 콘서트의 심한 진동으로 논란이 일거나 상업화를 이유로 문화재 대관을 거절하는 등, 보존과 활용을 둘러싼 진통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에 이번 행사에서 문화재 당국은 훼손 우려가 적은 구역을 신중히 고르고, 사전 안전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김대현 / 국립고궁박물관 행정사무관 : 오랫동안 야외 결혼식과 공공 결혼식을 했던 업체를 선정해서 거기서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그동안 경험을 통해서 사전에 다 대비를 하고 많은 인원을 촘촘하게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는 예식 대상이 80쌍으로 대폭 늘어납니다.

전국 향교와 서원까지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YTN 이준엽입니다.

영상기자 : 김광현
영상편집 : 김지연
디자인 : 김서연

YTN 이준엽 (leej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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