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연구가 신동광, "축협, 협(協)자에 담긴 '여러 힘이 공정하게 모인다'는 뜻 되찾길"

어원연구가 신동광, "축협, 협(協)자에 담긴 '여러 힘이 공정하게 모인다'는 뜻 되찾길"

2026.08.10. 오전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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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언어]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6년 7월 4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신동광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휘 아나운서 (이하 최휘) : 이번에는 미디어 속 언어를 재해석해 보는 미디어 언어 시간입니다. 요즘 축구 이야기로 온 나라가 뜨겁습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결과에 대해 국민들이 크게 실망했는데요. 특히 축구협회의 대한 비판은 대통령까지 문제를 지적할 정도로 거셉니다. 축구뿐만 아니라 그 동안 우리 사회의 파벌 관행은 많은 비난을 받아왔는데요. 오늘은 협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익단체들의 이름 유래와 개선방향을 어원풀이를 통해 알아보고, 개선방향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나오셨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 신동광 작가 (이하 신동광) :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세요,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 최휘 : 작가님도 이번 논란에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가 지난 달 초에 월드컵을 주제로 하면서 잘되기도 바랬는데, 그래서 더 아쉬우셨을 것 같아요.

◇ 신동광 : 저는 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협회는 본래 어떤 일을 하려고 만든 조직일까?’ 협회라는 말을 들으면, 협력, 신뢰, 공정 같은 개념이 떠올라야 하는데, 요즘엔 파벌이나 기득권, 인맥 같은 단어를 먼저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협회, 연맹, 조합, 길드, 카르텔 같은 말들의 유래와 본질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 최휘 : 어원으로 협회 문제를 본다는 게 흥미로운데요?

◇ 신동광 : 흥미롭게도 이 단어들이 거의 다 비슷한 뜻에서 출발했습니다. 먼저 협회부터 볼까요? 협회의 협(協)은 ‘함께 힘을 모은다’는 뜻입니다. 회(會)는 ‘모임’을 의미하죠. 말 그대로 ‘함께 힘을 모으는 곳’입니다. 한자를 뜯어보면, ‘협(協)’자가 재밌어요. ‘열 십(十)’, 즉 많다는 의미의 글자 아래 ‘힘 력(力)’자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합할 협(劦)’자가 붙어 있어요. 여러 사람의 힘이 한 데 모아진 형상이에요. 협회란 여러 힘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 듣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이름이에요. 협회를 뜻하는 영어 ‘association’도 비슷합니다. 라틴어 ‘socius’에서 왔는데요. 동료, 친구, 함께 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회를 뜻하는 ‘society’, 소셜미디어의 ‘social’도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 최휘 : 그러니까 협회나 사회나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군요?

◇ 신동광 : 정확합니다. 연맹의 뜻도 비슷합니다. 연(聯)은 ‘끈으로 잇다’, 맹(盟)은 ‘맹세/약속’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연맹은 ‘약속으로 연결된 공동체’인 셈이죠. ‘맹세 맹(盟)’자가 원래는 피를 그릇에 담아 하늘에 맹세하던 의식에서 나온 글자입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약속이지요. 결국 연맹은 '피로 이은 맹세 모임', ‘생사를 함께하는 집단’을 뜻합니다.

◆ 최휘 : 구성원들의 탄탄한 신뢰와 비장한 다짐이 느껴집니다.

◇ 신동광 : 연맹을 뜻하는 영어 ‘league’도 원래는 ‘연결하고 묶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ligare’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프로배구 V-리그(V-League)를 비롯해, 미국의 야구 메이저리그(Major League Baseball)와 미식축구 내셔널풋볼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 유럽의 축구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독일의 분데스리가(Bundesliga)가 익숙하게 들리죠. 히어로들이 악당과 대결하는 헐리웃 영화 ‘젠틀멘 리그’도 있었고요.

◆ 최휘 : 리그도 결국 연결한다는 의미였군요?

◇ 신동광 : 네. 조합도 그렇습니다. 조직을 의미할 때 쓰이는 ‘짤 조(組)’자는 ‘실을 꼬아 만든 끈’에서 왔습니다. ‘함께 힘을 짜는 조직’입니다.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은 약하지만, 여러 가닥이 모이면 질기고 다부진 밧줄이 되죠. 옷감을 짜듯, 씨실과 날실이 정교하게 얽혀야 단단한 천이 되잖아요. 그렇게 ‘잘 짜인 모임’이 조합이에요.

‘결사(結社)’라는 말도 종종 듣는데요. 죽음을 각오할 만큼 치열하다는 의미의 ‘결사(決死)적’과는 다른 말입니다. 결(結)은 '맺다', 사(社)는 ‘모임’입니다. ‘모임을 결성하다’, ‘맺어진 모임’을 뜻합니다. 아마 비밀결사란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 최휘 : 협회부터 연맹, 조합, 결사까지, 말씀해 주신 단어들의 의미가 모두 참 듣기만 해도 뭔가 마음이 든든해지네요.

◇ 신동광 : 바로 그게 핵심입니다. 협회도, 연맹도, 조합도 모두 출발점은 좋았습니다.

조합을 뜻하는 중세 유럽의 길드(guild)도 마찬가지였어요. 길드는 ‘지불하다/값을 치르다’를 뜻하는 게르만 조어 ‘geldan’에서 유래했습니다. 상인이나 장인들이 회비를 내고 가입하는 조합이었는데, 핵심은 단순히 돈 내고 명단에 이름 올리는 게 아니라, 회원이 잘못하면 길드 전체가 함께 배상했다는 거예요. 연대 책임의 공동체였죠. 돈을 냈으면 그만큼 책임도 진다, 이게 길드의 정신이었어요.

◆ 최휘 : 요즘 일부 협회가 주는 느낌과는 꽤 달랐네요.

◇ 신동광 : 그 다음이 ‘신디케이트(syndicate)’예요. 이 말은 그리스어 ‘syndikos’에서 왔는데, syn은 '함께', dike는 '정의' 또는 '판결'을 뜻합니다. ‘함께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 원래는 법정에서 집단적으로 누군가를 변호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공동 변호인단이었던 거죠.

◆ 최휘 : 지금은 신디케이트에서 어두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 신동광 : 바로 그거예요. 함께 정의를 추구하러 모인 사람들이, 그들만의 이익을 지키는 집단으로 바뀐 거죠. 이름은 그대로인데 속이 뒤집어진 거예요.

◆ 최휘 : 그럼 카르텔은요? 요즘 축구협회 비판할 때 정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요.

◇ 신동광 : 카르텔(cartel), 정말 흥미로운 말입니다.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그리스어 ‘khartes’, ‘파피루스 잎사귀’를 뜻합니다. 종이 한 장. 그런데 그 종이가 1550년대에 영어에 처음 등장할 때 의미가 '결투 도전장’, ‘도발 편지'였어요. 누군가에게 싸움을 거는 편지였던 셈이죠.

◆ 최휘 : 결투 도전장이요? 그게 어떻게 지금의 카르텔이 됐죠?

◇ 신동광 : 17세기로 가면서 전쟁 중 포로 교환 협정서로 쓰이기 시작하더니, 19세기 말 독일에서 기업들이 가격 담합 모임을 ‘Kartell’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지금의 의미가 됐어요. 처음엔 적끼리 싸우다가, 어느 순간 손잡고 시장을 나눠 먹었죠. ‘도전장’에서 ‘공모’로. 이게 카르텔의 의미 역사예요.

◆ 최휘 : 거기서 하나 더 짚어 주실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의리. 한국에서 협회들이 카르텔을 유지하는 힘이 바로 ‘의리’ 아닌가요?

◇ 신동광 : 그 말이 나와야 하죠. 의리(義理). 한자로 보면 의(義)는 '양 양(羊)'에 '나 아(我)'가 붙은 글자예요. 제물을 바치는 의식에서 나온 말로, ‘올바름’, ‘정의로움’을 뜻해요. 라(理)는 ‘옥(玉)’을 결대로 다듬는다는 뜻으로, ‘이치’, ‘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의리란 원래 '마땅히 지켜야 할 올바른 이치'예요. 굉장히 고귀한 말이죠.

◆ 최휘 : 참 좋은 뜻인데 누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달라지는군요.

◇ 신동광 : 타락 경로가 뚜렷해요. ‘마땅한 도리’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무’를 거쳐 ‘우리끼리의 충성’으로 변질됐죠. "의리로 한 번만 봐줘."란 말 들어 보셨을 겁니다. 선발 비리도, 예산 나눠 먹기도, 낙하산 인사도, 다 의리라는 이름으로 작동해요. 의리가 올바름을 잃는 순간, 협회는 카르텔이 됩니다. 의리가 카르텔의 접착제가 된 셈이죠.

◆ 최휘 : 그런데 이런 비밀스러운 기득권 결사라면, 역사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나요? 마피아, 야쿠자 이런 말들도 다 어원이 있죠?

◇ 신동광 : 그럼요. 마피아(Mafia)의 어원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어요. 유력한 설이 시칠리아어 ‘마피우스(mafiusu)’인데, 원래 뜻이 '허세, 대담함'이에요. 19세기 시칠리아에서 ‘마피우스’는 범죄자가 아니라, 외부 권력에 굽히지 않는 ‘당당한 사람’이었어요. 처음 의미는 강자에 맞서는 자긍심이었던 거죠. 이후 점점 조직화되고 폭력화되면서 지금의 마피아가 되었습니다.

◆ 최휘 : 처음엔 저항의 언어였다는 게 놀랍습니다.

◇ 신동광 : 삼합회(三合會)도 마찬가지입니다. 삼합(三合)은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 세 요소의 합이에요. 청나라 말기에 반청복명(反清復明), 청나라에 저항하고 명나라를 되찾겠다는 비밀결사로 시작했습니다. 민족 저항 운동이었던 거죠. 세월이 지나 홍콩과 동남아시아에서 범죄 조직으로 변질됐습니다.

◆ 최휘 : 야쿠자는요? 어원이 좀 특이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 신동광 : 야쿠자(やくざ)는 화투에서 나왔습니다. 8이 야(や), 9가 쿠(く), 3이 자(ざ)인데요. 이 셋을 합하면 끗수가 20이 나옵니다. 끗수가 높을수록 유리한 화투게임에서 20은 가장 낮습니다. 완전히 쓸모 없는 패. 거기서 '쓸모없는 자’, ‘사회의 낙오자'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스스로 그 이름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쓸모없다고 버려진 것들’이다, 그러니 우리끼리 뭉친다는 비틀린 자긍심이 담겨 있습니다.

◆ 최휘 : 자기들 스스로 비천한 이름을 택했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그럼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처럼, 엘리트 비밀결사 쪽은요?

◇ 신동광 : 프리메이슨(Freemasonry)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free) 석공/돌재주꾼(mason)이에요. 중세 유럽에서 성당이나 궁전을 짓던 장인 석공들의 길드에서 출발했습니다. 특정 영주나 길드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석공들’이라는 뜻이었죠. 이 장인 조합이 17세기부터 지식인들이 가입하는 비밀 친목 조직으로 변모했고, 계몽주의 사상과 결합하면서 세계적인 비밀 네트워크가 됐습니다. 모차르트도, 조지 워싱턴도 프리메이슨이었다고 하죠.

◆ 최휘 : 석공 길드에서 세계 비밀 결사로, 그 변모도 극적이네요.

◇ 신동광 : 일루미나티(Illuminati)는 ‘빛을 받은 이들’이에요. 빛을 비추다를 뜻하는 라틴어 ‘illuminare’에서 왔죠. 1776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라는 학자가 계몽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비밀 지식인 결사였습니다. 미신과 종교적 권위에서 벗어나 이성과 자유를 추구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됐죠. 불과 10년 만에 바이에른 정부에 의해 해산됐지만, 음모론의 단골 소재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 최휘 : 빛을 추구하던 모임이 음모론의 상징이 됐다는 것도 아이러니네요. 작가님, 이쯤 되면 패턴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가 변질되었군요.

◇ 신동광 : 정확히 보셨어요. 처음엔 다 명분이 있었어요. 함께 힘을 모으자, 피로 맹세하자, 정의를 추구하자, 자유를 지키자, 빛을 찾자. 그런데 어느 조직이든 시간이 지나면 내부의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기울어요. 자기 보존 본능이 공동선의 추구를 이겨버리는 거죠. 협회가 카르텔이 되는 과정이, 마피아가 저항에서 착취로 가는 과정이, 사실 다 같은 이야기예요.

◆ 최휘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정 스포츠 협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 같은데요.

◇ 신동광 : 참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만, 답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협회로 늘 양궁협회가 꼽힙니다. 이유가 딱 하나예요. 아무리 세계 랭킹 1위라도, 아무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 국내 선발전에 나와서 이겨야 국가대표가 돼요. 예외가 없어요. 그게 전부예요.

◆ 최휘 : 공정과 정의라는 원칙만 지켰을 뿐인데요.

◇ 신동광 : 사실 그게 가장 어렵죠. 의리로 좀 봐달라는 전화 한 통 받지 않기가, 선발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겠지요. 그래서 양궁협회가 더욱 특별한 거고요. 여기서 협회 개혁의 방향을 뽑아보면 세 가지예요. 첫째, 선발과 심판 기준의 완전 공개. 밀실에서 결정하는 순간 의리가 끼어들어요. 둘째, 임원 임기 제한과 외부 감사. 오래 앉아 있으면 자리가 곧 이익이 되거든요. 셋째, 성과에 대한 연대 책임. 중세 길드처럼, 조직이 실패하면 수장이 책임지는 구조요. 지금은 졌어도 자리는 지키잖아요.

◆ 최휘 : 문체부에서 대한축구협회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한다고 하는데 낱낱이 살펴보고, 앞으로는 축협이 ‘협회’라는 언어에 담긴 정신과 어울리는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신동광 : 공감합니다. 협(協)자에 담긴 '여러 힘이 공정하게 모인다'라는 정신, 맹(盟)자에 담긴 '목숨 걸고 하는 맹세'의 무게, 의리(義理)의 '올바른 이치'라는 본질적 목적으로 이름을 되찾아야 합니다.

◆ 최휘 : “말 속에 답이 있다”. 늘 인사로 외치는 말씀인데, 오늘따라 더 와닿습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 신동광 :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 최휘 : 지금까지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였습니다.

YTN 박준범 (pyh@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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