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앵커]
세대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가수나 밴드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데뷔해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40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는 밴드가 있습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수많은 멤버가 바뀌는 동안 부활을 만들고 한결같이 자리를 지킨 리더 김태원을 박순표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대중음악인 대부분이 그렇듯 김태원이 음악을 시작한 것도 큰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학창 시절 집에 있던 통기타를 우연히 만지기 시작해 재미를 붙였습니다.
물론 계기는 있었습니다.
[김태원/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짝사랑을 한 거죠. 교생 실습 나오신 분이었는데. 그분 때문에 합창부에 들어가게 됐고. / 처음으로 음악이라는 걸 접하고 화음이라는 걸 들으면서 내 목소리가 섞일 때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발견했어요 / 아 나는 피아노 치든 뭘 하든 음악을 해야 되겠다 / 혼자 생각을 하다가 통기타 하나가 있었기 때문에 통기타를 혼자 독학을 한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타리스트였기 때문에 솔로는 힘들었고 자연스럽게 밴드로 눈길이 갔습니다.
감동과 위로를 주는 음악을 하자고 의기투합해 [부활]을 만들었고 86년 1집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만드는 것, 그게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것이 제가 태어난 이유 같은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멤버들도 그런 식으로 늘 설득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철이 처음에 나와서 희야를 부른 것은 딱 들어맞는 테마였던 거죠” 3집부터는 부활의 색깔이 더욱 짙어집니다. 너무 슬프지도, 너무 기쁘지도 않은 절제의 미학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2집까지는 마이너(단조) 곡이었습니다. 전체가 마이너(단조)예요. 어둠의 극한. 그런데 그 이후에 공백기를 갖고 3집이 나오면서부터 슬픈 것을 슬프게만 표현하지 않고 약간 밝은 것을 덧칠을 해놓으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 그래서 나온 노래가 [사랑할수록]입니다.]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과 음반 부진, 가족과의 별거, 건강 악화 등으로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왜 음악을 하는지 자신을 돌아봤고 그런 초심이 부활과 김태원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가족들이) 비겁한 아빠를 피한 거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가 결국은 가족을 위한 거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내가 음악을 나 혼자 성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은 되돌아보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그가(가족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네버엔딩스토리]에 담겼습니다.]
데뷔 40주년 앨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잊지 말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앨범에 담았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방황의 늪에)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거든요 / 결국은 가장 좋은 건 들어가기 전이나 아주 조금 들어갔을 때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한 거죠 / 아 나도 돌아가고 싶다 너무 멀리 왔다 그런 거죠. 방황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레터(letter)입니다.]
수많은 보컬이 바뀌고 연주자도 바뀌었지만 그래도 부활이 건재한 것은 김태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반대로 오늘날의 김태원이 있는 것도 오롯이 부활 때문이라는 생각을 인터뷰 내내 해보게 됩니다.
YTN 박순표입니다.
영상기자 : 최윤석 이수연
영상편집 : 이수연
YTN 박순표 (sunny@ytn.co.k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세대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가수나 밴드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데뷔해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40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는 밴드가 있습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수많은 멤버가 바뀌는 동안 부활을 만들고 한결같이 자리를 지킨 리더 김태원을 박순표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대중음악인 대부분이 그렇듯 김태원이 음악을 시작한 것도 큰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학창 시절 집에 있던 통기타를 우연히 만지기 시작해 재미를 붙였습니다.
물론 계기는 있었습니다.
[김태원/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짝사랑을 한 거죠. 교생 실습 나오신 분이었는데. 그분 때문에 합창부에 들어가게 됐고. / 처음으로 음악이라는 걸 접하고 화음이라는 걸 들으면서 내 목소리가 섞일 때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발견했어요 / 아 나는 피아노 치든 뭘 하든 음악을 해야 되겠다 / 혼자 생각을 하다가 통기타 하나가 있었기 때문에 통기타를 혼자 독학을 한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타리스트였기 때문에 솔로는 힘들었고 자연스럽게 밴드로 눈길이 갔습니다.
감동과 위로를 주는 음악을 하자고 의기투합해 [부활]을 만들었고 86년 1집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만드는 것, 그게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것이 제가 태어난 이유 같은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멤버들도 그런 식으로 늘 설득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철이 처음에 나와서 희야를 부른 것은 딱 들어맞는 테마였던 거죠” 3집부터는 부활의 색깔이 더욱 짙어집니다. 너무 슬프지도, 너무 기쁘지도 않은 절제의 미학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2집까지는 마이너(단조) 곡이었습니다. 전체가 마이너(단조)예요. 어둠의 극한. 그런데 그 이후에 공백기를 갖고 3집이 나오면서부터 슬픈 것을 슬프게만 표현하지 않고 약간 밝은 것을 덧칠을 해놓으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 그래서 나온 노래가 [사랑할수록]입니다.]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과 음반 부진, 가족과의 별거, 건강 악화 등으로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왜 음악을 하는지 자신을 돌아봤고 그런 초심이 부활과 김태원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가족들이) 비겁한 아빠를 피한 거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가 결국은 가족을 위한 거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내가 음악을 나 혼자 성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은 되돌아보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그가(가족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네버엔딩스토리]에 담겼습니다.]
데뷔 40주년 앨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잊지 말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앨범에 담았습니다.
[김태원 /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 (방황의 늪에)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거든요 / 결국은 가장 좋은 건 들어가기 전이나 아주 조금 들어갔을 때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한 거죠 / 아 나도 돌아가고 싶다 너무 멀리 왔다 그런 거죠. 방황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레터(letter)입니다.]
수많은 보컬이 바뀌고 연주자도 바뀌었지만 그래도 부활이 건재한 것은 김태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반대로 오늘날의 김태원이 있는 것도 오롯이 부활 때문이라는 생각을 인터뷰 내내 해보게 됩니다.
YTN 박순표입니다.
영상기자 : 최윤석 이수연
영상편집 : 이수연
YTN 박순표 (sunny@ytn.co.k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