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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0년 7월 20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김성신 출판평론가
- 사적 대화 무단도용 제기, 김봉곤 작가 해당 소설집 판매 중지
- 오토픽션, 작가의 경험과 소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한 문학적 기법 중 하나
-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 돼, 피해 내용에 책임져야
- 출판사와 작가 본인의 소극적 입장 표명 등 대응 문제
- 저작권, 창작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제대로 된 개념 가져야
- 독자, 사회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지나 도약적 발전 기대
- 문단 권력과 출판 자본의 긴밀한 관계로 당장의 현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것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나와 나눈 대화나 사건이 동의 없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또는 SNS에 올렸던 글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출판물이 된다면, 때문에 숨기고 싶었던 부분까지 세상 모두가 알아버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근 타인과의 사적 대화를 소설 속에 무단 도용해 출판된 소설집이 판매중단까지 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실생활과 문학 작품의 경계를 두고 논쟁이 오가고 있는데요.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함께 얘기 나눌 분 모셔보죠. 김성신 출판평론가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성신 출판평론가(이하 김성신):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김봉곤 작가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와 단편 ‘그런 생활’이 실린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사적 대화의 무단 도용 문제로 판매가 중단됐습니다. 일단 어떤 일입니까?
◆ 김성신: 네,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사적 대화 무단인용 논란, 이렇게도 부를 수 있겠는데요. 소설가 김봉곤 씨의 단편소설입니다. ‘그런 생활’이라는 작품에 실존 인물입니다. 지인인 한 여성과 사적으로 나눈 그런 성적인 대화를 동의 없이 인용했다, 이런 논란에 휩싸인 겁니다. 여기에 이어서 지난 2018년에 출간된 김봉곤 작가의 첫 소설집의 표제작입니다. ‘여름 스피드’라는 작품에서도 이와 거의 비슷한 그런 가해를 했다, 이런 주장이 또 연이어서 같이 제기가 됐고요. 자신을 김봉곤 작가의 소설 ‘여름 스피드’의 등장인물 영우다, 이렇게 밝힌 한 남성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글을 올려서 제가 김봉곤 작가에게 수년 만에 연락하기 위해서 전달한 페이스북 페이지 메시지 역시 동일한 내용과 맥락으로 책 속의 한 일부분이 됐다. 책 속의 도입부가 됐다. 그대로 인용된 거죠. 저에게는 소설 속에 등장한다고 하는 어떠한 동의 절차도 없었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당혹감, 분노, 모욕감을 느꼈고, ‘그런 생활’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이 여성의 문제제기를 보고 자신도 피해사실을 공개할 용기를 냈다, 이렇게 최근에 밝혔죠.
◇ 최형진: ‘그런 생활’에 등장한 지인 여성의 카톡 내용이 거의 원고지 10매 정도 됐다고 하는데, 그러면 굉장히 많은 양 아닙니까?
◆ 김성신: 그렇죠. 양이 사실 절대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요. 또 그 여성 같은 경우에는 물론 작가가 미리 이것을 올린다고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작품이 나왔을 때 너무나도 똑같고, 또 누가 보더라도, 제삼자가 보더라도 자신임을 알 수 있는 이런 것들 때문에 심하게 모욕감도 느끼고, 이랬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죠.
◇ 최형진: 일단은 출판사가 문제가 된 책들의 판매를 중지는 한 거죠?
◆ 김성신: 네. 소설집 ‘여름 스피드’와 ‘그런 생활’을 수록했던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낸 출판사 문학동네, 그리고 ‘그런 생활’이 실린 두 번째 소설집입니다. ‘시절과 기분’을 낸 이 출판사 창비가 지난 17일 피해자와 독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하면서 해당 단행본들의 판매를 중지한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 최형진: 출판사가 이 문제가 된 책들의 판매를 중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반응인가요?
◆ 김성신: 말씀하신 대로 출판사의 판매 중지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봉곤 사태, 그야말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상에서 출판사와 작가의 소극적인 입장 표명, 여기에 거듭 항의하던 독자들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해당 책들의 교환, 이런 것들을 넘어서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고, 그런 상황입니다.
◇ 최형진: 작가들도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면서요?
◆ 김성신: 피해자들의 폭로 이후에 작가들도 함께 분노했습니다. 김봉곤 작가와 함께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소설을 싣지 않겠다, 이렇게 밝혔고요. 역시 같은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이현석 작가 같은 경우도 창비에서 발간하는 창작과 비평 ‘문학3’ 보이콧에 이어서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두 출판사와 맺은 출판 계약을 해지하고자 한다고까지 밝혔습니다.
◇ 최형진: 일단은 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눈 게 책으로 나오면 굉장히 끔찍할 것 같기도 하거든요.
◆ 김성신: 그렇죠. 가령 저 같은 경우에도 가까운 작가 분들이 저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모티브를 그대로 내가 작품에 써도 되겠느냐, 라고 했을 때 충분히 그것이 작가 분에 의해서 각색이 되고, 문학적 상상력으로 다시 재가공이 된다고 하면, 사실 그 이야기를 드린 분의 입장에서는, 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또 영광일 수도 있기는 해요. 그런데 지금 이 케이스는 전혀 그것과 다릅니다. 그 피해자의 입장에서, 도용된 분의 입장에서 이것은 도용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그 당사자가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죠.
◇ 최형진: 그렇군요. 일단 해당 작가, 성소수자를 중심에 둔 문학으로 한국 문단의 새로운 퀴어 서사의 가능성을 싹틔웠다고 평가 받으면서 이름 알리게 됐는데, 먼저 이전에도 이런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둔 문학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 김성신: 그렇죠.
◇ 최형진: 비교적 빠른 시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이유랄까, 사회의 변화나 독자들, 문학계의 인식 변화와 시기가 잘 맞았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 김성신: 네, 정확하게 보신 거고요. 조금 설명을 하자면 지난 2018년을 기점으로 해서 한국 문학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가 퀴어 서사, 이런 것들이 등장하고, 이 서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사실 그 2년 전인 2016년부터 김봉곤 작가, 박상영 작가, 이런 분들이 동성애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바로 이런 흐름들을 계속 주도해왔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작품 발표에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독자들의 호응이 있었다, 이런 점이 중요하고요. 말씀하신 대로 문학작품에 동성애가 등장한 작품이야 물론 이전에도 있었는데, 동성애 자체를 주제로 한 퀴어 소설이 주류 문학에 편입돼서 한국 문학의 지평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이런 평가까지 받았고. 그렇게 해서 독자들에게 퀴어 소설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 이 과정에서 김봉곤 작가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또 전체적인 사회적인 분위기를 놓고 봤을 때 이런 과정에서 젠더 문제라든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 이런 것들이 폭발적으로 커져 있는 상태에서 특히 김봉곤 작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2010년대 후반에 데뷔한 그런 작가들 가운데서는 정말 빠른 속도로 명성과 유명세를 얻게 된 겁니다. 또 사실 김봉곤 작가 본인이 한국 소설가로서는 최초로 자신이 성소수자, 게이임을 선언하면서 커밍아웃을 한 작가. 그런 작가라는 점에서 김봉곤 작가의 작품을 일종의 당사자 문학, 이런 특징까지 가진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 최형진: 해당 작가는 그동안 오토픽션, 자전적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해왔고, 또 오토픽션을 잘 쓴다고 평가가 돼왔는데, 독자들로서는 황당할 것 같아요.
◆ 김성신: 황당하죠. 한 가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얼리티라는 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소설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굉장한 기대치이기도 하고, 또 소설 문학의 수준을 평가하는 또 중요한 기준이나 척도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리얼리티가 아니라 그냥 리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 때문에 작가의 도덕성과 문학성이 동시에 의심되는 그런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이 김봉곤 작가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고, 작가 자신을 소설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시켜온 것입니다. 그래서 SNS, 문자나 이런 것들을 종종 인용해오기는 했는데, 이 부분의 리얼리티가 워낙 뛰어나서 문학적으로 호평 받았거든요. 바로 이 부분이 지금 문제가 된 겁니다.
◇ 최형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토픽션, 이런 단어가 많이 들리는데 이게 정확히 어떤 장르입니까?
◆ 김성신: 하나의 문학적 기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문학계에서는 이런 작법을 두고 작가 자신의 경험과 픽션, 소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한 오토픽션이다, 이렇게 명명했고, 그것이 아주 신선하고 의미 있는 문학적 기법이다, 이런 식으로 사실 독자들에게 설명해왔거든요. 이 오토픽션,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원의 ‘오토’라는 단어, 그리고 허구를 뜻하는 ‘픽션’을 조합한 단어, 그러니까 자전소설이라는 말로 쓰일 수 있는데요. 자서전과 소설의 중간 지대쯤 위치하는 문학이 오토픽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자신의 삶의 경험을 직접 소설 안에 녹여 넣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오토픽션은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이 부분 때문에 강력한 흡입력을 갖기도 하지만 또 현실과 허구의 줄타기라는 긴장이 이렇게 작품 외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작품에 등장한 주변 인물들의 사생활 침해 논란,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고요. 외국에서도 간혹 벌어졌던 일이기도 합니다.
◇ 최형진: 일본의 법정에서는 비슷한 상황에 대해서 전혀 다른 판결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판결이 났습니까?
◆ 김성신: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판결이 2007년도 소설가 공지영 작가의 전 남편이었던 분이 사생활 침해다, 이렇게 소송을 했는데, 패소했죠. 소송을 하신 분이. 작가로서 문제가 없다, 이런 판결이었는데, 말씀하신 대로 일본에서는 사생활 침해 문제제기. 거의 같은 사안인데, 소설 판매금지와 위자료 배상 판결이 나기도 했습니다. 재일동포 소설가인 유미리 씨 작품이었는데요. 지난 1994년 제출된 출판 금지와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죠.
◇ 최형진: 그렇군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작가의 편을 들어줬다면 일본에서는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판결이었죠.
◆ 김성신: 그렇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개인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법 취지를 당시 함께 밝히기도 했습니다.
◇ 최형진: 오토픽션, 자전소설 등으로 이름까지 불릴 정도면 오랜 세월 많은 작가들이 이런 표현법을 써오지 않았을까요?
◆ 김성신: 그렇죠. 사실 그런 문학적 기법이라는 것들은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어떠한 자유도 타인의 피해나 고통 위에 올라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법적으로는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나 고통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은 사실 있겠지만 어쨌든 원칙은 그러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소설 속 영우다, 이렇게 밝힌 최근에 B 씨 같은 경우에는 입장문에서 오토픽션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의 갈취가 여전히 실제하는 인물들에게 가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의 장에서 다시금 알리고 싶었다. 이렇게도 밝히기도 했습니다.
◇ 최형진: 몇 가지 문제가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당사자 동의 없이 실생활을 날 것 그대로 소설에 옮겼고요. 그로 인해서 피해를 호소하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있는 이상 표현의 자유로 이야기하기에는 어렵지 않느냐, 이런 의견들이 많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 김성신: 그렇습니다. 이번 김봉곤 작가의 사태의 경우에는 문학이라는 외피를 쓰고 저지른 무분별한 재현, 혹은 재현도 아닌 사실상의 사실적시, 이런 것들을 통해서 누군가가 분명히 고통과 피해를 호소하고 있거든요. 이렇다고 하면 당연히 여기에 대한 책임감,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법적인 책임도 여기에 따라서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 최형진: 문학작품을 베끼게 되면 표절임을 알기 때문에 조심을 하지만 기타 블로그나 SNS 등을 참고할 때는 저작권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무단도용을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의견들도 많은데요. 과거와는 달리 블로그나 SNS 등도 저작물로 인식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김성신: 네, 당연한 말씀이고요. 저작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얼핏 보면 창작의 범위를 좁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본질은 자유롭고 의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창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기도 하거든요. 애쓴 자신의 창작품이 타인들에게 무단으로 도용되는 것이 법적으로 보호가 되지 않고 방치된다고 하면 사실 누가 창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저작권법은 그야말로 현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그런 가장 중요한 법 중 하나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말씀하신 대로 블로그나 SNS에 사실 너무나도 많은 글이 올라오는데, 이게 창작물인지, 누군가를 인용한 건지, 재인용한 건지, 사실 알 수가 없어서 이 때문에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도 함께 희박해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실제로 한국의 법원들도 판결에 있어서는 SNS나 이런 곳, 블로그에 올라가 있는 글을 무단 도용했을 때 벌금형을 선고를 하고 있거든요. 여기에 대한 조금 더 저작권법에 대한 개념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요. 상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최형진: 네, 또 그런 글들을 도용하는 분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겠습니다.
◆ 김성신: 그렇죠.
◇ 최형진: 이제 중요한 질문을 드려볼까 하는데요. 사회 변화와 함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또 소비하는 독자들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문학계에서도 인식을 가지고 소수자, 인권 등 차별적인 번역을 정정하는 등의 변화의 움직임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 김성신: 네, 그렇습니다. 최근 들어와서 여성, 성소수자, 이런 분들을 향한 오래되고, 일상화된 혐오와 차별에 대한 그런 반성과 자성, 이런 것들이 그야말로 전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수가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이제 공론의 장으로 들어온 페미니즘 논의, 이런 것 등으로 인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인권 감수성, 이런 것들이 필요해졌고, 이번에 김봉곤 사태도 바로 이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이전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차별이나 혐오의 문제가 숨어 있다고 하면 그것을 시대적 감수성, 지금의 감수성에 맞춰서 다시 검토하는 작업들,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고요. 이것은 사실 문학계뿐만 아니라 문학의 전반에서도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혐오와 차별에 대한 정정을 시도하는 것, 이 자체는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 최형진: 이번 사건을 두고 독자들은 물론 작가들까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과 없이 보여주기 식 대처다, 이런 지적도 많습니다. 작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출판사, 또 문단에서도 반성과 자성이 필요하다, 이런 의견인데요. 이번 사건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성신: 각계 비판, 또 반성, 자성,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 최소한 피해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판계라든지, 이런 곳이 먼저 나섰어야 하는데, 독자들의 요구에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이런 점들을 봤을 때 여러 가지로 안타까움이 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최형진: 이번 사건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져야겠습니다. 자성에 대한 요구는 있지만, 사실 이런 부분도 의문이 듭니다. 이번 사건 계기로 문단이나 출판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겠습니까?
◆ 김성신: 아무 변화야 없지 않겠지만 사실 이런 자성의 요구에도 문단과 출판계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저는 그렇게 봅니다. 왜냐하면 현재 문단 권력과 출판 자본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거든요. 출판 자본에 유리한 쪽으로 작가나 작품의 문학성을 판단하는, 판단해주는. 그런 구조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반성과 자성을 통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문단 내의 목소리,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건데, 출판 자본을 등에 업고 또 문단의 권력이 된 그런 존재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지는 못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보이고요.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당장에 어마어마한 개선, 이런 것들은 저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으로 보고요. 다만 이런 구조적 모순과 한계에 대한 독자들도 그렇고, 지식인 사회에도 그렇고,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계속될 때 어느 시점, 어느 특이점을 지나게 되면 그 이후에 도약적 발전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최형진: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사실 문학계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주제의식을 던지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학계의 힘이자 역할이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학계도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성신: 문학계를 포함해서 이른바 지식인 사회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이렇게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논란이 있으면 논란 자체를 문제시하거나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사실 논란은 논쟁일 수도 있고요. 그 논란이라는 부분들이 뭔가 생산적이고, 뭔가 개선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그러한 논쟁으로 이어진다고 하면 그것은 굉장히 건강한 일이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사회에서 논의들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래서 이 사건이 그냥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덮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학계와 출판계가 힘을 합쳐서 지금 이 문제를 계기로 더 많은 논의들을 조금 더 심도 깊게 논의하는 그런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않겠느냐. 우리 사회를 위해서 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최형진: 그렇게 되기 위해서 평론가님도 두 발로 열심히 뛰어주셔야겠습니다.
◆ 김성신: 네, 열심히 뛰겠습니다.
◇ 최형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성신: 네, 고맙습니다.
◇ 최형진: 지금까지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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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시 : 2020년 7월 20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김성신 출판평론가
- 사적 대화 무단도용 제기, 김봉곤 작가 해당 소설집 판매 중지
- 오토픽션, 작가의 경험과 소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한 문학적 기법 중 하나
-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 돼, 피해 내용에 책임져야
- 출판사와 작가 본인의 소극적 입장 표명 등 대응 문제
- 저작권, 창작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제대로 된 개념 가져야
- 독자, 사회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지나 도약적 발전 기대
- 문단 권력과 출판 자본의 긴밀한 관계로 당장의 현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것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나와 나눈 대화나 사건이 동의 없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또는 SNS에 올렸던 글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출판물이 된다면, 때문에 숨기고 싶었던 부분까지 세상 모두가 알아버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근 타인과의 사적 대화를 소설 속에 무단 도용해 출판된 소설집이 판매중단까지 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실생활과 문학 작품의 경계를 두고 논쟁이 오가고 있는데요.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함께 얘기 나눌 분 모셔보죠. 김성신 출판평론가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성신 출판평론가(이하 김성신):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김봉곤 작가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와 단편 ‘그런 생활’이 실린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사적 대화의 무단 도용 문제로 판매가 중단됐습니다. 일단 어떤 일입니까?
◆ 김성신: 네,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사적 대화 무단인용 논란, 이렇게도 부를 수 있겠는데요. 소설가 김봉곤 씨의 단편소설입니다. ‘그런 생활’이라는 작품에 실존 인물입니다. 지인인 한 여성과 사적으로 나눈 그런 성적인 대화를 동의 없이 인용했다, 이런 논란에 휩싸인 겁니다. 여기에 이어서 지난 2018년에 출간된 김봉곤 작가의 첫 소설집의 표제작입니다. ‘여름 스피드’라는 작품에서도 이와 거의 비슷한 그런 가해를 했다, 이런 주장이 또 연이어서 같이 제기가 됐고요. 자신을 김봉곤 작가의 소설 ‘여름 스피드’의 등장인물 영우다, 이렇게 밝힌 한 남성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글을 올려서 제가 김봉곤 작가에게 수년 만에 연락하기 위해서 전달한 페이스북 페이지 메시지 역시 동일한 내용과 맥락으로 책 속의 한 일부분이 됐다. 책 속의 도입부가 됐다. 그대로 인용된 거죠. 저에게는 소설 속에 등장한다고 하는 어떠한 동의 절차도 없었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당혹감, 분노, 모욕감을 느꼈고, ‘그런 생활’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이 여성의 문제제기를 보고 자신도 피해사실을 공개할 용기를 냈다, 이렇게 최근에 밝혔죠.
◇ 최형진: ‘그런 생활’에 등장한 지인 여성의 카톡 내용이 거의 원고지 10매 정도 됐다고 하는데, 그러면 굉장히 많은 양 아닙니까?
◆ 김성신: 그렇죠. 양이 사실 절대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요. 또 그 여성 같은 경우에는 물론 작가가 미리 이것을 올린다고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작품이 나왔을 때 너무나도 똑같고, 또 누가 보더라도, 제삼자가 보더라도 자신임을 알 수 있는 이런 것들 때문에 심하게 모욕감도 느끼고, 이랬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죠.
◇ 최형진: 일단은 출판사가 문제가 된 책들의 판매를 중지는 한 거죠?
◆ 김성신: 네. 소설집 ‘여름 스피드’와 ‘그런 생활’을 수록했던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낸 출판사 문학동네, 그리고 ‘그런 생활’이 실린 두 번째 소설집입니다. ‘시절과 기분’을 낸 이 출판사 창비가 지난 17일 피해자와 독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하면서 해당 단행본들의 판매를 중지한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 최형진: 출판사가 이 문제가 된 책들의 판매를 중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반응인가요?
◆ 김성신: 말씀하신 대로 출판사의 판매 중지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봉곤 사태, 그야말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상에서 출판사와 작가의 소극적인 입장 표명, 여기에 거듭 항의하던 독자들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해당 책들의 교환, 이런 것들을 넘어서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고, 그런 상황입니다.
◇ 최형진: 작가들도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면서요?
◆ 김성신: 피해자들의 폭로 이후에 작가들도 함께 분노했습니다. 김봉곤 작가와 함께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소설을 싣지 않겠다, 이렇게 밝혔고요. 역시 같은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이현석 작가 같은 경우도 창비에서 발간하는 창작과 비평 ‘문학3’ 보이콧에 이어서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두 출판사와 맺은 출판 계약을 해지하고자 한다고까지 밝혔습니다.
◇ 최형진: 일단은 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눈 게 책으로 나오면 굉장히 끔찍할 것 같기도 하거든요.
◆ 김성신: 그렇죠. 가령 저 같은 경우에도 가까운 작가 분들이 저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모티브를 그대로 내가 작품에 써도 되겠느냐, 라고 했을 때 충분히 그것이 작가 분에 의해서 각색이 되고, 문학적 상상력으로 다시 재가공이 된다고 하면, 사실 그 이야기를 드린 분의 입장에서는, 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또 영광일 수도 있기는 해요. 그런데 지금 이 케이스는 전혀 그것과 다릅니다. 그 피해자의 입장에서, 도용된 분의 입장에서 이것은 도용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그 당사자가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죠.
◇ 최형진: 그렇군요. 일단 해당 작가, 성소수자를 중심에 둔 문학으로 한국 문단의 새로운 퀴어 서사의 가능성을 싹틔웠다고 평가 받으면서 이름 알리게 됐는데, 먼저 이전에도 이런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둔 문학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 김성신: 그렇죠.
◇ 최형진: 비교적 빠른 시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이유랄까, 사회의 변화나 독자들, 문학계의 인식 변화와 시기가 잘 맞았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 김성신: 네, 정확하게 보신 거고요. 조금 설명을 하자면 지난 2018년을 기점으로 해서 한국 문학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가 퀴어 서사, 이런 것들이 등장하고, 이 서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사실 그 2년 전인 2016년부터 김봉곤 작가, 박상영 작가, 이런 분들이 동성애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바로 이런 흐름들을 계속 주도해왔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작품 발표에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독자들의 호응이 있었다, 이런 점이 중요하고요. 말씀하신 대로 문학작품에 동성애가 등장한 작품이야 물론 이전에도 있었는데, 동성애 자체를 주제로 한 퀴어 소설이 주류 문학에 편입돼서 한국 문학의 지평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이런 평가까지 받았고. 그렇게 해서 독자들에게 퀴어 소설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 이 과정에서 김봉곤 작가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또 전체적인 사회적인 분위기를 놓고 봤을 때 이런 과정에서 젠더 문제라든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 이런 것들이 폭발적으로 커져 있는 상태에서 특히 김봉곤 작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2010년대 후반에 데뷔한 그런 작가들 가운데서는 정말 빠른 속도로 명성과 유명세를 얻게 된 겁니다. 또 사실 김봉곤 작가 본인이 한국 소설가로서는 최초로 자신이 성소수자, 게이임을 선언하면서 커밍아웃을 한 작가. 그런 작가라는 점에서 김봉곤 작가의 작품을 일종의 당사자 문학, 이런 특징까지 가진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 최형진: 해당 작가는 그동안 오토픽션, 자전적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해왔고, 또 오토픽션을 잘 쓴다고 평가가 돼왔는데, 독자들로서는 황당할 것 같아요.
◆ 김성신: 황당하죠. 한 가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얼리티라는 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소설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굉장한 기대치이기도 하고, 또 소설 문학의 수준을 평가하는 또 중요한 기준이나 척도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리얼리티가 아니라 그냥 리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 때문에 작가의 도덕성과 문학성이 동시에 의심되는 그런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이 김봉곤 작가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고, 작가 자신을 소설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시켜온 것입니다. 그래서 SNS, 문자나 이런 것들을 종종 인용해오기는 했는데, 이 부분의 리얼리티가 워낙 뛰어나서 문학적으로 호평 받았거든요. 바로 이 부분이 지금 문제가 된 겁니다.
◇ 최형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토픽션, 이런 단어가 많이 들리는데 이게 정확히 어떤 장르입니까?
◆ 김성신: 하나의 문학적 기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문학계에서는 이런 작법을 두고 작가 자신의 경험과 픽션, 소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한 오토픽션이다, 이렇게 명명했고, 그것이 아주 신선하고 의미 있는 문학적 기법이다, 이런 식으로 사실 독자들에게 설명해왔거든요. 이 오토픽션,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원의 ‘오토’라는 단어, 그리고 허구를 뜻하는 ‘픽션’을 조합한 단어, 그러니까 자전소설이라는 말로 쓰일 수 있는데요. 자서전과 소설의 중간 지대쯤 위치하는 문학이 오토픽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자신의 삶의 경험을 직접 소설 안에 녹여 넣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오토픽션은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이 부분 때문에 강력한 흡입력을 갖기도 하지만 또 현실과 허구의 줄타기라는 긴장이 이렇게 작품 외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작품에 등장한 주변 인물들의 사생활 침해 논란,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고요. 외국에서도 간혹 벌어졌던 일이기도 합니다.
◇ 최형진: 일본의 법정에서는 비슷한 상황에 대해서 전혀 다른 판결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판결이 났습니까?
◆ 김성신: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판결이 2007년도 소설가 공지영 작가의 전 남편이었던 분이 사생활 침해다, 이렇게 소송을 했는데, 패소했죠. 소송을 하신 분이. 작가로서 문제가 없다, 이런 판결이었는데, 말씀하신 대로 일본에서는 사생활 침해 문제제기. 거의 같은 사안인데, 소설 판매금지와 위자료 배상 판결이 나기도 했습니다. 재일동포 소설가인 유미리 씨 작품이었는데요. 지난 1994년 제출된 출판 금지와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죠.
◇ 최형진: 그렇군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작가의 편을 들어줬다면 일본에서는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판결이었죠.
◆ 김성신: 그렇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개인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법 취지를 당시 함께 밝히기도 했습니다.
◇ 최형진: 오토픽션, 자전소설 등으로 이름까지 불릴 정도면 오랜 세월 많은 작가들이 이런 표현법을 써오지 않았을까요?
◆ 김성신: 그렇죠. 사실 그런 문학적 기법이라는 것들은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어떠한 자유도 타인의 피해나 고통 위에 올라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법적으로는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나 고통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은 사실 있겠지만 어쨌든 원칙은 그러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소설 속 영우다, 이렇게 밝힌 최근에 B 씨 같은 경우에는 입장문에서 오토픽션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의 갈취가 여전히 실제하는 인물들에게 가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의 장에서 다시금 알리고 싶었다. 이렇게도 밝히기도 했습니다.
◇ 최형진: 몇 가지 문제가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당사자 동의 없이 실생활을 날 것 그대로 소설에 옮겼고요. 그로 인해서 피해를 호소하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있는 이상 표현의 자유로 이야기하기에는 어렵지 않느냐, 이런 의견들이 많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 김성신: 그렇습니다. 이번 김봉곤 작가의 사태의 경우에는 문학이라는 외피를 쓰고 저지른 무분별한 재현, 혹은 재현도 아닌 사실상의 사실적시, 이런 것들을 통해서 누군가가 분명히 고통과 피해를 호소하고 있거든요. 이렇다고 하면 당연히 여기에 대한 책임감,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법적인 책임도 여기에 따라서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 최형진: 문학작품을 베끼게 되면 표절임을 알기 때문에 조심을 하지만 기타 블로그나 SNS 등을 참고할 때는 저작권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무단도용을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의견들도 많은데요. 과거와는 달리 블로그나 SNS 등도 저작물로 인식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김성신: 네, 당연한 말씀이고요. 저작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얼핏 보면 창작의 범위를 좁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본질은 자유롭고 의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창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기도 하거든요. 애쓴 자신의 창작품이 타인들에게 무단으로 도용되는 것이 법적으로 보호가 되지 않고 방치된다고 하면 사실 누가 창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저작권법은 그야말로 현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그런 가장 중요한 법 중 하나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말씀하신 대로 블로그나 SNS에 사실 너무나도 많은 글이 올라오는데, 이게 창작물인지, 누군가를 인용한 건지, 재인용한 건지, 사실 알 수가 없어서 이 때문에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도 함께 희박해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실제로 한국의 법원들도 판결에 있어서는 SNS나 이런 곳, 블로그에 올라가 있는 글을 무단 도용했을 때 벌금형을 선고를 하고 있거든요. 여기에 대한 조금 더 저작권법에 대한 개념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요. 상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최형진: 네, 또 그런 글들을 도용하는 분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겠습니다.
◆ 김성신: 그렇죠.
◇ 최형진: 이제 중요한 질문을 드려볼까 하는데요. 사회 변화와 함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또 소비하는 독자들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문학계에서도 인식을 가지고 소수자, 인권 등 차별적인 번역을 정정하는 등의 변화의 움직임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 김성신: 네, 그렇습니다. 최근 들어와서 여성, 성소수자, 이런 분들을 향한 오래되고, 일상화된 혐오와 차별에 대한 그런 반성과 자성, 이런 것들이 그야말로 전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수가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이제 공론의 장으로 들어온 페미니즘 논의, 이런 것 등으로 인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인권 감수성, 이런 것들이 필요해졌고, 이번에 김봉곤 사태도 바로 이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이전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차별이나 혐오의 문제가 숨어 있다고 하면 그것을 시대적 감수성, 지금의 감수성에 맞춰서 다시 검토하는 작업들,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고요. 이것은 사실 문학계뿐만 아니라 문학의 전반에서도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혐오와 차별에 대한 정정을 시도하는 것, 이 자체는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 최형진: 이번 사건을 두고 독자들은 물론 작가들까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과 없이 보여주기 식 대처다, 이런 지적도 많습니다. 작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출판사, 또 문단에서도 반성과 자성이 필요하다, 이런 의견인데요. 이번 사건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성신: 각계 비판, 또 반성, 자성,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 최소한 피해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판계라든지, 이런 곳이 먼저 나섰어야 하는데, 독자들의 요구에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이런 점들을 봤을 때 여러 가지로 안타까움이 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최형진: 이번 사건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져야겠습니다. 자성에 대한 요구는 있지만, 사실 이런 부분도 의문이 듭니다. 이번 사건 계기로 문단이나 출판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겠습니까?
◆ 김성신: 아무 변화야 없지 않겠지만 사실 이런 자성의 요구에도 문단과 출판계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저는 그렇게 봅니다. 왜냐하면 현재 문단 권력과 출판 자본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거든요. 출판 자본에 유리한 쪽으로 작가나 작품의 문학성을 판단하는, 판단해주는. 그런 구조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반성과 자성을 통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문단 내의 목소리,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건데, 출판 자본을 등에 업고 또 문단의 권력이 된 그런 존재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지는 못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보이고요.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당장에 어마어마한 개선, 이런 것들은 저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으로 보고요. 다만 이런 구조적 모순과 한계에 대한 독자들도 그렇고, 지식인 사회에도 그렇고,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계속될 때 어느 시점, 어느 특이점을 지나게 되면 그 이후에 도약적 발전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최형진: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사실 문학계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주제의식을 던지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학계의 힘이자 역할이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학계도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성신: 문학계를 포함해서 이른바 지식인 사회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이렇게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논란이 있으면 논란 자체를 문제시하거나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사실 논란은 논쟁일 수도 있고요. 그 논란이라는 부분들이 뭔가 생산적이고, 뭔가 개선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그러한 논쟁으로 이어진다고 하면 그것은 굉장히 건강한 일이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사회에서 논의들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래서 이 사건이 그냥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덮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학계와 출판계가 힘을 합쳐서 지금 이 문제를 계기로 더 많은 논의들을 조금 더 심도 깊게 논의하는 그런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않겠느냐. 우리 사회를 위해서 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최형진: 그렇게 되기 위해서 평론가님도 두 발로 열심히 뛰어주셔야겠습니다.
◆ 김성신: 네, 열심히 뛰겠습니다.
◇ 최형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성신: 네, 고맙습니다.
◇ 최형진: 지금까지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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